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헌책방 2호점 내셨군요

[헌책방 나들이 199]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등록 2009.05.22 20:22수정 2009.05.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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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싸구려'와 '마음밭'

 

 인터넷새책방 '알라딘'은 2008년 2월부터 헌책을 다루기로 했습니다. 뒤이어 '리브로'와 '인터파크'가 헌책을 함께 다루기로 합니다. '커다란 인터넷새책방'에서 때아닌 '헌책 팔기' 바람이 붑니다.

 

 새책만으로는 무엇인가 힘들다고 여겼을는지, 아니면 책 문화를 일구자면 새책으로만은 모자라다고 느꼈을는지 궁금합니다. 매출을 키우고 싶어 헌책도 팔겠다고 나서는지, 또는, 요즈음 새책이라고 해 보아야 한두 해만 지나도 헌책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고 새책이든 헌책이든 아울러 내어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을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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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사이에 숨은 헌책방, '숨어있는 책'. ⓒ 최종규

골목길 사이에 숨은 헌책방, '숨어있는 책'. ⓒ 최종규

 

 이런 바람을 타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헌책 팔기'에 함께 나서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서도 '헌책 팔기'를 꿈꾸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제 와서 말씀드리자면, 영풍문고에서는 저한테 '영풍문고 한쪽에 헌책을 파는 매장을 열고 싶다'고 하면서 저보고 이 일을 도와 달라는 부탁을 2005년과 2008년에 두어 차례 했지만, 모두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에 앞서는, '아름다운 재단'이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을 만들겠다며 저보고 이 일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2004년에 한 적이 있으나, 이때에도 손사래를 치면서 한 말씀을 올렸습니다. '헌책방 일을 우습게 보지 마시고, 헌책방이란 돈이나 이름이나 시민단체 같은 힘을 등에 업고서는 함부로 열 수 없는 어엿한 책 문화쉼터임을 생각하시라'고.

 

 요사이는 '헌책방 간판'을 따로 내걸지 않으면서도 헌책을 파는 사람이 대단히 늘었습니다. '인터넷 가게'는 집에 책을 쌓아 놓고 택배기사를 불러서도 꾸릴 수 있으니, '인터넷헌책방'이라고 하여도 얼마든지 혼자서 열거나 꾸릴 수 있습니다. 더구나, '내가 읽은 책을 내가 팔겠다'고 하는데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으며 탓할 까닭이 없습니다. 안타깝다면, 책도 버젓이 물건이라 할 만하지만 우리가 책을 놓고 문화라 할 때에는 물건을 넘어서는 기운과 넋을 종이뭉치에 담아내기 때문인데, 이런 흐름을 거의 잡아채거나 알아채려 하지 않는 대목입니다. 먹고살겠다면서 하는 일이야 아름답지만, 내 배만 채우려는 생각으로 하는 일이 될 때에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도둑질도 '먹고살려'고 한다는 핑계가 붙는 일이며, 전쟁도 '먹고살려'고 일으킨다는 핑계가 붙는 짓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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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 만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마음밥이 한 그릇이어도 넉넉하거든요. ⓒ 최종규

책 하나 만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우리한테는 우리 마음밥이 한 그릇이어도 넉넉하거든요. ⓒ 최종규

 

 문득, '당신은 헌책방을 너무 거룩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소?' 하는 대꾸가 어디에선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런데 틀리지 않은 말인걸요. '헌책방은 거룩한 곳이요, 헌책 장사 또한 거룩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저잣거리 생선장수도 거룩한 일입니다. 동네 구멍가게도 거룩한 곳입니다. 옷집 밥집 술집 책집 모두 거룩한 곳이며 누구나 거룩한 일손을 붙잡고 있습니다. 공장 노동자만 거룩하게 우러른다든지, 논밭 농사꾼만 거룩하게 받든다든지, 바닷가 고기잡이만 거룩하게 드높인다든지, 산마을 광부만 거룩하게 섬긴다든지 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내 배만 채우려고 하는 일일 때에는 어떤 일이든 하나도 거룩하지 않지만, 내 배만 채우려고 하는 일이 아닐 때에는 어느 일이든 아주 거룩하게 거듭난다고 느낍니다. 버스를 모는 분들 손길이, 쓰레기를 거두는 손길이, 붕어빵 하나를 굽는 손길이 어찌 안 거룩할 수 있겠습니다. 기저귀를 빨고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손길이, 아이 도시락을 싸 주고 걸레질로 방바닥을 훔치는 손길이 어찌 안 거룩하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마음밭을 일구는 책을 다루는 헌책방이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인터넷새책방 알라딘이나 리브로나 인터파크가 뛰어든 '헌책 팔기'처럼, '개인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오로지 '돈만 많이 벌자'라든지 '틈새 시장에 뛰어들자' 하는 매무새에 머문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안쓰럽습니다. 이런 장사는 오래 버티지 못하기도 하지만, 책을 책대로 받아들이거나 나누기 어렵거든요. 그저 '한푼이라도 더 받고 파는 책'으로 나뒹굴거나 '다른 인터넷헌책방보다 한푼이라도 더 싸게 파는 책'으로 굴러떨어집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 스스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닌 '싸구려 물건 뒤지는 사람'으로 탈바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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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일꾼 셈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 최종규

