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짓하던 오한흥, '조선' 뽑고 '옥천' 심다

[서평] 풀뿌리 지역 언론 성공기 <고삐 풀린 망아지, 옥천에서 일내다>

등록 2008.11.27 16:30수정 2008.11.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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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한흥 전 옥천신문 발행인의 모습이 표지에 나와있네요. ⓒ 푸른나무

지역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내젓습니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지역과 각을 세우며 수도권 규제완화가 이루어집니다. 지방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며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까지 내놓을 정도죠.

그래도 희망을 놓지는 말아야겠지요. 여기, 권력이나 부가 없어도 작은 실천들이 쌓여서 어떻게 지역의 미래를 바꾸어 가는지 알려주는 책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묵묵히 앞날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역 인물 탐구 시리즈 <희망을 여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희망을 여는 사람들 3편, <고삐 풀린 망아지, 옥천에서 일내다>[2008. 푸른나무]에서는 오한흥 전 옥천신문 발행인을 다룹니다.


오한흥씨는 2004년 <한겨레>가 주관한 '한국의 미래 열어갈 100인'에 뽑힌 사람입니다. 그때 100명 가운데 언론 분야에서는 5명뿐이었습니다. 손석희 MBC 아나운서, 황용호 KBS PD, 최민희 민언련사무총장, 오마이뉴스, 그리고 오한흥이었습니다. <한겨레>가 오한흥을 꼽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지방분권시대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역신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충북 옥천의 <옥천신문>은 척박한 지역 언론의 현실 속에서 서울의 유수한 전국지들도 쉽사리 끊지 못하는 관언 유착을 단호히 거부하고 올곧은 정론지로 성장해 왔다. 물론 <옥천신문>처럼 언론의 정도를 걷는 지역 언론들이 적지 않게 있다. 그러한 지역 언론들의 대표 격으로 오한흥 발행인이 선정됐다."

<조선일보>뽑아내고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키워내

그렇습니다. 충북 옥천을 빼놓고 그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충북 옥천은 ‘언론개혁의 성지’라고 불린 곳입니다. 인구 6만이 채 되지 않는 그곳에서 오한흥은 풀뿌리 언론 <옥천신문>을 창간하고 키웠으며 <조선일보>절독운동을 성공시킵니다. 그 역시 조선일보를 민족지로 알고 있었으나 <조선일보>의 역사를 알게 된 뒤 조선일보 바로보기 운동을 벌입니다.

"<조선일보>는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을 위한 조약’이라고 보도했던 신문입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조선일보> 친일 행각을 알고 있는 주민이 적어도 2%~5%는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러나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확인해보니 그 비율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친일 행각을 알려 주었더니 99.99%가 구독을 중지하겠다고 반응을 보였지요."


실제로 안티조선운동이 벌어졌을 때 많은 지식인들이 <조선일보>만 친일한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물고 늘어지느냐 하면서 거리를 두었습니다. 대통령도 만들어낸다고 당당하게 떠들어대던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에 대해 고위 공직자나 지식인들은 두려워했지요. 이러한 <조선일보>의 권력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이해가 안 갑니다.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소신껏 일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많이 배운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왜 알고도 여태까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조선일보>바로보기운동은 이웃사랑 실천운동입니다. 상한 음식을 먹는 이웃에게 그 음식은  상한 것이니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조선일보>가 나쁘다고 백 마디 떠들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길거리에 쓰레기가 널려 있으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고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있으면 구해야 하는 것처럼, <조선일보>절독운동을 벌이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상한 음식 먹는 이웃에게 상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당연"

<조선일보>는 친일행각을 감추기 위해 반공을 들먹이죠. 친일파 척결이나 민주평화를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색칠하면서 과거의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했지요.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에 빌붙어 국민들을 속이지요. 지금은 '29만원 밖에 없는' 반란자를 위해 한 달에 22일이나 1면에 전두환 사진을 실으며 권력에 아부하지요.

1972년 10월 17일에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하려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18일 사설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에서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고 하지요. 언론사에 대한 사전검열을 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유린한 반민주 폭거에 대해 칭찬하던 <조선일보>지요. 

