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언니라 불러주는 학생들... 고맙다

우리반 장난꾸러기 악동들에게 귀여운(?) 협박을 하다

등록 2009.05.27 08:23수정 2009.05.27 08:3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기념식 할때의 케이크 처음엔 케이크가 이렇게 근사했다 ⓒ 송진숙


입학식 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명랑하단 소리에 걱정이 앞서다


3월에 담임을 맡게 되면 어떤 아이들이 내 반에 들어올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다려진다. 아이들 성향이나 성격, 친구 관계 등등 궁금한 게 많다. 그리고 올 한해 즐겁고 명랑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기도하곤 했다.

어떤 해는 아이들과 감성이 잘 맞아 즐겁게 보내기도 했고, 어떤 해는 유난히 힘들게 한 해를 마무리한 적도 있었다. 올해도 기대 내지 설렘 반 우려 반으로 학급 담임을 맡았다.

지금 학교에 부임한 지 올해로 5년째다. 마지막 해 근무(5년마다 근무지를 옮김)다. 1학년을 맡게 되었다. 담임소개를 하기도 전에 오티(오리엔테이션의 줄임말)를 갔다. 버스 안에서 내 소개를 간단히 했다. 담임이니까 잘해보자고.

얼굴엔 웃음기를 띠지 않고 최대한 표정 없는 모습으로. 처음부터 웃으면 아이들에게 쉽게 보인단 생각에 첫날 인사에서 웃음을 띠는 경우는 드물다. 첫날부터 아이들과 담임의 살아남기 위한 탐색전은 그 정도로 치열하다.

우리 학교는 전통적으로(?) 첫해부터 입학식 전에 오리엔테이션이란 이름 아래 수련회를 간다. 2박 3일 내지는 1박 2일로 다녀오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2박 3일로 갔었다. 그런데 학급 단체사진을 찍으려는데 사진기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10반 담임이신가요?"
"네."
"10반 학생들이 무지 명랑해요."
"'헉' 만난 지 하루밖에 안된 아이들인데."
"명랑하단 말은, 듣기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해석되는데. 걱정이 앞서네요. 올 1년이 걱정되는데요."
"아뇨. 긍정적이에요. 아이들이 상당히 밝고 긍정적이에요."
"아, 네."

그렇게 1년의 시작을 알렸다. 긴장되는 발언이었다. 걱정은 많이 어긋나지 않았다. 아주 밝고 명랑하기도 했지만 때론 지나치게 밝아서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여러 학과 샘들로부터 주의를 듣기도 하고 때로는 야단을 맞기도 하면서 3달째로 접어들었다.

그 중 여러 명의 악동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장난이 꼭 미운 것만은 아니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각하는 녀석, 수업시간에 엉뚱한 말을 해서 분위기를 해치는 녀석들도 있었다. 뒷벽에 조금(작년 아이들이 낙서를 조금 해놓았었다) 낙서가 되어 있었던 것을 그냥 두었는데 어느날 무심코 봤더니 낙서가 많이 늘어 있었다. 학생부 선생님한테 걸려서 많이 혼나고 원상태로 돌려놓으라는 추상 같은 명이 있었다.

혼나도 금방 풀어진다, 여자 아이들이 아닌 건지...

여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잘못하고도 혼나면 삐지고 토라져서 남자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를 종종 봐왔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혼나도 별 노여움 없이 금방 풀어졌다. 다음날이나 혹은 한두 시간 지나면 금방 웃으며 안겨왔다. 여자 아이들이 아닌지. 성격이 좋은 건지 헛갈릴 정도다.

14일은 스승의 날 기념식(15일은 사제동행 망우리체육공원 걷기행사가 있기에)을 하는데 식전에 두 녀석이 내게로 와서 지키고 있었다. 기다렸다가 저희들 하고 같이 올라가잰다. 한참 있다가 핸드폰으로 연락이 온 모양이다. 나랑 같이 올라 오라고!

예전의 경험으로 보아 무슨 장난이 있을지 몰라, 너희들이 무서워 못 올라간다고 피해다녔다. 그런 일 절대 없을 거라며 올라가잰다. 혹시 교실문 위에서 분필가루 잔뜩 묻은 지우개를 떨어뜨린다든지, 아님 혹시 다른 무언가로 옷에 묻힐 뭔가를 떨어뜨린다든지. 이 악동들을 어떻게 믿으라고? 안심이 안 되었다.

