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비 줄 돈은 없고, 재판할 돈은 있다?

기숙사 화재로 하반신 마비되고도 위자료 한 푼 없어 쫓겨난 샤니

등록 2008.10.21 18:26수정 2008.10.2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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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만 이 년 넘었어요. 사장님은 전화도 안 받아요. 어떻하면 좋아요?”


또박또박 말하는 투로 봐서는 한국에 꽤 오래 있었음직한 파키스탄인이 건넨 것은 인천지방법원에서 나온 '판결문'이었다. 그가 건넨 판결문에 그와 동행한 이의 형인 샤니라는 사람과 관련한 사건 내용이 적혀 있었다.

판결문 사건 내용에 의하면 샤니(38)는 2006년 1월초에 외국인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여 경기 광주 소재의 모업체에서 근무하였다고 한다. 근무 시작한 지 한 달이 막 지날 때쯤, 같은 건물 1층에서 전기 과부하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당시 회사 건물 옥상에 설치되어 있던 컨테이너 박스에서 동료들과 잠을 자던 샤니는, 건물 내부에 보관 중이던 인화성이 강한 폴리에틸렌 제품들로 인해 순식간에 불이 크게 번지고 비상구가 없어 빠져나갈 길이 없자, 건물 3층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3층에서 뛰어내리며 샤니는 오른쪽 다리 기능이 거의 마비됐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는 “업체측에서 공장 건물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였다면, 평소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여 화재 등의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불가피하게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도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하거나 근로자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어 놓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하여 근로자들이 사건 사고를 당하게 한 잘못이 있는 바, 업체측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회사측에서는 화재 사고가 근로자들의 숙소로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한 것 때문에 전기과부하가 생긴 것이 아니라, 공장 1층 건물 전기과부하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이유로 안전관리의무를 소홀히 한 적이 없다며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여 재판이 계속 진행되었다. 회사측 논리는 컨테이너 박스는 일종의 노동자 편의시설이지, 기숙사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관리의무를 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샤니를 비롯한 두 명의 동료는 입사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야근을 했고, 야근을 마친 후에는 컨테이너에서 잠을 청해야 했는데, 회사 공장장은 "컨터이너 박스가 새 거라 이만한 기숙사를 가진 회사가 근처에 없다"고 매번 말했었다고 한다.


그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샤니는 변호사를 통해 손해배상금으로 위자료만을 청구하였었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그것을 거부하고 변호사를 통해 재판에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은 샤니가 한쪽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장해를 입게 된 것과 사건 사고의 경위, 샤니의 나이와 사고로 인한 정신적 고통 등을 감안하여 사건이 난 지 2년 6개월 만에 1500만 원의 위자료 지급 판결을 지난 8월 중순에 내렸다.

문제는 재판이 끝난 지 이십여 일이 지난 후에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로부터, "원고측 회사가 폐업을 했기 때문에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없고, 당시 업체대표였던 사람이 잠적해 버려서 사건 마무리를 못해 죄송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화재 사고 이후, 병원비 문제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변호사를 위임하고 출국했던 샤니는 변호사의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한국에 있는 동생을 시켜 상담을 청해 온 것이었다.

좀 더 정확한 사건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사건을 위임했던 변호사에게 연락을 해 봤다. 담당 변호사는 "본 사건은 주식회사 **를 원고로 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원고가 사라진 마당에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다만, 주식회사란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주주들이 없이 명칭만 그렇게 해 놓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럴 경우 법리적으로는 당시 대표를 상대로 청구를 시도해 볼 수는 있는데, 이 역시 증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은 과거 대표자 주소지로 내용증명을 발송했으니, 연락이 되면 연락 주겠습니다"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그에 대해 샤니의 동생은 "저 지금 집에 가야 돼요. 제가 돈 받지 못하고 가면 형이 온다고 해요. 안 되는 거 알잖아요. 형이 와도 걷지도 못하잖아요. 더 힘들어요. 도와주세요"고 말했다.

변호사도 감당치 못한 사람을 감당해 달라고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어찌할까? 사람을 만나서 인정에라도 호소해 보자고, 화재 사고가 있던 회사 위치와 전화번호들을 확인해 봤다. 전화는 역시나 먹통이었고, 화재가 났던 회사 자리엔, 다른 회사가 들어서 있었다.

참 매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잠 자라고 만들어 놓은 컨테이너 박스는 기숙사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변호사 수임해서 2년 넘게 끌 재판할 생각말고, 사정 이야기하고 성의라도 표해줬더라면, 좋았을걸. 이 사람들 평생 원망만 안고 살텐데.
#기숙사 #컨테이너 기숙사 #화재 사고 #산업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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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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