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과 개성 듬뿍 사진과

[사진은 삶이다 16] 내가 부대끼는 삶대로 느끼고 찍는 사진

등록 2009.04.20 18:11수정 2009.04.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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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길에 책을 읽습니다. '장 보드리야르'라는 분이 쓴 미국 여행 이야기 《아메리카》(산책자,2009)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익히 알려진 프랑스 학자인 터라, 이분이 1986년에 내놓은 미국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를 헤아려 보고자 책을 넘기는데, 번역이 여러모로 얄딱구리해서 좀처럼 글뜻을 삭여내기 힘듭니다.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헤아리기 어렵도록 잔뜩 비비 꼬아 놓았구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의미의 근절 속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준거 없는 사막 같은 형식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또 사라짐의 비교적(秘敎的 esoteric)인 매력을 잘 보존한다는 조건에서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까?" 따위인데, 장 보드리야르라는 분이 워낙 이렇게 말을 하고 글을 쓰기에 한국말로 옮길 때에도 이처럼 갖은 지식자랑이 담길 뿐 아니라 우리 말틀을 깨부수는 모습으로 옮겨야 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한껏 지식자랑이 넘치는 프랑스말이었다 하여도, 이 책을 읽을 한국사람을 넉넉히 돌아보거나 살피는 번역가 마음씀이었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나는 뉴욕 마라톤이 당신으로 하여금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것은 세계 종말의 스펙터클이다." 같은 대목은 앞글보다는 수월하지만, 제 살갗으로는 와닿지 않고, 제 가슴으로는 스며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이요 글치레이기 때문에, 장 보드리야르 생각줄기나 문학이 살갗으로 파고들거나 가슴으로 와박힌다고 말씀할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하품과 졸음하고 싸우면서 힘겹게 책장을 넘깁니다. 1/4쯤 읽었을 무렵, 더는 버티어 내지 못합니다. 살림집을 옮겨야 해서 여러 날 거의 날밤을 지새우며 일한 터라 졸음은 끝없이 몰려오는데, 고리타분한 글투로 옮겨진 책을 읽다가는 그만 전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잠이 들겠습니다. 《아메리카》를 덮습니다. 가방에서 다른 책 하나를 꺼냅니다. 일본사람 '츠지모토 마사시'라는 분이 쓴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知와사랑,2009)라는 책입니다. "학교교육의 기능을 좀더 축소하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교육에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지도록 궁리하는 편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지역에서 혹은 가정에서,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기업에서도 교육에 대한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 처음부터 누구라도 명인이 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명인이 보여주는 다양하면서도 아름다운 개성은 개성의 문제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지금 나는 개성이란 무엇인가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지만, 개성이란 의도해서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 그 수업에는 자기를 텅 비워 피가 날 정도로 맹연습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었다. 그들이 처음부터 개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단지 보다 나은 예술인이나 기사, 야구 선수를 목표로 노력했다. 개성은 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258∼261쪽)" 열흘 앞서부터 읽던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는 눈자위를 꾹꾹 눌러 주면서 다 읽어냅니다. 책을 덮고 가늘게 한숨을 쉽니다. 쪽수와 부피가 더 많지만 크기는 작은 《일본인은 어떻게 공부했을까?》라는 책은 책값이 13000원이고, 쪽수와 부피는 더 작지만 크기는 살짝 큰 《아메리카》라는 책은 책값이 140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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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골목집 노란 개나리가 조금씩 지면서 푸른 잎이 돋습니다. 개나리가 활짝 노랄 때에도 즐거웠지만, 푸른 잎이 돋아날 때에도 좋습니다. 골목집 방범창틀과 한것 어울리면서. ⓒ 최종규

▲ 개나리와 골목집 노란 개나리가 조금씩 지면서 푸른 잎이 돋습니다. 개나리가 활짝 노랄 때에도 즐거웠지만, 푸른 잎이 돋아날 때에도 좋습니다. 골목집 방범창틀과 한것 어울리면서. ⓒ 최종규

 

