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처녀, 추워도 바깥에 나가야 한다

[옥탑방 여자와 반지하 남자의 자취방 이야기 ⑤] 그 여자의 주(住)생활

등록 2008.11.11 11:57수정 2008.11.1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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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 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 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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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옥상. 처음에는 이 곳에 벤치도 놓고, 나무 그네도 놓고, 정원도 꾸미고 싶었다. 이젠 그저 눈만 왔으면 좋겠다. ⓒ 이유하


옥상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눈싸움 할 거야

아침에 눈을 뜨니, 창문 사이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온다. 이상한 생각에 창문을 활짝 연다. 창밖 세상이 온통 하얗다. "첫 눈이다!" 나는 '까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미 개를 반기는 어린 강아지처럼 외투를 입는 것도 잊은 채 옥상으로 깡충깡충 뛰어간다.

옥상에는 이미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겨울바람이 눈과 함께 발끝으로, 코끝으로, 외투를 걸치지 않는 얇은 잠옷 사이로 스며든다. 오소소 떨면서 고개를 들어, 얼굴 가득 눈을 맞는다.

그리곤 방으로 뛰어 들어가 점퍼와 모자, 장갑까지 완전 무장하고 나와서 발목까지 쌓인 눈을 뽀도독 뽀도독 밟는다. 그리고 옥상 한편에 만들어 놓은 귀여운 눈사람과 눈싸움을 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의 첫눈 감상기냐고? 물론 아니다. 올 겨울에 꿈꾸는 소박한 소원이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눈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부산에서는 겨울이 되어도 눈이 한번 올까말까, 그것도 "와! 내린다" 싶으면 금세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눈이 고작이다.

서울에서 혼자 보내는 첫 겨울!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옥탑방의 '넓은 옥상'에 어서 빨리 소복소복 눈이 쌓였으면 좋겠다.

'옥장판 귀신'이 자꾸만 나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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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장판이 깔려 있는 따뜻한 내 잠자리. 이 곳에 앉았다 하면 일어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 이유하


"이 놈의 가시나, 월동 준비는 다 했나? 니 겨울에 옥탑방이 얼마나 추운 줄 아나?"

나이가 25살이 되도록 동화 같은 환상을 꿈꾸는 나에게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그런 거다. 늘 상상과 현실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허나,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다. 살긴 살아야 하는 거고, 옥탑이 춥긴 추울 것이고, 하는 수 없이 월동 준비를 하긴 해야 할 것이다. 

옛날에는 추운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서 식량을 비축하고 장작도 패놓아야 한다지만, 요샌 뭐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니 준비랄 것도 없다(열심히 일해야겠다). 그저 월동 준비의 대표주자, 옥장판 하나 장만하는 정도? 그래서 나도 아는 사람 집에서 썩고 있던 옥장판 하나를 얻어 와서 방 한쪽에 척 깔아 놓았다. 오! 그랬더니 방안은 금방 찜질방으로 변했다.

옥장판 하나 장만했을 뿐인데, 집에만 들어가면 잠이 온다. 따뜻한 매트 위에 앉으면 눕고 싶어지고, 딱 10분만 누워있을까? 싶으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다. 자꾸만 자꾸만 '옥장판 귀신'이 나를 이불 아래로 빙그르르 끌어내리는 것 같다. 거기에 내 옥탑의 동반자 '곰'만 있으면 진짜 집 안에서 눈을 뜨고 있기는 불가능할 정도다.

잠시 곰을 소개하자면, 곰 인형이 곰처럼 생겼으니 이름도 '곰'이다. 내가 곰에게 마음을 준 이후로 곰이랑 나는 만날 만날 같이 잔다. 잠뿐만 아니라 대화도 나눈다.

"곰아, 오늘은 뭐했어? 아! 나는 좀 힘들었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그 때마다 곰은 특유의 해맑고 넉넉한 표정으로 나를 다독여준다. 기특한 녀석이다. 곰 때문에 자꾸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좋다.

그러나 때론 곰도 옥장판도 소용없는 추운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아니 그럴 때만(?) 보일러를 튼다. 뉴스를 보니 난방비가 벌써 10%나 오르고, 단계적으로 추가 인상 계획도 있다는데, 요놈의 가스비가 얼마나 나올지 심히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가스비로 10만원? 오! 낭패다.

전기난로를 구매할까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내 성격상 그건 무리일 것 같다. 왜 이런 적 있지 않나?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문을 열면, 보통은 특유의 사람 없는 냄새와 싸늘한 공기가 밀려오는데, 어느 날은 후끈할 때!

아, 아침에 씻으려고 온수를 틀어 놨는데 그만 잠그지 않고 나가버린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나는 가끔 불 끄는 것도 가스 잠그는 것도 깜빡 깜빡 한다. 그래서 불이 날까봐 전기난로는 안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 필요한 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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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곰'. 늘 해맑은 웃음으로 내 말을 들어준다. ⓒ 이유하

이 즈음해서 추위를 이기는 나만의 '빅 시크릿'을 소개하겠다. 뭐, 특별한 건 아니고, 요즘 최신 유행하는 레이어드 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이건 패션을 위한 레이어드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옷은 낡으면 낡을수록, 뭔가 거시기(?)하면 할수록 효과적이다. 부담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복을 겸비하면 어느 동장군도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단, 주의할 점이 있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대로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아무리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가는 거라고 할지라도 삼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발각되었다가는 평생 시집을 못 갈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다 사용했는데도 춥다면 남은 건 가장 중요하고도 중요한 단 한 가지 방법이다. 싸늘한 집 안에 사람 온기를 불어 넣는 거다. 다른 월동 준비보다도 먼저 올 겨울을 나기 위해선 따뜻한 사람의 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집 안에 있지 말고 열심히 열심히 밖으로 나다녀야 한다.

약간 불쌍하게 눈물을 글썽이며 "저에겐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요"라는 눈빛으로 '관심남'을 바라보면 좀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좀 더 추워지는 1월이 되면 '그이'와 함께 저기 저 멀고 따뜻한 지방으로 피난을 가면 되는 거다. 오! 생각해보니 정말 완벽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꼭 다들 성공하시길!

그나저나 올해는 언제 첫 눈이 올까? 아무리 추워도 눈은 꼭 내렸으면 좋겠다. 새하얀 눈이 도시의 칙칙함을 모두 가려주고, 기분 좋으면 더 많이 많이 내려서 학생들은 휴교를 하고, 직장인들에겐 아침 지각의 핑계를 제공해 주었으며 좋겠다.

나에겐 감기에 걸려도 좋으니 옥상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눈이 오면 모두들 우리집 옥상에 놀러와요! 눈싸움을 하고 난 뒤에, 따뜻한 코코아 한 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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