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을 위한 동화] 닭의 최후

여우가 늑대와 모의하여 마침내 동물의 마을의 촌장이 되었습니다.

등록 2008.11.18 14:25수정 2008.11.18 14:25
0
원고료로 응원

휘리릭~ 휘리릭~

조용한 숲속에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 모처럼 낮잠 좀 잘려고 했더니 또 무슨 일이야?”

단잠을 깨운 호각소리에 생선장수인 너구리가 짜증을 냅니다.

“틀림없이 여우가 불었을 거야. 또 무슨 일을 꾸밀려고...”

평소 불만 많은 야채가게 아저씨 거위가 입을 쭉 내밀어 볼멘소리를 합니다.

 

“뭐하고 있어요? 어서 가요! 늦으면 또 여우한테 잔소리 들을텐데...”

구둣가게 당나귀 아저씨가 수선하던 구두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허둥지둥 길을 재촉합니다.

“에고! 저 놈의 여우 보기 싫어서라도 이 마을을 떠나야지. 못살겠다. 못 살겠어”

분식점을 운영하는 돼지가 손님이 남긴 음식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며 푸념합니다.

 

그때 정육점을 하는 늑대가 갑자기 도마에 칼을 꽂더니 돼지를 쏘아 봅니다. 돼지가 손가락 주위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며 늑대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일어납니다.

“자 자 빨리 빨리 갑시다. 촌장님께서 기다리시겠습니다. 어이 너구리! 그만 불평하고 빨리 움직여” 술집을 운영하는 눈치 빠른 토끼가 정육점 앞에서 마을 동물들을 재촉합니다.

주위의 동물들도 덩달아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철물점을 하는 고양이만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습니다. 고양이는 여우와 늑대가 가장 경계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늑대가 철물점 앞에서 고양이를 슬쩍 봅니다.

“야! 빨리 안가고 뭐해? 늑대가 소리를 칩니다. 고양이가 살짝 실눈을 뜨고 늑대를 봅니다. ”아니, 너 너 말이야 !“ 늑대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양이의 눈치를 살핍니다.

 

“미안해요. 지금 막 일어날려고 하던 참이었요” 세탁소를 하는 닭이 바느질을 하다말고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늑대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닭이 부리나케 도망가듯 뛰어갑니다.

늑대는 마을에서 여우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절대적인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여우는 지금 촌장인 염소에 이어 차기 촌장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마을 한 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밑에는 많은 동물들이 와 있었습니다. 닭이 맨 나중에 헐레벌떡 뛰어오자 여우가 닭을 째려봅니다. 닭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여우가 늑대와 의미심장한 눈길을 마주치더니 촌장을 데리고 나옵니다. 한눈에 봐도 노쇠해 버린 촌장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촌장이 의자에 힘겹게 앉자 여우가 동물들 앞에 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건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촌장님이 이제 연로하셔셔 차기 촌장을 선출해야 합니다.”

동물들이 여기저기서 웅성웅성합니다. 그런데 촌장의 표정도 좋지 않습니다.

“조용! 촌장은 여기계신 촌장님이 직접 지명하시기로 했습니다. 이의 있으시분 계십니까?”

동물들은 또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지명하면 부촌장인 여우가 촌장이 되겠군” 너구리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소리칩니다. 동물들도 고개를 끄떡거리며 또 웅성거립니다. 늑대가 재빨리 너구리 뒤에 바싹 붙자 너구리가 주춤합니다. 여우가 다시한번 조용하라고 소리칩니다.

“촌장님이 결정하신 사항입니다. 여러분이 믿지 못하겠다면 촌장님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우가 촌장을 일으켜 세우며 중앙으로 나옵니다. 촌장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 합니다.

 

“내가 연로한 관계로 차기 촌장이 있어야 하는데 차기 촌장은.....”

순간 모든 동물들이 촌장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마터면 여우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동물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느껴졌습니다.

“에- 차기 촌장은” 염소가 한 참 머뭇거리고 있는데 무리 가운데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출로 합시다” 바로 고양이었습니다. 또다시 무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우는 금방이라도 고양이와 싸울 듯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합니다. 고양이가 당당하게 무리를 헤치고 촌장 옆에 섭니다.

