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의 제왕! 네 몸에 전기가 흘러!"

[옥탑방 여자와 반지하 남자의 자취방 이야기 ⑥] 그 남자의 주(住)생활

등록 2008.11.11 11:58수정 2008.11.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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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 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 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나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삼겹살을 먹는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육식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고기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고기 구워먹는 분위기' 때문에 더 삼겹살을 즐긴다. 고기를 구워 마주앉은 이의 파절이 접시에 고기를 얹어주며, 끈끈한 동지애를 느낀다. 삼겹살에 소주를 '각 1병'씩 비울 때쯤엔 서로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대학 시절, 선배의 옥탑 자취방에서 구워먹던 삼겹살이 생각난다. 중간고사 전날, 공부하자고 모인 친구들끼리 잠깐 밥이나 먹자며 선배 옥탑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잠깐이라고 모였지만, 한잔 두잔 비우는 술잔에 학점은 멀어져 갔다. 학점과 바꾼 '삼겹살과 소주'는 그 어떤 '와인과 스테이크'보다 맛있었다.

옥탑에서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당시 난 분위기에 취해 남몰래 좋아하던 여학생이 누군지도 실토하게 됐다. 결국 옥탑에 모인 동지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 여학생과 짧은 연애생활을 하기도 했다.

난 옥탑방을 동경했다.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2003)>에선 옥탑에서 대충 공부하던 김래원(이경민 역)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김래원은 검사가 됐고, 난 사랑을 이뤘다. 꿈이 이루어지며 고기도 마음대로 구워먹을 수 있는 곳, 언젠간 나도 꼭 옥탑방에 살고 싶었다.

'옥탑방' 대신 '반지하' 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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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내부 멀티미디어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TV를 보며 컴퓨터를 할 수 있다. ⓒ 김귀현


드디어 독립의 기회가 왔다. 부모님이 쥐어주신 '독립 지원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돈도 얼마 없으면서 매달 월세 내는 건 죽어도 싫었다. 결국 전셋집만 알아보니,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서울 하늘 아래 이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반지하 아니면 옥탑방이다. '옳거니'다. 드디어 '옥탑방에 입성하는구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내 보금자리가 될 옥탑방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때는 2007년 6월, 더웠다. 매우 더웠다. 그리고 난 더운 것을 싫어한다. 정말 싫어한다.

옥상은 그 뜨거운 여름 햇빛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삼겹살을 굳이 불판에 구워먹을 필요 없겠더라. 옥상이 딱 불판이다. 몇 점 떨어뜨리면 자동으로 구워지겠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더 예술이다. 이건 집인지, 포항제철인지, 대장간인지 구분이 안 간다. 순간 정신이 혼미해진다. 

안 되겠다 싶었다. 이건 문명의 이기인 에어콘으로도 해결 안 될 문제다. 난 미련 없이 '전향 선언'을 했다. 그리고 '반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름임에도 어찌나 시원하던지…. 햇빛 안 드는 집이 이렇게 고마운지 몰랐다. 깔끔하게 2년 계약을 했다. '반지하의 제왕'이 되는 순간이었다.

[반지하의 혹서기 훈련] 샤워 자주 하고, 밥도 굶으니 '일석이조'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반지하를 택한 나에게 곧 시련이 찾아온다. 여름을 더욱 여름답게 만드는 '고온'과 '다습'…, 난 햇빛 안 드는 반지하로 숨어들어가 '고온'은 피할 수 있었지만, '다습'을 간과하고 있었다.

덥지 않고 방엔 햇빛 하나 들지 않을 뿐인데, 땀이 났다. 그것도 줄줄 났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3보 이상 걸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마와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래도 괜찮았다. 덕분에 잘 안 하던 샤워를 하루에 3~4번 하게 됐다. 밥이라도 챙겨 먹을 라 치면 땀으로 목욕을 해야 했기에, 끼니를 걸렀다. 저절로 다이어트를 한 셈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혹서기'를 버텼다. '반지하도 이렇게 더운데 옥탑방에선 쪄 죽겠지' 하는 자위를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반지하' 계약할 땐 몰랐다. '혹한기'를 버티기가 이렇게 힘든지 말이다.

[반지하의 혹한기 훈련] 외로움 달래준 '세 친구'를 소개합니다

'반지하의 제왕' 답지 않게 난 외로움을 좀 많이 탄다. 혼자 반지하방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그 재밌는 <개그콘서트>를 보면서도 가끔 눈물이 난다. 혼자 골방에 누워 깔깔대며 웃는 내 모습이 좀 처량해서일까? 물론 펑펑 우는 건 아니다. 한두 방울 찔끔.

이런 나에게 겨울이 되자 반가운 친구들이 찾아왔다. 외로움을 달래줄 '세 친구', 지금부터 한명씩 소개한다.

첫번째 친구 무서운 친구, '외풍'

나에게 가장 처음 찾아온 친구다. 준비도 안 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불쑥 찾아왔다. 새벽만 되면 내 코를 맹맹하게 만들어 준다. 이 친구는 모닝콜도 해준다. 이 친구만 놀러오면, 이른 아침부터 벌벌 떨면서 잠에서 깬다.

외로웠지만, 이 친구는 정말 반갑지 않았다. '외풍'이는 나에게 다른 친구도 소개시켜줬다. 그 친구의 이름은 '감기'.