 문득, 한국땅 시골 농사꾼이나 도시 노동자 가운데 몇 사람쯤 장 보드리야르 님 이 번역책을 사들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까 하고 궁금해집니다. 흔한 말로 '먹고살기 바쁜 세상'이라 하지만, 사람들 눈길이 온통 돈벌이에만 쏠려 있는 오늘날, 장 보드리야르 님 책하고 츠지모토 마사시 님 책은 얼마나 사랑을 받거나 손길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담긴 줄거리가 괜찮을지는 모르나 얄딱구리하게 옮겨진 책이란, 담긴 줄거리가 괜찮을 뿐 아니라 썩 훌륭하면서 옮김말이 꽤 살가운 책이란, 우리 손에 얼마나 닿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와 같은 책을 찾아 읽는 분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될까 궁금해집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곰삭이며 무엇을 펼쳐 보이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가방에서 세 번째 책을 꺼냅니다. 김남주 시인이 살아 있을 때 내놓은 《시와 혁명》(나루,1991)이라는 산문모음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돈없는 사람은 그런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져 있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법률로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 누가 미국이나 중국이나 소련으로 가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습니까?(181쪽)" 책을 덮고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둘레를 돌아봅니다. 술에 체한 듯한 할배 두 분이 저쪽 끝에서 큰소리를 내며 싸우고 있십니다. "너 뭐야?" "너 죽고 싶어?"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나 많이 먹었어."  "그래 너 몇 살이냐고?" "넌 얼마나 먹었는데 지랄이야?" "나이가 세 살이나 어린 게 어디서 야야 하고 있어?" "그래, 야야 하는데 어쩔래?"

 

 싸움소리가 커지자 사람들 눈길에 두 할배한테 쏠립니다. 전철에는 싸우는 두 할배와 비슷한 또래인 할배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런데, 이분들 또한 하나같이 술을 드신 몸이요, 그저 싸움을 구경할 뿐이며, 당신들끼리 중얼거리는 말투로 그저 욕이나 해댑니다. 전철을 타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나이 먹어 추레하고 싸움질이나 하느냐'는 눈치요, 똑같이 싸움구경입니다. 술 먹은 할배들은 싸우기 앞서도 전철칸이 시끄럽도록 떠들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술 먹지 않은 여느 때에도 이야기를 나눌 때 꽤나 큰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타는 전철에서 오로지 당신들 이야기만 듣고 있으라는 듯.

 

 싸우는 할배나 싸움구경 할배나 거의 다 같은 역에서 내립니다. 내리고 나서도 싸우는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전철이 움직이니 비로소 조용해집니다. 썰물입니다. 마치, 전철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나 예수천국 외치는 분이 한참 떠들다가 지나갔다는 느낌입니다. 싸움이라면 마땅히 말릴 노릇이지만 말릴 마음이 들지 않게 익숙해지고 만 모습이요, 괜히 말리면 말리는 사람만 사이에서 곱욕을 먹고 새우등이 터지게 되는 모습이라 할는지.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모습이 되었으며, 귀찮으니 지나치자고 하는 모습이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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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수수꽃다리 해마다 봄이면 골목집 수수꽃다리가 활짝 피어납니다. 이 골목으로 드나드는 분이 많지 않은 데다가, 사진찍는 이들도 이리로는 거의 오가지 않기 때문에, 이 꽃나무를 심어 기르는 분과 저는 해마다 싱그러운 꽃내음을 듬뿍 즐깁니다. ⓒ 최종규

