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책이란, 또 책이란 무엇일까

[헌책방 나들이 188]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등록 2009.02.26 13:50수정 2009.02.2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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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밤, 골목 안쪽에 자리한 헌책방 불빛이 밝습니다. ⓒ 최종규


 (1) 책방 마실과 글쓰기

저한테 서울 나들이는 책방 나들이입니다. 책에서 사람을 만나고 책방에서 사람을 만나며, 책 만드는 사람과 책 다루는 사람을 만납니다.


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는 길에서 숱한 사람을 스치는데 말 그대로 스칠 뿐,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은 거의 안 듭니다. 아마, 맞은편에서도 저나 다른 사람을 부대낄 때 비슷한 느낌이 아니랴 싶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는 사람이 사람으로 느껴지기란 어려우리라 봅니다. 재주 많은 사람, 멋있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 훌륭한 사람이 고루 있는 서울입니다만, 사람이 물결과 물결을 이루게 되면서 다 다른 얼굴과 다 다른 이야기를 꾸밈없이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되어 버립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북적거리고 바쁘고 싱그러움이 넘친다 할 만한 서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외롭고 메마르고 차가움이 흐르는 서울입니다. 두 모습이 함께 있는 서울에서는, 책방도 두 모습이 함께 있다고 느끼면서 책방 마실을 합니다. 인천에 있는 책방에는 없는 책이 많고, 인천에 있는 책방만 돌아다니면 세상을 좀더 넓고 깊게 들여다보기 어렵다고 느끼면서 서울로 책방 마실을 합니다. 그러나, 책이 많지 않은 동네에 산다고 하여도, 책 몇 권 못 읽으며 산다고 하여도, 세상읽기를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책을 몇 권 더 읽은 사람이 더 넓게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으니까요. 훌륭한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못나거나 모자라지는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구태여 서울까지 책방 마실을 안 다녀도 된다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서울로 틈틈이 책방 마실을 다닙니다. 책이란 혼자 뒤적이는 물건이 아니고, 책방이란 홀로 드나드는 터전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꾸준하게 새로 나오는 책을 차근차근 알아 가는 가운데 내 마음뿐 아니라 이웃 마음에도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며 책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 있는 책방을 '누구보다 그 책방이 있는 동네에 사는 사람'이 언젠가 알아 주기를 바라면서 지치지 않고 책방 이야기를 쓰자고 다짐하며 살아갑니다. 참말, 제 마음밭만 가꿀 뜻이었다면 멀리 마실을 다닐 일이란 없으며, 이곳저곳 알리는 글을 쓸 까닭이란 없습니다. 더구나, 소개글이란 한 번 쓰면 그만일 테지만 열 몇 해에 걸쳐 쉼없이 쓸 일이란 없습니다.

책을 새롭게 하나 만나면서 마음이 자라기 때문에, 이 기쁨과 고마움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책방을 다시 한 번 찾아가면서 마음이 넉넉해지기 때문에, 이 보람과 즐거움을 이웃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헌책 하나 아직 모르는 이들과 헌책방 한 곳으로 아직 발디디지 못한 이들한테 말을 걸고 싶습니다. 여느 사람한테도. 기자한테도. 지식인한테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한테도.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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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기도 하고 얹히기도 하고 꽂히기도 하는 다 다른 책입니다. ⓒ 최종규


