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 니 서울 좀 살았다고 서울말 쓰나?"

[옥탑방 여자와 반지하 남자의 자취방 이야기⑦] 그 여자의 친구들

등록 2008.11.19 15:45수정 2008.11.1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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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서울에 온 '옥탑방 여자(이유하)'와 '반지하 남자(김귀현)'가 있습니다. 푸른 꿈을 품고 서울에 왔지만, 이들의 자취생활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밥 먹는 것부터 빨래하는 것까지, 자취경력 일천한 이들에겐 모든 일이 힘겹기만 합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생생한 자취 이야기를 기사로 만나보세요. 매주 1~2회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여보세요? 어~ 어딘데? 잘 지냈나? 완전 반갑다 야!"

오랜만에 걸려온 부산 친구의 전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참 통화를 하다가 끊을 때가 되자 친구는 슬며시 이렇게 덧붙인다.

"야, 이 가시나야, 니 서울 좀 살았다고, 서울말 쓰나?"

아이고,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화들짝 놀라겠다. 사실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고, 특별히 서울말을 쓰고자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표준어 실력은 미비한 편이다.

게다가 '꼭 서울 왔다고 서울말 써야 해?'라는 약간의 반발심도 있다. 그래서 주야장천 내 맘대로 떠들고 다니니까 서울 토박이들은 늘 내 말투를 보고 한마디씩 한다.

"부산에서 오셨어요?"

아 네네, 부산에서 왔습니다, 왔고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닐 텐데, 꼭 물어본다. 내 말투가 얼마나 곱상(?)해 졌는지는 부산 친구들이 종종 증언을 하는데도 말이다. 

옥탑방에 찾아오는 두 부류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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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여기서는 사투리 쓴다고, 여기선 표준어 쓴다고 타박 받는 나는, 삶도 크게 두 개로 구분된다. 서울의 삶과 부산의 삶. 그러니까 자연히 나의 '옥탑 파라다이스'에 찾아오는 친구들 역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생각해보니 방문하는 부류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았다. 먼저 부산 친구들의 방문을 살펴보면 대체로 체계적이다. 전화가 '디링' 울리고, 언제 서울에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래 우리 집에 와도 돼"라고 마무리하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만남은 무리하게 변경되지도, 특별한 변수가 있지도 않다. 대개 기차시간이 정해져 있는 터라 언제쯤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음주와 함께 땅속 저장고에 숙성시켜 두었던 수다를 들춰내는 정도다.

"맞다 맞다, 그때 그런 일도 있었지"로 시작된 대화는 서로 근황을 살피고, 애인 유무를 따지고, 옛 기억을 더듬거리며 자정까지 이어진다. 그리곤 다음 날이 되면 자못 서울 생활에 익숙한 양 친구들의 버스 시간을 체크하고, 서울에 가볼 곳을 추천하며(내가!) 다음에 또 올 것을 기약하면서 헤어진다.

그에 반해서 서울에 있는 친구들은 다르다. 다들 서울에 집이 있으니, 굳이 남의 집에서 외박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모이게 되는 것은 '유흥의 잔여'가 남아서 더 즐기고 싶을 때다. 그러므로 "우리 옥탑에서 한 잔?"하고 날짜를 맞추긴 하나, 지켜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틀림없이 변수가 생기기 때문이다.

옥탑'방'과 너무나 다른 행성, 반지하'집'

이렇게 내가 만든 우물 속에 내가 아는 사람들만 끌어넣으며 살고 있다가 어느 날은 충동적으로 아는 언니의 반지하에 여자 넷이서 우르르 놀러갔다. 두근두근, 다른 사람이 사는 자취방은 어떨까? 괜히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반지하에 들어서니, 드디어 내 긴장의 실체가 들어났다. 언니의 반지하는 나의 옥탑이랑은 지구와 안드로메다만큼 멀리 떨어진 '다른 행성'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가정집을 방불케 하는 온갖 다양한 물건들이 구비된 자취방이 아닌 '집'이었던 것이다.

텔레비전도 없는 우리 집과는 달리 텔레비전은 물론 믹서기를 비롯한 각종 요리도구에 우리 집 냉장고의 2배가 넘는 '거대 괴물' 안엔 온갖 음식들이 가득했다. 더군다나 과일이 배·키위·감을 비롯해서 무려(!) 4가지가 넘게 준비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아~ 나는 우리 집이 떠올랐다. 빈곤한 냉장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만 가득하지 정작 생활가전은 몇개 없는 실내, 시들시들해진 귤 몇 개가 전부인 나의 옥탑. 내가 사는 세상은 언니의 그것에 비하면 어린이의 소꿉장난 정도로 느껴졌다. 

게다가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들에게 멋들어진 갈릭 양송이 크림 스파게티를 해주었다. 오호! 나는 완전 자극받아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쌀을 사고(몇 주가 넘게 쌀이 없었다) 돼지고기를 사서 양념에 절여서(물론 파는 양념을 고기에 버무린 것밖에 없지만) 밥을 해먹었다. 아! 뿌듯한 순간이었다.

친구야, 우리 집에 놀러와!

다른 사람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친구보다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이렇게 가끔씩 자극도 주고, 어설픈 서울말 쓴다고 놀림도 받지만, 턱이 빠지도록 수다를 떨고 나면 나도 모르게 내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옅어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좋다. 아무리 혼자 지내는 게 재미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수다의 기쁨'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에 와서 짐짓 분위기를 잡는 이유는, 우리 집에 많이 놀러오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다. 그리곤 밤새도록 침 튀기면서 열심히 수다를 떨어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놀러올 땐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오라고 강요하는 말이다. 그럼 내가 뜨끈하게 보일러를 틀어줄 테니, 걱정 마시고 싸게싸게 놀러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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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옥상 친구들아~ 놀러와! ⓒ 이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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