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열정으로 일궈낸 작가 김종광의 문학

'무작정 떠나는 문학기행'에서 만난 작가 김종광

등록 2008.12.30 20:32수정 2008.12.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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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손자(작가의 조카)를 보고있다 기행팀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던 작가의 어머니. 차 한잔이라도 들고가시라고 권하는 걸 사양하자 그렇게 섭섭해 하셨다. ⓒ 안경숙

본가에서 손자(작가의 조카)를 보고있다 기행팀원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던 작가의 어머니. 차 한잔이라도 들고가시라고 권하는 걸 사양하자 그렇게 섭섭해 하셨다. ⓒ 안경숙

 

뭔가 기억에 남을 이벤트 하나 없이 가는 해를 보내야 하나 서운해 하던 차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12월 28일 일요일, 소설가 김종광과 함께하는 ‘무작정 떠나는 문학기행’에 참가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일단 휴무를 바꿀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연락하겠다 하고는 잠시후 문자를 날렸다. ‘좋아요, 갑시다!’

 

2000년에 첫발을 떼어 81회차에 이른 ‘무작정 떠나는 문학기행’이 부산에서는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긴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게 누구에게나 밥 먹듯 쉬운 건 아니다. 알바로 하는 일요일 오전 논술수업시간을 바꾸고 알토란 같은 일요수당을 포기해 가며 참가할 마음을 먹은 건 순전히 작가 김종광의 매력에 꽂힌 바 있어서다.

 

삶의 현장을 낚아올린 소설이 싹튼 곳, 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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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살고있는 작가가 기행팀을 맞느라 고향에 오는 길에 세 가족이 다 온 모양이다. 잠시도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던 일곱살짜리 아들. ⓒ 안경숙

수원에 살고있는 작가가 기행팀을 맞느라 고향에 오는 길에 세 가족이 다 온 모양이다. 잠시도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던 일곱살짜리 아들. ⓒ 안경숙

 

몇해 전 작가의 등단작을 표제작으로 하여 내놓은 ‘경찰서여 안녕’(2000년)을 읽으면서 느꼈던 즐거운 충격은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물에서 갓 잡아올린 고기를 만난 느낌이었다고 할까. 펄떡펄떡 뛰는 삶의 현장을 낚아올려 놓은 듯한 소설의 싹이 텄던 곳, 충남 보령 곳곳을 작가가 함께 돌아본다는데 도저히 안 갈 수가 없었다.

 

문학기행 행사를 주관하는 부산문화연구회 김성배 대표(도서출판 해성 사장)에 의하면 “2년 전부터 문학기행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나이도 어린 제가 설 자리가 아닌 듯하다”며 김종광 작가가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이에 김 사장이 “동년배인 문태준 시인도 문학기행을 했으니 나이 핑계 대지 말라”고 강권하여 섭외를 성사시켰다는 것이다. 일단 승낙을 하고 나서도 "우리 고향에 오시면 뭘 보여드려야 하나" 무지하게 걱정을 했다는 김종광 작가는 집안의 친척어른 대하듯 반가운 얼굴로 기행팀을 맞아주었다. 새치인지 흰머리인지가 살짝 보이는 거 말고는 해맑은 소년 같은 인상이 수줍음 많이 타는 노총각 같았다.

 

겉모습만 그렇지 김종광 작가는 일곱 살짜리 아들을 둔 유부남인지라 문학기행 첫 코스인 청라면 내현마을 안골의 본가에서 참하게 생긴 부인과 나란히 섰다. 작가의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시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며느리를 생각하며 사진 한 장 찍고 싶었으나 예의가 아닌 듯하여 참았다. 햇볕이 반쯤 드는 정갈하고 좁은 본가 마당에서 손자(작가의 조카)를 업고 계시던 모친을 뵈면서도 자식들 위해 단골무당을 찾는 작품 속 인물이 오버랩되었으니, 문학기행의 맛은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열심히 쓰다보니 소설가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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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면 내연마을 풍경. 기행팀원들은 마을을 가로지르며 작가가 나서 자란 마을의 정취를 더듬었댔다. ⓒ 안경숙

청라면 내연마을 풍경. 기행팀원들은 마을을 가로지르며 작가가 나서 자란 마을의 정취를 더듬었댔다. ⓒ 안경숙

 

본가에서 물러나온 일행은 두충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야트막한 뒷동산을 올랐다. 사방 걸리는 거 없는 들판 가운데 서자 작가의 눈빛이 문득 아련해졌다. ‘소설로 너무 많이 해묵은(우려먹은)’ 고향마을에 서서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71년생, 아직 젊다면 젊은 저 작가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솔직한 속내를 듣고 싶었다.

 

작가의 공공근로 경험을 소재로 한 소설의 무대인 동사무소, 원동기 면허증을 따는 마을 어른들의 에피소드로 독자를 웃긴 ‘많이많이 축하해유’의 배경인 경찰서, 농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가 논바닥을 고르러 달려가곤 했다던 땅에 세워진 아파트단지, 작가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던 시내의 찜질방 건물 등을 둘러보느라 보령 시내를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작가에게 물었다. ‘혹시 작품을 쓰기 위해 일부러 고향마을을 찾은 것이냐’고.

단도직입 무례한 우문에 작가는 스스럼없이 답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했는데 보증금을 다 날렸어요. 그래 가있을 데가 없어 아버지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스물여덟 아홉 서른, 삼년을 살았어요. 살면서 여기 생활을 소설 속에 자연스레 담게됐고, 그렇게 쓰다보니 소설가의 눈으로 내 주변을 의식하며 보게도 되더군요.”

