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허락한 바닷길을 건너다

[여행] 바다가 갈라진 길 위를 달려 제부도에 갔습니다

등록 2009.04.05 15:30수정 2009.04.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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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허락한 몇 시간동안 바다가 갈라져 생기는 제부도 가는 길입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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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인 서신면 버스터미널에 내려 애마와 함께 제부도 바닷길을 향해 내리 달려갑니다. ⓒ 김종성


우리나라에는 바다가 갈라지면서 길이 생겨 건너갈 수 있는 섬들이 있습니다. 보통 모세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달이 지구와 친해지고 싶은지 자꾸만 끌어 당기려고 하면서 생기는 신비한 자연의 현상이지요.

이렇게 달님이 허락해야 바닷길이 나는 곳으로는 영화로도 유명해진 실미도가 있고, 지자체에서 아예 바다 갈라짐 축제를 하는 진도가 대표적인 달의 섬입니다. 이번에 그런 섬 중의 하나인 제부도(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바닷길을 통해서 달려가 보았습니다.


먼저 이런 섬들에 갈 때는 미리 달이 허락한 시간(바다 갈라짐 시간)을 알아 보고 가야지 섬에 들어 갈 수 있겠지요. 물때는 늘 같으면 재미 없을까봐서 달님이 매일 매일 다르게 해놓았으니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www.nori.go.kr)에 가서 우측 상단에 있는 각 섬들의 바다 갈라짐 시간을 확인하면 됩니다.

제부도행 버스가 다닌다는 수원역까지는 전철에 애마를 실었습니다. 이 1호선 전철은 수원을 지나 천안, 온양온천도 간다하니 마치 기차를 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수원역에 내려 오른편 방향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서 400번이나 400-1번 버스를 타고 제부도와 가까운 서신면 버스 터미널에 갑니다. 버스를 타고 바로 제부도 바닷길 입구까지 가고 싶다면 수원역 왼쪽 방향 버스 정류장에서 번호도 재미있는 1004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서신면 버스터미널까지는 종점행이라 마음 편하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차창밖 봄을 감상합니다. 섬 마을을 오가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특징은 초행길인 손님들이 물어보는 내릴 장소를 기억했다가 정류장에 서면 용케도 알려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탄 버스의 기사님도 정류장 안내 방송과는 상관없이 몇몇 손님들에게 라이브로 정류장 안내를 해주시네요. 수원역과 제부도 사이의 동네들을 두루두루 들리면서 1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봄 햇살에 그만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소박한 서신 버스 터미널에 내려 내내 접혀 있었던 애마를 쫙 펼쳐서 제부도 입구 바닷길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 있어 찬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바다가 갈라진 길을 어서 달리고픈 마음으로 불어오는 맞바람을 다리힘으로 버텨 냅니다. 

농촌 마을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볏집 태우는 냄새와 논두렁의 파릇파릇한 풀들이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갑자기 길 양쪽편에 커다란 유람선 카페와 울긋불긋한 간판의 식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제부도 바닷길 입구에 다 왔다는 신호지요.


요즘 기상청은 날씨를 잘 못 맞추어 '구라청'이란 소리를 듣지만, 국립해양조사원의 물때 알림 시간은 정확하네요. 차들이 줄지어 서서 제부도 가는 에스라인 바닷길 위를 달려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 바닷길엔 차도밖에 없었는데 지금 보니 널찍한 인도가 나있네요. 다행히 다른 차량들에 신경을 안쓰고 인도를 따라 여유롭게 달려 나아갑니다. 에스자로 멋있게 구불어진 바닷길 중간 중간에 서서 몇 시간전 만해도 바다 한 가운데였을 주변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짭쪼름한 갯벌 내음을 맡으며 걸어 보기도 합니다.

바닷물이 잠시 빠져 나간 갯벌에는 모이를 찾는 새들과 조개를 캐는 섬 주민이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갯벌 위 건너편엔 이름도 재미있는 누에섬과 등대가 걸어가면 금방 닿을 듯 한 번 들르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누에섬도 제부도처럼 바닷길이 열려야 비로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달의 섬이랍니다. 바닷길 위에서는 주정차가 안되니 가며 서며 풍경을 즐기지 못하는 차안 속 사람들이 부러운 표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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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전 만해도 바다 한가운데 였을 갯벌위에서 주민들이 해산물을 캐고 있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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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위에서 보이는 새끼섬 누에섬의 등대가 한 번 들리라고 손짓하네요.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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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룩끼룩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갯벌위를 거니는 사람들과 잘 어울립니다. ⓒ 김종성


제부도에 들어서면 왼쪽과 오른쪽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해안도로가 나옵니다. 아무 도로를 타고 달려도 해안선의 총 거리가 12km인 작은 섬이라 오래지 않아 한바퀴를 돌게 되지요. 해안도로는 언덕이 없는 평지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 더욱 좋습니다. 섬의 민박집이나 슈퍼에서 5000원에 두세시간 자전거를 빌려주니 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해안길 중 특이하게도 포장된 길이 아닌 나무로 된 산책로가 길게 나있습니다. 저는 끌바(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감)를 하며 나무 산책로를 걸어 갔는데 바닷가 높은 위치에 있어 바닷 바람도 시원하고 전망이 참 좋습니다.

제부도의 바닷가에는 매바위라 불리는 외계스러운 괴석들이 당당히 서있어 심심할뻔한 바닷가에 이채로움을 줍니다. 썰물시간을 틈타 매바위까지 산책도 해보고 아예 신발을 벗고 저 멀리 갯벌까지 나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곳에도 성수기 관광철에는 도시인들을 위해 갯벌체험 이벤트를 한다고 합니다. 

끼룩끼룩 소리를 내며 제부도 바닷가를 날아 다니는 많은 갈매기들은 괭이 갈매기라고 합니다. 이 괭이 갈매기들은 가까이에서 보니 모두 노랑 부리에 파랗고 빨간 루즈를 바르고 다니는 멋쟁이들이더군요. 까칠한 눈매에 화려한 입술을 보니 쌀쌀맞은 도시 처녀 같기도 합니다.

생기있는 목소리의 갈매기들과는 달리 섬 마을 사는 개들은 춘곤증에 겨운지 모두 철퍼덕 땅에 앉아 다 귀찮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는 애마와 저를 쳐다보고만 있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자전거를 탄 여행자에게 소리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던 견공들인지라 봄햇살이 고맙기만 합니다.

푹신푹신한 바닷가를 거닐기도 하고 많기도 한 식당을 겨우 골라서 칼국수도 먹고 숙박촌과 식당들에 둘러싸여 숨어 있다시피한 섬안의 동네도 천천히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달님이 허락한 시간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바닷길이 사라지면서 제부도가 진짜 섬이 되려고 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 저는 애마를 타고 바닷길이 사라지기 전에 육지로 되돌아 왔지만, 다음번에는 제부도 바닷가 나무 산책로 위에서 아름다운 저녁 노을도 보고 사라진 바닷길에 어쩔 수 없이 섬에 갇혀도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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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해안길에는 전망도 좋고 낭만적인 나무 산책로도 있답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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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멀리 개성적으로 생긴 매바위를 향해 바닷가를 걷는 즐거움도 큽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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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사는 갈매기는 모두 입술에 파랑, 빨강 루즈를 예쁘게 칠하고 다니는 멋쟁이들 이네요.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1호선 전철 금정역 4번 출구앞에서 제부도 바닷길 입구까지 가는 330번 좌석버스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1호선 전철 금정역 4번 출구앞에서 제부도 바닷길 입구까지 가는 330번 좌석버스도 있습니다.
#제부도 #서신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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