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목회자의 인도사랑 순례기

고진하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등록 2009.03.31 12:00수정 2009.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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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비채) 표지 사진 '강물 위를 떠가는 꽃등' ⓒ 고진하

사탄의 무리들이 밤 이슥하도록 촛불을 들고 종로통에 모여서 난장을 치는 나라? 이미 꺼져버렸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밑바닥 촛불 민심의 폭발은 이명박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던 기독교 목회자의 눈에 그리 비쳤을 수도 있겠다. 그 자칭 기독교 신앙인의 입에서 불에 달군 송곳처럼 비집고 나온 사탄이란 저주의 언설을 듣고서 분심을 느꼈던 촛불이 어디 한둘에 그치랴! 검역 주권의 확립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졸지에 악마의 졸개들이라는 매도 아닌 매도를 당해야 했다. 그 이후 기독교에 대한 무심한 호의마저 스스로 접어버린 촛불들이 적진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란 저런 것인가, 편을 가른 다음, 제 편 아니다 싶으면 죄다 마귀의 종자들을 만들어 대는 무시무시한 독단론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정말 그러한 것인가.

유태 사제들의 선민주의를 그 뿌리에서부터 공격한 예수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 받들어 모셔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되려 스스로 선민임을 과시하면서 무례한 강박증으로 신앙을 전파하면서부터 한국 사회의 기독교는 의혹과 비판 내지 경멸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교회의 이면에서 돌아가는 모양새에 눈뜬 시민들은 기독교인들의 위선과 비관용을 목격하면서 분노와 망연자실의 지경 속을 헤매고 있다.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치들의 좌판을 회초리를 들어 뒤엎어 버렸다…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어떠한가. 성전 안으로 상인들을 불러 모은다. 그것만이라면 따따부따 할 것도 없다. 문제는 교회가 더 시장스런 시장터로 변해 버렸다는 것. 영성은 마케팅 기법으로 대체되었다. 잘 나가는 목사들은 예배하러 온 기업가들보다 더한 성공지상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설교를 들어 보라. 성공, 성공, 성공에 대한 부추김과 맹목적인 믿음이 메시지의 주종을 이룬다. 그렇다면 그 교회는 이제 기독교의 영성이 천사의 은빛 날개처럼 깃들 곳은 아니다. 그곳은 예수의 사랑과 말씀을 팔아 챙긴 돈으로 웅장한 교회 건물과 신자의 양적 팽창이라는 허영을 살찌우는, 우상의 시장터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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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팀타라 숲의 보리수 나무 인고 서벵골 주 샨티니케탄 근처의 이 숲은 인도의 세계적인 시인 타고르가 명상한 곳으로 유명하다. 보리수 나무는 줄기에서 나온 기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 옆으로 번지며 수역을 확장한다. 반경 500미터에 이르는 나무도 있다고 한다 ⓒ 고진하


타구르 아체!

근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이란 신간을 펴낸 고진하 시인은 원주 치악산 한 자락에 마련한 건물 없는 한살림 교회에서 개신교 목회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인은 인도의 힌두교 사원을 순례하던 어느 날 아침 '타구르 아체'를 소리 높여 외치며 크고 둥근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가오는 어느 인도인을 목격한다. 호기심이 많은 시인은 딸에게 물어 본다.

"'타구르 아체'가 뭘 판다는 소리냐?"
"(…) 벵골어로 '타구르'는 '신상'이란 뜻이고, '아체'는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신상을 팔러 다니는 장사꾼인 셈이지요."

