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가 무슨 일을 하겠냐고요?

경제적 이유로 하게 된 '재취업'... 하루 24시간도 모자라

등록 2009.03.08 11:16수정 2009.03.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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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한 장면. ⓒ SBS


지난해 여름 방송됐던 SBS 수목드라마 <워킹맘>, 기억하시나요? 이 드라마 주인공인 최가영(염정아 분)은 잘나가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육아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려니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죠. <워킹맘>은 이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들을 코믹하고 솔직하게 풀어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도 이 드라마를 즐겨봤던 애청자 중 한 명인데요. 보면서 '워킹맘은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그 '워킹맘'이 돼서 드라마 속 주인공인 최가영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 전후로 6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전업주부로 돌아서 아이들 뒷바라지와 남편 내조에만 매진했습니다. 그러다 올해 초 출판사에 다니는 친구의 소개로 '워킹맘'이 된 것이지요.

사실 아이들도 다 키웠고, 하루 종일 가만히 있는 건 시간낭비란 생각에 재취업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뛰쳐나왔지만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론 다시 일을 시작하니 새로 태어난 것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가 하는 일은 출판사에서 하루 6~8시간 정도 근무하는 건데요.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다시 나와보니, 마치 좁은 어항 속에서 놀다 넓은 바다로 나온 물고기 같습니다.

전업주부, 재취업으로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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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한 장면. 몸은 회사에 있지만, 아이들 걱정으로 몸이 두개라도 모자르다. ⓒ SBS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도 낯설었고 퇴근 후에는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재취업을 한 지도 2개월이 지나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지만 아직도 힘든 것이 많습니다.


특히 일이 늦게 끝날 때나 회식을 할 때면 안절부절못합니다. 퇴근 후에 저녁식사를 준비해 놔야 하는데, 이게 속수무책입니다. 물론 배달음식이나 라면 등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엄마나 아내 마음은 그게 아니지요. 남성들은 회식이나 일이 늦게 끝나도 부담이 없지만 '워킹맘'들은 회식을 해도 마음은 콩밭(집)에 가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애로사항에도 불구하고 제가 재취업을 선택한 이유는 경제적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자녀 학원비 등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였지요. 재취업 후 가장 큰 어려움은 '가사노동'입니다. 현재 맞벌이를 하는 부부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모든 가정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집에 와서 식사준비를 하고 빨래, 청소 등을 합니다. 물론, 가사 일을 분배해 하는 가정들도 있지만요. 아무리 강철 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직장에 다니면서 매일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건 힘듭니다. 그래서 주말에 대청소나 밀린 빨래 등이 이뤄지지요.

재취업을 한 뒤 저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고 하루는 남편에게 "왜 여자만 힘들게 가사 일을 해야 하죠? 이제부터는 같이 해요!"라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며 청소를 하는 등 나름 애를 쓰더군요. 하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청소는 청소기만 돌린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걸레질을 해야 하지만, 남편은 '걸레' 드는 것을 질색합니다.

돈 벌어보니 남편이 더 고맙더군요

제가 올해 직장을 다시 나가겠다고 하자 가족들 모두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부엌데기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며 반신반의 했지만 남편은 "일단 다녀보는데,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두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은 엄마가 없을 때의 불편함을 미리 예상한 듯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두 딸의 학비와 학원비로 가계지출에 '빨간줄'이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어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물론 월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마이너스를 줄여보려고 '일단 출근하고 보자'했는데,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최근엔 고민도 생겼습니다. 저는 요즘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빠져 삽니다. 가사와 일을 병행하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부족합니다. 직장에 다시 나가기 전에는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1분 1초가 아깝습니다. 24시간에 4시간만 더 보태 하루가 28시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출퇴근 할 때 가끔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은 부러운 듯 "그 돈 다 벌어서 뭐할 거야. 밥 한 번 사"라며 저에게 시샘의 눈총을 보내기도 합니다. 주말에 사우나 등지에서 만나는 지인들은 "어디 취직할 곳 없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기회가 닿으면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주부가 재취업 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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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워킹맘>의 한 장면.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지만 주부들에겐 '회식' 등에 대한 부담이 있다. ⓒ SBS


1월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월급은 딱 두 번 받았습니다. 남들은 첫 월급 타면 부모님 내복과 양말을 사다드린다는데, 전 아직 월급봉투에서 천 원짜리 한 장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번 돈은 아깝더라고요.

지금까지 남편이 벌어다준 돈은 아까운 줄 모르고 썼는데, 제가 번 돈은 아까우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순간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돈 벌기가 쉽지 않구나, 세상살이가 참 팍팍하구나'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20여 년 동안 한결 같이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 준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이젠 남편이 벌어온 월급도 쉽게 못 쓸 것 같습니다.

재취업 생활이 녹록치 않지만 이왕 시작한 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볼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고민도 많이 하고 어렵게 시작한 인생이니, 실패하지 않고 꼭 성공해 두 딸에겐 자랑스러운 엄마가, 남편에겐 힘이 되는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전업주부 #재취업 #슈퍼우먼 #직장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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