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는 왜 났을까?"

감기 한번 안 걸린 나의 튼튼한 몸

등록 2009.02.10 16:40수정 2009.02.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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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제 소원은 "핑그르르" 쓰러지며 "아이 머리아파"를 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튼튼한 몸과 강인한 정신은 쓰러지기는커녕,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면서도 눈물 한 방울 짜내지 않았습니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생명력이 질겨지는 잡초처럼 더 강인해져만 갔지요


어쩌다 감기에 걸려도 남들은 사흘밤낮을 끙끙 앓으며 얼굴이 반쪽이 된다는데 본능에 충실한 저의 뱃속은 아플수록 살아나는 입맛에 아프고나면 오히려 혈색이 좋아지니 아무리 감기에 걸렸다고 해도 안 믿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때문에 어린 가슴에 멍이 수월찮게 들었었지요

그러니 성장기때 한번쯤은 흘린다는 코피도 한번 흘려 본 적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야간작업을 끝내고 집으로 오신 아버지가 세수를 하다가 후두둑 흘리는 코피를 보면서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약쑥을 찧어서 콧속에 밀어넣으며 "어쩌끄나... 괴기라도 한근 끊어와야 겄다 잉"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귀에 남았습니다.

코피는 곧 고기라는 얄궂은 공식이 성립이 된지 한참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때였습니다. 짜놓은 각본처럼 시험때만 되면 친구 중 한 둘은 코피를 흘리며 교무실로 갔고, 선생님들의 정성어린 안마와 간호를 받곤했습니다.

그 날은 중간고사 둘째날이었어요. 지난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10시간이 넘는 충분한 수면과 시험과는 무관하게 되살아나는 입맛으로 아침에도 두그릇이나 뚝딱 해치우고 나온 아침밥 때문에 나른함마저 밀려왔지요.

수학시험지를 막 받아들고 시험을 보려는데, 제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윽"하면서 일어나는겁니다.
"왜?"
"코피"
그 친구가 코를 붙들고 나가는데, 선생님이며 친구들이 "시험공부 많이 했나봐"하며 걱정을 하고, 안마를 해주는데 튼튼하다못해 강인한 몸 때문에 교련시간에 마네킹 역할만 주구장창 맡아야했던 저로서는 그 모습이 왜 그리 부럽던지요.


벽은 물론이고, 장롱, 티비할 것없이 들이대는것도 부족해서 콧구멍이 얼얼해지도록 긴 손톱으로 후벼파도 코피는 커녕, 코피 비슷한것도 안 나오는 제 코가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코피가 딱 한번만 나 줘도 마네킹 역할에서 그늘막천사(체육시간에 그늘에서 쉬는 친구들)로 변신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수학시간이 끝나고 전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사이에 고개를 들이밀고 "얘들아 내 소원이 뭔지 아니?"했더니 "황소 맨손으로 때려잡는거?" 하는 친구에 "돼지뒷다리 너 혼자 다 먹는거?"하는 친구,"교련선생님하고 싸워서 이기는 거?"친구까지... 너무나 저에 대해 잘 아는 친구들인지라 뭐라 반박할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에서 욱하고 치고 올라오는 화를 삭이고 친구들을 둘러보며 "내 소원은 코피 한번 흘려 보는거야.."했더니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에서 꽃이 피길 기다려라. 니가 코피 나면 나는 쌍코피에 얘는 더블 쌍코피다"하는게 아니겠어요. "나쁜것들 늬들은 친구도 아니야? 나도 한떨기 수선화이고 싶다고" 했더니 날라오는 대답은 "수선화도 먹을려고?"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윤리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을 보는데, 한 십 분쯤 흘렀을까? 콧 속이 물파스를 발라놓은 듯 시원한 느낌이 돌더니 갑자기 뭔가가 주르륵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칠칠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저였으니 화장지가 있을리 만무했지요. 친구들이 안보는 사이 얼른 소맷부리로 닦았는데, 어떻게 된게 닦아도 닦아도 콧물이 멈추지가 않는겁니다.

'추접게 시험보는디...훌쩌거리믄 친구들이 싫어헐텐디...' 그리고는 다시 소맷부리로 쓰읏 닦는데, 색이 좀 이상한겁니다. 그래서 봤더니 글쎄 코피가 아니겠어요?

시험이고 뭐고 당장 죽을것처럼 코를 잡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피!! 나 코피 난다~~"

물론 마음속으로야 "앗싸"도 외쳤지요. 그러나 다른 친구들 코피날때는 화장지를 들고 뛰어오던 선생님과 친구들이 제가 아무리 코피가 났다고 외쳐도 뛰어오지 않았습니다.
"나 코피 난다고요"
"알았어...다른 친구들 시험보니까 조용하니 따라와"

선생님을 따라 졸졸 가니 교무실에 계시던 선생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제게로 쏠렸습니다.
"어? 너? 코피??? 야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예...예..."
코피가 고기뿐만 아니라 열공과도 연관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분여를 뒷목을 마사지를 받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 시험을 마저 보았습니다. 그런데 코피까지 흘려가며 본 그 시험이 "33점"으로 반에서 꼴등, 전교 평균 윤리점수 꼴등일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여 코피사건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공부를 하지않은 불량학생의 마지막 반항으로 종지부를 찍어야했지만 그 날이후 지금껏 두번다시 코피를 흘려본적이 없으니 그날의 코피는 미스테리가 아닐수 없습니다.

인디안 속담에 어떤 것이든 만번이상 되뇌이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코피를 흘리고 싶은 나의 바램이 정말 하늘마저 감동시켜 모세혈관의 분출로 연결된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미스테리" 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미스테리" 응모합니다.
#코피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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