“촌장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제 진실로 이 마을을 위해 일할 동물을 촌장으로 뽑아야 합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래, 그게 맞아.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해! 그렇게 합시다” 너구리가 당나귀와 거위에게 눈길을 보내자 얼떨결에 “옳소”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동물들이 술렁거립니다. 늑대가 무리를 진정시키려고 해 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여우가 촌장을 보며 빨리 결정하라고 째려봅니다. 촌장이 결심을 한 듯 손을 들어 무리들을 진정시킵니다.

 

“차기 촌장은”

동물들이 숨을 죽이며 촌장의 다음말을 기다립니다.

“선출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순간 여우의 얼굴이 파랗게 질립니다.  동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건 촌장님과 저하고 약속한 것과는 다르잖아요. 이런 법은 없어요”

“저길 봐! 선출로 한다니까 마을 동물들이 모두 기뻐하잫아. 그건 자네한테 문제가 있다는 거야. 또 그 약속은 내가 한게 아니라 자네가 강요한 것잖아. 보름의 시간을 줄테니까 저기 있는 동물들의 마음을 한번 끌어보도록 하게”

촌장이 화난 여우를 무시합니다.

 

“자 그럼! 차기 촌장 선거는 큰 달이 뜨는 보름 후 이 자리에서 거수로 투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 촌장으로 누굴 뽑을 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촌장의 말이 끝나자. 여우가 늑대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닥입니다.

“내가 촌장이 되면 저 늙은 염소 녀석 가만두지 않을 거야. 빨리 대책을 강구해. 이러면 편하게 살려는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늑대를 고개를 숙이더니 사라집니다.

 

그날 저녁 늑대를 제외한 시장에서 일하는 동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입니다.

“다음 촌장으로 누가 나올까?” 돼지가 궁금한 표정으로 거위를 보며 말합니다.

“으거. 바보!. 보면 몰라. 고양이하고 여우지 뭐 누가 나오겠어”

“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고양이도 여우도 자기 잘 났다고 떠드는 놈인데. 사실 뽑을 놈도 없다.” 너구리가 한 숨을 쉽니다.

“그럼 다른 동물들을 추천하면 되잖아!”

당나귀가 마치 기발한 생각을 했다는 듯이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누구?” 동물들이 말을 맞추기나 한 듯이 일제히 당나귀를 봅니다.

“토끼!”

“뭐 토끼?” 토끼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당황한 얼굴입니다.

“그래? 여기서 그나마 제일 똑똑한 게 너잖아. 너가 해라. 우리가 팍팍 밀어줄게. 안 그래?”

당나귀가 다른 동물들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합니다.

“그건 그런데. 뚝심도 없고, 별로 행동에 신뢰가 안 가서. 그게 좀 맘에 걸린다.”

“뭐라고? 너구리 너 말 다했어. 너는 어떤데? 그럼 고양이나 여우 중에 찍으면 될 거 아냐”

 

토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납니다. 다른 동물들이 너구리에게 빨리 토끼에게 사과하라고 타이릅니다. 너구리가 마지못해 토끼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토끼는 너구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촌장 후보로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닭은 어디 간 거야?” 돼지가 닭을 찾습니다.

“걔는 원래 이런데 관심 없잖아. 평소에도 주위에 신경 안 쓰잖아. 뭐 경조사에 가는 것 봤어. 어떨 땐 좀 얄미워” 돼지가 입을 삐쭉 내밉니다.

“나둬! 그것도 자기 사는 방식이니까” 거위가 돼지를 다독거립니다.

