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번 돈은 책으로 돌아가야

[헌책방 나들이 190]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등록 2009.03.10 11:35수정 2009.03.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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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간판. ⓒ 최종규

책방 간판. ⓒ 최종규

 

 (1) 책방 가는 길에

 

 홍익대 앞에 있는 헌책방 〈온고당〉을 둘러본 뒤 발걸음을 옮겨 〈숨어있는 책〉으로 갑니다. 큰길을 따라 걷는데, 길가마다 긴 앞치마를 걸친 앳된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가게 앞에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기도 하고 둘씩 셋씩 팔짱을 끼고 걸어다니기도 하고. 모두들 미술학원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을 테지만, 대학교에 갈 생각으로 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많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어느 쪽 아이가 되든 이곳 미술학원에서 배우는 그림이란 '입시미술'뿐이지 않는가 싶습니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그림도, 자기 삶을 담아내는 그림도, 자기와 이웃 삶을 엮어내는 그림도, 자기 삶을 가꾸어 나갈 그림도 아닌, 오로지 '대학교에 들어갈 시험을 잘 치르는 데에 도움이 되는 그림'일 뿐입니다.

 

 미술학원마다 길가에 갖가지 그림을 내놓습니다. '우리 미술학원에 다니면 이렇게 잘(?) 그린다'고 뽐내려고 내놓을 텐데,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이 '죽은' 그림이 무슨 잘 그린 그림이냐고, 기껏 학원에 다녀서 배우는 그림이 이렇게 삶부스러기 하나도 깃들이지 못하는 말라빠지고 비틀어진 죽은 그림뿐인가 싶어 안쓰럽습니다.

 

 미술학원 다니고 나서 홍익대학교나 다른 미대로 들어간다 할 때, 그 대학교 울타리에서 배우는 그림이란 어떤 그림일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홍대를 나와서 홍대 앞에 미술학원 차려 강사가 되거나, 다른 미술학원에 강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작은극장 앞 세거리에 섭니다. 신호등이 고장났습니다. 차 다니는 흐름을 살피면서 성큼성큼 건넙니다. 사람들 북적북적 넘치는 '기차길옆고기집' 옆을 지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참말 고기 잘 먹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 고기 먹는 품새나 부피를 헤아리면, 나라안에서 길러서 잡는 고기 숫자로는 턱없이 모자랄 텐데, 누구 하나 이런 대목을 걱정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마, 소든 돼지든 어떻게 기르고 어떻게 잡는지 아는 사람도 없을 테며, 눈여겨보거나 마음쓰는 사람 또한 없겠지요. 나라 안밖에서 고기소와 고기돼지를 어떻게 기르는지, 그리고 이렇게 고기소와 고기돼지를 기르느라 지구 삶터가 얼마나 망가지고 무너지면서 우리들 마시는 물과 바람이 더러워지는지까지 살피지 않을 테지요.

 

 손쉽게 사먹는 닭고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기닭을 어떻게 기르고 잡는지 살펴본 적이 없으리라 봅니다. 닭한테 무엇을 먹이는지, 달걀 낳는 닭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돌아보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저라고 해서 딱히 더 잘 알지 않습니다. 저라고 하여 남보다 일찍 깨닫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런저런 흐름과 이음고리와 참모습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고기먹기를 꺼리게 되는 한편,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에는 생협에서 장만하는 매무새로 고쳤습니다.

 

 골목길 모퉁이를 도는데, 밥집 한 곳이 바뀌었습니다. 예전 곳은 장사가 잘 안 되었던 듯. 새로 들어선 곳은 장사가 어찌 될는지. 이제 헌책방 〈숨어있는 책〉 앞에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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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 책꽂이에는 1000원짜리 책을 꽂아 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책방 앞 책꽂이에는 1000원짜리 책을 꽂아 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2) 어떤 눈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헌책방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책방 밖에서 책을 손질합니다. 너무 추운 날은 책방 안에서 손질하지만, 갓 사들여 책방에 꽂아 놓을 책에는 웬만큼 책먼지와 책때가 있기 마련이라, 가벼운 손질과 닦기는 바깥에서 합니다. 손질을 마치고 책값까지 붙인 다음 1층과 지하 매장으로 따로따로 옮깁니다.