막아야 했다. 꼴도 보기 싫었다. 그래서 궁색하지만, 조치를 취했다. 그 친구가 놀러오는 경로를 막았다. 보통 외풍이는 창문을 통해 놀러온다. 창문을 아예 테이프로 막아버렸다. 처음엔 좀 고민했다. 황테이프로 막을 것인가, 청테이프로 막을 것인가.

인테리어를 중시하는 나의 선택은 '황테이프'. 나무로 된 창이었기에, 색이 비슷한 황테이프를 택했다. 또한 따뜻한 봄날이 되면 창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청테이프의 강력한 접착력은 오히려 부담이 됐다.

간택받은 황테이프를 창문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붙였다. 어느 정도 막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김없이 새벽만 되면 외풍이가 찾아왔다. '청테이프의 저주'인가.

결국 요즘 외풍이를 만나지 않는 방법은? 그냥 새벽만 되면 이불을 뒤집어 써버린다. 답답하긴 해도, 이 만한 방법 없다. 

두 번째 친구 계산적인 친구 '방바닥'

외풍이 때문에 따뜻한 공기는 포기했다. 그래도 바닥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드디어 비싼 가스비 때문에 봉인해 두었던 보일러를 틀었다. 보일러 트니 천국이 따로 없다.

저절로 침대에서 내려오게 됐다. 아주 따뜻해서 새벽엔 외풍이가 온지도 몰랐다. '방바닥'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난 방바닥이 되고 싶었고, 방바닥도 그게 싫지는 않아보였다. 하도 뒹굴다 보니 따로 걸레질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 행복도 잠시, 가스요금 고지서를 보고 열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무려 3만5000원이 넘는 돈! 평소 3000원 정도 나오던 가스요금이 10배 이상 뛴 것이다.

긴축 재정으로 빠른 시일 안에 반지하 탈출을 꿈꾸는 '반지하의 제왕', 결국 한달 간 뜨거운 열애 나눴던 '방바닥'과 이별을 고했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 참 계산적인 친구다.

사실 가스비가 이렇게 비싼 줄은 자취 하면서 처음 알았다.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3만~4만원은 기본으로 나온다. 가족이 있는 집은 10만원이 기본, 20만~30만원까지 가스비가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비싼데도 정부는 가스비를 꾸준히 올린다고 한다. 서민 부담을 생각해 단계적으로 올리신다니 고맙기도 하다. 유가환급금이라며 몇만원씩 쥐어주고 생색 내기보다, 가스비 무서워 냉방에서 겨울을 나는 '진짜 서민'을 돕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닐까.

세 번째 친구 겉과 속이 다른 친구 '전기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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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장판 전기 장판은 내 자취생활의 구세주였다. ⓒ 김귀현

'방바닥'과 이별한 후 새로운 친구를 찾아야 했다. 길 잃은 하이에나처럼 인터넷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난 운명처럼 세 번째 친구를 만난다.

바로 '전기장판'. 처음 집에 데려올 때 4만원만 주면 된다. '방바닥'처럼 매달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매달 '장판이'의 식대가 들긴 한다. 그래도 괜찮다. '어콘이'(에어콘)와 달리 '소식(小食)' 한다. 식대는 한 달에 몇천원밖에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친구는 방바닥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나에게 내뿜는다. 내가 "장판아, 이제 그만 자제해줄래?" 하면서, 3단에서 1단으로 내릴 정도다. 장판이가 흥분할까봐 9단까지는 올려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날 위해 헌신하던 장판이와도 문제가 생긴다. 어느 날 반지하에 '사람 친구'가 찾아왔다. 사람 친구가 와도 난 장판이와 사랑을 나누느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 왔어?" 하며 난 사람 친구에게 날 일으켜 달라고 했다. 사람 친구의 손을 잡는 순간 갑자기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사람 친구 말한다.

"어? 이거 뭐야! 네 몸에 전기가 흐르고 있잖아!"

순간 무서워졌다. 난 그래도 장판이를 믿었다. 재차 확인했다. 찌릿한 느낌은 계속이었다. 그 친구 말한다. "아! 그만해, 나도 전기 옮겠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다. 순간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효자동 이발사>다. 이 영화에서 '효자동 이발사' 송강호의 아들 '낙안이'는 설사를 한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 고문실로 끌려가 전기 고문을 받는다(여기서 낙안이를 고문하는 혀 짧은 고문요원은 현재 MBC <베토벤바이러스>에서 시장 보좌 공무원 역을 맡고 있는 박길수씨다). 즐겁게(?) 전기 고문을 받고 풀려난 낙안이는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전기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다.

사람 친구와 그 전기 사건을 겪고 난 후, 꿈에서 '낙안이'가 나왔다. 낙안이는 "아저씨도 나처럼 돼요, 조심해요"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자마자, 식은땀을 흘리며 발가락이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엄지발가락, 엄지발가락" 을 외치며 하나둘 움직여 봤다. 휴, 다행히 움직인다.

그날 이후 난 장판이와도 이별을 고했다. 낙안이처럼 '사사오입 나가리'가 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방바닥과 재회를 하게 됐다. 물론 그 대가(?)는 치러야 했지만….

삼겹살도 포기했고, 추위와도 싸워야 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그래도 난 반지하 생활이 즐겁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옥탑방으로 옮겨 삼겹살 구워먹는 꿈'? 아니다. 마당 있는 집에서 내 마음껏 삼겹살을 구워먹는 꿈, 그 꿈을 위해 난 오늘도 출근할 때 보일러를 '외출'로 눌러놨는지 꼭 확인 한다. 물론 안 추울 때 1℃씩 낮추는 건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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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외출'을 누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김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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