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만나뵙기 어려운 구청장님, 여기서 만나는군요.

[뉴타운 포토 에세이1] 구민들의 동상이몽, 모두 꿈은 각자 꾸지요.

등록 2009.01.01 16:37수정 2009.01.0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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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갑선

연말에 나 '백수 커밍아웃'했다

 

나는 복잡한 데는 잘 가지 않는다. 어떤 집회도, 학교 축제도, 스포츠 경기도, 관광지도, 쇼핑몰도, 사람이 많으면 흥분보다는 혼란을 먼저 느낀다. 군중 속에서 더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타종도, 새 해 맞이도 참가해 본 적이 없다. 연말은 거의 대부분 가족과 함께 보내고, 가족들이 외부 모임이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대체로 혼자 새해를 맞는다. 친구를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더구나 글 쓰겠다고 집에서 나오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 '잠수'탄 뒤로는 함께 하자고 말할 만한 사람도 주위에 얼마 안남았다. 안팎으로 외롭다.


며칠 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짐 캐리 주연의 영화 <YES MAN>을 봤다. 곤란한 질문에도 'YES'라고 대답했을 때, 그 대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코믹하게 그렸다. 사실 나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두려워해서, 웃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불안했다.

 

'이대로 영화가 끝나도 괜찮을까? 정말 만사 YES만 해도 될까?' 

 

다행히 영화 종반에는 무조건적인 'YES'는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을 언급해줘서 기분 나쁘지 않게, 웃다가 나올 수 있었다. 역시 짐 캐리는 시나리오를 읽을 줄 아는 배우였다.

 

(요즘 캠페인 광고나, 대기업의 스폰서로 제작되는 공익 광고를 보면 한국인들에게 '긍정하라'는 주문이 많다.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불안하다. 대책이 없이 긍정하라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짐 캐리와 감독은 영화를 좋게 끝냈는데, 방송사와 기업은 공익 광고를 도대체 어떻게 좋게 끝내려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마치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계속 "NO"라고 하는 모습만 보였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 친구를 붙잡았다. 적어도 한 다섯 번 정도는 무조건적인 "YES"를 외치고 싶었다. 바보 같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둘 중에 한 명은 웃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곤란한 질문을 받고 싶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우중충한 나날 속에서도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고 싶다. 내가 아둥바둥한들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늪 같은 일상이지만, 햇볕을 향해 몸을 트는 정도의 노력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가 던져준 곤란한 질문에는 아직 쉽게 'YES'라고 답하지 못 했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이대로 살다가는 '일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평생 노는 거 아니야? 그만 NO하고 싶다. 그 동안 버티던 '돈 벌이'를 할까?

 

이런 저런 걱정이 들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영화를 보니 일이 절실하게 하고 싶어졌다. 몸으로 하는 일을 많이 해왔던 터라 일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다. 사지도 멀쩡하고, 군대에서도 삽질 만큼은 엘리트였다. 노동력은 타고 났다. 나도 나의 아버지도 아버지 형제들도 할아버지도 모두 몸으로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뼈대 있는 집안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지금까지 하던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기회 비용이었다. 일년 반 동안 거의 매일 책을 읽거나 글을 썼고. 매일 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재미있는 글을 쓸 것인가를 고민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충분히 표현 해보지 못 했다.

 

나는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고,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 그러나 공부에는 여러가지 비용이 든다. 글 쓰기를 배우기 위해 썼던 2년간의 등록금도 아직 글로 뽑지 못 했다. 먼저 배운 것으로 밥 벌이 하는 법을 배우지 못 했는데, 벌써 다음 공부에 투자할 수는 없었다. 글로 돈을 벌고 싶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

 

올해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어 해맞이를 갔다. 일출을 보는 것은 물론 난생처음이다. 소원은 단 두 글자다. '한. 권.' 내 이름이 박힌 책 '한 권'이 목표다. '한 권'이라는 첫번째 목표를 이루기 전에는 어느 쪽으로든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마음 속으로 'YES'를 외치며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헤드라이트는 어두움을 뚫고, 체육복 바지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헤치며 스쿠터는 달렸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산 중 응봉산이 경치가 좋아서 찜해 뒀다. 입구에서부터 해병대 전우회가 안내를 하고 있었다. 설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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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가는 길, 위험.응봉산입니다. ⓒ 정갑선

 

뭔가 위험해 보였다. 행사가 있던 없던, 나는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 이어폰을 꽂았다. 팔각정에 오르자, 만원이었다. 이런, 이곳은 성동구의 명소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는 행사인 줄 몰랐다. 차라리 남산이나 아차산으로 갈 걸.

 

어깨를 부딪혀야 할 만큼 비좁았다. 더군다나 팔각정은 오르지도 못 하게 통제했다. 마침 좋은 자리가 비어있어서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늦게 온 등 뒤의 사람들이 자꾸 밀어댔다. 그런 류의 스킨십은 나를 괴롭게, 또 외롭게 했다. 아무리 인간이 많은들, 수 없이 옷깃을 스친들 내 인연은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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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어둡다. 삐딱하다. ⓒ 정갑선


만나뵙기 어려운 구청장님, 여기서 만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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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님은 먼 곳에'너무멀어서 사진이 잘 안 나왔다. ⓒ 정갑선

 

행사장이 시끄러워 뒤를 돌아봤다. 이호조 성동구청장님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소개됐고, 아마도 김동성 의원, 진수희 의원이 왔던 듯. 그러나 나는 관심이 없어 꽂힌 이어폰을 뽑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무관하다. 구청장'님은 먼 곳에' 계셨다.