 

 일하는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구경하면서 사진 몇 장으로 담습니다. 그러고 나서 꿉벅 인사를 합니다. "어, 왔어?" 하는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갑니다. 가방을 문간에 내려놓습니다. 홀가분해진 몸이라 기지개를 쭉 켭니다. 다시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가방에서 볼펜 한 자루 꺼낸 뒤 골마루를 둘러봅니다.

 

 마리아 칼라스라는 사람 삶을 다룬 《피에르 쟝 레미/이유경 옮김-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문장,1978)라는 작은 책이 보입니다. 마리아 칼라스가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지만, 옆지기한테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이름난 분이라 합니다. 요즈음도 예전 같은 이름값이 있을는지 궁금한데, 노래라는 한길을 파면서 당신 삶을 꾸린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어서 고릅니다.

 

 《박도-항일유적답사기》(눈빛,2007)가 보입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실으시던 글을 이렇게 책으로 묶어내셨군요. 책으로까지 나온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퍽 늦게 알게 됩니다. 인터넷 글로 읽었던 이야기이지만, 책으로 다시 읽으면 또다른 느낌을 받지 않으랴 싶고, 인터넷 글은 저 혼자 읽고 끝이지만, 책으로 묶인 글은 제가 간직하고 있으면 우리 아이한테도 읽히고 오래오래 물려주면서 '지난날 이런저런 이야기로 우리 생각과 마음을 살찌우는 책이 있었음'을 나누게 됩니다. 기꺼이 집어듭니다. 아니, 헌책방에서 반값 조금 못 되는 눅은 값으로 장만하게 되니, 고마운 마음으로 집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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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일꾼이 앉는 자리 옆 책꽂이. ⓒ 최종규

책방 일꾼이 앉는 자리 옆 책꽂이. ⓒ 최종규

 

.. 만주국 시절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안 의사의 총에 맞아 쓰러진 그 자리에 1미터 높이로 유리집을 지어 놓고 전등을 켜서 표지해 두었다고 하지만, 중국이 해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철거해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하얼빈에 사는 민족혼을 지닌 우리 동포라면 어찌 그 지점을 지울 수 있으랴. 우리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서명훈 회장은 당신의 가슴속에 그 표지를 또렷이 새겨 놓고 지난 역사를 증언했다 … 다행히 우리 일행은 서 회장의 증언으로 정확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다른 분들이야 어찌 그 지점을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  (24쪽)

 

 사진책 《田村 茂-日本の風土と文化》(硏光社,1976)를 봅니다. 사진책이니 그냥 한 번 펼쳐 보아야지 하고 넘기는데, 뜻밖에도 몹시 잘 빚고 아주 잘 엮은 흑백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는 일본사람들 삶터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 겉장만 보아서는 '좀 고리타분하거나 흔한' 사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 다릅니다. 아마, 따로 겉싸개가 있었으리라 싶고, 겉싸개에는 한결 눈길을 끄는 사진과 꾸밈그림이 깃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으레 '문화재 사진'이나 '문화인물 사진'이라 하면 빛깔 넣은 사진으로 담아야 제맛이요 제멋이라 여기는데, 이와 같이 오로지 흑백으로 보여주는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남다름을 느끼게 하고, 문화재와 사람을 한결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사진책을 엮은 분은 흑백으로 찍어서 잘 찍은 사진이 아니라, 흑백을 사진으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제대로 깨달은 분이 아니랴 싶습니다. 이 사진책하고는 거꾸로, 흑백이어야 한결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 일부러 흑백으로 찍기도 합니다만, 이때에도 마찬가지인데, 빛깔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줄을 올바로 모르니 그예 흑백으로 찍어야 하는 줄 엉터리처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목길 사진을 흑백으로 찍어야 참맛이라고 생각한다든지, 헌책방은 흑백사진이 어울린다고 하는 이야기가 다 똑같습니다. 골목길이나 헌책방이나 낡거나 흘러간 곳이 아님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골목길'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헌책방'임을 모르니, 골목길이나 헌책방을 사진으로 어떻게 담아내야 우리들 눈길과 마음길에 콕콕 박히면서 꾸밈없이 껴안도록 하느냐를 잊거나 잃는다고, 아니 처음부터 동떨어진 데에서 겉멋과 겉치레에 치우친다고 느낍니다.

