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은 민주정부 10년의 최대 수혜자"

[인터뷰] 하태준 HID 유족동지회장... "국가유공자 단체 정치적 중립지켜야"

등록 2009.01.08 23:15수정 2009.01.0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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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준 HID 유족동지회장. 하 회장은 국가보훈처가 특수임무수행자회에게 수익사업을 허용한 걸 강하게 비판했다. ⓒ 박상규


"특수부대 나왔다고 국가유공자? 그럼 일반 군대보다 훈련 강도가 높은 해병대나 공수부대 출신들도 국가유공자로 해줘야 할 것 아닌가."

하태준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유족동지회(이하 유족동지회)' 회장은 쓴 웃음을 지었다. 북파 공작 임무를 담당하는 후배 HID 대원들이 미워서가 아니다. 하 회장은 국가보훈처가 행하는 국가유공자 예우에 일종의 야유를 보낸 것이다.

북파공작원 단체가 시끄럽다. 8일 오후에는 유족동지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유공자증서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44년 동안 부친의 생사를 모르다가 어느날 갑자기 북에서 사망했다는 통지서를 받은 딸은 억울하다며 울었다. 이들은 국가보훈처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민간인 북파공작원 유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유족동지회는 지난 2006년 5월 보훈처로부터 사단법인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다. 북파공작원 단체 중 국가유공자 단체로서 첫 인정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보훈처는 2008년 1월 다시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특임자회)'를 공법단체로 인정했다. 특임자회는 특수부대원 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직이다.

즉 보훈처는 실제로 북파돼 공작을 펼치다 사망한 사람들 대신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을 국가유공자 단체로 인정한 것이다. 특임자회는 그동안 서울 거리에서 '가스통 시위'를 벌이고, 진보신당 당사에 난입해 당원들을 폭행하는 등 크고 작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하지만 특임자회는 내년에만 국민세금 9억원을 넘게 지원받는다. 게다가 국회는 8일 '특수임무수행자 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 통과로 특임자회는 앞으로 수익사업을 벌여 막대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하 회장은 "결국 보훈처가 힘의 논리에 밀렸다"며 "국가유공자 단체가 돈벌이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하 회장은 특임자회와 고엽제전우회 등의 폭력성 집회 참여에 대해 "종종 정치 집회에 나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집단과 사람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며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몰아가나, 국가유공자 단체가 정치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하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연말과 8일 이뤄졌다. 아래는 하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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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준 HID 유족동지회장이 희생된 북파공작원들에게 향불을 피워 올리고 있다. ⓒ 박상규


- 국가보훈처에서는 북파공작원 단체가 난립돼 있다며 통합을 주문하고 있다.
"보훈처에 등록된 국가유공자 단체는 생존자, 유족회, 그리고 상이자 모임이 모두 분리돼 있다. 4.19유족회·4.19공로자회 등처럼. 즉 산 자, 죽은 자, 다친 자의 공헌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유독 북파공작원 단체에만 통합을 주문하나. 유족들의 특수성을 인정해 자체 운영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 통합은 어렵다."

- 그러면 북파공작원 유족회 회원들이 꼭 유공자 단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까지 약 8000여 가까운 북파공작원들이 북파됐다가 사망했다. 유가족들은 자기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40~50년 찾아 헤맸다.

또 국가는 북파된 공작원이 생포된 뒤 재교육받고 다시 한국으로 올까봐 가족들을 사찰했다. 가족들은 사람들 눈을 피해 계속 이사를 다녔다. 최근까지 공직에도 나갈 수 없었고, 80년대 중동 취업 붐이 일었을 때도 해외에 나갈 수 없었다. 이들을 국가가 위로해주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특수임무수행자회는 본인들이 국가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기 때문에 국가유공자 단체로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혹독한 훈련으로 고생을 하고 희생을 한 건 인정한다. 그런데 더 심한 훈련을 받았으니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 그럼 일반 군대보다 훈련 강도가 높은 해병대나 공수부대원들도 국가유공자로 해줘야 할 것 아닌가.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 특수임무수행자회·고엽제전우회 등 군대·전쟁과 관련 있는 유공자 단체는 극우적인 행동을 많이 했다.
"정치 집회에 종종 나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집단과 사람을 '빨갱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왜 그렇게 몰아가나. 국가유공자 단체가 정치적으로 흐르면 안 된다. 유공자단체는 정치 활동이 금지돼있다.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다. 단체 의사와 개인 의사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내 생각과 안 맞는다고 상대방을 '빨갱이'라고 하면 안 된다."

