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1년에 새해가 두 번씩이나 와요?"

설날 새해 덕담 때문에 벌어진 신정과 구정, 설에 대한 토론

등록 2009.01.27 14:35수정 2009.01.28 09:5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차례를 지내는 가족들 ⓒ 이승철

차례를 지내는 가족들 ⓒ 이승철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 거라."

"네, 할아버지, 그런데 왜 1년에 새해가 두 번씩이나 와요?"

"???"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설날 아침 큰집에 가서 큰형님의 손자손녀들에게서 세배를 받고 덕담을 건넸는데 한 아이가 불쑥 던진 질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1월 1일에도 엄마아빠랑 어른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셨는데, 설날도 같은 말을 들으니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새해라니, 아이로서는 의문을 가질 만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가족이 얼른 말을 받았습니다.

 

"응 그건, 1월 1일은 신정이고 오늘은 구정이어서 그런 거야."

"신정은 뭐고 구정은 뭐예요?"

 

그러나 아이가 신정과 구정을 구별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을 것입니다.

 

"신정은 양력설을 말하는 것이고 구정은 음력설을 말하는 거야. 오늘이 바로 음력설이지."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표정입니다. 양력설과 음력설도 아이에게는 여전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가 던진 질문 때문에 가족들 끼리 새해와 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은 이제 없어진 이름 아닌가요? 신정구정은 오래전 이중과세라 하여 우리 고유의 설을 명절로 쇠지 못하게 했을 때 생긴 말로 신정에 반대되는 말로도 사용되었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신정만이 바른 새해의 첫날로 낡은 제도, 또는 폐기해야 하는 음력설이라는 의미로 구정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제 기억으로는 신정을 쇠게 하면서 이제는 쇠지 않고 버려진 옛것이라는, 설을 비하하는 의미로 구정이라는 말을 썼을 겁니다."

 

가족들 몇이 옛 기억을 더듬어가며 신정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구정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설을 낡고 버려야 할 구습으로 격하시켜 구정이라 불렀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야기는 어느새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신정과 구정이라는 말은 자유당 정권 때인가 군사정권 때였던가, 아무튼 꽤 오래전에 이중과세의 폐단을 막겠다는 이유로 우리 전통 명절인 설을 쇠지 못하게 하려고, 신정만이 새해의 첫날이라는 것을 강권하면서 상대적인 개념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이 또 다른 사람의 주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설이 우리의 전통명절로 자리 잡은 지금은 오히려 구정이라는 이름 자체가 폐기된 이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1월 1일은 새해의 첫날이고, 설은 구정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전통명절이라는 것입니다. 명실공이 우리 전통명절로 자리 잡은 설을 구정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설날 덕담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도 잘 못된 말이네요?"

"굳이 그렇지는 않다고 봐요. 설은 우리 고유의 전통명절이지만 음력으로는 분명히 새해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설날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도 괜찮다는 말이네요?"

 

결국 결론은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이름은 이미 사용 가치를 상실한 이름이며 새해와 설날로 부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양력 정초와 음력 정초에 모두 같이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지요.

 

"하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은 언제 어느 때, 또 아무리 많이 들어도 듣기 싫은 말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양력 정초에 하고 설에 또 한다고 해도 결코 듣기 싫어 할 사람 없겠네요, 하하하."

 

a

우리 전통명절에 많이 입는 예쁜 한복들 ⓒ 이승철

우리 전통명절에 많이 입는 예쁜 한복들 ⓒ 이승철

우리 전통명절인 설을 이중과세라고 하는 시비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1894년 갑오경장 당시 개혁과제의 하나로 1896년부터 양력을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새로 채택한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고, 묵은 달력에 의한 음력 정월 초하루를 구정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전해 내려온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고 소위 개화사상에 의한 양력설은 오랑캐의 명절이라는 관념은 우리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1910년 일제에게 국권을 상실하면서 '양력설을 쇠면 친일매국, 음력설을 쇠면 반일애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뿌리 깊은 의식으로 전통을 아끼는 사람들은 음력설을 고집하게 되었고, 일제는 강압적으로 양력설을 쇠도록 이중과세를 막는 정책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이 된 이후에도 자유당 정부와 군사정부가 경제부흥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노는 날을 줄이고 낭비를 억제해야 한다며 이중과세란 말을 계속 쓰게 되었습니다,

 

달력에서도 설날이란 이름이 사라졌던 시기가 꽤 길었습니다. 그 후 구정은 1985년 5공 정부에 의해 '민속의 날'이란 어정쩡한 이름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다가 1989년 경제사정이 좋아지자 다시 설날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경제적인 불황 속에서 맞은 이번 설에도 전국의 고속도로는 엄청나게 늘어난 교통량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전통명절 '설'이 갖는 의미가 크고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음력 1월 1일은 구정이 아니고 '설'입니다.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09.01.27 14:35 ⓒ 2009 OhmyNews
#설 #구정 #신정 #이승철 #전통명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 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2. 2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5. 5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