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관 동시 추진, 과연 타당한가?

서울 광진구·구리시, '우리가 고구려 후예'... 역사학계 "고구려에 점령당한 지역이 더 타당"

등록 2008.12.30 10:10수정 2008.12.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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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 대한 한국인의 마음은 한결같다. 그 옛날 만주를 호령하였고 누볐던, 동북아시아의 강국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가슴 깊이 박혀 있으며, 또한 그들의 기상을 아직까지도 계승하자는 움직임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고구려관련 문화 콘텐츠, 이를테면 <주몽>,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등의 사극들이 잇단 성공을 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지자체별로 고구려를 연계시켜 이를 그 자치단체의 마스코트나 아이콘으로 만들려는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국민적인 관심사와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확보라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관광객 유치 및 지자체 홍보 등에 수많은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 아래에서 말이다.

 

여러 지자체가 고구려와 관련하여 행사나 유적지 조성 및 보존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리시와 서울 광진구 사이에서는 상당한 대립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로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고구려 역사관을 짓겠다고 주장하고 나서고 있으며, 이러한 분쟁 또한 가시화되고 있다. 그럼 여기에서 과연 두 지자체별 분쟁이 무엇이고, 또한 역사적으로 과연 고구려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한번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

 

서로 고구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구리시와 광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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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시와 광진구의 고구려역사관. (上)구리시가 계획중인 고구려역사기념관, (下)광진구가 계획중인 고구려역사문화관. ⓒ 구리시, 광진구 제공

구리시는 이전부터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광개토태왕동상’과 ‘광개토태왕비 복원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대장간마을’을 조성하여 <태왕사신기> 촬영으로 인한 관광지와 학생 및 일반인들의 학습 및 체험의 장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광진구는 고구려 관련 유적들이 많이 있기에 이를 적극 활용하고 정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차산성, 아차산 보루, 홍련봉 보루, 용마산 보루 등 광진구 내의 고구려 유적들을 적극 홍보하고 또한 이를 관광자원화 할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바로 아차산. 구리시와 광진구는 둘 다 행정구역상 아차산을 마주보고 있고, 고구려 유적들 또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고구려 유적 중에서 아차산성과 그 일원의 유적들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서로 이를 자신의 지자체 소유라고 하면서 이를 통하여 행사 및 홍보를 하고 있다. 고구려 계승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이라고 하겠으며, 어느 한쪽도 쉽게 양보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구려역사관을 서로 건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구리시의 경우 사단법인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의 주최로 사업비 330억원을 들여서 교문동에 3만 3천㎡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2층 정도의 ‘고구려역사기념관’을 오는 2011년 10월까지 건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광진구의 경우, 총 사업비 395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고구려역사문화관'을 오는 2011년 12월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둘 다 대규모의 전시관 및 기념관을 기획하고 있고 그 자료들을 주로 아차산성 및 그 일원 유적에서 나온 것을 이용하려는 계획이다.

 

과거를 이해하고 그것을 후세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기념관을 짓거나 역사관을 짓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옆의 지자체들이 동일한 유적을 가지고 따로 고구려역사관을 짓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구리시와 광진구에 조정을 청하였으나 결국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과연 구리시나 광진구는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할 만큼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가, 또한 아차산성과 그 일원의 유적들은 고구려사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이에 대한 의문을 풀고 한번 다시 이쪽에 대해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구리시와 광진구, 고구려역사에 있어서 그 비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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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단성과 을아단성. (上) 아단성으로 비정되는 광진구의 아차산성(사적 제 234호), (下) 을아단성으로 비정되는 단양의 온달산성(사적 제 264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영대

구리시와 광진구는 광개토태왕의 남방원정 중 396년에 아차산성(阿且山城), 즉 아단성(阿旦城)이 함락되면서 고구려와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들이 확실히 고구려의 땅이 되는 것은 475년 장수왕의 남정 때로서 당시 북한산군의 관내에 있던 골의노현(骨衣奴縣)에 속해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한다.

 

이때 장수왕은 당시 백제의 개로왕을 이곳으로 데려와 그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리고 551년 나제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의 땅이 되며, 2년 뒤 신라 진흥왕이 나제동맹을 깨고 이곳을 점령하게 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구리시와 광진구가 고구려에 속했던 것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다. 이 시기에 고구려가 남긴 것은 기존에 백제가 축성한 아차산성을 포함하여 아차산 보루, 홍련봉 보루, 용마산 보루 및 근처의 고분군이다.