 

 또다른 사진책 《80년 5월에서 87년 6월(한국민주화대장정)》(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7)을 봅니다. 두툼하게 묶인 사진자료 《80년 5월에서 87년 6월》입니다. 신문과 잡지에 실렸던 사진에다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진을 고루 묶습니다. 우리 현대 역사를 돌아볼 사진자료로 괜찮구나 하고 생각하는 한편, 기록사진이 머무는 자리는 어째 모두 똑같은가 하고 생각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요즈음 사진쟁이들이 담는 요즈음 집회나 시위나 운동 모습 사진이나 1980년대 사진이나 1960년대 사진이나 하나 다를 대목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찍힌 해가 다르고 찍은 사람은 다른데, 사진으로 읽어내거나 받아들이게 될 느낌은 매한가지입니다. 고스란히 받아적는다는 '기록'이지만, '어느 때'와 '어느 자리'와 '누가 누구를'이라는 대목이 사진에 스미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진이 사진으로 오롯이 설 수 없다고 봅니다.

 

 하긴,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만 사진으로 오롯이 못 서 있지 않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복지도 교육도 오롯이 서 있지 않아요. 오롯이 서 있는 한국 삶터란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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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둘러보면서 차 한 잔 즐길 수 있도록 작은 자판기 하나가 책방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최종규

책을 둘러보면서 차 한 잔 즐길 수 있도록 작은 자판기 하나가 책방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 최종규

 

 (3) 책 팔아 번 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마쓰오카 다스히데/김창원 옮김-바닷가 도감》(진선출판사,2000)을 구경합니다. 벌써 열 해 가까이 묵은 책이 된 《바닷가 도감》은 아주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훌륭한 책을 지난 열 해라는 세월에 걸쳐서 따로 사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어린이가 일본 바닷가를 살피기에 꼭 알맞춤하게 엮은 훌륭한 도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여러모로 엇비슷한 자연 삶터인 한국이기 때문에, 이만한 책을 우리 말로 옮겨도 '한국 어린이가 한국 바닷가를 살피기에 그럭저럭 괜찮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어쩐지 서글픕니다. 우리는 왜 우리 손으로 '우리 어린이가 우리 바닷가를 즐겁게 거닐면서 즐겁게 알아가도록 도와줄 우리 도감'을 엮어내지 않는가요. 아니, 왜 엮어낼 생각을 안 하는가요. 돈이 많이 들어서? 네, 맞아요, 돈이 많이 들지요. 그러면 돈을 들여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만한 돈쯤 들여야 하지 않나요.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그만한 돈은 돈조차 아니지 않습니까.

 

 쉽게 하는 말이라서 그만한 돈이라지만, 《바닷가 도감》 같은 책 하나 나오자면 우리 돈으로 수십 억이라는 돈이 바쳐져야 합니다. 이럴 때라야 비로소 멋지고 훌륭하여 두고두고 읽히고 물려줄 《바닷가 도감》 하나 태어납니다.

 

 책 하나에 무슨 수십 억이냐고 물을 분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국어사전 하나 제대로 엮어내자면 수백 억이 있어야 합니다. '도감'도 '사전' 못지않게 품과 땀과 돈을 바쳐야 제대로 빚어내게 됩니다. 이리하여 여느 출판사 힘으로는 이만한 책을 묶기 힘듭니다. 웬만큼 돈이 있고 사람이 있는 출판사에서가 아니면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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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문에는 몇 가지 알림쪽이 붙어 있습니다. ⓒ 최종규

책방 문에는 몇 가지 알림쪽이 붙어 있습니다. ⓒ 최종규

 

 우리네 책마을은 어떨까요. 우리네 책마을에 이만한 돈을 바칠 만한 출판사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틀림없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우리네 책마을 가운데에도 이만한 돈을 바칠 출판사는 있습니다. 아쉽게도 새 건물 짓고 땅장사 하고 비데 장사 하는 데에 돈이 바쳐지는 일이 잦을 뿐이지만. 안타깝게도 책으로 번 돈을 책에 안 쓰고 있을 뿐이지만.