 (2) 사진책이란 무엇일까


옆지기와 아기는 집에 두고 혼자 서울 마실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볼일을 마칩니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신촌 〈공씨책방〉에 들러 책을 한 보따리 장만합니다. 이제 집으로 갈까 하다가 가방에 빈자리가 있으니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에도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목과 어깨에 사진기 한 대씩 나눠 걸고 두 손은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걷습니다. 깊어가는 저녁이 되지만 밝고 북적거리는 사람물결 가득한 길바닥을 가로지릅니다. 웃고 떠들고 담배 태우는 이 많은 사람들 마음자리에는 무엇이 깃들고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하는 사이 건널목 불이 바뀝니다. 두 쪽에서 서로 쏟아지는 사람 사이에 끼어 요리조리 사람을 빗겨 걸으면서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하나, 둘, 셋. 세 번째 골목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책방 간판 불빛이 환합니다. 그런데 책방과 마주보는 살림집 앞을 가득 채우고 있던 꽃그릇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뭐지? 하고 궁금해하며 책방으로 들어갑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안부 몇 마디를 주고받은 뒤 넌지시 여쭙니다. "요 앞집 할머님 돌아가셨어요?" "응? 아냐. 다른 데로 이사가셨어."  "그렇군요. 저 꽃그릇들은 어떻게 하셨으려나 ……."

이제 서울에 골목길은 얼마 안 남았습니다. 그래도 워낙 넓은 땅덩어리라 꽤 남았습니다만, 모든 골목길은 오로지 아파트로 바뀌어야 한다는 나라 정책 흐름에 따라, 하나하나 휑뎅그렁한 마지막 자취를 남긴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골목집을 따라 제법 적은 달삯을 내면서 동네사람을 마주하며 장사를 하던 가게도 하나둘 자취조차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울이든 인천이든 안쪽 깊숙한 데 자리한 골목집에는 어김없이 꽃그릇이 가득했고, 이 헌책방 〈숨어있는 책〉 앞집도 꽃잔치집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예 사라지고 맙니다. 헌책방도 사라지지만, 다른 수많은 꽃잔치집도, 조그마한 가게도 사라집니다. 많은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을 꾸릴 만큼만 돈벌이를 하며 동네이웃하고 사랑을 나누고 이야기를 엮던 숱한 발자취와 손자취는 '경제 살리기' 앞에서 끽소리를 못합니다. 이웃나라 일본 같으면 서른 해나 쉰 해가 넘는 집이며 가게며 간판이며 일터며 모두 '문화재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으면서 그 동네에서 알뜰살뜰 보살핌을 받는데, 이런 집자리와 골목을 얼마든지 관광지로 가꾸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스무 해만 넘으면 얼른 갈아치워야 할 '쓰레기'로 대접합니다. 이웃 일본뿐 아니라 유럽 어느 나라이든 온 동네가 '문화재요 역사유적지처럼 세월을 먹고'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또다른 이웃인 중국도 그러한데, 돈을 벌 수 없는 집이나 가게라면, 큰 돈벌이(건축사업을 벌이는)가 안 되는 집이나 가게라면, 하루빨리 없애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이리하여 한국땅에서는 어디를 가든 똑같이 메마르고 재미없고 지루한 건물만 남게 되고 새로 서면서, 굳이 나라안 나들이를 해 보고픈 마음이 안 들게 됩니다. 인천과 대전과 목포와 부산과 마산과 울산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어떤 맛과 멋으로 서로서로 다른 터전 다른 동네 느낌을 나누겠습니까. 살아 있는 문화재란 하나 없이, 늘 죽은 문화재만 어루만지는 판에,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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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는 사람이 있고, 책에 담긴 사람 자취가 있으며, 책으로 배우는 사람마음이 있습니다. ⓒ 최종규


골마루를 누비면서 사진책 《최광호-고성산불 '땅의 숨소리'》(느티나무아래,2007)를 집어듭니다. 산불이 난 고성땅에서 '잃고 만 우리 숨결과 소리를 되찾자면 사진쟁이로서 무엇을 해야 할까'를 근심하던 최광호 님은 '벗음사진'을 찍으면서 우리 스스로 우리 껍데기를 벗어던지자고 이야기합니다. 내 껍데기를 벗고 네 껍데기도 벗으며, 서로서로 속마음으로 만나자고, 알몸뚱이로 만나자고, 깊은 알맹이로 만나자고 말을 겁니다. 최광호 님은 '남이 벗은 모습'이 아닌 '스스로 벗은 모습'으로 쑥대밭 된 고성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책 하나를 내어놓습니다.

