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한 번 덜하면, 이 땅을 살릴 수 있다"

[바른농사 착한밥상 ①] 대한민국 유기농 선구자, 강대인 전남 친환경농업인 연합회장

등록 2009.01.31 14:52수정 2009.01.3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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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지 않고 먹을거리를 만드니 '바른 농사'다. 바른 농산물에 제값으로 고마움을 표하니 또한 '착한 밥상'이다. 이렇듯 순리로 따지자면, 도시민과 농민이 상생하는 길은 멀지 않다. 헌데 그놈의 돈이 '웬수'다. 유통 거품, 그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도 상당하다. 친환경마크를 믿지 못하겠다는 도시인, '눈'으로 먹는 소비자가 안타깝다는 농민. 연중기획으로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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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의 선구자로 불리는 강대인씨 ⓒ 이정환


평생 농사밖에 몰랐던 아버지가 토해낸 피가 논바닥에 흥건했다. 한 번 쓰러진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청년은 그렇게 갑자기 가업을 이어받았다. 아버지를 앗아간 제초제나 농약이 두려웠고, 또 아버지처럼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번이나 벼농사를 망쳐가면서도, 아들은 유기농만을 고집했다. 생명을 죽이지 않고, 생명을 지키는 쌀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농민 강대인(58)씨. 알음알음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여 년 동안 한사코 유기농만을 고집한 사람, 국내에서는 최초로 유기재배(쌀) 품질인증을 획득한 유기농법의 선두주자.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터전을 일군 정농회 회장을 역임한 '바른 농사'를 삶으로 대변하는 인물.

그를 통해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의 의미를 정리하고 싶었다. 지난 20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역 앞에서 강씨를 만난 이유다. 차에 올라타자 구수한 농부 냄새가 훅 끼쳤다. (사)전남친환경농업인연합회장, 보성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한빛유기영농조합법인 대표, 그의 명함에서는 분주한 일상이 엿보였다.

아버지를 잃고 '정농'에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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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인씨 ⓒ 이정환

강씨는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전북 익산시 농업기술센터로 가야 한다고 했다. 자칫 시간을 지체하기라도 하면, 유기농 교육을 받으러 온 농민들을 기다리게 만들 판이었다. 그의 평생이 녹아 있는 농장 '우리원'으로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 또한 거침이 없었다.

"대구 수돗물에서 다이옥산이 나와서 한참 시끄럽잖아요. 저는 제초제 영향도 있다고 봐요. 물이 어디서 나옵니까. 땅에서 나오잖아요. 결국 얼마나 땅이 살아 있느냐의 문제지요. 무엇보다 땅이 살아나야 해요."

외모만큼이나 '도사' 같은 풍모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일단 대화 주제를 '인간사'로 돌려봤다. 비극적인 이야기였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의 아버지 이야기였다. 생명의 쌀을 태어나게 만든 '죽음'이었으니, 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 죄송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쉬흔 넷, 저는 스물 여섯이었어요. 말도 못하게 충격이 심했죠. 워낙 갑자기 돌아가셔서 할 수 없이 농사를 맡았어요. 형제 중에는 당장 제가 맡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거든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나중에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돌아가셨는지 알게 되고, 그때 또 충격이 컸었습니다.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이 그렇게 된 것과는 또 다르잖아요. 내가 직접 당한 거니까요."

"바른 농사는 살생이 아니라 상생의 농법"

그렇게 '정농회'는 강씨에게 숙명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명의 농사로 실천하는 농민 30명'으로 1976년 출발한 모임. 이곳을 통해 아버지를 앗아간 제초제 '이사디(2,4-D)'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게 됐고, 그만큼 "농약을 쓰지 않는 농사에 대한 신념과 확신은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친환경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만 해도 정부에서는 반대했어요. 증산 정책에 역행한다고 말이죠. 회의할 때마다 정보계 형사들이 감시하고 그랬습니다. 바른 농사를 짓자, 그래야 산다는 것인데."

- 친환경, 유기농이란 말보다 '바른 농사'란 말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바른 농사란 무엇일까요.
"살생의 농법이 아니라, 상생의 농법이죠. 일본에서는 농약이 아니라 '농독'이라고 부릅니다. 헌데 우린 '약'으로 포장하고 쓰니, 나도 죽고 이웃도 죽는 거지요. 농약을 쓰면 살아있는 생물도 죽고 미생물도 죽습니다. 곧 땅이 죽는 겁니다. (농약을) 쓰지 않으면 땅이 살아납니다. 그런 땅에서 나오니 생명 있는 농산물이 될 수밖에 없죠. 생명의 쌀이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농산물이 살아있다는 것이죠."

- 농산물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GMO 농산물 이거 얼마나 무서운 겁니까. 식물성 종자에 동물성 성장 인자를 넣어 만든 것도 있잖아요. 이건 생명을 죽이는 겁니다. 유기농산물은 생명을 지켜주죠. 자체가 면역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내가 오래 살 수 있는 먹을거리, 그런 먹을거리로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차린 밥상이 바로 착한 밥상이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나온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 우리 조상님들이 그렇게 했던 것이죠. 하루 세끼가 불사약, 반찬이 불로초란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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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을 둘러보는 강대인씨 ⓒ wooriwon.co.kr


"백리 밖 음식 먹지 말라 했는데, 눈 녹은 물까지 사다 먹으니"

애초 있던 길을 에둘러 가는 꼴이다. 친환경이니, 녹색혁명이니, 다 뻔히 보이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이야기들인지도 모른다. 다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는 세상이라서 나온 말들이다.