아래층 일꾼 셈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 최종규

 

 (2) '인터넷헌책방' 아닌 '매장 헌책방' 2호라는 꿈

 

 서울 노고산동(신촌)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찾아갑니다. 아는 분이 마침 신촌에서 사진강좌를 하고 있어 그곳에 구경을 가는 길에 슬그머니 들릅니다. 강좌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까 하다가 살짝 빠져나와 헌책방으로 갑니다. 헌책방 <숨어있는 책> 아래층에 들러 인문학 책을 배불리 구경한 다음 1층으로 올라옵니다. 1층 셈대에는 낯선 아저씨가 앉아 있습니다. 책방 아저씨는 어디 볼일 보러 가셨는가?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니 책방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오랜만에 찾아왔느냐며 오랜만이니 저녁이니 함께 먹자고 손길을 잡고 이끕니다. 아저씨를 따라 가까운 밥집으로 갑니다. 아저씨는 "최종규씨가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사고면 사고라 할 것을 내가 하나 터뜨렸어." 하고 말씀합니다. 무슨 일인지 얼추 어림이 됩니다.

 

"어디에 <숨어있는 책> 새끼가게(2호점)라도 내셨어요?"

"엉? 어떻게 알았어? 누가 얘기해 주디?"

"아, 진짜 내셨어요? 뭐 그런 이야기를 누가 알려줘야 아나요. 그동안 서로 알고 지낸 지 몇 해인데요. 아저씨가 사고를 터뜨렸다고 하면 뻔하지 않겠어요. 틀림없이 어딘가에 새로 가게를 하나 차렸거나 또 창고를 하나 더 늘렸거나 했겠지요. 지금 자리며 창고며 책이 자꾸 쌓여서 제대로 못 찾고 계시잖아요."

"응, 얘는. 그래도, 놀랄 줄 알고 잔뜩 기대하면서 말했는데, 김이 팍 새네."

"가게는 어디에 내셨는데요?"

"음, 그게 요새 어머니도 아프시고 해서 이달에 문을 열려고 했는데 못 열고 다 정지하게 되었는데 …… 파주책도시 있잖아? 너도 가 봤지?"

"엑? 파주에요? 거기 누가 찾아간다고?"

"야, 그래도 주말에는 사람들 많이 찾아오더라. 그리고 너도 가 봤을 테니 알겠지만, 거기가 좀 메말라 있잖아. 큼직한 건물만 듬성듬성 있고. 그 메마른 자리에 헌책방이라는 곳이 한 군데쯤 있으면 메마른 기운에 조그마한 샘물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하기는요, 우리 <숨어있는 책> 사장님이 헌책방을 그곳에 내어 주면 '진짜 헌책방'이 파주에도 하나 들어서는 셈이니까 자그맣게 쉼터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파주는 대중교통으로는 못 가는 곳이잖아요. 다들 자가용 타고만 찾아갈 수 있지. 저도 이달부터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자전거 강의를 하나 맡아 하기로 해서 자전거를 타고 인천에서 가 보았는데, 어디 다리쉼을 할 데도 없고 길알림판도 제대로 없고 아주 나쁘더라고요."

"그래. 출판사 사람들도 자기네 건물 안에만 쉬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길가에 걸상 하나도 없더라."

"아이구, 그나저나 아주머님이 걱정이 크시겠어요."