 

이들은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 즉 지금의 풍납토성을 마주보면서 경계를 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또한 고고학적으로도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사용되었기에 유물들의 편년 상 연대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온달(溫達)이 아단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아단성을 구리시와 광진구에서는 아차산성이라고 주장하며,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온달샘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더 많다. 아차산성이 아단성인 것은 맞지만, 온달열전에서 나오는 아단성은 바로 을아단성(乙阿旦城)으로서, 이는 지금의 충북 단양에 있는 온달산성이라는 견해이다. 애초에 온달이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수복하겠다고 한 기록을 보아 온달산성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그럼 구리시와 광진구의 주장 중 온달에 관한 것은 허구가 된다. 애초에 온달샘이라는 유적 또한 온달이 그 샘의 물을 마셨기 때문이 아닌, 옹달샘이라는 말이 변해서 그러한 명칭이 붙었다는게 설득력이 있고, 그 근처에서 이외의 온달과 관련된 전설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풍납토성을 마주본 군사요충지로서의 유적이라는 가치는 변함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 즉 구리시와 광진구가 내세우는 아차산성과 그 일원 유적은 어디까지나 백제를 마주보던 보루유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여 고구려의 후예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사실 광개토태왕과 장수왕 시절엔 지금의 경기도 북부 일대는 물론이거니와 충청북도 일대 또한 고구려의 영토였다.

 

즉, 구리시와 광진구가 내세우는 고구려의 후예라고 하기엔 다른 지역 또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를테면 연천군의 경우엔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등의 고구려의 관방유적들이 존재하고, 양주지역에선 29개소의 보루유적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역사적 가치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상 이곳은 백제의 땅이었던 곳이며 삼국시대 당시만 하더라도 본래 백제의 땅이라는 의식이 강했던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여기를 고구려의 땅이라고 우기기는 힘들며 그 후예라고 말하기엔 더욱 난처한 측면이 있다.

 

도리어 이곳은 고구려에 의해 ‘점령’당하였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즉 구리시와 광진구는 서로 고구려에게 ‘점령’당한 것을 자랑하고, 또한 이를 적극 홍보하기 위해 수백억의 예산을 쏟겠다는 계획은 세운 셈이다.

 

진정한 고구려의 후예는 어디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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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고구려비. 충북 충주에 있으며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인해 세워졌다.(국보 제 205호) ⓒ 송영대

 

그럼 이야기를 돌려 현재 남한 내의 고구려의 후예를 어디로 비정하는 게 나을까? 고구려의 남한 내 영향력을 좁게 보았을 땐 장수왕 때 차지한 경기도 북부와 충청북도 일원 및 강원도 지역 등이겠지만, 넓게 본다면 금관가야의 쇠퇴까지도 직접 군사적 관여를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의 후예라 주장할 만한 지역은 되도록 고구려가 그만한 가치를 인정한 땅이어야 할 것이다.

 

현재 남한 내에서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진 곳이라고 한다면 역시 충북 충주라고 하겠다. 충주는 고구려 당시 국원성(國原城)이 설치되었는데, 이 국원성의 설치 목적은 바로 한반도 남부의 경영을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고구려의 전(前) 수도였던 국내성에 버금가는 국원성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국원성으로 추정되는 장미산성과 장수왕이 세운 중원고구려비가 존재한다. 그리고 고구려 불상으로 추정되는 봉황리마애불상군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온달이 활약하였다고 하는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과 온달동굴 등은 온달의 전설이 가득한 곳이다. 이 충주와 단양의 경우도 스스로 고구려와 관련하여 여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구려역사관을 건립한다고 한다면 그에 걸맞게 남한 내 고구려를 대표할 수 있는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차산성과 그 일원의 유적들이 정비가 잘되고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그만큼 중요성이 다른 곳에 비해 탁월할 만큼 높은가는 의문이 든다.

 

고구려역사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가까운 지자체끼리 이에 대해 불필요한 충돌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그 역사성에 대해 광진구나 구리시는 스스로 검증을 하였을까는 몰라도 다른 지자체나 국민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는가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진정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해서라면 단순히 지역 이기주의로만 나가지 않는, 넓게 보고 크게 보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광진구와 구리시간의 고구려역사관 건립에 대해 역사성을 검토하여 글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2008.12.30 10:1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광진구와 구리시간의 고구려역사관 건립에 대해 역사성을 검토하여 글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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