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침 놓다가 손가락 골절됐다고?

딸아이 예슬이의 시련...하이킥에 아빠 코뼈 두 동강 나고

등록 2009.02.02 13:52수정 2009.02.0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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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잡이 예슬이. 여자아이치고 노는 게 조금 격합니다. ⓒ 이돈삼

칼잡이 예슬이. 여자아이치고 노는 게 조금 격합니다. ⓒ 이돈삼

퇴원을 한 지 나흘 만에 또 병원에 들어앉았습니다. 병실 생활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헤어지면서 “병원에서는 그만 보고, 인연이 되면 밖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었는데, 며칠 만에 그것도 병원에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아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무슨 일로 다시 들어왔냐고?

 

저는 지난 1월 19일 신경외과를 통해 한 종합병원에 입원을 해서 내과, 이비인후과 진찰과 수술을 거쳐 30일 퇴원했습니다. 당연히 명절 연휴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몸 상태로 봐선 퇴원이 조금 이른 것 같았지만 손발이 멀쩡하기에 통원치료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퇴원을 한 것이었습니다.

 

퇴원을 가장 반겨준 이들은 아무래도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둘째아이 예슬이가 유난히 반겼습니다. 아빠가 없는 동안 너무나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밤에 잠을 재워주는 사람도 없고, 같이 재밌게 놀아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안쓰럽다는 생각에 “그래, 오늘밤에는 아빠가 재워 줄게”하고 잠자리에 같이 들었습니다.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잠을 재우려고 했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손을 꼭 잡고 놓아주질 않습니다. 잠이 든 것 같아서 팔을 빼려고 하면 금세 눈을 뜨고 빤히 쳐다봅니다. 아직 잠 안 들었다면서….

 

“술래놀이 해요, 반칙 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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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를 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예슬이. ⓒ 이돈삼

콩콩이를 타다가 잠시 쉬고 있는 예슬이. ⓒ 이돈삼

문제는 다음 날이었습니다. 병원에 들러 치료를 하고 점심때가 다 돼 사무실에 나갔습니다. 여러 날 출근을 못했기에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책상도 무사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퇴근을 위해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예슬이입니다.

 

“아빠! 언제 오세요?”

“응, 방금 출발했으니까. 한 시간쯤 뒤에 집에 도착할 거야.”

“아빠! 내가 안대 사놓았는데. 아빠랑 숨바꼭질하려고…. 조심히 오세요.”

 

한 30분쯤 지났을까요. 이번에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옵니다. 빨리 들어오라고, 들어오면 안대 끼고 숨바꼭질하자는 내용입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숨바꼭질이 하고 싶었으면 눈가리개까지 사놓고 기다릴까 싶었습니다.

 

입원하기 전만 해도 예슬이는 저랑 같이 숨바꼭질을 여러 번 했습니다. 집안에서 눈을 감은 채 술래놀이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슬이는 그때마다 실눈을 뜨고 다녔습니다. 눈 뜨고 다니면 반칙이라고 해도 안 떴다고 우겨대곤 했습니다. 눈을 감은 채 이 방 저 방 뛰어다니며 장애물을 모두 피해 다니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반칙을 일삼으면 예슬이랑 더 이상 술래잡기를 하지 않겠다고 몇 번 경고도 했었습니다. 예슬이에게 아빠의 그런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숨바꼭질을 하고 싶었는데 아빠가 그동안 없었고, 게다가 반칙을 일삼는다고 숨바꼭질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까지 놓았으니까요.

 

집에 들어가니 예슬이가 눈가리개를 들고 있다가 씌워줍니다. 신발도 벗기 전입니다. 원래 2000원짜리인데 학원 앞 문구점에서 1000원에 샀다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그러고선 진짜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1주일 넘게 미음만 먹어 기력이 없는데도 딸아이는 다짜고짜 숨바꼭질을 하자고 달려듭니다.

 

“알았어. 아빠 죽 먹고, 너도 저녁밥 먹고 하자”고 했더니 저녁식사를 서두릅니다. 평소 같지 않게 식사 도중에 친절까지 베풉니다.

 

“이거 드셔보실래요?”

“아니….”

“아참, 내가 왜 이러지. 아빠가 못 드시는데….”

“너, 아빠 약 올리려고 그러지?”

 

저녁식사를 끝내자마자 예슬이와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눈가리개를 한 예슬이는 이전과 달리 더듬거리며 걸음을 쉽게 내딛질 못합니다. 이 방 저 방으로 뛰어다니던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거 봐라. 눈가리개를 하니까 앞이 하나도 안보이지”라고 했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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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을 하는 예슬이. 눈뭉치가 보통의 무게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 이돈삼

눈싸움을 하는 예슬이. 눈뭉치가 보통의 무게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 이돈삼

그렇게 술래잡기를 몇 번 했을까. 집안이 너무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실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숨어버리면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거실에서만 숨기, 술래한테 박수 쳐서 유도해 주기 등을 규칙으로 정한 게 이때쯤이었습니다. 술래잡기는 재미를 더 했습니다.