.. 벗음, 벗고 사진 찍음, 그리하여 자연과 생명에 온몸으로 다가가 하나 되고 교감하기, 자연과 마음 나누며 사진 찍기, 나와 함께 그곳을 찾는 다른 이들과도 함께하기, 거짓되고 허황되며 기본적인 양심마저 잊고 사는 황폐해진 마음을 회개라도 하듯이, 기도하듯 허울을 벗어 버리고 온몸으로 사진 찍기, 자기다움과 인간다움을 회복하기 위하여 자연과 하나 되기,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 자기다운 사진 찍기, 그것이 고성산불 지역을 처음 다녀온 이후 계속하고 있는 '벗음사진'인 것이다 ..  (머리말/최광호)

사진책 《전미숙-서울 근교의 마지막 농사꾼들, 경기도 광주의 두 마을》(눈빛,2007)을 봅니다. 경기도에서 '마지막 농사꾼'이라 할 만한 삶을 꾸리는 사람들 자취를 이야기로 담고 사진으로 담는 묶음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록글'과 '기록사진'이기 때문도 할 테지만, 그리 재미나게 볼 만하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적바림하는 분들 스스로 '마지막 농사꾼'이라 하는 분들 모습과 자취와 터전을 '쓸쓸함'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랴 싶습니다.

.. 농촌은 혹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남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아는 농민들은 사라질 것만 같다 … 자신들도 언젠가는 땅에 묻힐 텐데,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는 농촌에서 그들의 마지막은 얼마나 쓸쓸할까? 농업이 '산업'의 하나로 배치되면서 그 존엄성을 상실한 것을 그렇다 쳐도, 그 농업의 미래가 닫히면서 자식부터 도회지로 보내 버리고 난파선에 남은 사람처럼 농촌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은 미래가 닫혀 버린, 그러니 장구한 농촌 서사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삶의 배경이었던 농촌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다. 농민은 농촌을 배경으로 살아야 농민이므로, 농촌 서사에서 이제 배경이 무너지고 인물도 막막한 시기가 되어 버렸다. 이 막막한 서사의 막바지에 선 사람들,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  (여는 글)

시골이 사라지고 있다면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헤아리면서, 이러한 까닭을 글과 사진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왜 그렇게 되고 마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이 흐름과 둘레 삶터를 글과 사진으로 옮겨 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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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최종규

시골사람 스스로 바라서 시골 삶터가 무너지거나 흔들리게 되었을까요? 시골사람 스스로 좋아서 젊은 딸아들을 죄다 도시로 내보내게 되었을까요?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이와 같은 기록글과 기록사진은 무엇을 하고자 남기는 기록인가요? 무엇을 보여주고 싶고, 무슨 이야기를 뒷사람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하는 일인가요?

사진시집 《김일주-시인의 얼굴》(우석,1983)을 집어듭니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시인은 못 가고 시만 좋아하는 사진쟁이라는 김일주 님은, 시인을 한 분 두 분 찾아뵈면서 얼굴 사진을 담고, 당신이 좋아하는 그분들 시를 몇 꼭지 그러모아서 책 하나로 여밉니다.

시를 써도 시인이지만, 시로 살아가도 시인입니다. 시를 사진으로 담아내어도 시인이며, 사진을 시처럼 찍을 수 있어도 시인입니다. 김일주 님 스스로 시 하나 써내지 못했다고 하나, 이와 같은 작품모음이 바로 시모음이요 시인 발자국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서울 백 년》(서울특별시,1984)이라는 자료모음을 구경합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자료모음인데, 여태껏 따로 들춰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워낙 자주 보여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무슨 느낌이 있었는지 '구경이라도 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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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밋밋해 보이던 자료사진도 세월이 묵으면 아주 새삼스럽습니다. ⓒ 최종규