슬프게도 40여 년 동안 '민족지' <조선일보>의 반공과 극우 논조는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일그러진 권력을 쥐고 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오한흥은 박정희 부인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곳, 보수성향이 강한 옥천에서 <조선일보>를 발붙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가 처음부터 언론운동을 하고 주민의식변화에 나선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30년을 방황하며 보냅니다. 자신은 "백수였고 꼴통짓을 많이 하고 다녔던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지요. 20대 중반에 잠시 넘쳤던 재물은 그를 자만과 타락으로 이끌었으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지요. 몇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으며, 다시 머리를 깎고 속세에서 도망치려고도 했지요.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바꾸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그는 막연하지만 반항심과 복수심이 있었지요. 그러다 1988년 <한겨레>창간 할 때 옥천지부장을 지내며 당시 40여명의 불과했던 옥천의 <한겨레>독자들과 만나면서 ‘사회성 개안’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추구와 부조리 극복을 해결하는 지점에 언론 문제가 놓여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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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옥천언론문화제의 하이라이트 조선일보 장례 행렬 ⓒ 임순혜


꼴통짓하고 다녔던 오한흥, 언론 문제에 대해 눈을 뜨다

"언론을 일컬어 흔히 세상을 비추는 창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은 이 창을 통해서 소통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이 소통의 도구가 왜곡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 청춘을 불행으로 이끌었던 바로 그 부조리와 모순, 불합리한 괴리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때부터 나는 왜곡된 창, 즉 언론을 바로잡는 것이 우리 시대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어른이나 선배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늘 되돌아오는 대답이 "네 말이 옳지만 하지는 마라"였다고 얘기합니다. 옭은 말이면 해야 되는데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세상이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현실을 바꾸는데 뜻을 품었고 언론 바로잡는데 힘을 모으게 되지요. 그는 자식에게도 '착하고 바르게 살라'고 말할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놓습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현실에서 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기존 관행은 고치기 쉽지 않고 기득권 세력은 변화를 막으려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옥천신문>은 흑자경영을 하면서 성공한 풀뿌리 지역 언론이 됩니다. 성공한 이유를 들여다보면 단순합니다. 정도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문만큼 단순한 것이 없습니다. 신문이라는 상품 하나만을 취급하며 가격도 1년 내내 유지됩니다. 수입으로는 구독료+광고료, 지출에는 인건비+제작비, 답은 나오지요. 더 좋은 신문을 만들어 구독자를 꾸준히 늘리는 일이지요."

좋은 신문이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찾게 되지요. 좋은 신문이 되려고 그는 여러모로 애를 씁니다. 우선 '지방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역에서 전권을 행사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역 권력을 줄기차게 감시합니다. 권언이 서로 짬짜미하는 게 관행을 깨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비를 걸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기사를 씁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에 대해서 발끈하기 마련인데 지적당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하네요.

"<옥천신문>은 공무원이 못하면 못한다고 보도하고, 잘하면 잘한다고 보도합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지역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지역 주민 생활에 밀착해서 생활정보 기사를 실습니다. 주민들의 말을 실어 주민과 주민이 소통하는 신문이 됩니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도록 말길을 열어놓습니다. 고객 감동 정신으로 주민과 독자를 신문의 주인으로 섬깁니다. 

지성이면 감천, 지역주민에게 사랑받는 <옥천신문>

지성이면 감천이지요. 이러한 노력에 사람들은 <옥천신문>을 보게 됩니다. <옥천신문>을 보면서 무엇보다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옥천 주민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색깔론, 지역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투표를 하고 사회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언론을 바로 세우면 세상도 바로 선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지요.

이 책은 정지환 <여의도 통신> 대표기자가 오랜 시간 오한흥을 지켜보며 쓴 책입니다.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정지환 기자에게 오한흥은 행복하냐고 물어보지요. 정기자에게 ‘행복’이란 단어는 어색한 감정이고 낯선 말이기에 머뭇거리자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자신이 행복하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려면 언론이 바로 서야한다고 판단한 오한흥,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까지 땀을 흘렸고 그 결과가 <옥천신문>의 성공이었지요. 신문제작원칙을 철저히 지켰고 촌지와 계도지를 거부했으며 성역 없는 과감한 보도로 하였지요. 신문을 만드는 것 말고는 다른 일에 한눈을 팔지 않았던 그를 읽으며 한국 언론이 행복한지 돌아보게 됩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옥천에서 일내다 - 풀뿌리 언론의 희망 오한흥

정지환 지음, 희망제작소 기획,
푸른나무, 2008


#오한흥 #옥천신문 #조선일보 #안티조선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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