 

등단 10년 만에 쇄를 거듭하는 몇권의 소설집과 굵직굵직한 장편을 내놓은 이 잘나가는 작가의 튀지 않는 상식적인 답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태 내 가족과 친구, 이웃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떠올리며 일말의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데 작가는 “이곳 보령이 사실 태백보다 먼저 탄광을 열었던 곳인데 그 역사를 써보려고 한다”는 말로 앞으로의 포부까지 밝혀주었다. 

 

탄광도시로서의 보령을 작품속에 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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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삼겹살'의 배경이 된 오서산 입구에서 사인을 해주고 있는 작가 김종광. ⓒ 안경숙

'낭만삼겹살'의 배경이 된 오서산 입구에서 사인을 해주고 있는 작가 김종광. ⓒ 안경숙

 

만난 지 몇 시간밖에 되지않았지만 탄광도시로서의 보령을 작품속에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야 김종광 작가로선 당연한 작업이리라 생각됐다. 외할아버지가 십장으로 일했다는 청라저수지를 지나면서 작가는 아버지가 11남매라 사촌만 무려 50명이라고 하여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던 이들을 놀라게 했는데, 핏줄이 당기는 가족친지를 비롯해 농부로 광부로 살아온 이웃의 삶이 녹아있는 보령이야말로 작가 김종광의 문학을 튼실하게 엮어 세울 공간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보령이 터가 좋은 곳인가 보았다. 이문구 선생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작가의 입을 통해 들은 인물만도 이혜경 작가, 안학수 시인을 비롯해 하회탈 남희석과 가창력에서 둘째가라면 억울한 이선희까지 여럿이다. 스스로 아직 진행형인 작가라 문학기행을 이끌 급이 아니라고 겸손해했던 김종광 작가는 이날 내내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기행팀들이 정작 자세히 듣고 싶었던 건 ‘모내기 블루스’에 나오는 인물군들의  가정사였고 전경생활을 하던 때의 경험을 어떻게 소재로 활용했는지 그 뒷담화 같은 것이었을 텐데 다른 작가들의 얘기를 자꾸 끌어들였다. 이문구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부엉이숲에서 관촌수필의 배경이 된 보령 대천 시내를 가리키며 얘기를 쏟아내고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의 작품배경을 소개하며 눈을 빛내던 작가의 모습은 우리기행의 본령에는 벗어났으나, 그러나 참 예뻐 보였다. 

 

돌아온 채만식˙김소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있는 김종광 작가로 하여 사람냄새가 나는 정말 특별히 재밌는 고장이 된 보령 곳곳을 돌고나니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다. 야금야금 줄어드는 시간을 아끼느라 예정되어 있던 성주사지 구경도 건너뛰고 갯벌도보기행을 하기로 했던 일정을 바꿔 드라이버로 그쳤지만, 기행팀원 가운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제가 좀 재밌게 웃겨드리고 해야하는데 재미가 없어 미안하네유.” 사과 아닌 사과를 하는 작가의 다소 어눌한 듯 구수한 입담에 다들 마음이 낙낙해져 버린 듯 ‘서른 무렵 우울할 때면 저 갯벌을 따라 염전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는 작가의 얘기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 행선지인 대천항에서 규모나 활기에서 자갈치보다 못한 데 실망하면서도 문학기행 참가자들은 김종광 작가와 함께한 이번 기행에 참 잘 온 거 같다는 표정들이었다.

 

해물탕으로 맛난 저녁을 먹은 뒤 버스에 올라탄 작가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들려준 조언은 삶에 밀착한 그의 소설만큼이나 평이하고 진솔했다. “소설가는 잡학다식해야 합니다.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면 논리적 사고가 길러지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면 다른 나라 언어와 비교되어 우리말 공부를 깊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학생이라면 입시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등단초짜를 위한 조언도 잊지않았다. “등단은 자격증일 뿐이고 보다 중요한 건 열정입니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책상 앞에 버티고 앉아있게 하는 건 재능이 아니라 열정입니다.”

 

작가 김종광이 들려준 글쟁이의 비법,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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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부엉이숲에서 관촌수필의 내용과 배경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 작가. 자신의 얘기보다 선생의 얘기을 하는 게 더 편한 듯했다. ⓒ 안경숙

이문구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부엉이숲에서 관촌수필의 내용과 배경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 작가. 자신의 얘기보다 선생의 얘기을 하는 게 더 편한 듯했다. ⓒ 안경숙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오는 방망이를 가진 도깨비처럼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작가 김종광이 들려준 글쟁이의 비법을 가슴에 새긴 이는 45석을 모두 채운 기행팀원 가운데 몇 명쯤이었을까. 분명한 건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내게 있어서만큼은 작가가 던져준 ‘열정’이라는 단어가 2009년을 지킬 도깨비방망이가 되어줄 거라는 거였다. 농촌청년의 풍모가 남은 순박한 얼굴에 은근히 귀여운 웃음을 짓고서 앞으로 책 나오면 많이 사달라고 부탁하던 작가 김종광과 함께했던 문학기행은 장시간 버스에 탑승한 후유증으로 지독한 허리통증을 유발했지만, 연말을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행복한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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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직한 글, 생활에 밀착한 진짜배기 글을 쓰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며 바라본 대천항의 모습. 먹이를 찾아 활강하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실어보았다. ⓒ 안경숙

삶에 정직한 글, 생활에 밀착한 진짜배기 글을 쓰는 작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며 바라본 대천항의 모습. 먹이를 찾아 활강하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실어보았다. ⓒ 안경숙

2008.12.30 20:32 ⓒ 2008 OhmyNews
#김종광 #충남 보령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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