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처럼 준비하고 연애하듯 만나라

김혜리와 황경신의 통하는 인터뷰 비법 <그녀에게 말하다>

등록 2008.11.25 13:39수정 2008.11.25 13:39
0
원고료로 응원
a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이 하였던 인터뷰 가운데 21편을 추려서 묶은 책. ⓒ 씨네21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지요. 사람과 사람은 이어져 있으며 서로 교류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모든 만남은 인터뷰에요. 누구나 인터뷰어이자 인터뷰이가 되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죠. 인터뷰는 '혼자에서 함께'로 변화하는 훌륭한 기술이 될 수 있기에 요즘 시대에 더 주목을 받고 있지요. 어느 때보다 소통이 간절한 시대니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있지만 외로움은 더욱 커진 현대사회, 누구나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하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지요. 그렇다고 덜컥 아무에게나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지요. 이때 좋은 인터뷰는 어깨너머라도 눈여겨볼 만하지요. 소통이 잘 된 인터뷰는 마음의 문 두드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셈이지요. 마음을 세련되게 주고받는 태도와 소통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으니까요. 


소설가 정이현은 몇 명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굉장히 다른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을 찾았대대요. 바로 김혜리 기자와 이야기 나눈 것을 생애 가장 인상 깊은 인터뷰로 기억한다는 것이죠. <그녀에게 말하다>(2008, 씨네21)는 왜 그들이 김혜리에게 빠져들어 마음을 열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에요.

꼼꼼한 준비, 편안하고 짜릿한 인터뷰

이 책은 <씨네21> 인터뷰 모음집이에요. 김혜리 편집위원이 하였던 인터뷰들 가운데 21편의 인터뷰를 추려서 묶었지요. 어떤 이들을 했는가 보면 소설가 박완서, 박민규, 배우 나문희, 임현식, 안성기, 송강호, 문소리, 이병헌, 김혜수, 영화감독 이창동, 강금실 전 법무장관, 진중권 교수 등이에요. 한국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일구는 사람들이죠.

유명하지만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사람들이기에 지은이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릴 법하죠. 그러나 불안감은 꼼꼼한 준비와 자료 수집을 이어져 편안하면서 짜릿한 인터뷰로 이끌어내죠. 충실한 이해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하지요. 짧은 만남으로 곁을 주기 힘든 유명인들도 근거를 둔 자연스러운 물음에 마음의 빗장이 덜커덕 열리게 되지요. 

친절하게도 성실히 모은 재료를 적절하게 넣어주었지요. 일러주는 자료들은 인터뷰이를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돕네요. 영화기자이기에 영화를 찬찬히 아는 일은 그렇다 해도 다른 분야까지 두루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기에 발 벗고 나서 공부한 결과물들이죠. 디자이너 정구호, 건축가 황두진, 사진작가 구본창, DJ 전영혁처럼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녀가 얼마나 빈틈없이 준비했는지 읽으면서 느끼죠.


보기를 들자면, <순풍산부인과> <거침없는 하이킥>을 연출한 김병욱 감독과 이야기하면서 시트콤 내용을 다 꿰차면서 감독의 의도와 생활을 물어보았고 <바람의 나라>를 그린 만화가 김진과 만나면서 그의 만화 발자취, 현재 만화계 지형과 분위기를 짚으며 대화를 해요. 동물도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는 사람을 더 반가워하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어요. 지은이의 애정 어린 질문에 진실한 속내로 답변하네요.  

궁금했던 유명인들의 알짬, 김혜리의 맛깔난 글 솜씨

예의에는 예의로 대하게 되지요.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속 깊게 공부해온 사람에게 사부자기 넘길 수 없지요. 이러한 지은이의 땀방울은 평소 궁금하였던 유명인들의 알짬이 드러나게 되지요. 40여개에 달하는 다양한 질문들은 인터뷰이의 삶을 여러 면에서 충실히 드러내게 하지요. 단순히 유명인 홍보를 위한 인터뷰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간직하려는 인터뷰를 하니까요.

인터뷰어로서 붙임성과 순발력은 좋지 않지만, 어딘가 '절박해' 보이는 인상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겸손해 하는 지은이는 글 솜씨도 아주 맛깔나지요. 김형구 촬영감독을 소개하면서 들어가는 문구에요. 인터뷰가 꽤 만족했는지 이렇게 표현하네요. 지은이의 직업과 인터뷰할 때 분위기가 절묘하게 담겨있는 멋들어진 글이네요.

인터뷰에 붙들린 아빠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진력날 시간이 됐다. "언니! 찍어줄게!" 김형구 촬영감독의 두 살배기 아들이 작은 카메라를 들고 통통 달려와 구슬 같은 눈을 파인더에 진지하게 갖다 댔다. 렌즈는 닫힌 채였지만 아기는 뭔가를 보았는지 까르르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시, 눈이 부셨다.

짝사랑처럼 준비하고 연애하듯 사람을 만나라

책을 덮으면서 다시 소통의 어려움을 생각해봅니다. 소통이 안 된다고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목 놓아 한탄을 하거나 침묵의 동굴로 들어가기 일쑤지요. 어떻게 하면 소통이 잘 될까요. 지은이는 "분명한 건 예리한 질문만큼 듣기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날카로운 질문은 기자의 이름 아래 표가 나지만, 경청의 공은 인터뷰이의 대답 속에 은연중에 드러난다고 믿어요"라며 경청의 중요성을 말하네요. 

예리한 물음을 던진다고 좋은 인터뷰가 되는 것이 아니듯 자신의 얘기를 주장하고 관철시켜야 좋은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21일 저녁, <오마이뉴스>에서 강의한 <PAPER>편집장 황경신씨 얘기는 그런 면에서 귀담아 들을 만하지요. 17년 전부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그녀는 '인터뷰는 연애'라고 설명하네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을 읊어주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강조하더군요. 몇 시간 얘기하고 그 사람을 마치 안 것처럼 시늉하기 쉽지만 마음을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상대를 만날수록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는 연애와 마찬가지로 인터뷰도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집중해서 들어줘야 한다고 일러주네요. 어떻게 상대 마음을 얻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마음 얻는 과정을 즐기라고 도움말을 주네요.

책에서도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똑같은 구절이 나와요. 지은이는 인터뷰 준비를 짝사랑의 축소판이라고 해요. 오감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켜 출연작과 과거 인터뷰를 복기하고 그 행간의 감정에 대해 주제 넘는 짐작을 한대요. 그녀는 인터뷰 전날은 잠을 자주 설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렴풋이 짧은 인연이 끝나는 아픔을 느낀대요. 짝사랑과 많이 닮았지요?

종합해보면 '짝사랑처럼 준비하고 연애하듯 사람을 만나라'로 간추려질 수 있겠네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남다르게 소통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요. 자신의 만남이 조금 겉돌고 변화가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의 만남을 눈여겨보는 건 어떨까요. 만남은 사랑하되 독점하지 않아야 하지요. 이 책을 보며 사람과 만날 때 한 입보다는 두 귀를 써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 지음,
씨네21북스, 2008


#김혜리 #씨네21 #인터뷰 #소통 #황경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4. 4 "남자들이 부러워할 몸이네요"... 헐, 난 여잔데
  5. 5 고립되는 이스라엘... 이란의 치밀한 '약속대련'에 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