"최근 전라남도가 '농도'로서 활성화되는 것 같아요. 좋은 일이죠. 처음 도에서 자문을 부탁했을 때, 우선 학교 급식부터 친환경으로 하자 그랬어요. 그 다음에는 병원 급식, 또 그 다음에는 군대급식으로 가자고 말이죠. 아직까지는 잘 가고 있다고 봐요. 제초제만 안 써도 그게 어디입니까. 이런 식으로 친환경농업이 널리 퍼지는 거야 좋죠. 다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 돈벌이로 부각하는 것은 안타까워요."

- 농민은 조금이라도 더 제값을 받고,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더 싸게 구입하려면, 역시 유통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는데요.
"직거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요. 다들 나름대로 노력들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보다 큰 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 도를 대표하는 대형 친환경농산물 공판장 같은 것을 한 번 모색해보면 어떨까요."

결국은 신뢰의 문제다. 허나 현실적으로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이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질 수 있는 '묘약'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예로부터 백 리 밖에서 난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어요. 다 이유가 있지요. 지역에 따라 생명의 특성 또한 제각각이기 마련이니, 몸에 좋고 나쁜 것도 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지금 외국에서도 로컬 푸드 운동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헌데 수천, 수 만리 떨어진 곳에서 난 농산물을 먹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턱없이 부족해요. 심지어 눈 녹은 물까지 사다 먹는 판 아닙니까."

"외식 한 번 덜하면, 이 땅을 살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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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인씨 ⓒ 이정환

- 소비자들에게 느끼는 안타까움도 적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소비자와 농민 사이에 신뢰를 확보시켜주는 행정이 아쉽죠. 이제까지 농민들 중심으로 해온 '현장 견학', 이런 걸 뛰어넘을 수 있는 역할에 정부가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먹는 농산물을 어디서 어떻게 생산하는가를 한 번 확인하려는 책임 의식이 소비자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봐요. 놀러 잘 가는 사람들이 정작 그런 곳은 왜 잘 안 가는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와서 확인해야 믿을 수 있지 않겠어요?"

친환경마크를 믿지 못하겠다는 도시인, '눈'으로 먹는 소비자가 안타깝다는 농민.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 사이의 심리적 간극은 아직 멀기만 하다. 우선 농민의 이야기부터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평생 농사밖에 몰랐던 아버지를 '농독'으로 잃고, '바른 농사'란 외길을 걷고 있는 강씨에게 거듭 되물은 것도 그래서였다.

-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17년 동안이나 제가 만든 농산물을 먹는 분이 있어요. 가족, 형제 같은 생각이 들죠. 이렇게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유대가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 저렇게 생산해주는 농민이 있구나, 또 내가 만든 농산물을 잘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구나, 그렇게 서로 든든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잘 이뤄져야 정말 우리 한국농업이 사는 겁니다. 외식할 때는 별로 비싸다는 말 안 하면서, 유기농산물은 비싸서 못 사먹겠다는 분도 있을 겁니다. 외식 한 번 덜하면 유기농산물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을 살린다는 것, 이 땅이 바로 나란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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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원씨가 2005년 자신의 농법을 정리해 펴낸 '유기농 벼농사' ⓒ kyobobook.co.kr

강대인씨가 유기농법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유는 최초로 유기재배(쌀) 품질인증을 획득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옛 농서를 공부하며 땅심을 키우고 벼를 튼튼하게 자라나는 방법을 독학했고, 전국은 물론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기농법을 공부해 오리 농법, 우렁이 농법 등을 일찌감치 도입한 이력을 갖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벼를 벤 즉시 논을 갈아엎고 쌀겨를 뿌리는 쌀겨 농법을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볏짚, 부산물, 자운영 등 녹비작물, 숯 등을 논에 넣어 땅심과 논두덕을 높이고, 겨울철 담수 등을 통해 토양기반을 건강하게 조성하고 현미식초, 백초액, 목초액 등을 살포해서 도열병과 문고병을 방제하는 농법도 실천하고 있다. 현미식초, 마늘유, 소주를 혼합해 벼멸구를 방제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유기농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땅의 생명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강씨는 땅의 기운에 따라 파종이나 수확을 하는 농법도 병행하고 있다. 조선시대 농법서인 <산림경제>와 땅의 활력에 따라 특별한 일정에 맞춰 재배하는 독일의 '바이오 다이내믹 농법'을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강씨는 '생명역동농법'이라 부른다.

그렇다고 강씨가 유기농법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빛영농조합법인(우리원, 홈페이지 wooriwon.co.kr)을 통해 숙박시설을 갖추고 현장 체험장을 운영한다. 한 달에 평균 3백명, 년 3천명 정도가 우리원을 다녀간다고 한다. 이런 체험을 통해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직거래 통로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생산 뿐 아니라 유통에도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유기농 #친환경 #강대인 #정농회 #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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