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미쯔비시 상대, 3일 손해배상 항소심 열려

일제 징용 피해자들 "가해자는 웃고 피해자는 울고…"

등록 2009.01.31 11:38수정 2009.01.3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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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쯔비시에 강제로 끌려간 일제 징용피해자들은 지난 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쯔비시중공업한국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쯔비시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 이국언


아리랑 3호 위성 발사 용역을 일본 최대 군수업체이자 전범기업인 미쯔비시가 수주한데 대한 국민 반감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오는 3일 부산고법에서는 미쯔비시 피폭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어서 또 다른 관심을 모은다.

2000년 5월 미쯔비시에 끌려갔다가 원폭 피해를 입게 된 이근목씨 외 5명의 징용 피해자들이 미쯔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이 손해배상 소송은 올해로 장장 9년째로, 피해국인 우리나라에서 전범기업을 상대로 최초로 제기된 재판이라는 점에서 일찍이 안팎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최근 아리랑 3호 위성 문제로 가뜩이나 상심해 있던 일제 피해자들로서는 특히 이번 부산고법 항소심 재판이 향후 대일 과거사 소송에 대한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어, 벌써부터 3일 부산 재판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 등 일제피해자들은 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쯔비시중공업 한국법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미쯔비시에 대한 규탄과 함께 3일 부산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요미우리 보도, 이명박 대통령이 해명해야"

이들은 최근 아리랑 3호 위성 발사 미쯔비시 수주 문제와 관련, “한마디로 가해자인 전범기업은 웃고 있고 일제 피해자들은 울고 있다”며 “지난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다로 총리가 한일정상회담을 갖는 시각, 일제 피해자들은 두 번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며 ‘아리랑 3호’ 용역업체 선정 문제를 집중 성토했다.

일제 피해자들은 “한국 쪽이 애초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이 대통령이 (사업자를) 교체했다”는 지난 13일자 요미우리 신문 보도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외교 미명 아래 전범기업 미쯔비시는 한국시장 진출에 더 없는 호기를 마련하게 됐다”며 “의혹을 풀 당사자는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밖에 없다”며 거듭 해명을 촉구했다.


"미쯔비시, 재판 도중 연락사무소 바꿔 재판 끌기도..."

특히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3일 부산고법 재판과 관련, “미쯔비시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였다”며 “심지어 재판 도중 연락사무소를 한국법인으로 바꿔, 송달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재판을 지지부진 끌어오기까지 했다”며 3일 예정된 부산고법 항소심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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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미쯔비시중공업한국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도중 13살 나이에 나고야로 끌려간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오른쪽)와 또 다른 일제 피해자(오른쪽)가 끝내 눈물을 쏟고 있고 있다. ⓒ 이국언


한편, 미쯔비시 피해자들의 경우 최근 안팎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 나고야 미쯔비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경우 지난해 11월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기각되고 말았고, 미쯔비시 피폭 징용피해자들의 경우 9년째 국내에서 재판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망은 ‘안개 속’이다. 해외 시장개척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던 미쯔비시가 해외 첫 상업위성인 ‘아리랑 3호’ 발사용역을 수주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미쯔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81. 광주) 할머니는 “13살에 나고야 미쯔비시 공장으로 끌려가 지금까지 보상은커녕 '몸 버린 여자'라는 손가락질만 당해왔다”며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것이 피해자들 신세인데,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길길이 날뛰고 돌아다니고 있는 판이다. 우리 정부는 도대체 뭐하느냐?”며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해방 64년, 입술도 말라붙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과 귀는 이제 오는 3일 부산 재판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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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끌고온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징용 영장을 교부하고 있는 모습 ⓒ 한국100년


2000년 5월 미쯔비시에 끌려갔다가 원폭 피해를 입게 된 이근목씨 외 5명의 징용 피해자들이 미쯔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이 재판은 장장 올해로 9년째다. 재판이 길어지는 그 사이 80대 고령의 원고 1명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개인청구권에 대한 소멸여부를 다투다, 지난 2002년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한 한일협정 문서공개 소송으로 확대되게 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한 이 재판은 이래저래 많은 사연을 남기기도 했다.

전쟁 피해국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기된 재판으로, 우리 사법부가 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부산지법 1심 재판부는 당시 일제의 피지배상태에 있던 우리나라에서 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일본에서 제기된 재판을 다시 한국법정에 제소했다 하더라도 중복제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판 관할권을 인정해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일제 강제동원 전범기업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벌써부터 재판 결과에 안팎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만약 승소한다면 60년이 넘도록 피해자를 외면해 왔던 일본의 전범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 문제해결에 큰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반면 패소한다면 더 이상 법치국가인 한국에서는 사죄와 배상을 언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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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기자회견을 마친 일제피해자 등이 서한 전달을 위해 미쯔비시중공업한국본사가 입주해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관계자들은 점심시간을 이유로 이미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 이국언


2000년 소송이 시작돼 2008년 1심 판결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개인 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한 다툼 때문이었다. 최근 대일과거사 관련 소송에서 잇따라 일본의 사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상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어, 이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판단은 어떤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이 때문에 재판 도중 별도로 1965년 당시 한일협정문서 공개소송이 벌어지는 곡절 끝에 2004년 우리정부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당시 문서를 40여년 만에 공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판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난해 2월 부산지법 1심 재판부는 재판의 핵심인 개인청구권 소멸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은 채 단지 소멸시효의 완성을 이유로 사건을 기각했다. 미쯔비시의 불법행위가 자행된 1944년~1945년, 또는 한일청구권협정이 체결된 1965년 6월 22일부터 10년의 시효가 경과했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것.

"그 동안 재판 안 하고 싶어 안했나"

이에 원고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부마저 이에 유사한 중국인 징용 노동자들의 재판에 대해 소멸시효와 제척기간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을 비춰보면, 일본 사법부의 판례도 못 따라가는 시대착오적 판단이라는 것. 인혁당 사건, 5.18광주민중항쟁 등 국내에서 이뤄진 과거청산의 예를 비춰서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부산 미쯔비시 피폭 징용재판 원고인 박재훈(64)씨는 “우리가 그 동안 재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한 것이냐”며 “한일협정 과정에서 우리 문제가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도 없던 상태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제 강제동원 #미쯔비시 #징용 #근로정신대 #한일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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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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