책장을 죽 넘깁니다. 잘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며 마지막 쪽까지 펼칩니다. 세월이 묵으면서 빛이 나는 사진과 책이 있다더니, 이런 자료모음이야말로 그런 사진과 책인가 싶습니다. 지난날 1984년에 이 책을 묶은 서울특별시 공무원은, '그무렵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모습을 담으려 했을 텐데,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오늘에 와서 돌아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그렇게 '잘나간다'고 하던 모습은 하나같이 허물리면서 '새로 잘나가는' 건물이 우줄우줄 서니까요. 이무렵에도 다른 건물을 허물고 더 높은 건물을 올리려 했고, 찻길은 더 넓히려 했고, 찻길에 더 많은 자동차가 드나드는 모습으로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쓰겁게 웃으면서, 지난날 서울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외려 잘 보여주는 옛 사진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거꾸로 우리네 모습과 생각자리를 알뜰히 실어 놓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1984년 무렵 서울 시내 모습을 헤아리는 한편, 이 나라가 나아가려는 흐름을 짚어 보게 됩니다.

자료모음에는 '여느 사람 삶'을 보여주는 옛 사진은 있어도 1980년대 '서울에 살던 여느 사람 모습'을 돌아볼 만한 사진은 한 장도 안 실려 있습니다. 아마, 마땅한 노릇이었을 테지요. 여느 사람 삶이란 가난한 삶자락이고, 가난한 삶자락은 올림픽을 앞둔 1984년으로서는 숨기고 싶던 서울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이때에만 해도 틀림없이 산동네 집이 많고 골목길도 꽤 되었을 텐데, 아파트 삶자락조차 제대로 사진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로지 보여주는 모습이란, 광화문 세종로 종로 명동 따위 번쩍거리고 높은 건물과 자동차로 가득한 찻길 따위입니다. 그래도 이 모습조차 이제 와 살피면 재미난(?) 사진 자료로 남습니다. 새삼 지난날 그 공무원 분들한테 고맙다고 절을 올립니다.

짝맞추기를 하려고 한 권씩 장만하는 '나르니아 왕국' 묶음책 가운데 4번인 《C.S.루이스/권명달 옮김-캐스피언 왕자》(보이스사,1981)를 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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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쪽지에 적은 '책 갈래 나눔'. 책마다 생김이 다르고 책방마다 꾸밈새 다르며, 우리 손자국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 최종규


《야누시 코르챠크/주춘진 옮김-아이들을 위한 아름다운 나라 (하)》(돌샘,1988)를 봅니다. 상권이 없어 아쉽지만, 코르착 님 책을 이렇게 펴낸 적이 있었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어 몹시 반갑습니다. 의사요 고아원 원장이었던 야누슈 코르착 님은 아이들과 아이 어버이한테 읽힐 글도 부지런히 써서 남겼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라안에는 거의 옮겨지지 못했고, 그나마 《아이들》이라는 책 하나만 판이 안 끊어지고 남아 있습니다만, 이분이 쓴 책 가운데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가》 같은 책은 꼭 헌책방에서 눈 밝히며 찾아내어 읽을 값어치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지난 1979년을 유네스코에서 '세계 어린이 해'로 삼은 까닭은 이해가 '야누슈 코르착이 태어난 100돌이 되던 해'였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린이 해'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고아원 아이들과 손잡고 가스실로 들어가 죽은 한 사람'을 기리고자 붙여졌다 함은, 이분이 남긴 발자취가 노벨평화상을 넘어선다고 할 만하다는 소리이며, 이분이 남긴 글은 노벨문학상을 주어도 넉넉하다는 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자 '프뢰벨' 이름을 딴 출판사가 나라안에 있습니다만, '코르착' 이름을 딴 어린이책 출판사가 나옴직하기도 합니다. 이분을 기리는 그림책은 두 가지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을 사랑한 유대인의 영웅》(2007)이고 또 하나는 《천사들의 행진》(200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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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책. 빅토르 위고를 묵은 손바닥책으로 만나는 맛은 꽤 다릅니다. ⓒ 최종규

