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 니가 강한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편지]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등록 2009.01.14 18:07수정 2009.01.14 18: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전기치료중인 아이 바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매일 일과처럼 재활치료를 받는다. 다리에 전극패드를 붙이고 전기치료 중인 아이 ⓒ 이은희

사랑하는 내 아이.


너와 함께 한 시간이 벌써 2년이라니…. 너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쩜 지루했을지도 모를, 매일매일이 같은 하루처럼 여겨졌을 시간들이 이 엄마에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적이 없는, 또 한 순간도 즐겁지 않은 적이 없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오늘(14일)이 제 생일인지도 모른 채 평소처럼 아빠와 함께 치료를 위해 서울 가는 길에 나서는 너를 데려다 주고 오면서 아침에 눈뜨자 마자 서둘러 끓인 미역국을 한 숟갈도 입에 넣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잠깐 자책했단다. 엄마는 늘 그렇지.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에도 식사준비 중에 서두르며 허둥대다 그릇을 떨어뜨려 그릇도 깨고 안에 담긴 음식도 흘려서 치우는데 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었지.

유난히 말이 빠른 우리 아들한테 제발 덜렁대지 말라는 잔소리 들을 때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아빠한테 담배 피지 말라며 한마디씩 하는 네 모습을 보니 말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엄마는 너를 만나면서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특별하고도 새로운 도전에 부딪혔단다.

태어나자마자 일주일만에 세균성 뇌수막염이라는 무서운 병을 만나 몹시도 가슴아팠던 일, 한달 후부터 무서운 기세로 토하는 너를 안고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는데, "신장에 또다른 기형이 있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듣고 상심했던 일, 4개월이 지난 후 더이상 자라지 않고 몸무게가 줄어들어 확인해보니 발달지체 상태였던 데다 태어나서 앓았던 병으로 인해 장애를 안고 커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나마 절망했던 일까지. 불편한 몸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해내는 배변도 힘들고 잠자는 일도 힘든 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너를 부여잡고 절규했던 수많은 나날들….


a

백일을 맞은 아이 보통의 아기라면 뒤집기를 시작하는 백일 즈음, 뒤집지도 못하고 마구 토하는 병증 때문에 경사가 있는 요람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던 아이 ⓒ 이은희


그렇지만 이제 매 순간 느꼈던 어려움들은 모두 망각의 강 저편으로 건너갔나 보다. 비록 여전히 몸은 불편하지만 너무 똘망똘망하고 예쁘게 자라는 너를 보면서 엄마가 얻는 기쁨은 정말이지 그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구나.

또 장애를 가진 너로 인해 엄마가 겪어야 하는 질곡 또한 언젠가부터 엄마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도전으로 생각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같은 일상이랄까. 주변의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엄마는 훨씬 씩씩하거든.

오히려 너로 인해 엄마와 아빠는 새롭게 배워가는 것이 더 많다. 기존 사고를 고수하는 기성세대로의 편입을 앞두고 오히려 배우는 게 많으니 너한테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겠니.

이제 또 한명의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구나. 엄마가 걱정하는 것은 동생의 존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네가 받게될 상처인데, 지금은 네가 동생의 존재를 엄마의 튀어나온 배꼽 언저리 어딘가로 인식하고 때론 뽀뽀도 해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갓난아이의 실체를 보고 엄마와 항상 같이 붙어있는 모습을 보며 지나친 상처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다. 엄마와 아빠도 네가 상처받지 않도록 애쓸께.

a

불가능한 경사로 다리를 사용하지 못해 경사로를 올라야 할 때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속상한 아이 ⓒ 이은희


아들아. 엄마는 네가 몸도 마음도 약한 아이로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갖게 될 신체적 장애를 아무렇지 않은 듯 극복하고, 그 과정에서 받게될 마음의 상처까지도 너를 단단하게 만드는 동기로 승화시키길 바란다. 또 그럴 수 있을거라 믿는다.

또한 아들아. 엄마는 네가 너의 장애를 이용하는 아이로 자라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때론 그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핸디캡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어둡고 성숙되지 않은 모습을 목격하는 듯해서 조금은 가슴이 아프단다. 그렇지 않도록 사회가 보다 성숙되어야 하겠지만 너의 핸디캡을 이용하지 않고도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는 능력과 배포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또 그럴 거라 믿는다.

너의 생일에,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니 엄마가 조금은 감상적이 되었구나. 이제는 엄마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보다도 네 생일을 맞이하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꼭 지금처럼만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주길… 내 사랑하는 아들아.
#생일 #장애아동 #사회적 소수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