그 시간 닭은 집에서 모이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쳇! 누가 촌장이 되든 무슨 상관이야. 내 한테 먹이를 더 줄 거야. 한 자리 줄 것도 아니고. 너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아라. 난 나대로 살란다” 닭이 쌀 한톨을 허공에 띄우더니 낼름 받아 먹습니다. 긴 하루가 그렇게 지나갑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우는 현재까지 부촌장으로 염소를 보좌해 왔고, 고양이는 야인으로 사사건건 여우의 의견에 반대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보다는 두 동물 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해 동물들 사이에서 신망은 없었습니다. 토끼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자 여우와 고양이는 오히려 더 기뻐했습니다. 평소 눈치 빠른 토끼를 역이용하면 오히려 쉽게 촌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늑대가 토끼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하며 여우가 촌장이 될 수 있도록 협박했습니다. 토끼는 무서운 나머지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은 고양이가 찾아 왔습니다. 자신을 도와주면 마을의 주류 판매독점권을 주는 것은 물론 집까지 한 채 지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토끼는 무조건 힘으로 밀어 붙이는 여우보다 고양이의 유혹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막판에 고양이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욱이 토끼는 처음부터 촌장을 할 마음도 없었습니다. 적당히 타협 들어오는 것을 봐서 이익만 챙기고 빠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투표 전날 저녁, 토끼는 고양이를 지지하겠다고 동물들에게 말했습니다. 기존에 여우에 대해 인식이 좋지 않던 동물들은 토끼의 현란한 말솜씨에 고개를 끄떡이며 고양이를 지지하겠다고 공개 천명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우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날 밤, 여우는 정육점을 하는 늑대를 조용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니 강압적으로라도 동물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늑대들을 모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늑대와 여우는 자신들이 촌장이 되면 모든 초식동물들이 우리의 밥이 되는 만큼 먹을 것 걱정없이 풍족한 생활을 누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웃마을 동료들까지 끌어 모았습니다.

 

그날 밤. 칠흑같은 어둠이 마을 감싸고 모두 잠든 시간, 닭이 마을 어귀 개울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낯선 여우와 늑대들이 마을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닭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닭은 누가 촌장이 되도 자기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을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목욕을 마치고 마을에 도착하자 수많은 늑대와 여우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닭은 평소에도 늑대와 여우에게 잘해 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별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마을로 당당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정육점 늑대가 닭을 보더니 쫒아 옵니다. 벌써 마을의 많은 동물들이 다치고 죽어 있었습니다.

 

부촌장인 여우는 촌장인 염소를 갈기갈기 씹어 먹고 있었습니다. 닭은 공포감에 휩싸였습니니다. 닭은 가족이 걱정되어 파닥파닥 거리며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벌써 깃털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닭이 다시 뒤돌아서서 나갈려는데 늑대가 문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왜 그래요. 지금까지 난 당신 말을 잘 들어왔잖아요. 우리 가족은요?

닭이 공포에 질린 눈으로 늑대에게 묻습니다.

“나도 몰라. 확실히 너 답구나. 다른 동물들은 어디 있는지 묻지도 않고 너 가족만 묻는구나. 다른 동물들이 어디있는지 물러 볼려고 했는데. 그럼 너도 이제 필요 없겠다. 옛날부터 넌 살이 아주 토실토실 잘 쪄서 눈독을 들여놨는데 오늘에서야 너를 먹는구나.. 흐흐흐”

 

늑대가 침을 흘리며 다가오자 닭이 뒷걸음질을 칩니다.

“바보 같은 것들, 고양이와 토끼는 벌써 도망갔어. 걔네들은 참 똑똑해. 자기 살 궁리는 다한다고. 힘없으면 진작에 우리한테 붙었어야지. 힘없는 것들이 괜히 나서가지고 이게 무슨 꼴이냐. 이렇게 한꺼번에 포식할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난 지금까지 당신편을 들어줬잖아요. 근데 이게 무슨 짓이에요”

“네가 내편을 들어줬다고? 웃기지 마. 넌 원래 마을일에 관심 없었어. 넌 방관자였지. 혜택만 받고 너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잖아. 넌 고양이를 지지한 동물보다 더 나빠. 양지만 찾아다니는 동물의 말로는 바로 이런 거라구”

 

닭은 그렇게 사라졌다. 다음날 무력으로 부촌장인 여우가 다른 마을에서 온 늑대와 여우의 호위를 받으며 촌장의 자리에 올랐다. 마을은 순식간에 여우와 늑대 세상이 되었고 마을에 있는 초식동물은 감옥에 갇혀 먹이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방관자, 그게 항상 옳은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08.11.18 14:2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방관자, 그게 항상 옳은 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인 #동화 #토끼 #여우 #늑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