시인은 이 말을 듣고 씁쓸한 웃음을 터뜨린다. '신을 팔아? 하하하…' 시인은 왜 웃었을까. 신들의 나라에서 신을 파는 상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음에 대한 냉소였을까? 아니면, 기독교 세속주의가 절정에 달한 한국의 현실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일까? 이 에피소드 다음에 시인이 웃었던 웃음의 속내가 엿보인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여전히 신을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는 불구의 영혼을 가진 이들이 있다. 소위 장사꾼의 심성을 가진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된다. 신이 거하는 처소인 자기 자신도 시장 바닥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신의 처소인 그들 존재의 중심에 신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이익'만이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216~217쪽)

시인은 팔래야 팔 수 없고 살래야 살 수 없는 것을 팔고 사서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모든 종교물신주의자들에게 안타까운 미소를 보낸다. 어떻게 신과의 교감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영성을 매개로 신을 매매 현물로 여길 수 있는지 개탄스러워하고 있다. 신학교 시절부터 기독교의 내밀한 영성에 마음이 맺히고 성서 장자 노자를 비롯해서 최근에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우파니샤드』에 천착하고 있는 고 시인은 서양의 위대한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입을 통해 신과 거래하는 자들의 우행을 가리킨다.

신은 자유로운 분이기에 거래를 할 필요가 없다. 진리는 어떤 거래도 원치 않는다. 신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이유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은 신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217쪽)

값 있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과연 첫사랑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허공을 날아가는 새의 자취에 금본위제를 도입할 수 있을까? 새맑은 공기, 땅의 틈새에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 언덕의 오솔길 옆 천년의 세월을 가뿐히 인 노송들의 묵연한 자태를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미친 사람들은 소유를 외치며 구매하겠다고 돈을 뿌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착각은 이제 그만. 그것은 소유가 아니다. 망상에 가까운 소유욕은 파괴의 다른 이름이다.

시인은 고파이 숲에서 '나마스카'란 인사말의 뜻을 깨닫는다. '내 안에 있는 신이 그대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 시인은 이 말의 깊은 의미에 기쁨을 느끼며 신에 이르는 영성의 빛을 재발견한다. 신은 값 없는 존재다, 아니 값을 매길 수 없는 존재다. 그러기에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값을 매길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다고 해서 인간의 알음알이에 따라 제멋대로 규정될 수 있다는 방종이 허용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에고의 욕심을 떠난 자리에서 신성을 자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갈래갈래진 종교간, 종파간의 싸움질이나 전쟁보다 보편적 영성의 가치와 무관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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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침묵과 숨의 고요함 뉴델리 근처 숲의 요가 수행자. 요가란 '마음을 묶거나 통제한다'는 뜻으로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인도 사상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요즘 미국에서 수입된 살빼기나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할리우드 요가와는 본질적인 관련성이 없다. ⓒ 고진하


기독교 목회자의 인도 사랑 순례기

물론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은 힌두교 사원 순례기나 영성 순례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인은 드문 열린 자세로 무교회주의자이자 박정희 독재에 홀홀단신으로 맞선 고 함석헌 옹이 기독교 독단주의에서 벗어나 <바가바드 기타>에 심취했듯 여정 틈틈이『우파니샤드』를 읽어가며 자신의 영성을 발견하는 내용이 300 쪽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것'이란 마야를 놓아버린 시인은 발품 하나에 의지해 거대한 대륙을 걷고 또 걷는다. 그 걸음은 성격 급한 한국인의 눈에 부러울 정도로 느긋하다. 인도에서 신격화한 소처럼 세상없이 걸으면서 인도의 길바닥을, 인도의 숲과 사원을, 인도의 영성을 음미하고 명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도 처음의 이국스런 감미로움을 지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배어나온다. 아마도 그런 느낌은 자기와 다르다고 그래서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해 오던 것 사이의 겉껍질을 녹여버리고 벌거숭이 참자아를 껴안으려는 방랑자의 숨죽인 긴장감이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진하 목사는 이 책을 마감하면서 보편적 영성에 마음벼리를 심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는 영영 기독교 특유의 비관용과 독선의 사슬과는 아주 절연한 듯, 가끔 행간에 진리를 사모하는 지구별 순례자의 쓸쓸한 애상이 묻어나온다….

홀연히 떠나야 할
순간이 다가오면

홀가분히 떠날 수 있도록
그대의 삶을
항상 가볍게 하라

- 고진하의 '1분의 지혜' 중에서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비채, 2009


#고진하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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