▲ 골목길 수수꽃다리 해마다 봄이면 골목집 수수꽃다리가 활짝 피어납니다. 이 골목으로 드나드는 분이 많지 않은 데다가, 사진찍는 이들도 이리로는 거의 오가지 않기 때문에, 이 꽃나무를 심어 기르는 분과 저는 해마다 싱그러운 꽃내음을 듬뿍 즐깁니다. ⓒ 최종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가다듬으려고 했던 생각은 흐지부지 흩어집니다. 마음이 사나워지고 골이 띵합니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자전거로 내처 달린다면 이런 꼴은 안 보아도 되었을 텐데 싶습니다. 자가용으로는 가까우나 대중교통으로는 멀고, 자전거로도 만만하지 않은 길인데, 자가용으로 오가는 분들은 이런저런 씁쓸한 모습을 부대끼거나 맞이할 일이란 없을 테지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책을 다시 펼칩니다. 눈은 멍하게 뜬 채 생각에 잠깁니다. 아니, 조금 아까 읽던 김남주 시인 글을 되새깁니다. 김남주 시인이 이 글을 쓰던 1980년대를 떠올립니다. 그때에도 대학등록금은 꽤 비쌌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엄두를 내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날 대학등록금 또한 퍽 비쌉니다. 가난한 사람은 꿈조차 못 꾸지만, 제법 살 만하다 싶은 분들도 등허리가 휩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지난날에도 제법 살 만하다 싶은 살림인 분들 또한 대학등록금에 등허리가 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오늘날뿐 아니라 지난날에도 '비싼 학비'를 소리높여 따졌다고 느끼며, 이렇게 따지는 일이 끊이지 않지만 비싼 학비는 조금도 깎이지 않을 뿐더러 해마다 더 많이 오르기만 할 뿐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우리 나라는 국방비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데다가, 갖가지 토목공사에 엄청난 돈이 쓰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살림을 북돋운다며 자동차회사 같은 재벌회사 살리기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정작 교육비나 문화비나 복지비로는 아주 깨알만큼만 나라돈을 쓰게 됩니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이런 사회 얼거리를 어느 만큼 읽어내고 있을까요. 등록금을 반값으로 깎으면 대학교가 다닐 만해질까요. 등록금을 반값으로 깎으면 대학교는 그 반값만큼을 어디에서 채우게 될까요. 아이들은 왜 대학교에 들어가야 했을까요. 우리 사회는 대학교 안 가는 사람한테 어떻게 대접을 할까요. 등록금을 반값으로 깎아 주기 바라는 대학생은 제 앞가림과 매한가지로 고달픈 나날이 이어지는 이웃 아픔에 얼마나 눈길을 두고 있을까요.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을 취재하고 사진을 찍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런 삶터에서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깎으며 시위를 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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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품 아기 잠을 더 자야 하지만 안 자는 아기를 어르면서 아빠 다리 사이에 끼고 어르지만, 아빠보고 일하지 말고 같이 놀자고 하는 아기를 이기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혼자서만 아기를 본다면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 전은경/최종규

▲ 아빠 품 아기 잠을 더 자야 하지만 안 자는 아기를 어르면서 아빠 다리 사이에 끼고 어르지만, 아빠보고 일하지 말고 같이 놀자고 하는 아기를 이기기란 어려운 노릇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혼자서만 아기를 본다면 찍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 전은경/최종규

 

 대화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탑니다. 덕이동 로데오거리에서 내려 걷습니다. 구멍가게에서 얼음과자 몇을 사서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집에 닿습니다. 손발을 씻고 여러 날 만에 아기를 안아 봅니다. 아기 사진도 여러 날 만에 찍습니다. 밤 한 시쯤 되어서야 겨우 칭얼거림이 잦아든 아기가 잠들고, 아빠와 엄마도 잠이 듭니다. 새벽에 기저귀를 갈 때마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웁니다. 우리 동네에서 지역공동체 운동을 하는 분이 한 달 반쯤 앞서 아기를 낳았는데 힘들고 번거로워서 천기저귀를 잘 못 쓰게 된다고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옆지기 식구들이 보는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할아버지가 아기 기저귀를 갈아 주는데, 이분이 사는 집은 옛 기와집이고 종가집이라 하지만 종이기저귀를 씁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세상을 바르게 읽어내려 하는 사진쟁이, 세상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아내겠다고 하는 사진쟁이, 세상사람한테 자유와 민주와 평화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진쟁이, 그리고 사진 하나에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담으려고 하는 사진쟁이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할 때에 어떤 기저귀를 쓸는지.