"얘들아 혹시 나 대신 흑기사 보내면 안될까?"
"안돼요."

성화에 못이겨 교실로 올라가서도 문을 아이들이 먼저 열도록 해서 들어가라 했다.

"원래 주인공은 처음에 들어가지 않아. 너희들이 먼저 들어간 다음에 내가 들어가야지."
"선생님, 의심 되게 많으시다"
"나 오늘 새옷이거든. 너희들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나를 감동시킨 롤링페이퍼와 칠판에 쓰인 축하메시지

J가 문을 삐끔히 열어서 보여주었다. 그때서야 나는 아무 일 없음을 확인한 후 들어섰다. 불을 끄고 칠판에 잔뜩 축하메시지(이름하여 낙서)가 빽빽이 쓰여 있었다. 이걸 쓰느라 내가 미리 올라오지 못하도록 지킨 모양이다.

a

교실 뒷벽 풍선 낙서한 곳에 묘하게(?)풍선과 글을 붙여서 낙서의 흔적을 최대한 가리려 한 노력이 보인다 ⓒ 송진숙


a

케이크 비교 처음엔 왼쪽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나중에 건네받을 때는 오른쪽처럼 장식이 없어지고 대신 위에 파이를 얹어 주었다 ⓒ 송진숙


교실 뒷면에도 축하글과 풍선을 달아 놓았다. 사실은 낙서가 있는 곳인데 교묘하게(?) 장식을 해서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면 낙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교실 앞 교탁 위 케이크에 불을 켜 놓았다. 바로 옆에는 초코파이를 쌓아올려 초를 켜 두었다. 촛불을 끄기 전에 아이들이 노래부르는 사이 사진을 먼저 찍고 촛불을 껐다. 케이크는 날 주고 파이는 자기들이 먹을 거란다. 그런데 30개로 9개가 모자란다. 지각한 애들은 안 준단다. 지독한 것들!

식이 끝나고 케이크는 교무실로 가져가라고 하면서도 몇 녀석이 앞에 나와 케이크 위에 얹어놓은 장식을 다 집어먹었다. 케이크는 순식간에 누드케이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내가 항의하자 자기들이 먹을 파이를 하나 위에 얹어 주었다.

두루마리 종이 한 장을 선물로 더 주었다. 반 아이들 전체가 돌아가며 쓴 글이었다. 다 읽기도 전에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진숙 언니 사랑해요" "선생님 격하게 아껴요" 아이들의 튀는 재치(?)가 돋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이 나이에 언니라고 불러주는 것도 고맙지. 차가운 교실 바닥에 엎드려 쓴다는 구절도 있었다. 엎드려 글을 쓰는 녀석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고마웠다.

다른 어느 해 받았던 선물보다 흐뭇했다. 남은 시간은 지난번 사생대회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반 최고 악동의 엽기적 표정과 다양하고 코믹한 표정을 보며 아이들과 난 포복절도했다. 바로 바탕화면에 깔았다. 초상권 때문에 여기에 띄우지 못함이 애석할 뿐이다.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39명의 아이들이 선물이었다. 모두 밝고 늘 웃음이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났다가도 10분을 넘길 수가 없었다. 오늘은 S가 안경에다 촛불 모양의 종이를 안경테 양쪽에 붙여서 웃겨서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휴지를 둘둘 말아서 던지고 장난을 치질 않나. 어느 날엔 사제동행 달리기선수를 뽑으라고 교실에 명렬표를 붙여 놨더니, 저희들 그룹 친구들 이름을 써놨다. 정작 선수들 본인은 모르는데. 책임의 의미로 장난친 녀석들을 다 출전시켰더니 그 중 한 명이 학년 전체에서 일등(5Km에서)을 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꿈을 바꿨다나? 장거리 육상선수나 마라톤 선수로. 아이들이 새롭게 보였다.