.. 야누시 코르차크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린이 왕의 이야기를 통해 그 세계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코르챠크 자신도 매트 왕처럼 상상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실생활에서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코르챠크는 인생을 살았고 또한 죽어 갔다 … 어린이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매트가 만든 어린이 국회의 의원들이 멋들어지게 작성한 개혁을 위한 안건들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으리라 … 그는 어린이의 일은 무슨 일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러한 신념에 따라 1912년 34살 되던 해 바르샤바의 어느 유태인 고아원의 원장이 되었고, 1919년에는 카톨릭교회 고아원의 이사를 지냈다 ..  (옮긴이 뒷말)

손바닥책 《빅토르 위고/김붕구 옮김-사형수 최후의 날》(서문당,1974)을 고릅니다. 어린이책 《신혜원-어진이의 농장 일기》(창작과비평사,2000)도 고릅니다. 예전에 나왔을 때 미처 못 보고 지나갔기에 이참에 눈에 뜨인 김에 집어듭니다.

 (3) 책이란 무엇일까

이제 가방은 책으로 미어터집니다. 천으로 된 장바구니를 꺼내어 두툼한 사진책을 담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읽을 책은 사진가방에 따로 우겨넣습니다. 헌책방 아저씨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나옵니다. 헌책방을 나설 때면 어디에서나 늘 건네는 "오늘도 좋은 책을 구경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좋은 책 보러 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깁니다.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뒤뚱뒤뚱 걷습니다. ㅅ출판사에서 일하는 선배한테 전화가 옵니다.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으니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합니다. "사 주시면 얼마든지 마시지요." 하면서 어디로 가면 되는가 하고 여쭙니다.

만날 곳으로 가는 길에 홍대 앞 만화책방 〈한양문고〉에 들러 만화책 몇 가지를 삽니다. 제가 읽을 만화와 선물해 줄 만화를 고릅니다. 좀더 느긋하게 둘러보고 싶었으나 너무 늦으면 안 되기에 대충 둘러보고 헐레벌떡 달려갑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작가 만나기 힘들다'는 어려움을 듣습니다. 저 또한 '작가'랍시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출판사에서 반갑게 맞이할 만한 작가라면 어떠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 한국땅에서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헤아리게 됩니다. 대학교수나 초중고등학교 교사처럼 '살림 걱정 안 해도 좋을 넉넉한 밥그릇'이 없는 여느 작가들이 얼마나 마음껏 자기 꿈과 생각과 삶을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돌아봅니다. 시를 쓰건 무엇을 그리건 무슨 사진을 찍건, 작가 된 사람들 가운데 '상업주의'에 손을 뻗치지 않고 살아남을 길이 있는가 곱씹습니다. 영화쟁이는 '독립영화'를 아주 적은 돈으로 만든다고 하지만, 글쟁이나 사진쟁이로서는 그 '적은 돈'만큼조차 손에 쥐어 보는 일이 없이 맨몸과 맨손으로 가난과 싸웁니다. 아니, 가난을 가장 가까운 벗으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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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과 책 하나. 굳이 찻집에 가야만 차맛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종이잔에 차 한 잔 받아서 훌훌 넘기면서 책 하나 만나는 즐거움이 남다릅니다. ⓒ 최종규


술잔이 돌고 돌며 손과 몸에서 기운이 풀립니다. 중얼중얼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두런두런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무슨 소리일까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퍽 늦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자면 갈 길이 먼데. 몸이 이렇게 힘들면 집으로 돌아갈 먼길에서 책을 손에 쥘 수 있을까. 그래도 느즈막한 때 비틀비틀거리는 몸으로 먼길을 전철을 달려 돌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채로 한손에 책을 꽉 붙잡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다른 한손으로는 볼펜을 꾹 움켜잡습니다. 어찌 되었든 책은 제 삶입니다. 못나도 잘나도. 돈이 안 되어도 돈이 되어도.

덧붙이는 글 | -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덧붙이는 글 -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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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숨어있는책 #책읽기 #사진책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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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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