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했습니다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볼 기회를 준 제자가 고맙고 제자의 결혼생활이 늘 행복하길

등록 2008.11.10 13:30수정 2008.11.10 13:30
0
원고료주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결혼식에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께 신랑신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예식장의 분위기를 한번 둘러보세요. 대부분의 예식장이 많은 상들리에 장식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이 곳은 화려하지도 않고 천격(賤格)스럽지 않을 정도의 장식으로 세련된 품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의 대리석이 안정적이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하고 요란한 장식이 된 예식장은 처음에는 화려하고 요란한 결혼생활을 시작할지는 몰라도 서로에게 믿음과 품격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이 예식장처럼 은은한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혼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하고 요란한 것보다는 은은하고 우아한 결혼생활이 더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오늘 새 출발하는 이들 부부의 앞날에 행복과 단아한 품격이 늘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무조건 주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랑도 상대방을 위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내 입장에서 아무리 많은 사랑을 주더라도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만큼의 가치가 없는 사랑이 됩니다.

 

결혼생활의 시작은 나보다는 너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본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기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 결혼은 하느님의 축복이고 은총입니다.

 ······················ ”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되고 다소 떨렸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20여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해왔지만 결혼식이라는 중요한 사회적인 예식에서 주례를 맡는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책임감도 많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이들 부부가 올바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도록 애프터 서비스(After-service)까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저도 가정생활을 더 성실하고 아름답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어느 날 제가 담임을 했던 제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지요? 저 민젭니다.”

“응. 그래, 참 오랜만이다. 싸이에서 몇 번 너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선생님! 찾아뵙고 술 한잔하고 싶습니다.”

“응, 그래. 우리 집 앞 횟집에서 보자.”

“예! 알았습니다. 그럼 그때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여자친구를 소개하고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아직 50살이 되려면 두 어해는 더 남아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가정생활이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야 무슨 소리야. 술맛 달아나게. 다른 말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자. 나 아직 불혹의 나이도 벗어나지 않았어. 인마! 주례를 보려면 최소한 지천명에는 도달해야 될 것 아니냐? 하늘의 뜻을 알아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아냐.” 이렇게 얼버무렸지만 작정하고 온 제자를 이겨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도 합세하여 저를 압박하는 통에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아내와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저의 주례선생님도 떠올랐습니다. 보나 마나 아내는 박장대소할 것이고, 아이들은 “우리아빠가 그렇게 늙으셨던가? 아빠 사람들이 웃을 것 같아요”라고 할 게 뻔합니다.

 

“이미 여자친구와 상의했고 선생님을 주례선생님으로 모시고 결정을 해놓았습니다.” 제자의 설득에 저는 한발 두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들도 부부교사이고 선생님들도 부부교사이니까 저희들의 맘을 선생님이 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들도 선생님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말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자가 가톨릭 신자이고 신부될 사람은 아직은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는 말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좋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여자친구는 결혼식 끝나고 천주교 교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고 나중에 관면혼배를 성당에서 해야 한다.” “알았습니다. 제가 천주교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겠습니다.” 여자친구의 이 말에 주례를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제는 흰머리가 한 두개 가닥이 보이고, 잔주름은 눈가에 푸짐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작은 탓에 동안(童顔)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갑자기 많이 늙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례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가정생활의 모범이 되어야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화목한 가정생활은 기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주례도 전문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례사도 인터넷에 보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예비부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완전히 형식적인 주례가 되는 것이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 중의 하나가 결혼인데 가식적이고 형식적으로 시작한다면 참으로 불행스럽지 않을까요?

 

진솔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주례를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참으로 어색하고 결혼식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런 것도 세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갑자기 저의 결혼식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내를 대학에서 만나서 6년 가까이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 주례 선생님을 누구로 할까 의논하다가 주례에 대한 저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장차 내가 존경하고 그분처럼 생활을 하기 위해 선생님 중에 한분을 생각해 왔었습니다. 바로 같은 교무실에서 근무하시는 평교사 선생님이셨습니다.

 

a

17년 전 결혼식 사진서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선택했고 아들과 딸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돼. ⓒ 노태영

아무리 나이 어린 선생님에게도 존댓말을 사용하시고, 학생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그분의 학교생활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도 계시고 대학교 은사님도 계시지만 선생님처럼 앞으로 교직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분이십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평교사를 주례선생님으로 모신다는 말에 다소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고 용기를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는 교직생활을 하는 것만도 대단한 수확입니다. 저도 나이어린 선생님들에게 가능한 한 존댓말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수업시간에는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선생님’이라는 좋은 호칭을 두고 교무실에서 ‘형님!’‘누구누구 형!’‘어이 김선생!’라는 호칭이 다소 귀에 거슬리는 것도 바로 주례선생님의 영향이 큽니다. 사석에서나 술자리에서는 선생님들끼리 얼마든지 ‘형님! 동생!’할 수 있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훨씬 더 격식에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식은 참 힘들고 복잡합니다. 하나하나에 정성과 온전한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결혼식만큼 아름다운 예식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주례선생님도 주례사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혹시 제가 제자의 결혼식에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인생의 새로운 경험은 항상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슴 설레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저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제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결혼생활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런 값진 기회를 준 제자에게 고맙습니다. 앞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학교 그리고 교육 우리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http://blog.ohmynews.com/nty18

AD

AD

인기기사

  1. 1 황교안, 단식 전날 영양제 주사 논란... 해당 병원에 확인해보니
  2. 2 "검찰개혁 누가 못하게 했나" 송곳질문... 문 대통령의 답변은
  3. 3 불출마 이용득 "문 대통령 시정연설 듣는데 부글부글 끓었다"
  4. 4 불리한 시국, 생방 나간 문 대통령... 그가 보여준 세 가지
  5. 5 이명박의 허를 찌른, 손석희라는 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