 

 모두들 다 다른 삶이라고는 하지만 곰곰이 헤아려 보면 우리들은 다 같은 삶을 꾸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똑같이 아침을 맞이하고 똑같이 자가용을 끌거나 대중교통에 시달려 도심지 회사로 나아가 돈벌이 일을 하다가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자가용을 끌거나 대중교통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되풀이.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 하루하루요, 새로운 길로 가 본다든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든지 헌책방이든 동네책방이든 잠깐 들러 본다든지 하는 일이 없는 하루하루인 가운데.

 

 똑같이 생긴 얼굴이 없고 똑같이 들리는 목소리가 없으나, 모두들 똑같이 보이는 옷을 사입고 똑같이 보여지도록 얼굴과 몸매를 꾸밉니다. 똑같은 아파트에서 똑같은 가공식품을 똑같은 냉장고에 넣어 두면서 똑같은 조미료를 치면서 마련한 다음 똑같은 텔레비전 앞에서 똑같은 풀그림을 바라보며 울고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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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사진 찍기란 아기는 스스로 사진에 찍히고 싶은지 아닌지 어른으로서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그저 어른이 찍으니 찍힐 뿐입니다. 나중에 커서 돌아본다면, 아기로서는 무엇하러 이런저런 모습을 다 찍었느냐 할 텐데, 다 자란 아기로서는 마땅하지 않을는지 모르나, 아기와 함께 살아온 아빠 엄마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이야기가 담기기 때문에 아기 사진을 찍게 됩니다. ⓒ 최종규

▲ 아기 사진 찍기란 아기는 스스로 사진에 찍히고 싶은지 아닌지 어른으로서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그저 어른이 찍으니 찍힐 뿐입니다. 나중에 커서 돌아본다면, 아기로서는 무엇하러 이런저런 모습을 다 찍었느냐 할 텐데, 다 자란 아기로서는 마땅하지 않을는지 모르나, 아기와 함께 살아온 아빠 엄마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이야기가 담기기 때문에 아기 사진을 찍게 됩니다. ⓒ 최종규

 

 새로움이 없는 삶이라 한다면, 볼펜을 든 글쟁이한테서 나오는 글에는 새로움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움이 사라진 삶이라 한다면, 붓을 든 그림쟁이한테서 나오는 그림에는 새로움이란 깃들지 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움을 일구지 않는 삶이라 한다면, 사진기를 든 사진쟁이한테서 나오는 사진에는 새로움 귀퉁이 하나마저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입맛을 버리고 조미료를 쳐대는 글이요 그림이요 사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 참모습이란 내팽개친 채 화장품을 발라대는 글이요 그림이요 사진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내 목소리를 지우고 기계소리를 가득 채워대는 글이요 그림이요 사진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글쓰는 사람 부쩍 늘고, 그림그리는 사람 제법 늘며, 사진찍는 사람 몹시 늘어난 오늘날 한국땅입니다. 웬만한 분들은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책 한 권쯤 어렵잖이 내놓습니다. 미술학원이나 미대 기웃거리면서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또 일러스트이든 작품 몇 가지 손쉽게 내놓습니다. 사진학과 많고 사진강좌 넘치며 인터넷 사진모임 가득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배워 찍는 사람까지 해서 사진책이나 사진전시회 수두룩하게 쏟아져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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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이란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헌책방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있는 그대로 모습을, 헌책방을 찾아간 내 눈길로 담아내어야 헌책방 사진입니다. ⓒ 최종규

▲ 헌책방 사진이란 헌책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헌책방 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있는 그대로 모습을, 헌책방을 찾아간 내 눈길로 담아내어야 헌책방 사진입니다. ⓒ 최종규

 

 틀림없이 창작은 늘어납니다.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이 꽃을 피웁니다. 저마다 개성에 따라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며 빚어냅니다. 그런데 글이 글다운가를 살피는 글은 늘지 않습니다. 그림이 그림다운가를 짚어내는 그림은 줄어듭니다. 사진이 사진다운가를 이야기하는 사진은 자취를 감춥니다.

