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의 유혹' ... 아찔하네!

강진 금서당 옛터의 작은 미술관

등록 2009.03.12 08:33수정 2009.03.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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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늘 대하던 일상의 고향 자연이 선생 작품의 배경이다. ⓒ 조찬현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금서당'이 있다. 영랑생가 부근의 강진 보은산 선인봉 중턱이다. 금서당은 신교육의 발상지이며 강진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곳이다.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이 5세 되던 1906년에 이곳에서 한문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911년에 입학 1915년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이후 완향 김영렬 화백이 반파된 건물을 보수하여 작품 활동을 해왔던 곳으로 현재는 그의 미망인 박영숙(70) 여사가 찻집을 운영하며 유작을 관리하고 있다. 김화백은 74세 되던 해인 2004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나 빛바랜 장승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가의 수선화가 제일 먼저 반긴다. 


금서당은 작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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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해왔던 금서당 건물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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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의 수선화 ⓒ 조찬현


일본식 가옥이다. 안채로 통하는 연못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동백의 붉은 꽃잎이 떠다닌다. 금서당을 찾아왔는데 다소 의아하게 '완향찻집' 팻말이 붙어있다.

"차 한 잔 하면서 그림구경하세요. 매실차도 있고 유자차도 있어요."

매실차(5천원)가 좋다며 매실차를 권한다. 집안 곳곳에 김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메주를 갉아먹고 있는 쥐, 누렁이 황소가 송아지와 함께 누워있는 바닷가풍경, 누드화 등이다. 김화백의 그림에는 스케치가 없다. 사물을 보고 바로 그려낸다. 자연을 보고 마음으로, 느낌으로 그려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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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당의 작은 미술관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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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황소'는 칠량 옹기마을 봉황바닷가의 옛길을 배경으로 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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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를 갉아먹고 있는 쥐 ⓒ 조찬현


"선생님 그림에 상상화는 없어요. 실제를 보고 그린 다 현실이죠."
"그림 그릴 때는 밥을 드려도 안 돼요. 혼이 담긴 그림을 그려야 되니까. 그림마다 선생님의 혼이 담겨있어요."
"그림을 그리다가 하루 종일 서있어. 그림자가 올 때까지... 나무에도 그늘이 오고, 돌멩이에도 그늘이 와"


완향의 그림에는 서정적인 강진의 산하와 바닷가 풍경이 오롯이 담겨있다. 물에서 엄마 젖가슴의 푸근함을 느낀 김화백은 항상 물을 즐겨 그렸으며 산은 조상같이 대했다고 미망인 박 여사는 전한다.

유화에 서예를 접목한 누드화 ...독특한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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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아담과 이브)'는 가우도 섬이 배경이다. 또한 어성초와 상사화, 밤나무버섯, 소나무, 등이 그림에 스며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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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에 서예를 접목한 누드화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 조찬현


작품 '황소'는 칠량 옹기마을 봉황바닷가의 옛길을 배경으로 했다. 유화에 서예를 접목한 누드화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120호 크기의 '원죄(아담과 이브)'는 가우도 섬이 배경이다. 또한 어성초와 상사화, 밤나무버섯, 소나무 등이 그림에 스며있다. 작은방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우도가 집안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누드화가 많은데요, 저걸 보고 그냥 뒀어요?"
"집에서 누가 벗은디... 처음에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지."
"원죄의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가우도가 보이네. 재수가 좋네. 여자는 24살짜리여, 남자는 동생기사였어, 늙으면 안 돼 새파란 총각이여."

다음 글은 김화백의 화집 작가노트의 일부분이다. 이 글을 보면 선생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듯싶다.

어려서부터 나는 울적할 때마다 정처 없이 집을 나서는 버릇이 있었다. 집에서 발길 닿는 대로 들길이고 산길이고 바닷가고 가다보면 더 이상 다리가 아프고 고단해서 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그냥 거기에 앉아서 쉰다. 주위를 보면 그저 늘 대하던 일상의 자연이요. 풍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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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옹의 휴일'은 유명한 여자 아나운서 시할아버지여."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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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술관을 지키는 박영숙 여사 ⓒ 조찬현


"'이옹의 휴일'은 유명한 여자 아나운서 시할아버지여. '보리베기 부부'는 쩌기 칠량이여, 나랑 같이 다녔응께 내가 다 알어."
"사는 게 팍팍해. 돈을 몰랐던 선생이 돈은 다 기증해 불고 아무것도 안 남겼어. 그 양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자신만만 했지."

안방 뒤편에도 정원이 있다. 강진 보은산의 약수가 이곳까지 흐르고 있다. 다산초당 가는 길의 바닷가에서 여인이 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똑같이 아내에게 재현을 시켜 모델삼아 그렸다는 그림이 그곳에 있었다.

"내가 보고 뻘 묻혀 갇고 모델을 한 거여."

고 김영렬 화백과 박영숙 여사가 수십 년을 살아온 이 집에는 김화백의 그림과 오래된 책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수많은 유작들이 빼곡한 화실은 작은 미술관을 연상케 한다.

김화백의 고향 강진은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고려청자의 발상지이며 영랑 생가와 다산 유적지, 전라 병영성 등의 문화유적도 많다. 남도답사 1번지이기도 한 선생의 고향은 기름진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도 풍부한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금서당 #미술관 #누드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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