 

 1억을 바쳐 빚는 책은 10억을 낳고, 10억을 들여 빚은 책은 100억을 낳습니다. 다만, 돈만을 바친다고 이루어지는 책이 아니라, 이만한 대가를 스스럼없이 치러낼 마음가짐으로 책을 빚어내면 그만한 보람이 돌아온다는 소리입니다. 치러야 할 값을 치러야 책다운 책이 빚어지고, 사람들이 '이야, 이러니까 책이 문화이지!' 하고 생각하면서 책을 가까이하려고 생각하게 됩니다. 책에 바쳐야 할 땀을 책에 안 바치니,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고 맙니다. 책에 들여야 할 돈을 책에 안 들이니, 사람들이 책을 굳이 읽을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책에 스미게 해야 할 넋과 얼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니,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도 당신들 넋과 얼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해서 '책 읽은 손이 사람 사랑하는 손'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책이야기를 쓰는 사람들한테도 매한가지입니다. 책이야기 하나에 온삶과 온땀을 들이고 쏟아야, 이런 책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책으로 한 발짝 다가섭니다. 어영부영 대충 쓰는 책이야기로는 사람들이 오히려 뒷걸음을 치거나 등을 돌리게 할 뿐입니다.

 

 후유. 한숨 한 번 길게 내쉬면서 《바닷가 도감》을 덮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 나라에서는 앞으로 열 해 스무 해가 지나도록 이만한 책이 나오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입니다. 몇 군데 큰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이런 도감붙이를 엮어내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직 '훌륭하다'거나 '아름답다'는 말을 붙이기에 부끄러울 뿐더러, 오히려 나날이 시들시들해집니다. 어쩌면, 이런 좋은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분들도 지금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목돈을 들일 주머니는 안 되지만, 좋은 책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우리는 못하더라도 다른 이들이라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우나마 이런 책이라도 옮기자고 하는.

 

 다시금 망설이다가 《바닷가 도감》까지 장만하기로 합니다. 책값을 셈합니다. 헌책방 〈숨어있는 책〉 아저씨는 '날이 갈수록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좋은 책을 꾸준하게 사들여 갖추는 일'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담배 한 개비 빼어물며 이런저런 말씀을 잇습니다.

 

 헌책방 아저씨 말씀을 가만가만 들으면서 생각합니다. 헌책방에 '좋은 책'이 깃들자면, 먼저 새책으로 '좋은 책'이 팔리고 읽혀야 하며, 이 좋은 책을 읽은 분들이 아낌없이 헌책방으로 책을 내놓아 다른 이들이 눅은 값으로 이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책을 물건이 아닌 사랑으로 맞아들인 다음, 다시 사랑으로 떠나보내 주어야 비로소 헌책방 책꽂이는 아름다움과 훌륭함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책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새기면서, 집안 책꽂이가 아닌 마음밭 책꽂이에 고이 꽂아 두려는 몸가짐이 될 때 바야흐로, 헌책방 문화뿐 아니라 책 문화가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나 혼자 움켜쥐는 지식이 아닌 널리 나누는 지식이 될 때, 책에 쓰이는 말과 글이 한결 낮은자리로 내려오면서 못 배운 사람들도 즐겁게 책을 가까이할 수 있고, 나 혼자 거머쥐는 지식이 아닌 두루 나누는 지식이 될 때, 안방에 있는 금송아지가 아닌 헌책방에 있는 보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처음 〈숨어있는 책〉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를 하면서 책방 문을 나섭니다. 무거워진 가방을 두 어깨와 등허리로 느끼며 걷다가, '이 땅에 아름다운 책 하나'라고 느끼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이 아름다운 책이 깃드는 모든 곳 또한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데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 아름다운 책이라 한다면, 이 책을 손에 쥔 모든 사람이 아름다워져야 하지 않느냐는 데로 생각이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이러는 사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어느 헌책방을 찾아가 보아도 새로운 헌책을 사들일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하는 분은 아직 못 보았다. 그러나 새로운 헌책을 더 사들여서 갖추고 싶으나 책이 없어서 못 갖춘다. 우리 나라 출판사들이 좋은 책 내려고 많이 애쓰는 줄은 알지만, 부디 우리 나라 출판사들이 좀더 애써서 좋은 책을 많이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은 언제나 듣는다. 헌책방 사람들한테는 헌책 팔아 얻은 돈을 다시 헌책 사들여 갖추어 놓고 손님한테 내어주고픈 마음인데, 우리네 책마을 사람들한테는 책 팔아 얻은 돈을 다시 좋은 책 만드는 데에는 제대로 못 쓰는 흐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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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책> 아래층 골마루. ⓒ 최종규

<숨어있는 책> 아래층 골마루.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서울 노고산동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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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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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0 11:35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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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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