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 기성세대, 10대 청소년 활동가에게 배우다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열정세대를 읽고

등록 2009.02.24 17:38수정 2009.02.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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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세대 표지 참여연대에서 기획하고 양철북에서 펴낸 십대 청소년 활동보고서 "열정세대" ⓒ 김민수

▲ 열정세대 표지 참여연대에서 기획하고 양철북에서 펴낸 십대 청소년 활동보고서 "열정세대" ⓒ 김민수

고등학교의 단상

 

나의 고2 담임은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도 하시는 음악선생님이셨다.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선생님은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를 플라스틱 우유박스로 체벌하셨다. 체벌에 주로 이용되는 마대자루가 아니라 잡기도 힘들고 일정한 각도로 내리치기도 힘든 플라스틱 우유박스를 불규칙한 리듬으로 흔드셨던 것으로 보아 많이 격양 되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폭력과 억압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이전의 폭력이 나에게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왜 난 저항을 생각해보지 않았나", "왜 난 문제의식이 없었나"의 차원이 아니라 '당연한 상황'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에 더 놀랍다.

 

십대 청소년 활동가

 

최근 참여연대에서 기획하고 양철북에서 펴낸 '열정세대'(부제: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는 중고등학생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청소년 활동가 따이루는 학생 인권운동의 계기를 '영어 선생님'에서 찾는다.

 

"자기 도취에 빠져서 학생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하는 교사. 나는 학생들이 왜 교사에게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중학교 3학년 때 학생회장을 한 윤지는 학교의 주인을 'oo기업'쯤으로 여겼던 나에게 '학교는 학생이 주인'임을 가르쳐준다. 윤지는 학교에서 매점을 운영하지 않아 담을 넘는 학생들을 위해 후문개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였다.

 

학교의 영역을 넘어서

 

십대 청소년 활동가들의 영역은 학교를 뛰어넘는다. 따이루는 청소년의 알바 임금 세테를 알리기 위해 순대타운에서 알바를 했다. 법적최저시급은 안 주지만 '인간적으로 대해 준 사장님'께 추가 시급을 받고 사람들에게 순대타운의 현실을 알렸다.

 

띵(십대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은어)이면서 신공(레즈비언 친구들과 언니들이 모이는 공원)도 모르던 리인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성적 소수자들을 위해 활동한다. 십대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리인은 다섯 개 이상의 팀과 기획단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방학 동안에는 센터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리타는 버마 출신활동가 마웅저의 글을 교정한다. 하자센터의 글로벌 학교에서 마웅저를 만난 리타가 먼저 메일을 보내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는 리타는 ''미얀마가 아니라 버마로 불러주기를 부탁한다." 컴퓨터 한글프로그램에서 '버마'를 치고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미얀마'로 교정된다는 것을 리타는 알고 있었나 보다.

 

청소년 YMCA 연합회장인 창숙이는 "만 18세부터 참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수화를 배우기 위해서 YMCA에 들어갔지만 '청소년들이 사회문제나 정치문제에 적극 참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어' 청소년 운동을 하게 되었다.

 

운동은 지금, 여기에

 

'정확한 사실을 알아야.','지금은 아니고 나중에'라며 실천하지 않는 어른들에게 십대 청소년들은 '지금, 여기에'를 말한다. '청소년 강 탐험대' 강강 수월래단은 이명박 후보가 내건 다소 '황당한' 공약 때문에 한반도 운하 예정 지역을 걷기로 생각한다.

 

'한반도 대운하 예정지의 생태, 역사, 문화 등을 알리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떠난 청소년들은 한달이 넘는 고된 행군을 경험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 자연, 문화유산을 만난 "강강수월래단은 만장일치로 한반도 운하를 반대하기로" 결정한다.

 

관악사회복지의 햇살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매주 토요일 동네의 맞벌이 부부나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모인다.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다. 햇살의 재윤이는 봉사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봉사는 박카스가 아닐까요"라고 대답한다.

 

이외에도 촛불집회를 "희망과 절망의 뫼비우스 띠 같았다"라고 얘기하는 지인, 일상과 놀이를 잇는 상상령의 힘을 가진 청소년 문화 공동체 '품'의 친구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생각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연주등 10대 청소년들은 현재의 삶에 미래를 품는다.

 

29살 청년 기성세대?

 

"어떻게 십대가 운동을 할 수 있어?","그 학생들이 아직도 운동을 하고 있어?"라는 질문 전에 '십대 활동가'의 존재는 변화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영원이 아닌 찰나의 순간에 끊임없이 튀어 오르는 이들의 존재는 새로운 운동의 주체를 기대케 한다.

 

책의 머리글에 "우리가 만난 십대들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선생님들의 두발규제에 말 한번 못해보고 머리를 밀렸던 나에게 10대 청소년들의 활동보고서인 '열정세대'가 차가운 나의 이성을 세차게 흔든다. 사람을 향하는, 불의에 항거하는, 소외를 덮는 열정의 감수성을 흠모한다. '알아야 실천할 수 있는' 29살 기성세대에게 10대 활동가는 스승이다.

2009.02.24 17:38 ⓒ 2009 OhmyNews

열정세대 - 상상력과 용기로 세상을 바꾸는 십대들 이야기

김진아 외 지음, 참여연대 기획,
양철북, 2009


#열정세대 #참여연대 #양철북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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