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흙으로 만드는 '지의'를 아시나요?

[포토에세이] 공생

등록 2008.11.08 18:57수정 2008.11.08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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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컵지의 지의(地衣)류는 말 그대로 땅의 옷에 해당한다. ⓒ 김민수

▲ 꼬마요정컵지의 지의(地衣)류는 말 그대로 땅의 옷에 해당한다. ⓒ 김민수

 

지난 여름, 밭 근처의 오래된 무덤가에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너무 작고, 처음 보는 식물이라 이끼류겠거니 생각했지만 이내 그 존재를 잊었습니다. 절기상으로 입동이 지난 날, 김장배추를 거두기 위해 밭에 나갔다가 밭 근처에 있는 무덤가에서 다시 그를 만났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이름은 '영국병정지의, 돌이끼꽃, 탑골이끼, 돌꽃, 꼬마요정컵지의'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이름 중에서 '꼬마요정컵지의'라는 신비한 이름 때문에 그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많은 것을 보니 꽤나 유명한 식물인가 봅니다. 지의(地衣)류는 말 그대로 땅의 옷에 해당됩니다. 이끼나 돌꽃 등 모두 지피식물로 '땅의 옷 혹은 땅의 피부'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지의류의 뿌리는 곰팡이(균류)며, 몸은 조류(藻類 : 다시마 같이 물 속에 사는 식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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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컵지의 오래된 무덤가나 바위에 서식한다. ⓒ 김민수

▲ 꼬마요정컵지의 오래된 무덤가나 바위에 서식한다. ⓒ 김민수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곰팡이(균류)는 물을 흡수해서 보관하고,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서 곰팡이가 살아갈 수 있는 영양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공생관계라고 하지요.

 

바다에서 시작된 생명은 끊임없이 육지로 올라오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육지에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거듭되는 시도끝에 뿌리없이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그런데 곰팡이(균류)라는 생명체가 등장을 했습니다.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 수 없는 곰팡이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에게 자신이 흡수한 물을 나눠주는 대신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공팡이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주게 되었습니다. 이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뿌리없는 식물은 뿌리가 생기게 되었고 점차로 육지의 종은 다양해졌습니다. 그 공생관계는 지구상에 식물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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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컵지의 가을빛에 더욱더 빛나는 붉은 입술(?) ⓒ 김민수

▲ 꼬마요정컵지의 가을빛에 더욱더 빛나는 붉은 입술(?) ⓒ 김민수

 

지의류는 바위나 오래된 무덤가 혹은 석물에 자리를 잡고 살아갑니다. 그곳에 살면서 그들은 아주 조금씩 돌을 가루로 만들고, 결국은 흙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의류가 자라던 곳에는 이끼류가 자라게 되고, 점점 세월이 흐르면 한해살이풀이 자라게 됩니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르면 여러해살이풀이 자라게 되고, 여러해살이 풀이 자란 후에는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마침내 숲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지의류의 등장에서부터 마침내 숲이 되기까지는 인간이 살아보지 못한 세월 이상이 걸릴 것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의 시작도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 곰팡이의 공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 지의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고, 그 공생관계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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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컵지의 보잘 것 없이 작아 보이는 존재를 통해 공생의 의미를 본다. ⓒ 김민수

▲ 꼬마요정컵지의 보잘 것 없이 작아 보이는 존재를 통해 공생의 의미를 본다. ⓒ 김민수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 지켜지는 공생관계,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존재가 인간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자연 중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공생의 약속을 깨뜨리고 살아갑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멸종되어가는 수많은 종들, 그에 대한 무감각은 마침내 지구의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공생',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자신과 자신은 서로 공생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자신과 자신이 공생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분열(정신분열)'입니다. 이미 우리는 심각할 정도로 분열된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돌을 흙으로 만드는 '꼬마요정컵지의'처럼, 죽음의 문화, 경쟁의 구조를 생명의 문화, 공생의 구조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1.08 18:57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꼬마요정컵지의 #공생 #지의류 #이끼 #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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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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