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쉼터 북적, "외환위기 때도 이런 적 없었다"

최근 경기침체와 고용시장 악화로 인한 노숙자들의 증가

등록 2009.04.04 12:29수정 2009.04.0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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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노숙자 쉼터에서 입소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로 노숙자들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노숙자쉼터가 붐비고 있다. ⓒ 최재혁


"일이 없으니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이 아무개(남, 60)씨는 현재 서울 영등포에 있는 노숙인 쉼터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고향이 충남 서산인 이씨는 30년 전에 상경했다. 서른 살 때였다.

"내가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그래도 젊었을 땐 늘 일이 있었지. 페인트공(도장공)을 하면서 가게도 차리고, 결혼도 하고, 딸도 둘 낳고, 영등포에 전세 얻어서 살았어."

이씨가 처음 노숙을 하기 시작한 건 97년 외환위기가 덮쳤을 때다. 조그만 페인트 가게가 문을 닫게 되고 전세금도 다 날리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영등포역에서 노숙을 하게 됐다. 그 이후 일용직 일을 하면서 월세 방에서 근근이 지내왔다. 그러다 최근 들어 고용 시장이 악화돼 일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월세 방에서 쫓겨나 노숙인 쉼터로 오게 됐다. 4개월 전의 일이다.

서울 청량리에 있는 가나안 노숙자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박아무개(남, 58)씨도 일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쉼터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노숙인 쉼터에 입소하면 기초생활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쉼터가 지자체로부터 1인당 1500원의 식비를 지원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요샌 인력사무소에선 청소일도 찾을 수 없다. 47만원(기초생활비) 받고 한 달에 며칠만이라도 일하면 하루에 7000원하는 쪽방에서 자면서 살 수 있다. 남은 돈은 지방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쳐준다."

박씨는 5년 전부터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쪽방촌과 노숙자 쉼터, 그리고 서울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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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쉼터의 신발장에 신발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노숙자들은 쉼터 입소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개인공간의 부족을 들고 있다. ⓒ 최재혁


급증하고 있는 노숙자

서울시에서 노숙인 사업에 대한 총괄을 위탁 받아 노숙인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작성한 '전국 노숙인 실태와 과제' 문서에 의하면, 노숙인 규모는 작년 8월 4448명에서 올해 2월 5463명으로 1015명 증가했다. 이 중 쉼터를 이용하는 노숙인은 3163명에서 3875명으로 712명 증가했고, 거리 노숙자는 1285명에서 1588명으로 303명 증가했다. 최근 경기 침체와 고용 시장 악화로 영세 자영업자와 실직자들이 다시금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자료의 현장 조사는 주요 거리 노숙지에서만 행해졌기에 실제 노숙인구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다 사실상 노숙자와 다를 바 없는 서울, 부산, 인천 등 5대 도시의 쪽방 생활자 6202명, 이외의 불안정 거주자 그리고 급격히 증가하는 빈곤층 비율을 감안하면 앞으로 노숙자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노숙인 쉼터는 추운 겨울에 이용자가 증가하고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감소한다. 쉼터에서 알선해 준 일자리를 구해 나가기도 하고, 음주금지, 기상•취침 시간의 제한 등 쉼터의 규율을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추운 겨울에만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외환위기 때도 정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서울 청량리에 위치한 가나안 노숙인 쉼터에서 지난 12년 동안 사무국장을 맡아 온 김수재 목사는 "이곳의 정원은 180명인데 올해가 되면서 250명까지 받았다. 96년부터 운영했지만 아이엠에프(97년 외환위기) 때도 정원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렇게 급증한 건 처음이다"라고 말하며 "이젠 더 이상 받을 수 없어 찾아오는 노숙자들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 사업은 지난 2005년 보건복지부에서 각 지자체로 이양됐다. 이 때문에 노숙인시설 관계자들은 "노숙자들에 대한 복지사업이 파편화 돼 전국적 차원에서 노숙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노숙인복지를 정부사업으로 재이양 할 것"을 시급한 현안 과제로 꼽았다.

또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는 급속히 불어나는 노숙인의 복지와 장기적인 노숙인정책을 위해 이들을 위한 쉼터와 상담센터 등의 확충이 절실하고, 나아가서는 임시주거, 매입임대주택 등을 통해 '노숙인 주거복지 지원의 확대'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숙자 #노숙자쉼터 #노숙인 #고용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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