 

 함께 밥술을 뜨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온갖 근심과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듭니다. 오늘날 세상을 아주 거스르는 아저씨 생각이야, '젊은 사람은 헌책방에서 발을 빼거나 떠난다'고 할 때에 '출판사 편집장으로서 돈도 제법 받고 이름도 번듯한 자리'를 당차게 박차고 나와 헌책방을 열 때부터 알아줄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1999년 11월에 처음 문을 연 아주 조그마한 가게를 조금씩 늘려 옆 가게를 하나 텄고, 그 뒤로는 아래층까지 얻었으며, 가까운 자리에 창고까지 하나 얻었습니다. 책나르기를 하려고 짐차를 한 번 장만했으나 너무 많이 실은 책짐 때문에 차가 넘어져 고물이 되었고 새로 한 대 장만해서 쓰고 있습니다. 온땀 쏟으며 꾸리는 매장 아래층에는 일꾼을 한 사람 두고 있고, 파주에 새 가게를 차리면 새 일꾼을 한 사람 더 두어야 할 테지요. 그만큼 책을 더 많이 팔아야 할 테며, 새로운 헌책도 훨씬 많이 사들여야 할 테고요.

 

 한참 말씀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 모두들 힘들다고 하는 판이니 더 늘린들 더 힘들고 좀 줄인들 덜 힘들랴. 외려 이러한 때에 뜻있게 밀어붙이면서 꿈을 키우는 삶이 한결 아름답고 멋스럽지 않겠니' 하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저씨한테 한 말씀 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올해가 헌책방 <숨어있는 책>이 문을 연 지 열 돌째인데, 열 돌을 기리는 새끼가게를 하나 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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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고, 책에 깃들어 놓은 사람들 넋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 최종규

책이 있고, 책에 깃들어 놓은 사람들 넋이 있는 헌책방입니다. ⓒ 최종규

 

 (3) '처음처럼'을 지키는 책과 책방

 

 밥을 먹고 책방으로 돌아옵니다.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책 갈무리를 하고, 저는 저대로 책 살피기를 합니다. 아까 아래층에서 골라 놓은 책을 주섬주섬 들추어 봅니다. 교육잡지 <처음처럼>(내일을여는책) 1호와 2호를 먼저 들춥니다.

 

.. 학생 하나하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도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학생 하나하나에 대하여 관찰하는 방법을 훈련받거나, 스스로 훈련할 필요가 있다 … 이 점은 꼭 알아두어야 한다. 적어도 학생들이 14살이 될 때까지는, 한 인간으로서 교사가 갖고 있는 자질 문제가 학생들에게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사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존재이다 ..  (1호 104, 109쪽/로이 윌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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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처음처럼> 1호. ⓒ 최종규

잡지 <처음처럼> 1호. ⓒ 최종규

 오래 이어가지 못하고 숨을 거둔 잡지 <처음처럼>입니다. <처음처럼> 앞으로 교육잡지가 있었고, <처음처럼> 뒤로도 교육잡지가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이 잡지처럼 '옳게 가르치고 즐겁게 배우는' 이야기를 알뜰히 담은 잡지는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처음처럼>이 나올 무렵 세상에 나온 <세상의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버티지 못한 <세상의 꿈>만한 청소년잡지로 무엇을 손꼽을 수 있는 우리 삶터일까요.

 

 다달이 쏟아지는 잡지 수두룩하지만, 정작 반갑고 기쁘게 맞아들일 교육잡지란 눈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논술이나 입시에서 벗어난 홀가분하고 넉넉하고 따뜻한 청소년잡지란 몇 가지를 손꼽을 수, 아니 다문 한두 가지라도 손꼽을 수 있을는지요. 그래도, 대안교육을 말하는 잡지 <민들레>에서 <함께 웃는 꿈>이라는 '장애인 교육' 잡지를 하나 펴낸 대목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 만일 어떤 교사가 어린이를 교육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어린이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 밖에 서서 충분히 성숙한 자로, 확고하게 변치 않고 남아 있으려 한다면, 이는 망상이요 단순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린이를 위한 책임을 떠맡고 있으면서도 어떠한 자기 비판적 태도도 갖지 않으려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반대로 만일 교사가 어린이들 속에서,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어린이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이해하려 한다면, 그는 중요하고 가치있는 바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충분히 깨어 있지 않고 자기를 계발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좌초하게 될 것이다 ..  (1호 53∼54쪽/야누스 코르착)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나 어버이들이나 참다운 교육잡지를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 찾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사 된 사람치고 참다운 교육잡지를 받아보려 하는 사람이 몹시 드뭅니다. 고작 받아본다면 <우리교육>쯤? 그렇지만 <우리교육>은 나날이 '교육 기술'에 치우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마음과 배우는 매무새'에서 차츰 멀어집니다. 우리 삶에서 자꾸만 동떨어지고, 낮은자리 사람들 눈길을 잃어버립니다.