 

 멋있는 글ㆍ그림ㆍ사진, 예쁜 글ㆍ그림ㆍ사진, 기막힌 글ㆍ그림ㆍ사진, 새로운 글ㆍ그림ㆍ사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잘 쓴 글ㆍ잘 그린 그림ㆍ잘 찍은 사진은 언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멋있는지를 밝히고 어디가 예쁜지를 짚으며 무엇이 기막힌지를 돌아보고 어떻게 새로운가를 헤아리는 글ㆍ그림ㆍ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편집이 뛰어나고 글솜씨가 빼어나다며 대문사진이 기막히다 하여, 이렇게 꾸며진 신문이 우리가 기쁘게 받아들 만한 신문이 되겠습니까. 틀을 잘 잡고 흔들리지 않으며 빛을 알맞게 맞추고 느낌이 싱그럽다고 하여 우리 가슴에 짠하게 파고드는 사진이 되겠습니까. 뚜껑을 들어내고 시원하게 흐른다는 청계천도 보기에 따라서는 멋있고 어여쁩니다만, 청계천을 냇물이나 시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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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는 스스로 어떤 사진감을 골라서 사진으로 담아낸다 하든, 내 사진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눈은 하루아침이 아닌 무척 기나긴 세월에 걸쳐 내가 걸어가려는 사진길에 온몸을 바칠 때 비로소 열립니다. 헌책방을 찍는 저는 헌책방에 제 모든 삶을 바치면서 헌책방을 받아들인 다음에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강원도 춘천 〈경춘서점〉) ⓒ 최종규

▲ 사진찍기는 스스로 어떤 사진감을 골라서 사진으로 담아낸다 하든, 내 사진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눈은 하루아침이 아닌 무척 기나긴 세월에 걸쳐 내가 걸어가려는 사진길에 온몸을 바칠 때 비로소 열립니다. 헌책방을 찍는 저는 헌책방에 제 모든 삶을 바치면서 헌책방을 받아들인 다음에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강원도 춘천 〈경춘서점〉) ⓒ 최종규

 

 부슬부슬 빗소리를 들으면서 밥을 합니다. 누런쌀과 콩과 팥과 옥수수 들을 고루 섞어 밥을 합니다. 으레 잡곡이라 하는 밥이지만, 저로서는 조금도 '잡스러운 곡식'이 아닌 '온갖 곡식'을 모두어 밥을 합니다. 흰쌀로만 지은 밥은 밥만으로는 맨숭맨숭하지만, 온갖 곡식을 모둔 밥은 다른 반찬 없이도 입안에 도는 냄새와 맛이 좋으며 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습니다. 하루에 한 끼니나 두 끼니쯤, 이렇게 온갖 곡식으로 밥을 해서 날푸성귀를 반찬 삼아 먹는다면 제 밥거리로 넉넉합니다. 저는 저한테 가장 좋은 밥을 찾아서 즐깁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가장 좋으면서 즐거울 손빨래를 하고, 저한테 가장 좋으면서 기쁜 걷기마실과 자전거마실을 합니다. 저한테 가장 좋으면서 뿌듯한 책읽기를 꾸준히 하고, 저한테 좋으면서 사랑스러운 아이 돌보기를 합니다. 그래도 아이 돌보기는 퍽 힘든 일인데, 힘들기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릴 때가 있으면서도 더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느낍니다.

 

 글 한 줄을 쓰면서 저한테 가장 좋고 신나도록 갈고닦는 한편, 사진 한 장을 찍으면서 저한테 가장 좋고 반가운 모습을 남깁니다. 그러나 저한테만 좋거나 반가운 모습으로만 찍지는 않습니다. 첫째로는 저한테 가장 좋거나 반가울 수 있어야 하는 사진, 그러니까 '좋은 사진'이어야 하고, 둘째로는 내가 받고 느낀 좋은 느낌을 이웃하고도 나눌 수 있도록 내 모든 '좋은 솜씨'를 담아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는 가운데 언제나 저 스스로 제 삶을 저한테 가장 좋은 삶으로 가꾸는 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밥과 좋은 벗과 좋은 술과 좋은 님과 좋은 책과 좋은 글과 좋은 일과 좋은 땀과 좋은 놀이와 좋은 삶이 골고루 모두어지면서 '좋은 사진'으로 하나씩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4.20 18:1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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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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