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세계 이주민의 날에 이주민 13명이 말하는 '야! 한국사회'

등록 2008.12.18 20:07수정 2008.12.1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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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인 12월 18일. 충남 천안에서는 이주민 13명이 자신들이 보고 겪고 느낀 한국사회를 말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어느 이주민은 결혼알선업체의 부도덕함을 고발했다. 또 다른 이주민은 국적 취득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한국 정부의 이주민 정책에 당사자들의 자리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행사의 말미에 이주민들과 인권운동 단체들은 '이주민과 원주민이 더불어 더 멋진 한국사회를 꿈꾼다'는 성명서도 채택했다.

"아이들이 친구도 잘 사귀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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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사회'라는 제목으로 이주민들이 5분 스피치를 하고 있다. ⓒ 윤평호


이주·여성인권연대, 천안모이세, 모이세 이주여성의 집 등 3개 단체는 18일 오후 2시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세계 이주민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서는 '이주민이 말하는 한국사회'라는 주제로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이주민 13명이 5분 스피치를 했다. 이주민들이 준비한 춤과 연극 등 공연도 선보였다.

중국 출신으로 5년째 한국에 살며 한국 국적을 취득한 유단단씨는 한국 며느리 되기의 고충을 토로했다. 유씨는 "외국 며느리의 생각과 조국문화습관을 묻지도 않은 채 무조건 시킨대로 해야 착한 며느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정말 싫다"고 말했다.

9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 11년째 가정주부로 살고 있는 베트남 출신의 김나현씨는 결혼알선업체의 폐해에 분개했다.

김씨는 '베트남 결혼, 무료맞선, 전액후불제' 등의 글귀가 적힌 결혼알선업체의 현수막을 길에서 마주치면 마음이 아프고 마치 자신이 물건이 된 듯한 느낌이라며  "많은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람들 혹은 시댁 식구들로부터 돈 주고 사온 사람이라는 편견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96년 한국에 입국,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아이 셋과 함께 인천에서 살고 있는 나카사또 테루미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큰 딸이 '엄마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숨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98년 필리핀에서 입국해 한국사람과 결혼한 빌마 파티완씨. 남편은 아이들 셋과 부인을 남겨 두고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빌마씨는 치매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수발하며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빌마씨는 아이들과 얽힌 아픈 사연을 소개했다.

"딸이 학교에 다니는데 자꾸 친구들이 너네 엄마 외국사람이야? 외국인이지? 하고 자꾸 놀려서 학교에 안가고 싶다고 해요. 친구들이 싫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도 속상하고 저도 엄마로서 많이 속상해요."

빌마씨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처럼 친구도 잘 사귀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국적취득! 너무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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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이주민센터에 다니는 이주민들이 춤 공연을 선 보이고 있다. ⓒ 윤평호


박영금씨는 파키스탄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린 지 14년이 됐다. 남편은 고물상을 운영하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있다. 박씨는 결혼 초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로 남편과 힘든 점도 있었지만 정작 더 어려웠던 것은 우리나라 법과 제도였다고 말했다.

"합법적으로 혼인을 했음에도 당시 법률상 남편은 합법적인 취업은 물론 안정적인 체류조차 힘들었죠. 제가 귀화를 종용하자 나름 버티다가 귀화를 선택해 결혼 10년만에 주민등록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안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틀린 걸로 판명이 났죠. 남편은 일하는 곳곳에서 차별을 느꼈고 선거철에 투표용지 받을 때나 대한민국 사람 대접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지난해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의 응우엔티 트엉씨는 "한국말 배우기가 어렵다"며 "한국말과 생활을 잘 몰라 하는 실수나 잘못을 잘 이해해 주시고 그것을 친절히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우즈벡에서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부인과 결혼한 임계만씨는 국적취득의 어려움을 거론했다. 부인이 지난 10월에 귀화허가를 받았다는 임씨는 "귀화허가 받으면 국적을 취득해서 대한민국에서 불편 없이 살아가려나 했더니 우즈벡에서 국적포기를 안 해 줘서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임씨는 "부인이 자기나라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하는데도 안 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어도 승인이 안 나고. 도대체 언제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하느냐"며 "한국에 와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그냥 그 나라에서 바로 받아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행사 주최단체 가운데 한곳인 이주·여성인권연대의 이인경 대표는 이주민이 100만명을 넘어선 한국사회 다문화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대표는 "호들갑스러운 다문화정책과 여기저기서 다문화가족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펴고 있지만 어디에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사회가 일방적으로 펴는 정책과 지원이 이주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원하는 것인지 짚어 볼 때라고 지적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성명서 발표에서 이주·여성인권연대는 상업적 결혼알선업 중단, 결혼이민자에게 입국과 동시에 영주권 부여, 미등록 노동자의 합법화 등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08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08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이주민 #이주여성 #귀화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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