 

 배고픈 사람한테도 배울 권리가 있고, 대학교에 안 갈 권리가 있으며, 제도권 중고등교를 떠나 너른 꿈을 키울 권리가 있을 텐데, 어느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이 나라 교육잡지입니다.

 

.. 대개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집에서 배우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교과서만을 사용해서 배우는 학교교육은 실천이 따르지 못하므로 입만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기 쉽습니다 … 더욱이 대학 입학 자격은 12년이나 걸려 취득하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획득한 지식의 정도는 매우 부족합니다. 거꾸로,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거의 아무런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것은 자기가 배운 지식을 실제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2호 78∼79쪽/마하트마 간디)

 

 교사부터 교육잡지를 안 보고, 어버이 된 분들 또한 교육잡지를 안 보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스스로도 교육잡지를 안 봅니다. 이리하여 저마다 가르치고 배우는 톱니바퀴는 이루지만, 톱니바퀴를 알차고 튼튼하게 가꾸는 길은, 또는 톱니바퀴 아닌 우리 터전을 돌아보는 길은 놓치거나 잃거나 내동댕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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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 하나. ⓒ 최종규

작은 책 하나. ⓒ 최종규

 <강문규-제3세계의 기독교운동>(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1978)이라고 하는 낡고 작은 책이 보여서 슬쩍 들추어 보는데, 슬쩍 들춘 쪽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이야기 한 대목이 있습니다. 89쪽짜리 작은 책을 통째로 읽을 때 다른 자리에서 한결 훌륭한 대목을 읽을는지 모르고, 89쪽을 읽는 동안 마음을 건드리는 대목 하나 안 나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대목이 제 마음을 움직이고 제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집어들 값어치가 있다고 느낍니다.

 

.. 파당적 운동의 약점은 단순히 분배방법을 바꾸어 갈 수는 있었으나, 근대 사회의 모든 내용을 변혁해 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 이들 당파적 유토피아는 오늘 우리가 극복하려고 하는 사회의 세분화와 인간소외를 극복하려는 그 자체를 오히려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를 수직으로 분할하여 인간생활을 수평적으로 제휴하는 것과 거기에 대한 충성을 이데올로기의 허구라고 하여 적개심을 만들어 가면서 이를 분쇄하는 것을 운동의 전제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을 묶어 주는 요인, 즉 사람을 사람대로 충분히 성장시키는 사회적 유산이며, 이것은 당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특수한 요소보다 한층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  (62∼63쪽)

 

 책이란, 통째로 읽으려고도 산다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만나려고 사니까요. 통째로 읽지 않아도 딱 한 줄로 마음을 사로잡으면 이 한 줄 때문에 우리 삶이 거듭나거나 다시 태어나니까요. 그래서 책읽기이니까요. 거룩하거나 훌륭하다는 책을 100번 되풀이 읽는다고 하여 더 깨닫거나 더 거룩해지거다 더 훌륭해지지 않아요. 1번조차 제대로 못 읽었다고 하지만, 몇 줄 몇 쪽 읽는 동안 내 모든 힘을 쏟고 사랑을 바칠 때에 슬기 한 자락 붙잡습니다. 깨달음 한 올 받아안습니다.

 

 <안드레아스 플리트너,한스 쇼이얼 엮음/송순재 옮김-사유하는 교사>(내일을여는책,2000)라는 책을 들춥니다. 독일에서 교재와 다름없이 썼다고 하는 책을 들추며, 우리 나라에서 '교육을 말하는 훌륭한 책'을 '한국땅에 걸맞게 한국사람이 쓰고 한국사람 누구나 손쉽게 알아들을 만한 말'로 펴낼 날은 언제쯤일까를 헤아려 봅니다. 글쎄,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작은 그림책 <아놀드 로벨/엄혜숙 옮김-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비룡소,1996)를 넘겨 봅니다. 아놀드 로벨 그림책은 언제 보아도 즐겁습니다. 로벨 그림책이 두 권 보여 둘 모두 고른 다음, 오늘 사려고 마음먹은 다른 책들과 함께 제 가방에 올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잠깐 바깥에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한 권이 사라졌습니다. <숨어있는 책> 아주머니한테 여쭈니 다른 책손이 사 갔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제가 골라 가방에 올려놓은 줄 모르셨을 테니 어쩔 수 없습니다. '골라 놓은 책입니다!' 하는 티가 나도록 한쪽에 얌전히 쌓아 놓았는데 고 책을 살며시 빼간 다른 책손이 참 얌체입니다.

