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마시는 술엔 눈물이 절반이다

오십 줄 접어든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는 이유

등록 2009.03.10 08:22수정 2009.03.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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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얼굴 보는 친구들이 있다. 정해놓은 요일은 없다. 하지만 이때쯤이면 어느 놈이든 연락은 하겠지, 그리하여 한 번씩은 모인다. 사실 그 자리는 참으로 비생산적이며 영양가 없는 자리다. 안 나가도 그만이고 안 나온다고 두 번 찾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참석률은 거의 100%다. 쌀독에 쌀이 있든 없든, 요즘 같을 때는 죽을 힘이 없어 죽지도 못한다 뭐 그러면서도 술 먹을 돈은 있는 모양이다.

 

만 나이로는 사십대라고 우기지만 나와 내 친구들 나이는 어느덧 오십. 지천명은커녕 아직 철도 덜 든 것 같은데 나이는 속절없이 잘도 먹는다. 만만찮은 나이지만 요즘은 나이보다도 주위환경이 더 만만찮다. 경제위기고 정치 꼬라지고 더 듣기도 보는 것도 다 싫다. 그러다 보니 누구 하나가 콜하면 우린 모인다.

 

억지로 군대 보내고... 아버지인 나 괴롭다

 

다들 못 살겠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리지만 사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직장생활 20년 되던 해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내 발로 나왔다'고 거품 물고 말해봐도 "너도 잘렸네"라며 안 받을 위로까지 받은 '사오정'이다. 처음에는 '이놈의 직장 아니면 밥 굶을까, 에라이 잘 먹고 잘살아라, 남은 인생 쿨하게 살아보자'라고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아이들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였지만 나는 괴로운 적 많았다. 난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딴 욕심 안 냈을 뿐인데, 쌀독의 쌀은 모래시계처럼 잘도 줄었다.

 

대학교 1학년 마친 아들 놈 앞에 앉혀 놓고 '소주빨' 빌어 "제발 군에 좀 가 주면 안 되겠니?" 눈물의 쌍곡선을 그렸다. 지금 그놈, 최전방 철책에 서 있다. 이 아비 원망이나 안 하려나 모르겠다. 올해 고3인 딸은 대학 들어가는데 여군 보낼 수도 없고 참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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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 김준희

이런저런 걱정을 하는데 친구가 전화해 뼈다귀집에서 한잔하잖다. "니가 사냐"니까 그렇단다. 고마운 친구다.

 

친구1. 나이도 어린 게 건강원을 한다. 배즙, 양파즙 다려 박스포장 하다 보면 몇 봉지는 남는다. "그래 너는 좋겠다. 좋은 것만 먹어서 뻗치는 힘 다 어디 쓸래?"

 

1년 전 가게 처음 시작할 때는 이런 농담도 막했다. 요즘은? 안 한다. 그런 농담 했다가는 안주 뼈다귀에 맞을 수도 있다. 즙 짜주고 받는 수공비가 3만원, 즙 내린 거 한 박스도 3만원선이다. 그거 팔아 월세 주려면 힘이 뻗다가도 몸이 뻗어 버린단다. 개소주나 염소즙 주문 들어오면 조금 낫다지만 요즘 같을 때는 밥 먹기도 쉽지 않으니 건강식품 찾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 친구도 환장할 지경이다.

 

친구2. 피부과 원장님이다. 오리지널 서울대 출신으로, 그 학교 대학원까지 마친 박사다. 가방 끈 길다. 내 친구 중에서 제일 길다. 가방 끈은 긴데 요즘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단다.  점도 빼고 피부도 건드리고 이래야 돈이 좀 되는데, 요즘 그런 사람이 드물단다. 피부과 안 간다고 죽을 사람 없으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오십 먹은 아버지들이 술을 먹는 이유

 

이런 상황이니 일단 술 먹을 분위기는 된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그래 그런 날 올 거야. 힘내자. 그래서 한 잔! ' 

 

건강원 운영하는 친구는 "오늘 개소주 주문 하나 받았다"고 하고, 피부과 원장은 "오늘 아지매 엉덩이에 빈대떡만한 점 하나 뺐다"고 술 먹으면서 '씨익' 웃는다.

 

술 먹는 핑계도 많다지만 핑계를 만들어 우린 술을 먹지 않는다. 먹다 보니 핑계가 만들어 질뿐이다. MB악법 때문에 술 안 먹는다. 그런 이유로 술 먹으면 돈이 아까워 술이 안 취한다. 국회에서 싸움질하는 인간들 때문에 열 받아도 그런 이유로는 절대로 술 안 먹는다. 먹다가 그냥 그들을 안주 삼아 술만 먹을 뿐이다.

 

오늘도 나이만 오십 먹은(?) 친구끼리 만났다. 눈들이 참으로 선하다. 대출금 만기가 되었는데 연장 안 되어 상환 독촉에 시달리고 있는 건강원 친구. 죽어도 홍모 미대에 가야겠다면 재수하고 있는 큰놈 때문에 피부에서 황사가 일고 있는 피부과  원장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뼈다귀에 붙은 살집 뜯어먹기에 바쁜 나까지.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다. 그러나 나와 친구들은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홀아비 아닌 홀아비들처럼 모여 저녁 수다에 정신이 없다. 비생산적이고 영양가 없는 자리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낼 아침이면 뒷골 깨지는 두통보다 더한 일들이 또 우리 앞에 다가올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술잔은 놓더라도 정신만은 놓치 말자며 마지막 잔을 부딪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정말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인 요즘이다.

2009.03.10 08:22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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