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센징들 우리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훼손 발급된 여권 때문에 일본 입국심사대에서 당한 모욕

등록 2008.11.28 11:49수정 2008.11.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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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항의 아침 ⓒ 박도


일본역사탐방에 동참하다

언젠가 어떤 분이 내 사주를 봐주면서 "당신은 평생 바쁘게 살겠다"고 촌평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 다 살지 않았지만 대체로 맞는 듯하다. 퇴직을 하면 좀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일감은 더 많이 밀렸다.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는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로 무척 바빴다. 그런 가운데 만학도 고교 동창이 방송대학교 일본어학과 졸업생들의 일본 규슈지방 역사탐방에 동참하지 않겠느냐고 산골 촌사람에게까지 권유했다. 몇 해 전 나는 그들 역사탐방에 동참해 보니까 여러 가지로 배운 게 많았기에 머리도 좀 식힐 겸 만사 제쳐두고 따라나섰다.

"친구 따라 강남도 간다"고 하는데, 일본까지 못 가랴. 사실 그 친구는 대학시절 자기 등록금을 나에게 선뜻 빌려준 속깊은 친구였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내가 사는 안흥 산골마을에서 어둑새벽에 출발해 부산에 닿아 하카타 행 카멜리아 호에 승선한 뒤 밤새 대한해협을 건넜다. 이튿날인 3월 30일 아침 7시 30분 하선하여 일본국 입국심사장으로 갔다. 이번 역사탐방답사단은 일정이 주말인데다가 값도 싼 탓인지 80여분으로 대성황이었다.

지난번보다 인원이 배가 넘어 속으로 염려스러웠다. 누군가 그랬다. "단체라면 천당도 가지 말라"고. 이는 단체가 움직이다 보면 꼭 늦는 사람이 한두 사람 나오거나 자그마한 사고를 치는 이가 있거나, 관광지에서도 단체 취급으로 봉사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등, 아무튼 자질구레한 불편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첫 일본방문 때와는 달리 입국사증도 없어 한 가지 절차는 줄어들었지만 입국심사대에서는 대신 지문 및 사진 촬영 등으로 시간을 많이 끌었다. 나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고자 가방을 친구에게 맡겼다. 다시 돌아온 뒤 20여분 기다리자 내 차례였다. 친구는 내 가방을 끌고서 먼저 나가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곧 지문을 찍고 사진 촬영도 끝났다. 그런데 세관직원이 내 여권을 몇 번이나 훑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깐 놈이 보려면 얼마든지 봐라"


나는 속으로 "네깐 놈이 보려면 얼마든지 봐라. 이 여권으로 미국도 세 번, 중국도 세 번, 일본도 네 번째 다녔고, 해외여행 때 한 번도 규정을 위반하거나 선물조차도 산 적이 없는 대한민국 모범백성으로 둘째가면 서러울 사람이다. 이제까지 어디서 거동 수상자로 검문 한 번 당해 본적 없었다"하고는, 곧 여권에 상륙허가 스티커를 붙여주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계속 내 여권을 뚫어지게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다음 출입문을 닫고는 나를 대기실 의자로 안내하고는 통관업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새 일행들이 모두 입국심사대를 거의 다 통과했다. 그런데도 나를 붙잡아 두고는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순간 화가 무척 치밀었다. 내가 단체에 여행에 훼방꾼이 되다니? 일행들에게 너무 창피했다. 내가 항의하자 일본관리가 두 손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냈다. 내가 어디 미운 털이라도 박혔나, 왜 하필 이 친구들이 나를 붙잡아둘까? 잠깐 사이지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동안 해외 다닌 일을 아무리 복기해 봐도 범법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혹이나 이 친구들이 그 무렵 내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항일의병유적답사기 가사 내용을 문제 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일본을 심하게 욕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근거를 가지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쓴 글인데, 정말 '이 자식들 치사한 왜놈들이다'라고 내심 일본인의 옹졸함을 한껏 매도했다. 그런데 일본에 정통한 제자의 이야기로는 일본의 지식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비판을 고맙게 받아들인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 사이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모두 다 심사대를 통과했다. 일본 관리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그 가운데 가장 고참인 듯한 관리가 나를 조사실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확대경으로 여권을 뚫어지게 보면서 인터폰을 켜고는 통역을 불렀다. 그리고 녹음기의 스위치도 눌렀다. 나와 관리의 말이 인터폰을 통해 통역이 되었다.