- 올해 국가유공자 단체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집회도 도마 위에 자주 올랐다.
"지난 6월 5일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시청 앞 서울광장 추모제는 우리에게도 충격이었다. 북파공작원 희생자 8000명을 추모하려 했다면, 판교 추모탑에 가서 하던가. 종이에 인쇄한 위패를 땅에 놓고…. 게다가 유족 동의도 받지 않았다. 국민 여론을 등지면 다 죽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단체에 이제 수익사업마저 보장해주려 한다. 어느 단체든 집회 시위에서 불법 행위를 하면 국가 보조금을 중단한다더니, 정부와 한나라당은 앞뒤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 정치 집회에 나서는 단체들이 결국 친 정부 활동을 한다는 지적이 많다.
"북파공작원과 고엽제전우회 보상은 모두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이뤄졌다. 그들이야말로 민주정부 10년의 최대 수혜조직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군 출신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에 줄을 섰다.

계속 강조하지만 국가유공자 단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권력에 줄을 서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이득을 볼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럼 정권이 바뀌면 죽을 건가. 지금 정부가 진보 시민단체 죽이기를 하는데, 권력 바뀌면 그 땐 보수단체가 죽어야 하나. 그런 식으로 가지 말자.

중학생인 내 딸이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라며 이런 말을 하더라. 강만수가 그만 두면 주식 300포인트 올라가고,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나면 3000포인트 올라간다고. 이런 상황인데, 현 정부와 보수단체는 역사교과서 등 쓸데없는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다."

- 그래도 일부 유공자단체의 정치 편향성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이젠 이념의 문제가 아닌, 합리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시대다. 대화와 토론,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여론을 얻지 못하면 뭐든지 성공하기 어렵다. 얼마 전 뉴라이트 후원행사에 몇몇 사람들이 군복을 입고 참석했더라. 6·25 추모 행사면 모를까 왜 군복을 입고 시위를 하나. 그들이 지금 군인인가? 제발 시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갔으면 한다.

- 특수임무수행자회에게 수익 사업을 보장하는 법안이 지금 국회에 올라가 있다. (이 법률은 8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가는 이미 유공자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사무실 운영비와 목적 사업에 맞는 걸 지원해준다. 그런데 또 돈벌이를 하게 해준다? 유공자단체가 사업가는 아니지 않나. 국가에서 하는 공익사업을 위탁받아 하면 모를까 직접적인 사업 참여는 옳지 못하다.

결국 힘과 돈의 논리에 국가가 밀렸다고 본다. 보훈처는 내년에 특수임무수행자회에 9억 5200만원을 지원해줄 계획을 갖고 있다. 부족하면 추가 예산을 편성해주면 될 것 아닌가. 수익사업으로 회원들의 복지 증진? 과연 이익이 회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갈지 의문이다."

- 법안을 제출한 보훈처로서는 유공자 단체를 돕고 싶지 않겠나.
"보훈처는 국가를 위해 희생된 사람을 보고 보호·예우하는 곳이다. 그 취지에 맞게, 그리고 법과 원칙에 맞게 활동하면 된다. 지금 국민들이 국가 유공자단체를 알아주기나 하나. 그것은 보훈처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다. 유공자 단체는 잘못을 저질러도 봐줘야 한다? 그건 아니다. 불법을 묵인하는 건 국가의 자세가 아니다."

- 국가보훈처는 2007년도에 유족회 쪽에 5000만원을 지원해줬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는데.
"국가보훈처에 소송을 걸 계획이다. 특수임무수행자회는 2008년 1월에 창립됐는데, 이들이 그 전에 무슨 추모 사업을 했나. 보훈처가 어떤 명분으로 누구에게 국민 세금을 지원했고, 왜 우리 이름을 걸고 들어갔는지 소송을 통해 확인해 볼 생각이다. 보훈처가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고 본다. 결국 국가가 무력, 즉 '힘'의 논리에 밀렸다고 본다." 
#북파공작원 #특수임무수행자회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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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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