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30분 걸어 집에 온 막둥이 "장하다 장해"

초2인 아들, 2시간 간격인 버스 기다리다 집에 걸어와

등록 2008.10.31 20:14수정 2008.11.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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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 쇼 지난 해 여름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 통에 물받아 놓고 노는 막둥이. 오늘 사건의 주인공의 장한 얼굴을 보라.^^ ⓒ 송상호


지금은 오후 5시 30분. 겨울이 눈 앞인 계절인 만큼 약간 어둑어둑하다. 우리 집 시골 방문이 "드르르" 열린다.


"아빠, 다녀왔습니다."

막 들어오는 막둥이(초 2)의 목소리가 힘이 없다. 그러더니 내가 있는 방문 앞에 와서는 벌러덩 드러눕는다.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햐, 요 녀석 봐라. 나이도 어린 게 무슨'이라는 마음으로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나에게 우리 집 막둥이가 입을 연다.

"아빠, 내가 왜 그런 줄 알아요. 나 학교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 왔어요."


이래저래 나는 두 번 놀란다. 한 번은 오자마자  '힘들어 죽겠다'며 벌러덩 드러눕는 막둥이의 행동에 놀라고, 또 한 번은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왔다는 말에 놀란다.

막둥이와 내가 나눈 대화가 이렇다.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버스정류장에 왔는데 오후 3시25분 버스를 놓쳤어요. 그 다음 버스가 5시 25분에 있잖아요. 그래서 한참 기다리다가 그냥 걸어 왔어요."
"그래?"
"시간이 얼마나 걸린 거니?"
"시계가 없어서 모르겠어요. 그리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해서 온 거예요."

그랬다. 평소 시간에는 약 1시간에 1대 꼴로 다니던 시골버스가 하루 중 유독 이 시간대에는 거의 2시간 간격으로 벌어진다. 승객이 별로 없을 시간대라고 생각한 버스 회사에서 버스 운전기사의 휴식시간을 배려한 것일 게다.

사실 초등학교 앞에서 우리 마을 앞 버스정류소까지는 버스로 10분 정도 걸린다. 초등학교 앞에서 우리 마을 앞까지 버스 정류소는 모두 4개지만, 시골에는 한 정류소 거리가 만만찮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오는 데 10분 정도 걸린다. 이러한 버스 거리를 걸어서 온다면, 그것도 아이 걸음으로 온다면 족히 1시간 30분은 걸렸을 거라 예상이 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도심의 거리를 걷는 것보다 시골 도로를 걷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골 왕복 2차선(편도 1차선) 도로는 갓길이나 인도가 별로 없다. 차들도 '쌩쌩' 달린다. 굽은 커브길이나 내리막길도 간혹 있다. 이런 탓에 편도 1차선에서 운행되는 경운기로 인해 사고가 잦기도 한다. 그런 길을 막둥이 혼자서 걸어온 것이다. 어쨌든 살아 돌아 왔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옛날 우리가 어렸던 시절이야 1시간 이상 걸어 다니는 것은 보통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여럿이 어울려 걸어 다녔기에 걸어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다. 찻길을 걸어 다닌 게 아니고 시골길을 걸어 다녔기에 위험하지도 않았다. 군데군데 풀밭이 있어서 짓궂은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 넘어지라고 풀을 엮어 놓고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땐 뱀도 많았다. 뱀이 나올라치면 우리 모두는 무슨 신기한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 마냥 돌과 나무를 들고 뱀과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오며가며 들에 핀 찔레 줄기, 산딸기 등을 따먹기도 하고, 때론 아카시 나무 잎을 '가위바위보'를 하여 한 잎씩 떼어내며 걷기도 했었다. 그땐 그런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야 그런 추억은 죽었다 깨어나도 없을 터.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 학원에서 집으로 누군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게 일상이 아니었던가. 그나마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은 서민 측에 속하는 학생이지만, 부모가 태워주는 자가용으로 등하교 및 학원통학을 하는 아이들도 꾀나 있을 게다.

어딘가를 향해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걸어보는 것. 이것만큼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있을까 싶다. 그런 추억을 누리지 못하고 크는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물론 요즘 아이들 나름대로 추억과 즐거움이 있음을 안다. 그러면서도 괜히 옛날 추억에 젖은 철없는 어른이 요즘 아이들 생각한답시고 푸념을 늘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 막둥이가 그 먼 거리를 걸어올 생각을 다 했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 혼자서 걸어왔다는 것. 시골에 있으니까 큰아이(중2 소녀)는 매일같이 하루 왕복 80분 정도 걸어 다닌다는 것. 막둥이도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으로 1시간 이상을 걸어서 통학하는 경험도 해본다는 것. 걸어서 집에 왔어도 짜증내지 않고 오히려 자랑하듯 말하는 막둥이라는 것' 등의 상황과 생각들이 겹쳐 오늘따라 막둥이가 더욱 사랑스럽다. 그래서 힘껏 안아 주었다.

"아이고, 우리 막둥이. 장하다 장해"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덧붙이는 글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더아모의집 #송상호목사 #걸어서 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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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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