 

 (4) 사진이란 무엇일까

 

 헌책방 골마루를 한 번 더 돌아 봅니다. 한 시간 남짓 돌면서 몇 가지 책을 고르기도 했으나, 이렇게 한 번 더 돌면 그 사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 번 돌고 세 번 돌면 또 새로운 책이 눈에 들어오고, 네 번 돌면 다시금 새로운 책이 눈에 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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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사에서 낸 자료모음. ⓒ 경향신문사

경향신문사에서 낸 자료모음. ⓒ 경향신문사

 <촛불, 그 65일의 기록>(경향신문사,2008)이라는 사진자료가 보입니다. 촛불집회 이야기를 놓고 어느 신문사이든 자료모음을 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경향신문이 이렇게 하나 냈군요. 다른 신문사도 냈을까요?

 

 <Alex May-Digital Photography>(Dorling Kindersley,2000)는 디지털사진기를 이야기하는 길잡이책.

 

 그리고 <임동숙-카메라로 보는 방법>(눈빛,2002).

 

.. 대부분의 초보자들은 열심히 찍기는 하지만, 촬영 후 좋은 사진으로 선택된 몇 장에만 관심을 둘 뿐, 실패한 사진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배우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실패한 사진들을 통해서 본인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71쪽)

 

 제 사진을 보는 '사진하는 분'들은 으레 '어느 학교 다녔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따로 '어느 교수'한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강의는 한 학기 들어 보았으나) '아무 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며 '혼자 책 보고 익히고, 혼자 부지런히 찍으면서 배웠다'고 이야기합니다.

 

 없는 살림을 털어 필름을 샀습니다. 찰칵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돈 떨어지는 소리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단추질은 멈추지 않았고, 잘 나온 사진은 잘 나온 대로 '왜 이렇게 잘 나왔을까'를 곱씹었고, 못 나온 사진은 '왜 이렇게 못 나왔을까'를 이를 앙다물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 자리에 찾아가 '이번에는 틀리지 않으련다'고 다짐했고, 이 다짐을 한 해 두 해 악착같이 잇다 보니 어느새 사진길을 열 해 남짓 걸었습니다. 이제는 '척 보아도 최종규 사진이네!' 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개 사진이군' 하고 알아보는 사진보다는, '이 사람 이 마음이 한결같이 잘 배어든 사진이군' 하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 제 사진을 보면서 '내 이름 석 자가 아닌 내가 디디는 이 삶터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부대낀 그 느낌 오롯이 담는 사진이군' 하고 밝힐 수 있도록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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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눈빛

겉그림. ⓒ 눈빛

.. 피사체에서 받은 감동을 사진적 시각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감정에 취해서 찍은 사진은 십중팔구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카메라 렌즈는 피사체를 감정을 갖고 찍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초보자들이 피사체 찾기를 막막해 하는 이유는 어떤 사물이 피사체로 효과적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진 기호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 '찍을 것이 없다'는 것은 '형태가 멋있게 보이는 피사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질문은 형태가 품고 있는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겁니다. 초보자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사물에서도 가진 기호를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더구나 낯선 사물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찾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꾸 특별한 형태를 찾게 되는 겁니다. 낯선 대상에서보다는 익숙해진 대상일수록 형태를 통해서 더 많은 이미지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친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사물을 피사체로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하는 겁니다 ..  (81∼82쪽)

 

 저는 늘 제 가까이에서만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습만 사진으로 담습니다. 이를테면, 첫 번째 사진감인 헌책방이요, 두 번째 사진감인 자전거요, 세 번째 사진감인 골목길입니다. 네 번째 사진감으로는 옆지기와 아기입니다. 다섯 번째 사진감은? 글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네 가지 사진감을 고이 사랑하고 아끼면서 오래도록 제 길을 뚜벅뚜벅 걷고 싶습니다.

 

 지칠 마음이 없이 기쁘게 걷고 싶습니다. 고단함을 느끼지 않으며 웃음으로 걷고 싶습니다. 괴로움을 겪지 않는 가운데, 또 내 이웃을 괴롭힐 일도 없는 가운데 이 길을 걷고 싶습니다. 사진이란, 제가 좋아하는 책과 마찬가지로 제 삶이거든요. 책은 제 삶이요 사진은 제 삶입니다. 자전거는 제 삶이고 옆지기와 아기 또한 제 삶입니다.