 

그가 구청장님인들 구청에서나 구청장님일 뿐 사실 내가 해를 보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가 마이크로 연설을 하느라 소중한 내 감상 시간을 방해할 권한은 없다. 다만 내가 장소를 잘 못 선택했고,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이미 늦었고, 나는 꼭 해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공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불편하다. 불편하지만 이런 불편한 공존이야말로 나의 2008년이었다.

 

이제는 무관하지만 솔직히 간절하게 구청장을 만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 보다 청순했었다.

 

나는 왕십리 곱창골목 옆에 사는데, 그 일대가 서울시 뉴타운 1차로 지정됐다. 그렇다는 것은 내 집에 내가 살고싶어도, 살 수가 없다는 얘기인데, 삶의 터전이 없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매일 밤 잠을 못 잤다. 머리카락도 샜다. 얼굴은 팍팍해져 갔다. 뉴타운 문제 해결을 위해 청춘의 1년을 쫒아 다녔고 그때 영육이 삭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잃을 순 없어서 1년 쯤 되자 그 진창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우리 가족은 재개발 사업에서 나오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러지 못 했다. 뉴타운 사업은 불공평하게 진행 됐다. 구청장님에게 탄원을 하면 희망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구청장 면담을 신청하러 갔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순진했다.

(MBC <뉴스후> - 돈 없는 자(者) '서울'을 떠나라?)

 

보통 구민들은 구청장에 무관심하지만, 구청장이 갖고 있는 결정권은 보통이 아니다. 구청장은 뉴타운 재개발 사업의 인가권자다. 이런 대규모 사업의 실재 인가권자가 겨우 구청장이라는 사실은 나도 이번일을 겪으면서 처음 알았다. 님은 먼 곳에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구청장은 선출직이기 때문에 구민에게 선택받은 사람이다. 선택은 우리가 해서 뽑지만 일단 뽑힌 다음에는 어떤 선택권도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한 번 결재하면 취  안된다. 선거와 투표의 소중함도 배울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투표 하시기 전에 생각을 좀 더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다. 투표 용지가 비수가 되어 돌아오면 이미 늦다. 결국 구청장님은 만날 수 없었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뉴타운은 대다수가 원하는 사업!

 

뉴타운 사업 진행과정 중에 의문점을 제시하거나, 절차상의 하자를 지적하면 때때로 "조합원 '대다수'가 원하므로" 그대로 진행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숫자는 공개된 적이 없다. 숫자 논리에 숫자가 없다. 인가가 났다. 어쨌거나 나와 성동구민들은 오늘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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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강남은 강남이요, 성동은 성동이요. ⓒ 정갑선

 

강남쪽 하늘을 바라보는 성동구민들, 성동구의 해는 강남쪽에서 떠오른다. 이제나 저제나 추위에 떨며 강남의 아파트 사이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아파트를 원하고 누군가는 쫒겨나간다. 대다수는 아파트를 원하지만 대다수는 '원주민'이 아니다.

 

아파트에 대한 동상이몽.

 

여기 모인 구민들 모두 각자의 꿈을 꾸고 있겠지? 수능시험을 잘 봐서 명문대 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업의 번창이나. 가정의 평화와 건강.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도 있을 것이고, 결혼을 다짐하는 연인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꿈과 소원 혹은 목표들이 적어도 참가자 머릿수 만큼은 있을 것이다.

 

태양이 떠올랐다. 드디어. 서기 2009년이다. 음메~ 소의 해가 시작 됐다. 이어폰 음악 위, 아래로 환호성이 들렸다. 귓가의 음악은 샌드위치가 되어 일그러졌다. 환호성 소리에 나는 꿈에서 깼다. 태양은 폭등했다. 나는 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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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시작음메~ ⓒ 정갑선

 

그때 기다렸다는듯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됐다. 매사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이럴 줄 알고 예비 배터리도 준비했다. 배터리를 꺼냈다. 손이 얼어서 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인생의 난관을 푸는 것 보다는 쉽게 풀렸다.

 

태양은 어쨌든 제 길을 간다. 오늘 못 찍으면 내일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태양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새 해의 태양을 바라보며, 바르르 떨며. 소원 빌랴, 배터리 갈랴, 정신이 없다. 정신 없는 와중에도 속으로 외쳐본다.

 

'한 권' 

 

2시간을 기다리고, 채 5분을 감상하지 못한 채 응봉산을 내려왔다. 무릎이 얼었다. 이렇게 추운 것인 줄 알았더라면 두꺼운 바지를 입을 걸 그랬다. 군복무 시절 연골 연화증을 앓았던 무릎에서 겨울 신호가 왔다. 뻐걱뻐걱. 나는 지난 밤 꿈을 잊지 않으려 중얼중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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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뜬대요.오늘 철수~ ⓒ 정갑선

 

덧붙이는 글 |


2009.01.01 16:3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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