 

허공을 향해 손으로 휘젓고 발로 더듬는 술래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더듬거리는 술래의 팔 아래로 지나다니고, 술래의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피해나가기라도 할 땐 짜릿한 쾌감까지 맛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박수를 쳐 술래를 곤혹스럽게 하고, 술래의 손이 바로 눈앞에까지 왔다가 되돌아갈 때엔 스릴도 느껴졌습니다.

 

술래잡기 놀이는 점점 거칠어지고

 

눈가리개를 한 제가 헛손질을 하는 게 재밌었는지 예슬이가 뒤에서 똥침을 놓고 즐거워 어쩔 줄을 모릅니다. 가까이 다가와서 하는 똥침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 발로 사방을 휘젓고 손으로 더듬는 것이었습니다. 그 손발 사이로 빠져 다니는 기분은 정말이지 통쾌하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술래놀이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그에 맞춰 술래의 손놀림과 발길질도 거칠어졌습니다. 그게 문제였습니다. 거실 바닥에 엎드려 예슬이의 몸놀림을 주시하고 있는데, 아무렇게나 휘젓던 예슬이의 발길이 제 코로 정확히 날아왔습니다. 그리곤 제대로 후려쳤습니다. K.O.펀치, 그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넉 다운돼 버렸습니다.

 

제대로 맞았고, 아프다는 것 외에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코피가 제대로 터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비명소리를 듣고 아이들 엄마와 큰아이 슬비가 달려 나왔습니다. 어찌나 아프던지 그때까지 뒹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 엄마가 깜짝 놀랍니다. 코가 푹 꺼졌다고. 가만히 코를 만져보니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왠지 불안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놀라 한동안 가만히 있던 예슬이도 그제야 발목을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제 코를 가격했던 예슬이의 발목 정강이도 부어오르고 멍이 들었습니다. 숨바꼭질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다음날 통원치료를 위해 병원에 간 김에 코의 X-선 촬영을 해보았습니다. 촬영 필름을 본 의사가 깜짝 놀랍니다. 코뼈에 금이 간 정도가 아니가 아예 두 동강이 났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가 “좀 격하게 노신 모양입니다”라고 하더니 “아이가 몇 살이나 됐냐”고 묻습니다. 아마 건장한 남자아이한테 한대 맞은 걸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코뼈 봉합수술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이들 엄마는 병원에서 조금 더 있으라니까 퇴원을 서두르더니 이 지경에 이르렀다며 핀잔을 줍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입원을 해 며칠 더 쉬면서 코뼈를 봉합하고 수술 후유증도 치료하라고 압력을 가합니다. 외로운 밤을 보내야 하는 예슬이의 시련이 또 시작되고 있습니다.

 

똥침 놓던 손가락 골절...믿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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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남도석성 옆에서 슬비와 예슬이의 모습입니다. 똥침으로 손가락 골절상을 입기 직전입니다. ⓒ 이돈삼

지난해 가을 남도석성 옆에서 슬비와 예슬이의 모습입니다. 똥침으로 손가락 골절상을 입기 직전입니다. ⓒ 이돈삼

예슬이의 시련은 지난해 가을에도 있었습니다. 늦가을 어느 날, 슬비 예슬와 함께 남도땅 진도로 나들이를 갔었습니다. 고려시대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이 최후를 맞았던 남도석성 주변을 거닐던 예슬이가 저에게 똥침을 가했습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융이 든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있던 저는 끄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예슬이한테 생겼습니다. 그 시간 이후 예슬이는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는데 같은 말을 몇 번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외형상 손가락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손가락이 아프다기에 ‘내일이면 괜찮겠지’ 하는 심정으로 액체 파스를 발라준 게 고작이었습니다.

 

아이는 다음 날도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지만 무던한 아빠는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하루를 더 버텼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아이들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간 모양입니다. X-선을 촬영해 본 결과 진단은 ‘손가락 골절’. 흔치 않는 손가락 골절이기에 의사가 아이에게 어떻게 다쳤는지 물었답니다.

 

순간 예슬이는 사실대로 얘기를 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다가 넘어지면서 손가락을 다쳤다고 얼버무렸답니다. 제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날 이후 예슬이는 오른쪽 손가락에 깁스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차마 다른 사람들한테 옮기지 못한, 우리 가족만의 비밀이 됐습니다. 가끔 예슬이가 똥침을 할 때면 “너 그러다 또 손가락에 깁스하고 싶냐”는 핀잔으로 살아있을 뿐입니다.

 

새해도 벌써 2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설날도 지났습니다. 예슬이의 시련, 저의 즐겁지 않은 기억은 이제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딸아이의 발길에 차여 코뼈가 부러지는 일도, 똥침을 놓다가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은 거짓말 같은 일도 추억의 페이지에서만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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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반별로 진행된 학교축제 때 친구들과 함께 '노바디' 춤을 추고 있는 예슬이. 과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이돈삼

각 반별로 진행된 학교축제 때 친구들과 함께 '노바디' 춤을 추고 있는 예슬이. 과격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이돈삼
#예슬 #똥침 #하이킥 #남도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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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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