샘솟듯 솟아나는 끊임없는 아이들의 장난끼

어느 날은 교실 뒷벽에, 신문지 광고 중 성인 대상 광고 카피를 잘라서 붙여놨다. 수업 중 조는 짝꿍 잠깨라고 붙여 놨단다. 어떤 날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전자레인지 안에 있는 유리받침 밑에 있는 동그란 테를 머리에 써서 웃기기도 했다. 마치 천사의 머리 위에 있는 동그란 머리띠처럼. 요즘엔 S가 아이들 가방고리에 자물쇠를 달아 놓는 장난을 친다. 날마다 종례시간에 어떤 이벤트가 있는지 기다려진다 은근히.

a

교실뒷벽 복구 교실뒷벽 낙서를 페인트로 복구하는 모습과 복구한 후의 사진. 왼쪽의 지저분한 낙서는 감춰졌으나 색깔이 너무 다르다. 페인트도 수성이 아닌 유성이라 번쩍거린다. 아예 벽화를 그릴까요? 라고 묻는 아이들. ⓒ 송진숙


요즘엔 교실 뒷벽 낙서를 지우라 했더니 유성페인트를 썼다. 수성페인트를 사야 하는데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그날 종례시간도 여지없이 떠들고 집중을 안한다. 소란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포를 놨다.

"나처럼 너희들 감싸주고 장난쳐도 봐주고 잘해주는, 나처럼 천사같은 담임이 또 있는 줄 아니? 교실 뒷벽 페인트도 잘못 칠했고 수업시간도 시끄럽고, 수업 태도도 나쁘고…, 학급경영 잘못한다고 담임 잘릴지도 몰라. 어쩌면 2학기에 바뀔지도 몰라. 바뀌면 학생부의 제일 무서운 샘으로 교체될 걸!"

속으론 웃음이 나는데도 엄한 척하며 아이들한테 협박을 해본 것이다. 아이들은 잠시 시무룩해졌다. 그러나 잠시다. 타고난 천진, 낭만, 장난끼, 명랑을 어쩌랴!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보통 장난하면 짖궂은 남자애들이 연상되었는데 올해 우리 반 아이들은 그런 남자애들을 능가하는 모양이다. 얘들은 하루라도 장난을 안치면 아마도 온몸에 선인장처럼 가시가 돋는 모양이다. 게다가 성적도 나쁘지 않다.

스승의 날 걷기대회 때는 날 업어주기까지 했다. Y는 사람을 잘 업는다며 "선생님 업어드릴까요?" 한다. "나 무거운데"  "잘 업어요. 자신 있어요" 하더니 키는 장대같이 큰 녀석이 덥석 업었다. 순식간에 아이들은 사진 찍고 난리였다.

올해 최고의 선물은 39명의 우리 반 아이들

a

칠판에 잔뜩 써져 있는 축하메세지 축하를 이용해 평상시 하고 싶었던 낙서를 합법적으로 한 건 아닐까? 어쨌든 재치발랄한 글들도 보인다 ⓒ 송진숙


그동안 23번의 스승의 날을 보냈지만 올해는 어느 해보다도 즐겁게 보냈다. 아이들 앞에 서 있는 게 민망하지 않았다. 어색하거나 쑥스럽지도 않았다. 빨리 벗어나고 도망치고 싶었던 다른 해와는 분명 달랐다. 흐뭇했다.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있으랴! 이런 아이들과 올 1년 생활하게 된 나는 확실히 복받은 거란 생각이다.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소란스럽거나 장난끼가 심해 화난 척하고 야단이라도 치려 하면 "선생님이 우리 아끼시는 거 다 알아요. 속으로 우리 귀여워하고 계시죠? 속으로 예뻐하시죠? 우리 자랑스러워 하시는 거 다 안다구요" 하며 앞서간다.

이제 상상력은 글로벌 코드이고,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라며 상상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역설한 바 있다. 즉 미래엔 상상력이 자산이란다.

우리반 아이들, 이 정도의 상상력이면 미래를 이끌어갈 충분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잊을 수 없는 선물> 에 응모


덧붙이는 글 <잊을 수 없는 선물> 에 응모
#선물 #스승의 날 #기념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총선 참패에도 용산 옹호하는 국힘... "철부지 정치초년생의 대권놀이"
  5. 5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