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길에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이 있는 삶 101] 한국사람은 어떻게 배울까

등록 2009.04.17 16:27수정 2009.04.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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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한국사람은 어떻게 배울까

경기도 교육감을 뽑는 4월 8일을 앞두고, 경기도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네로 선거공보물이 날아왔습니다. 모두 다섯 사람 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제 교육감선거는 끝났고, 이명박 정권이 내세우는 교육 문제를 비판하는 한 분이 뽑혔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폐휴지로 버려지는 공보물을 거두어들여, 다섯 사람이 내세우는 다짐을 죽 헤아려 봅니다. 모두 한목소리로 공교육 살리기, 사교육 줄이기, 안전한 학교급식, 영어 북돋우기, 학교폭력 뿌리뽑기를 말합니다. 지난번 교육감을 뽑을 때 내놓았을 다짐은 이번 다짐과 얼마나 달랐을까 궁금합니다. 앞으로 또다시 교육감을 뽑게 될 몇 해 뒤 다짐은 또 얼마나 다를까 궁금합니다. 이러한 다짐을 장차관이나 교육행정 맡은 사람이나 교장교감이나 여느 교사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어떻게 받아들이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는지 궁금합니다. 공교육과 사교육과 학교급식과 영어와 학교폭력에 얽힌 실타래는 '새 교육감을 뽑는 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는가 궁금합니다.

스물세 권짜리 만화책 《좋은 사람》(다카하시 신) 13권을 펼칩니다. 이제 막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대학생(예비 실업자)이 얼굴보기 자리에서 면접관한테 눈물로 외칩니다.

..  "아까 말씀하셨죠? 기업은 살아남아야 하는 시기에 있다고요.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 신입사원 면접도 보고, 시험도 치르고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다면 저만, 학생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회사도 필사적으로 개인의 장점을 찾아야죠! 그래야 회사도 학생도 진정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 테크닉이나 학력, 성차별에 좌우되지 않도록, 다들 취직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맘을 갖지 않도록 … 정말 일하고 싶은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모두가 노력할 수 있도록, 그런 방법을 회사도 꼭 찾아 주시라구요!" .. (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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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군데 넘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몰려 있는 '옛 선인재단' 들머리는 아침과 저녁으로 몹시 부산합니다. 수천이 아닌 수만 아이들이 '배우러' 오가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한테 우리 어른들은 교과서와 시험성적 아닌 다른 마음결을 북돋우고자 이끄는 교육을 꾸려내지 못합니다. 새 교육감 선거는 아이들한테 얼마나 살갗으로 다가가는 일이 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 최종규


'배우는 자의 권리를 찾아서'라는 작은 이름이 붙은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츠지모토 마사시)라는 책을 펼칩니다. 19세기 서민 교육 가운데 하나였다는 '데라나이쥬크' 이야기를 읽습니다.

..  "선생을 올바로 선택하는 것이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즉 데나라이쥬크의 학습과 교육은 충분한 신뢰 아래 선생과 아이와의 일 대 일 사제 관계, 즉 개별적인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 아이니까 아직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발상은 애당초 없었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배우는 것이 원칙이었다." .. (30∼31, 45쪽)


일제수업을 하는 한국에서 이제야 교육감을 '우리' 손으로 뽑는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는 우리를 '가르칠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또한 우리가 고르지 못합니다. 나이가 차면 꼭 초중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교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등 떠밀립니다. 그런 다음 도시에서 회사원 되는 시험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런 흐름에서 교육감 한 사람 '우리' 손으로 뽑는들 무엇이 나아질까 알쏭달쏭한데, 정작 이 교육감을 뽑을 수 있는 나이는 열아홉을 넘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권리란 없고 의무만 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책이란 없고 교재만 있습니다.

 ㄴ. 전철길에 책읽기

마흔 해 넘게 지내온 보금자리를 재개발하겠다는 도시 정책 때문에 바람 맑은 곳으로 삶터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쓰는 어른'인 김구연 님이 낸 《파로호반의 여름》(동아사,2009)을 읽습니다.

..  "달님의 발바닥은 / 언제나 하얀 맨발. // 바람처럼 가볍게 / 눈송이처럼 걷는다. // 마른 낙엽 밟아도 / 소리 나지 않고 // 밤새도록 지구를 누비고 다녀도 /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다 // 가시울타리도 성큼성큼 / 지붕도 높은 산도 단숨에 넘는다." .. (달님의 발걸음)

덜컹거리는 전철칸, '어르신 자리'로 마련했다가 걸상을 들어내어 바퀴걸상이 설 수 있도록 해 놓은 자리에서 책을 읽습니다. 이 전철에는 처음부터 '어르신 자리'가 있지 않았습니다. 버스 또한 '어르신 자리'를 처음부터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르신을 모실 줄 몰라서가 아닙니다. 어르신한테 으레 자리를 내주는 매무새가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하며 마음을 쏟을 수 있으나, 굳이 자리를 마련하지 않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기울이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깃들던 마음을 잃거나 놓으면서 따로 '어르신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뒤이어 이 자리에 '장애인'이 함께 앉도록 합니다. 다음으로 '아이 밴 어머니'를 함께 앉도록 하고, 이제는 '아기나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 어버이'한테도 함께 앉도록 손을 내밉니다.

그러나 큰도시에 마련된 전철에는 계단이 너무 많아 오르내리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버스를 너무 거칠게 몰아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있어도 흔들리기 일쑤입니다.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자전거로 오가기에 가붓하지 못하며, 걸어서 다니기에는 더욱 버겁습니다. 틀림없이 수많은 대중교통이 생기고, 자가용 다닐 길이 넓어지며, 힘여린 사람들 자리가 하나둘 생기지만, 좋아지고 있는 세상이라는 느낌은 그리 안 듭니다. 9호선까지 늘어나는 서울 지하철인데, 서울 한 곳에만 이처럼 많은 대중교통을 마련해도 괜찮은가 모르겠고, 애서 마련한 대중교통을 타는 우리들은 서로한테 얼마나 마음눈을 뻗치고 있는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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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길에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책 없이 멀뚱멀뚱 가는 사람이 있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람과 꿈나라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 최종규


서울에서 천안이며 의정부며 이제는 더 먼 데까지 전철길이 뚫리기에, 서울사람이 오가기에 좋은 한편 서울로 볼일 보는 사람한테 좋기는 하지만, 서울 아닌 곳에서 사람들끼리 오가거나 볼일을 보기에는 아직 까마득합니다. 천안에서 청주를, 수원에서 인천을, 인천에서 일산을, 일산에서 의정부를, 의정부에서 구리를, 구리에서 춘천을, 빙빙 에돌지 않으며 오갈 차편은 거의 없습니다.

가방에서 《늙음은 하느님의 은총》(성바오로출판사,1991)이라는 책을 새로 꺼내어 읽습니다.

.. "나이를 먹어도 늙음을 모른다는 것은 과연 좋은 일일까요? … 일에 열중하다 보니, 나와 나 자신을 반성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 (28, 33쪽)

인천과 용산, 천안과 서울, 서울과 부산을 잇는 빠른 차편은 틀림없이 우리한테 시간을 줄여 줍니다. 아껴진 시간만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데를 돌아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맑은 얼굴로 느긋하게 마주하게 되는 사람은 나날이 줄어든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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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13 - 애장판

타카하시 신 지음,
학산문화사(만화), 2005


#책읽기 #책 #교육감 #전철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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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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