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에선 늘 꿉꿉한 냄새가 나~

[옥탑방 여자와 반지하 남자의 자취방 이야기 ④] 그 남자의 의생활

등록 2008.11.04 14:36수정 2008.11.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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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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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폭풍' 반지하의 제왕 '북쪽의 얼굴' 점퍼 안의 피색 폴로 셔츠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 ⓒ 김귀현

"오! 형 오늘도 패션이 참 '기자스러운'데요."

 

가끔 만나는 후배들은 첫인사 대신 이 말을 건넨다. '기자스러운 패션'이 뭔가? 말끔히 정장을 차려입는 기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물이 새지 않는 다기능 점퍼에 활동하기 편한 적당히 낡은 청바지(혹은 면바지)를 입으면 비로소 '기자스러운 패션'이 완성된다(나만 그런가? <오마이뉴스>의 기자들 상당수는 이 패션을 소화하고 있다).

 

그래도 '반지하의 제왕'을 꿈꾸는 나는 천편일률 적인 '기자스러운 패션'에도 변화를 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일단 원칙을 정했다. 외투는 회사에서 제공한 '북쪽의 얼굴'(North Face) 점퍼를 입더라도, 안에 입는 옷만은 매일 바꿔 입기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었다. 바로 옷을 자주 빨아야 한다는 것. 처음엔 열심히도 빨았다. 2주일에 한 번 빨래를 했으니, '자취생협회'에서 표창장이라도 줄 만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악재'가 엄습한다. 지난 '1편 그 남자의 식생활' 편엔, 많은 누리꾼의 댓글이 달렸다. 이중 많은 댓글이 "이게 기사냐, 게으른 자취생의 일기구만"이라며 나의 게으름을 지적했다.

 

그렇다. 난, 알고 보니 게을렀을 뿐이고…, 그리고 그 게으름에 의해 나의 '반지하의 패션 제왕' 프로젝트는 또 구멍이 나고 만다.

 

'북쪽의 얼굴' 점퍼 속에 간직한 그만의 매력?

 

'빨래'는 음식 만들기에 비하면 '힙합 바지 지퍼 채우기' 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손빨래 하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별 셋' 손빨래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퍼지' 버튼만 누르면 '땡'이었다.

 

그러나 빨래를 한 후엔 '널기'라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진다. 하나하나, 탈탈 털어서 주름 가는 옷은 옷걸이에 걸고, 하는 작업이 초보 자취생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니트나 가벼운 면티를 세탁소에서 제공하는 철사 옷걸이에 널었다가 꼴사나운 '손잡이'가 어깨에 불쑥 솟아나기도 했다(그 손잡이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간혹 돌발적인 화장실 출입에 대비해 뒷주머니에 꽂아놓은 휴지 뭉치를 같이 넣고 빨았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휴지는 털어내면 그만이다. 깜빡하고 담배를 넣고 빨았을 땐, '담배꽁초 담긴 콜라 캔'을 들이킨 기분이었다. 담배 냄새 가시지 않은 옷을 입을 때면 내가 담배인지 담배가 나인지…. 아, 달이 차오를 때, 확 이 반지하를 떠나고 싶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난 다시 정상 궤도에 진입했다. 2주마다 꾸준히 빨래를 했고, 빨기 전 주머니는 꼭 확인했다. 점퍼 속의 옷은 '화려한 꽃 분홍'에서 부터 '고상한 피색'까지…, '팔색조'가 따로 없다.

 

매일 아침 회사에서 선배들이 날 아래위로 훑어 볼 때면 '오늘 북쪽의 얼굴 점퍼 속의 옷은 뭘까'하며 궁금해 하는 것 같았다. 역시 난 자취방 패션의 아이콘 '반지하의 제왕'이다. 

 

빨아도 냄새나는 빨래, 결국 '성질 뻗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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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비치된 쓸쓸한 세탁기 '복불복'에서 졌다. ⓒ 김귀현

'제왕'도 슬럼프는 있기 마련.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귀여운 빨래들이 집안에서 섹시한 자태로 건조대 위해 널브러져있었다. "나 때문에 고생 많다"하며 어깨를 톡톡 두르려 주는 순간, 갑자기 뭔가가 내 후각을 자극했다. 

