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협곡 십리길... 6·25도 비껴가다

[남한 최후의 오지 삼척·울진을 가다①] 덕풍마을과 용소골

등록 2009.05.12 19:07수정 2009.05.1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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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1일부터 18일까지 녹색연합은 남한의 마지막 오지라는 경상북도 울진과 강원도 삼척 지역을 두 발로 걸어서 돌아보는 녹색순례를 진행한다. 왜 울진·삼척일까? 이 지역은 백두대간의 또 다른 줄기인 낙동정맥이 지나는 지역이고, 국내 최대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인 왕피천을 품고 있다. 또, 멸종위기·보호종인 산양의 최대 서식지이기도 하다. 녹색연합은 7박8일 녹색순례를 통해 울진·삼척지역에서 잘 보존된 자연환경과 야생동물의 서식환경을 살펴보고, 자연을 지키면서 지역 주민이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려고 한다. [편집자말]

굽이굽이 물결치듯 흐르는 저 깊은 산줄기는 울진, 삼척지역이 얼마나 깊은 골짜기인지 한눈에 보여준다. 삼척시 가곡면과 봉화군 석포면의 낙동정맥 경계인 석개재에서 바라본 산줄기 모습. ⓒ 녹색연합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다가 태백산에서 숨을 한 번 고른다. 여기에서 또 다른 산줄기가 동해안을 따라 영남지방 한가운데를 내달려 부산까지 다다르는데, 이 산줄기가 바로 낙동정맥(洛東正脈)이다. 이 낙동정맥이 시작되는 곳에 울진이 있다. 울진군의 서쪽으로 낙동정맥이 지나면서 백암산과 통고산, 통길산, 오미산 같은 1000m가 넘는 산이 솟아 있고, 동쪽으로는 200m 정도로 낮은 구릉지대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바다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은 골짜기가 깊고 봉우리와 능선이 첩첩장벽처럼 펼쳐져 예부터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웠다. 그 덕분에 용소골, 중림골, 석포골과 같은 골짜기와 함께 왕피천, 매화천과 같은 하천이 지금까지 태곳적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전통 지리에서는 태백산 지역으로 아우러졌던 곳이다.

경북 울진과 봉화, 강원도 삼척 세 도시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는 응봉산이 자리 잡고 있다. 높이는 998.5m로 매우 높은 산은 아니지만 여러 산군이 어우러져 거대하고, 바람이 세고 계곡도 깊어 매우 세차다. 또한 동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느라 해무(海霧, 안개)가 많고 그 풍광이 절묘하다.

두 발로 느끼는 덕풍마을

원시 자연림 속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용소골은 우리나라 최후의 비경지대다. 최후라고 할 만큼 경치는 빼어나지만 들어서기는 쉽지 않은 곳. 그래서 아직까지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 녹색연합


용소골은 그중 백미(白眉)다. 용소골을 포함한 부채살 지형은 멸종위기·보호종인 산양의 최대 서식지이기도 하다. 용소골은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이 들머리다. 그래서 녹색연합은 이번 울진지역 녹색순례의 첫걸음을 덕풍마을에서 시작했다. 빼어난 자연환경을 품은 지역으로서 주민과 산양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덕풍마을은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 주차장에서 들어가야 한다. 순례단은 하천을 따라 협곡으로 휘어 감는 십리 길 발품 팔았다. 6.25전쟁 때는 마을 입구가 좁아 군인들도 계곡 안에 마을이 있는 줄 모르고 그냥 지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몇 차례의 태풍 이후 입구부터 마을까지 난 길 대부분이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지금은 차가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차를 타면 15분이면 도착하지만, 이 지역을 제대로 느끼는 맛은 역시 두 발로 걷는 것이다.

굽이굽이 산 속 깊은 곳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고, 양쪽으로 늘어선 5월의 높은 산은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린다. 덕풍마을 바로 앞 다리, '부추밭교'를 지날 때 다리 옆의 밭에서 어르신이 소 대신 직접 쟁기를 끌고 계셨다. 마을에선 십여 년 전만 해도 벼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 줄면서 논을 전부 밭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주민들에 따르면 밭이 흙 반, 돌 반이란다.


자른 나무의 밑둥에서 어른 8명이 밥도 먹어

덕풍마을 주변의 계곡은 어디든 병풍처럼 둘러싸인 협곡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탁월한 자연경관과 각종 멸종위기 동물들의 서식처다. ⓒ 녹색연합


소 대신 쟁기로 밭을 가는 덕풍마을 주민. 마을 사람들은 주로 농사을 짓고 있는데 자급자족할 정도만 생산하고 있다. ⓒ 녹색연합


덕풍마을에는 13가구가 살고 있다. 주민들은 민박과 옥수수, 고추, 감자 등의 작물 농사와 송이 채취를 한다. 그러나 1960년대, 산판(山坂)이 활발하던 시절에는 가구 수가 100호를 넘었다고 한다. 그때 한국 토종소나무인 금강소나무들이 대거 베였다. 지금도 용소골 일대를 돌아보면 바위들이 인위적으로 깎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른 아름드리 소나무를 바닷가 마을 호산까지 이동하기 위해 깔았던 레일의 흔적이다.

당시 임소(현 산림청)는 직접 용소골을 폭탄으로 발파해가면서 도로를 닦았다고 한다.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한 레일이 작은 계곡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 사람이 용소골에서 레일을 따라 잘린 소나무들을 끌고 마을까지 내려오면 한 그루를 3, 4토막 내어 한 번에 총 12토막가량을 기관차에 실어 호산까지 싣고 갔다.

주민들에 따르면 "큰 나무 하나 만나면 인부들이 2, 3일씩 톱질을 해야 할 정도로 나무의 크기가 컸다"고 한다. 심지어 자른 나무 밑둥을 밥상 삼아 성인 8명이 밥을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거대한 굵기를 짐작할 수 있겠다.

산판은 1970년대까지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용소골 일대에 놓여있던 레일은 1959년의 태풍 사라호 때 대부분 물에 휩쓸려 없어졌다. 하지만 용소골이 워낙 깊어 수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순례단은 계곡 곳곳에서 시뻘겋게 녹이 슨 레일과 다리 조각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용소골에 들어서면 산판의 흔적을 보여주는 휘어지고 잘린 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레일을 아직도 볼 수 있다. ⓒ 녹색연합


90도로 가파르게 솟은 절벽을 타면서 1시간가량 지나자 드디어 용소(龍沼)가 나타났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은 심연(深淵)의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온전히 깨끗한 계곡 물과 좌우의 가파른 절벽은 인간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는 듯했다.

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용소골에선 가끔 길을 잃고 조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품지 않은 채 섣불리 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용소골과 그 주변의 산의 주인은 산양을 비롯한 수천, 수만 년 동안 이 터전을 지켜온 야생의 친구들이다. 개발의 손길은 아직 이 지역 깊은 골짜기까지는 미치지 않고 있다. 먼지 폴폴 날리던 비포장길에 콘크리트를 덮는 정도의 공사가 개발의 전부라면 전부일 정도다.

그래서 아직 '남한 최후의 오지'는 그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다. 동강도, 지리산도, 점봉산도 개발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덕풍을 에워싸고 있는 용소골과 응봉산은 여전히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얼마나 유지될 것인가? 이곳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무 땔깜을 지고 가는 노인의 지게에는 옛 사람들의 풍경과 아직도 오지로 남아있는 풍곡리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 녹색연합


#녹색연합 #오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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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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