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매일 은박지 김밥을 우적거리네

[옥탑방 여자와 반지하 남자의 자취방 이야기 ①] 그 여자의 식생활

등록 2008.10.28 15:33수정 2008.11.0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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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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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저장 창고다. 와인 몇 병과 고모가 주신 홍삼 절편, 그리고 유통기간이 5일이나 지난 식빵, 산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하지만 아직 먹을만한) 나쵸가 보인다. 아래에는 쌀과 고구마 등이 있다. ⓒ 이유하


아침은 늘 바쁘다. 눈을 뜬 지는 20분이 다 되어 가지만 좀처럼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내가 사는 옥탑방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아침. 햇살은 눈이 아프게 쨍쨍한데 전기장판에서 일어나면 공기는 썰렁하다. "추워서 일어나기 힘들다"는 말이 나의 유일한 핑계거리다.

시간은 '마지노선'을 훌쩍 넘겨버렸다. 일어나자마자 작은 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노련하게 나갈 채비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예상보다 늦어진다. 예를 들어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든지, 어젯밤에 던져두었던 방 열쇠를 찾을 수 없다는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나의 아침밥을 소소한 일상과 아침잠에 빼앗기고 만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두두 두두두' 매서운 속도로 축지법을 써가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날이 갈수록 거리가 더 단축되는 느낌이다. 옆에는 출근 경쟁자들이 내 옆을 앞 다투어 지나가고 있다. 또각또각 하는 구두 굽 소리가 골목골목을 흐른다.

나의 아침을 책임지는 든든한 친구,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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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책임지는 든든한 동반자, 김밥이다. 하나씩 은박지로 개별 포장되어 있어서 먹기도, 가져가기도 쉽다. 아이스크림 콘의 껍질을 벗기듯 빙그르르 은박지를 벗기면서 먹으면 된다. ⓒ 이유하

일직선으로 내려오다 꺾이는 길엔 김밥집이 있다. 중국산 재료가 잔뜩 들어있을 1500원짜리 김밥은 다행히도 맛이 좋다. 늘 금방 싼 듯 따끈한 밥에 '며느리도 모르는' 비법으로 가득 찬 고소하고 푸짐한 속이 든든하다.

김밥 한 줄을 들고 정류장으로 냅다 뛰어간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김밥을 싼 은박지를 벗겨낸다. 그리고 물 한 모금 먹지 않아서 뻑뻑한 목에 김밥을 밀어 넣는다.

목이 콱콱 막힌다. 연속으로 김밥을 두 개 정도 넘기고 나면, 기름칠을 한 듯 목구멍이 촉촉해져서 김밥의 생생한 맛이 텅 빈 위를 즐겁게 만든다.

보통 김밥 한 줄을 채 먹기 전에 버스가 온다. 버스 안에서도 김밥 먹기를 그치지 않는다. 처음엔 좀 부끄럽기도 했으나 따지고 보니 배고픈 것보단 부끄러운 게 나았다.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지만 '쿨하게' 외면하곤, 후식으로 가방 속에서 팩에 담긴 두유를 꺼낸다.

앗! 그런데 큰일이다. 분명히 챙겨왔는데, 혼잡한 가방 안에서 빨대를 찾을 수가 없다. 두유를 물끄러미 보고 있느니, 목이 점점 더 말라온다. 팩에 진공 포장된 두유를 빨대 없이 먹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턱에 구멍 난 사람이 물을 마시듯, 줄줄 흘러내릴 게 뻔한  일이었다.

일단 두유팩의 끝을 조심스럽게 세모 모양으로 잘라낸다. 이때 실수라도 해서 큰 구멍을 내면 그땐 정말 난감하다. 다행히 적당한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 끝을 움켜쥐곤 버스가 정류장에서 정지하기만을 기다린다. 셋, 둘, 하나. 정지! 하기가 무섭게 매서운 속도로 두유를 입가에 가져간다.

어랏! 만족스럽게 두유를 들이키기도 전에, 버스는 급출발을 했다. 입으로 넘긴 두유 방울이 코끝까지 튄다. 콜록, 하고 기침이 터져나오면서 코끝이 알싸해졌다. 요놈의 인생이란!

그나저나 "오늘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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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모습이다. 나름 가득찬 것 같은데, 정작 먹을 것은 별로 없다. 밑반찬들과 음료수, 먹다 남은 배조각도 보인다. ⓒ 이유하

생각해 보면 확실히 엄마 밥 먹고 살 때가 좋았다. 아침마다 잔소리에 고함에 엉덩이까지 맞긴 하지만 늦지 않게 깨워주는 사람도 있고, 식당을 하는 엄마 덕에 언제든 반찬 정도는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엄마 요리 솜씨가 좋아서 맛있는 음식만을 먹다보니, 우아한(?) 입맛도 유지할 수 있었다.

독립을 하고 초반에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요리를 몇 번 해보았는데, 재료비가 더 들고 맛도 없는 탓에 집에서 밥을 먹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러다 저번 주말엔 "오랜만에 맘 잡고 맛있는 걸 먹어볼까?"하고 룰루랄라 가스불을 켜는데, 먹통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켜봐도 소용이 없었다. 

며칠 전 연체되었다고 날라온 청구서가 생각났다. 융통성이라곤 조금도 없는 가스 회사는 가스비 자동이체 신청을 했음에도 한 달치 요금은 자동으로 빼가지 않았다. 한 번 더 나를 독촉하는 지로용지를 받긴 받았는데, 자꾸 까먹어서 미뤄두고 있던 참이었다.

고작 3360원을 딱 한 달 연체했다고 우리집 가스는 댕강 끊어졌다. 깨끗하게 씻겨서 익을 준비만 하고 있던 내 고구마, 속이 노오란 것이 밤보다 더 고소하다는 내 고구마, 내 밥, 내 식사는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매정한 도시가스.

친구에게 전화해서 '도시가스 하소연'을 늘어놓았더니, "그러면서 왜 혼자 사니?",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니?"라고 물어본다. 하지만 나에겐 이 모든 '당황스런' 일상이 놀이처럼 느껴진다. 평생을 여동생과 한 방을 쓰면서 살았고, 머지않아 결혼하게 되면 누군가랑 같이 살게 될 터인데, 지금 딱 이 시기. 혼자 사는 소중한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밥 먹었어?"

오랜만에 만나든 매일 보든, 우리들이 하는 인사의 8할은 밥 안부다. 살다보면 밥 같이 먹을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나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밥님과 함께하셨습니까? 저도 이제 함께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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