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비웃는 노동부

산업연수생은 퇴직금 받으려면 재판까지 가라?

등록 2008.10.17 14:42수정 2008.10.17 14:42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충북 괴산 소재 (주)Y에서 2년을 근무했던 베트남 출신 니엠(Nhiem, 35)은 얼마 전 출국을 앞두고 관할 지방노동사무소에 퇴직금을 청구했지만 퇴직금을 받을 수 없었다. 노동부에서 '산업연수생 퇴직금 관련 방침'에 의해 내사종결 처리하였기 때문이었다.

 

노동부는 '95.02.14부터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의 보호 및 관리에 관한 지침(노동부 예규 제369호)>에 의거 근로기준법의 8개 조항을 제한적으로 적용토록 하여,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07년 8월 30일 위 예규에 대하여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이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경우 일반근로자와 달리 근로기준법의 일부만 적용토록 한 위 예규의 일부조항은 평등권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산업연수생 관련 지침들이 위헌판결이 나자, 노동부는 관련 지침과 동일한 취지의 행정해석들을 폐지한다고 해 놓고, 같은 해 11월말에 '산업연수생 퇴직금 관련 방침'을 만들어, 헌법소원 이전 퇴직한 산업기술 연수생들의 퇴직금 지급을 원천 봉쇄하며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상기 방침에 의하면, 위헌결정 전에 발생한 퇴직금 미지급 사건은 진정사건인 경우에는 내사 종결하고, 고소 고발사건인 경우에는 불기소의견으로 처리한다고 하도록 하고 있다. 노동부 방침의 어이없는 부분은 "퇴직금 채권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산업기술연수생들은 사용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적고 있는 부분이다.

 

이 말은 퇴직금 소멸시효가 지나지 않은 산업기술연수생은 퇴직금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그러나 내국인인 경우 퇴직금을 받겠다고 모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내국인인 경우, 예외적으로 퇴직금 지급을 악의적으로 거부하는 고용주를 상대로 퇴직금 관련한 민사소송을 제기하되, 이 또한 노동부 근로감독과의 진정사건 조사 후 '체불금품 확인원'을 뗀 후, 민사소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노동부 근로기준팀은 '산업연수생 퇴직금 관련 방침'에서 위헌결정 전에 발생한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 대해 퇴직금 지급을 봉쇄하는 근거로 위헌결정이 난 법률은 결정일로부터 효력을 상실한다는 헌법제판소법 제47조를 들고 있다.

 

노동부 논리대로라면, 정작 위헌 판결 대상이 됐던 노동부 예규에 대해 2004년 위헌심판 청구를 했던 당사자가 위헌 판결이 나기 전에 퇴직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또한 현재 법원에 의해 위헌심판 제청이 이뤄진 '야간 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관련하여,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며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들이 재판 진행을 중단하고 구속된 피고인들을 석방하고 있는 사법부를 비웃는 행위인 셈이다.

 

노동부의 방침은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상의 기본원칙도 지키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 위헌판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여러 가지 행정지침과 예규들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제한해 왔던 노동부가 기업주 위주의 지침을 재차 만들어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을 심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민사 소송을 한다고 하더라도 노동부 진정사건에서 내사종결 처리되어, '임금체불 확인원'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도 대단히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설마 재판까지 가겠는가 하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노동부가 위헌 판결을 비꼬며 고용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안 노동자 권리는 실종되고 있다.

2008.10.17 14:42 ⓒ 2008 OhmyNews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산업연수생 #노동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