"당신 여권을 고친 적이 있느냐?"

관리와 오간 자세한 이야기는 줄이고 그 요지는 말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 여권을 고친 적이 있느냐?" 
"여권을 발급한 이후 전혀 손대지 않고 사용했다."
"그런데 분명히 당신 이름을 고친 자국이 있다."
"그럴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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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여권, 여권의 기록 가운데 영문 'D' 자 다른 글자보다 두텁다 ⓒ 박도

그는 확대경을 주면서 당신 이름의 영문 PARK DO에서 'D'자를 자세히 보라고 했다. 그냥 볼 때와는 달리 확대경으로 보니까 'D'는 'O'를 지우개나 칼로 긁어 지우고는 그 위에다가 새로 'D'를 쳤다.
순간 나는 얼굴이 뜨거웠다. 내 여권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것이 대한민국 공무원 수준이요, 대한민국 대망신이다.

그들은 내 가방을 보자고 하였다. 이미 밖에 나간 가방을 도로 찾아오자 그들은 내 가방을 무슨 범죄인 가방인 양 소지품을 죄다 펼치고는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면서 마약이나 밀수품을 운반한 전력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항변해도 그들은 나를 풀어주지 않았다. 친구와 답사단 책임자가 번갈아 드나들었다. 바깥에서는 이미 답사단이 모두 예약버스에 오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정도 모르고 나를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고 얼마나 원망할까?

순간 나는 이것은 분명 우리나라 외무부(외교통상부) 여권발급자의 실수로 여겨졌다. 사실 나도 한때 학교에서 교무부장 보직으로 학생생활기록부를 결재하면서 그렇게 누누이 이르건만 간혹 담임선생님들은 오자를 정식 결재를 받아 처리하지 않고 칼로 긁거나 덮어씌우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나는 그것을 찾아내고는 이튿날 교직원회의 때 그런 사실을 공표하고 재발방지조치를 취하기를 거의 해마다 반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세운 지 얼마 안 된 백화점도 무너지고 다리도 끊어졌다.

일본 관리는 진술서를 내 앞에 내놓았다. 나 혼자라면 계속 버티고 거부하고 싶었지만 버스에 탄 80여 명 답사자들이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며 얼마나 나를 원망하겠는가. 더 이상 버티려고 하니 뒤통수가 가려워 사실대로 후딱 썼다. 일본 관리는 내 진술서를 받아보더니 그제야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내 가방을 돌려주면서 가도 좋다고 했다. 그 비웃음에는 다음의 뜻이 포함된 것 같았다.

'너희 조센징들 우리를 따라오려면 아직도 멀었어.'

담당 공무원의 실토

그 비웃음은 일본에 머무는 내도록, 귀국하고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귀국 다음날 녹음기를 준비하고는 여권을 발급한 종로구청 여권발급창구로 갔다. 창구직원에게 얘기해봤자 실랑이만 벌릴 것 같아 맨 뒷좌석 회전의자에 앉은 가장 나이든 분에게 갔다.

그는 내 눈빛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매우 친절하게 맞았다.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해도 그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었다. 그럼 내가 할 일없이 당신 찾아와서 행패하느냐고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담당 두 남녀 직원을 불렀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실무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길 건너 외교통상부장관실로 바로 갈 거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들은 실토했다. 여직원은 아마도 그 무렵 담당직원이 그때까지 타이핑한 것이 아까워 오타를 지운 뒤 그 위에다 타이핑한 것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자 책임자는 요즘은 전자여권으로 조폐공사에서 일괄해서 발급하기에 절대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거듭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사진 두 장을 주면 남은 유효기간까지 전자여권을 무료로 발급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윗 주머니속의 녹음기를 꺼내보인 뒤 "끝까지 발뺌을 하면 자초지종을 녹음하면서 끝내 진실을 캐내 책임 추궁을 하려고 하였다. 다행히 담당직원이 솔직한 고백을 하고 잘못을 시인하기에 소기에 목적은 이루었다"고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도 하카타 항에서 일본관리가 나를 보내주면서 웃는 비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그곳에서 당한 모욕감을 널리 전하는 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일본을 따라 갈 수 있는 지름길 같아 이 기사를 썼다.  그들은 아직도 우리를 형편없이 깔보고 있다.

"너희 조센징들 우리를 따라오려면 아직도 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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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다 항을 떠나오면서 ⓒ 박도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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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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