 

평소 건조대 옆에서 라면을 끓여먹은 게 화근이었나? 아니면, 그간 항상 실내에 빨래를 말려서 빨래들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나? 분명히 세제 듬뿍 발라서 빤 세탁물에서 야릇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항상 빨래를 실내에 말렸다. 밖에 마땅히 빨래를 놔둘 공간도 없고, 내 소중한 옷들을 누가 훔쳐 간다면 그 상실감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반지하라 섣불리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었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보여 주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그냥 이러다 말겠지 하고 웃어 넘겼다. 그리고 내 손에는 모든 의상 관련 트러블의 해결사 '페OO즈'가 들려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실내에 말린 빨래는 형언하기 힘든 '꿉꿉한' 냄새가 났고, '페OO즈 요법'도 한계가 드러났다. 나중엔 이게 빨래를 한 건지 그냥 '페OO즈'에 버무린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술에 취한 어느 날. 문 열고 들어오자마자, 빨래들이 '팡팡' 냄새 플래시를 터뜨리자, 난 빨래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이X, 빨래 안 해! 성질 뻗쳐서 정말…."

 

눈 더미처럼 쌓여가는 빨래, 특단의 조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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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한계령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다. ⓒ 김귀현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한계령, 앙희은)

 

드디어 반지하에 한계령이 솟아났다. 동네 뒷산 만하던 것이, 남산이 되더니, 이내 한계령이 됐다. 성질 뻗쳐서 안 한 빨래가 '산'이 됐다.

 

'빨래 한계령'은 내개 '(빨래 많다고) 우지마라 우지마라' 달래주는 척 하더니, 이내 '잊으라 잊어버리라' 한다. 그렇게 빨래를 잊었다. 빨래하는 걸 잊어버리자 '빨래 한계령'은 '한계'를 넘어섰다. 산맥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간신히 한 달여의 기다림 끝에 빨래를 했다. '한계령'은 침식했지만, 다시 이내 퇴적하고, 융기했다. 몇 번 그렇게 '침식'과 '퇴적'과 '융기'를 반복하니 '부정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입을 옷이 없다는 것.

 

점점 난 나에 대해 관대해졌다. 어제 입은 옷을 다음날 또 입는 만행을 저질렀다. 심지어 고기를 먹은 날도….

 

결국 안 되겠다 싶어, 특단의 조치에 돌입한다. 이름 하여 '돌려 막기' 일단 옷의 재고 상태를 파악하여, 바닥이 나겠다 싶으면 그냥 '조선시대'처럼 몇몇 필수 옷을 빨래통에서 꺼내 손빨래 했다.

 

그러나 '돌려 막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손빨래도 귀찮고 힘들어 진 것. 특히 옷을 짤 때는 정말 내 힘줄이 다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물론, 세탁기를 돌릴 때 탈수 기능을 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것도 몰랐냐, 이 XX야'하는 악플 사절, 제발).

 

'돌려 막기'가 잘 되지 않자 난 결국 최후의 수단을 동원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일, 사채보다 더 무서운 일, '새 옷 사기 만행'을 저지르고야 만다. 빨래 대기 중인 옷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데 말이다. '기본적인 집'에서 기본적인 옷을 싸게 샀지만, 결국 이건 불필요한 지출이었다.

 

그렇게 난 '성질 뻗쳐서' 빨래를 잘 안하게 됐고, '돌려 막기'는 물론 '필요 없는 지출'까지 하게 됐다. 이런 무계획적인 나의 자산 운용은 반지하의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난 반지하의 제왕"이라며 "내 패션을 믿으라"며 근거 없는 자만심으로 날 걱정하는 이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문득, CF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 만수, 남대문 열렸네."

 

'반지하의 제왕' 되기 참 힘들다. '우리 만수'처럼 열린 남대문으로 돈이 줄줄 새기 전에 나도 '지퍼 단속' 잘 해야겠다. 그것보다 부지런해지는 게 우선이겠지만….

 

근데, 나 내일은 뭐 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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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건조대 숨기고 싶은 비밀은 모자이크 했다.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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