 

 빨래를 하면서 '빨래는 내 삶이다' 하고 느낍니다. 밥을 할 때에도 '밥하기는 내 삶이다' 하고 느낍니다. 동무와 술 한잔 할 때에도 '술을 내 삶이지' 하고 느낍니다. 어디에서고 내 삶이지 않은 일이란 없습니다. 언제고 내 삶이지 않은 만남이란 없습니다.

 

 오늘 만나는 책은 오늘 만나는 대로 저를 가꾸어 줍니다. 오늘 못 만난 책은 못 만난 대로 다음을 꿈꾸거나 기다리면서 제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오늘 사읽은 책은 옆지기한테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함께 읽고, 먼 뒷날에는 우리 아기도 이 책들을 사랑해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진책 <오병익-어머니의 초상>(멋진친구들,2005)이 보입니다. 사진은 그리 잘 담아내지 못했지만, 당신 스스로 당신 어머니를 찍은 매무새가 돋보입니다. 사진을 찍은 오병익 님이 좀더 차분하게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면, 또 어머니한테 어머니 발자취를 더 깊이 들었다면, 가끔 찾아뵙는 길이 아니라 늘 같이 먹고자면서 사진을 찍었다면 더 사랑스럽고 놀라운 작품으로 빛이 나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 사진을 처음 시작한 때 내가 찍은 슬라이드를 들여다보며 "아! 참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 사진집을 발간하며 느끼는 이 "행복함"을 사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또한 "나의 행실에 비하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긍휼이 너무 크다는 것"도 알리고 싶다. 어머니를 만나러, 아니 사진을 찍으러 고향에 다녀올 때면 저만치 있는 어머니께 말로써 인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먼저 카메라로 인사합니다" 하며 카메라를 앞세워 인사를 드리곤 하였다. "얘, 이런 포즈도 찍어 봐야 되지 않겠니?" 하시며 사진찍는 아들보다 한 발 앞서곤 하신 어머니는 참으로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셨다 ..  (머리말)

 

 사진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사진 작품으로서는 어느 만큼 떨어지기는 합니다만, 사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 눈길이 반갑습니다. 흐뭇합니다. 사진을 찍는 당신 아들을 믿고 사랑하는 서글서글함과 넉넉함이 고이 묻어납니다. 아쉽게도 사진쟁이가 이 모든 느낌을 고이 담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어머니는 당신 삶자락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자 애썼고, 아들이 걷는 사진길을 훌륭하거나 고맙게 받아들여 줍니다. 오병익 님은 사진이라는 징검다리로 당신 어머니를 새롭게 만났다고 할까요. 다만, 이 사진책은 아주 살짝 내딛은 첫 걸음이니만큼, 이 첫 걸음을 두 번 세 번 더 이어야 할 테고, 다른 사진감을 붙잡아 나간다고 할 때에 잊지 말아야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오병익 님한테는 '사진은 사랑'이거든요. 둘도 없는 사랑. 하나 있는 사랑. 가슴을 내어주는 사랑. 온몸으로 부대끼는 사랑. 너나없는 사랑. 허물도 잘잘못도 울타리도 없는 열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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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는 책이 몇 권이나 마음속에 스며들어야만 우리 마음이 넉넉해질까요. ⓒ 최종규

우리한테는 책이 몇 권이나 마음속에 스며들어야만 우리 마음이 넉넉해질까요. ⓒ 최종규

 

 사랑이 있을 때 사진은 삶이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 책은 삶이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 헌책방은 삶이 됩니다. 한낱 돈벌이 장사로만 그칠 수 없는 헌책방 일입니다. 책을 쓴 사람들 누구나 종이뭉치에 사랑을 담았고, 책을 엮은 사람들 누구나 글묶음에 사랑을 담았으며, 책을 처음 판 사람과 책을 처음 산 사람들 모두 이 책 하나에 사랑을 담았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헌책방에서 만나는 헌책 한 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 사랑이 스며 있는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 땀이 배어 있는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 눈물이 깃들어 있는가요.

 

 똑같은 장사를 해도, 이 사랑을 느낀다면 더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 똑같이 장사를 한달지라도, 이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예 돈은 조금 만질는지 몰라도, 그 돈은 머잖아 부질없이 흩어지거나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5.22 20:2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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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숨어있는책 #책읽기 #책 #사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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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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