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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WBC, '월드 별명 클래식'

[WBC] 야구만큼 재밌는 한국 대표 선수들의 닉네임 열전

09.03.18 10:03최종업데이트09.03.1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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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적' 일본을 이기고 '난적' 멕시코까지 꺾었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의 활약이 눈부시다. 대표팀의 잇따른 낭보는 경기 침체로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일본과 미국에서 한국 대표팀이 맹활약을 펼치는 동안 한국에 남은 야구팬들은 선수들 못지않은 '열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 대한 패러디 물이 속속 생산되고, 새로운 별명 짓기가 인터넷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 또 하나의 WBC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름 하여 '월드 별명 클래식'이다.

[정현욱] 내가 조선의 '국노'다!

'국민 노예'로 등극(?)한 대표팀 불펜 투수 정현욱 ⓒ 인터넷 화면 캡처

지난 시즌 삼성 라이온즈에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한 정현욱은 접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마운드에 올랐다. 주로 불펜 투수로 활약하면서도 127이닝을 던지며 규정이닝까지 채웠다.

마운드에 자주 오르다 보니 팬들로부터 '마당쇠'란 별명에 이어 '정노예'란 별명까지 얻었다. 비슷한 처지였던 SK 와이번스의 정우람(77.2이닝), LG 트윈스의 정재복(71.2이닝)과 '3대 정노예'로 불렸을 정도.

노예처럼 마운드에 수도 없이 올랐지만, 53경기에서 10승4패, 11홀드, 평균자책점 3.40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그 덕에 서른두 살의 정현욱은 생예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제 경기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정현욱은 그런 우려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1라운드 일본과 두 번의 경기에 모두 등판해 3이닝 동안 4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런 정현욱에게 야구팬들은 "이제 삼성의 노예가 아닌 조선의 '국노'다"라며 신분 상승(?)을 시켜줬다. 명성황후의 '내가 조선의 국모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정현욱의 머리에 가채를 씌운 합성사진도 큰 인기를 끌었다.

정현욱은 일본전 대활약의 기세를 몰아 2라운드 멕시코전에서도 2.2이닝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멕시코 타선을 틀어막았다. 이쯤되면 귀족보다 위대한 노예가 아닐 수 없다.

[봉중근] 봉미미에서 '의사 봉중근'으로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봉미미'였던 봉중근은 이제 '의사 봉중근'으로 불린다. ⓒ 인터넷 화면 캡처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였던 봉중근은 2007년 LG에 복귀하자마자 '굴욕'을 겪었다.

시즌 중 삼성에 입단한 외국인 투수 브라이언 메존은 인터뷰 중에 "메이저리거였던 봉중근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미미한' 선수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하필 복귀 첫 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6승 7패 평균자책 5.32)을 냈던 봉중근은 순식간에 야구팬들 사이에서 '봉미미'로 불렸다.

2008년 마침내 봉중근은 '전직 빅리거'의 실력을 뽐냈다. 최하위 LG 트윈스의 마운드를 홀로 지켜내며 11승 8패 평균자책점 2.66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어느덧 별명도 '봉미미'에서 '봉타나'로 바뀌었다. 자신감 넘치는 투구가 마치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요한 산타나(뉴욕 메츠)를 연상케 한다는 의미였다.

봉중근은 WBC에서도 '봉타나'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본과 벌인 1라운드 순위 결정전에 선발로 출장해 5.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된 것이다. 특히 일본 야구의 '심장' 스즈키 이치로를 3타수 무안타로 틀어막아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가만히 있을 야구팬들이 아니었다. 봉중근의 대활약 후, 뜬금없이 '의사 안중근'의 위인전 겉표지가 인터넷을 떠돌았다. '안중근'이 '봉중근'으로 바뀌었고, 이토 히로부미 자리엔 이치로가 있었다. 하찮은 '봉미미'가 위대한 '의사 봉중근'으로 격상되는 순간이었다.

봉중근은 18일 일본을 상대로 한 2라운드 1조 승자전에서도 선발로 등판할 예정이다. 봉중근의 다음 별명이 '일본 킬러'로 굳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태균] 지구상에서 별명이 가장 많은 선수

김태균은 이번 WBC에서도 자신이 때려낸 타점 만큼이나 많은 별명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 연합뉴스 김현태


봉중근도 참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이 선수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별명이 많은 선수일 것이다. 별명이 어찌나 많은지 가장 대표적인 별명이 '김별명'이다. 한화 이글스의 4번 타자에서 대한민국 4번 타자로 등극한 김태균이다.

김태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야구팬들에 의해 금방 별명이 된다. 강타자인 그에게 '김홈런', '김타점' 등은 가장 기본적인 별명이다. 베이스러닝을 하는 모습을 빗댄 '김질주', '김뒤뚱'도 있다.

작은 해프닝이나 인터뷰 발언에도 별명이 붙는다. 동료들과 염색하러 미용실에 가서 먼저 염색한 류현진의 모습을 보고 혼자만 머리를 잘랐단 이유로 '김배신', 지난 올림픽에서 대표팀 선발이 좌절된 후 "친구인 이대호가 국가대표에 뽑히는 게 맞다"는 발언으로 '김탈락', '김의리'로 불렸다. 인터넷에는 무려 280여 개나 되는 김태균의 별명을 정리한 게시물도 있다.

WBC에서도 김태균 별명 짓기 놀이는 계속됐다. 입국하는 사진에 김태균의 커다란 명품 가방이 뜨면 '김된장', 1라운드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WBC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김태균의 사진이 뜨면 '김메인', 중계 화면에서 스물 일곱인 김태균의 나이가 스무 살로 뜨면 '김약관'이다.

특히 이번 2회 WBC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승리를 이끈 그에게 야구팬은 '김희망'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붙여줬다. 1회 대회서 1타수 무안타에 그쳐, 혼자 쓸쓸히 작은 태극기를 흔들던 '김소외' 김태균에겐 감회가 남다른 2회 WBC가 될 것이다.

이범호의 '꽃포'와 고영민의 '가제트 수비'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큰 인기를 얻기 전부터, 한화 이범호는 야구팬들에게 '꽃남' 혹은 '꽃범호'라 불렸다. KBS <개그콘서트>의 '꽃보다 아름다워' 코너에서 "안녕, 난 민이라고 해"를 유행시킨 개그맨 오지헌과 닮은 외모 덕이었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는 이범호가 홈런을 칠 때 '꽃폭죽'을 그래픽 처리하며 그의 아름다운 외모를 빛내주기도 했다. 이범호는 이번 WBC에서도 필요한 순간마다 '꽃포(홈런)'를 터뜨려 주고 있다.

만화 주인공 '형사 가제트'와 닮은 고영민은 '고제트'라 불린다. 내야뿐만 아니라 외야까지 커버하는 넓은 수비 범위 때문에 붙은 '2익수'라는 별명도 있다. 고영민은 16일 멕시코전에서 홈런과 번트 안타를 때려 내는 '만능 활약'을 펼쳤다. 

이 외에도 1회 대회 일본전에서 천금 같은 수비를 펼친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라 불리고, 대표팀의 유일한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미국 팬들로부터 '추추 트레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디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대회가 끝났을 땐 선수들 모두 '국민 영웅'이란 별명이 붙길 기대해본다.

WBC 야구 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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