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패배하지 않는다

등록 2009.01.14 15:59수정 2009.01.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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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는 감옥 생활을 하면서 쓴 봉합엽서로 바깥 세상과 교감했다. 그 봉합엽서를 모아 만든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봉합엽서는 '검열' 대상이었는데 “검열보다 더 강도 높은 자기검열”을 통과해야 했다고 말했다.

 

'자기검열'는 영원히 사라져야 할 단어였지만 부활하고 있다. 권력이 행하는 검열에 저항하면 빛이라도 발하지만, 자기검열은 스스로 가하는 사상 통제이므로 저항 자체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자기 사상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며, 국가는 민주국가아니다. 독재국가와 민주국가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시민이 스스로 말할 권리를 가졌는가에 달려있다.

 

권력 세습제였던 조선시대도 말할 권리는 막지 않았다. 물론 그 말할 권리는 양반들에게 해당하지만 그들은 왕과 대면하면서 왕이 잘못되었을 때 과감히 비판했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이 같으므로, 하늘의 이치가 사람에게 유행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임금과 백성은 근본이 같으므로, 임금의 다스리는 도가 백성에게 적용되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인들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여기고, 수많은 백성을 하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이치를 잘 관찰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치를 가지고 하늘과 땅을 관찰했기 때문에, 천지와 같은 뜻을 지닐 수 있었고, 신령하고 밝은 덕에 통달할 수 있었습니다. (<책문> 김태완, 소나무, 132쪽)

 

임금이 잘못되었으니 바른 글로 가라는 말이다. 하늘과 사람은 근본이 같으니 임금도 사람이고, 백성도 사람이니 백성과 임금의 근본이 같다고 했다.  임금이 신하에게 물었을 때 신하는 임금이 듣기 좋은 답을 하지 않았다. 임금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답이 아니라 지금 행하는 임금의 정치가 잘못되었으니 틀렸다고 말했다.

 

봉건왕조 조선도 임금이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았는데 2009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정권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과서를 막무가내로 수정한다. 인터넷에 '00공문'이라는 글 한 번 올렸다고 군사독재 정권에 만들어진 '전기통신기본법'으로 잡아간다.

 

경찰은 불심검문을 불응하면 '경범죄'로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2004년 3월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고, 2008년 12월 야당 외통위 상임위원들 출입을 봉쇄했던 한나라당은 '국회폭력방지법'을 만들겠다고 한다.

 

자기들은 마음대로 했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말하는 권리를 빼앗낀 일이 있는가? 쉴 새 없이 '좌파정권' '친북정권'이라 했다. 심심하면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정부를 비판했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모여 집회해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와 농민들 집회가 불법으로 더 탄압받았다. 누리꾼들은 통제받지 않고, 대통령과 비판할 수 있었다. 이 비판을 이 정권은 막고, 막겠다고 한다. 하지 말라고 한다. 한 두명 처벌하여 누리꾼들과 논객들이 자기검열로 빠져들게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떠나고 있다. 1년 전만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시민은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말할 수밖에 없다. 자기검열이라는 비참함을 견딜 수 없으니 말하는 자로 다시 돌아온다.

 

민주시민은 말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침묵하지만,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말하게 된다. 그때 감시와 통제, 처벌로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정치권력은 민주시민에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독재는 결코 민주주의를 이길 수 없다. 자기검열이 지금 우리를 비참하게 하지만 우리가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2009.01.14 15:59 ⓒ 2009 OhmyNews
#자기검열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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