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에서 연도를 바쳤습니다

등록 2009.05.26 12:06수정 2009.05.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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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분향소 옆의 연도 상(床) 유무상통마을 방성복 신부님은 봉하마을로 연도를 하러 가면서, 연도 상과 십자고상, 영정, 촛대, 항료와 향 등을 알뜰히 준비해 갔다. ⓒ 지요하


24일 아침 8시 30분쯤 서울 합정동을 출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미리내실버타운'으로 갔습니다. 잠이 들지 않아서, 또 어줍잖은 글을 하나 쓰느라고 꼬박 밤을 새웠는데도, 운전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장롱면허 소지자인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도 가질 필요 없이, 일요일 아침때라 막히지 않는 길을 수월하게 달리면서 계속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손에 묵주를 잡고 운전을 하는 것은 20년 이상 지속되는 일이며, 저로 하여금 운전을 더 잘하게 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 노무현을',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가운데서도,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세상 떠난 그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나를 느끼며, 내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보 노무현'에 대한 동질감 속에서 살아왔음을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 내가 늘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시간 누군가를 위해, 사회공동체나 신앙공동체를 위해, 또는 의롭고 바른 일들의 진정한 가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행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나로 하여금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시고 돌보아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소중히 지녀왔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우리의 진정한 벗이요 이웃이었던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를 위해 기도하도록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세상 떠난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임을 절감하는 가운데서, 내가 지금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한한 다행스러움과 기쁨 같은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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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실버타운 성당 3년 만에 다시 들어가본 유무상통마을 미리내실버타운 성당에는 3년 전과는 다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통일묵주기도'라는 이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 지요하


유무상통마을의 한 곳 미리내실버타운에 도착하여 정확히 3년 만에 다시 실버타운 안의 성당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어머니의 모습(모자상)은 예전 그대로였습니다. 병약한 노인들께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어려 있는 예수님의 형체가 없으신 빈 십자가도 그대로 제대 뒤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3년 전의 모습과 다른 것은 재대 위 천장 벽에 큰 글씨로 씌어져 있는 현수막의 내용이었습니다. '통일묵주기도 100만 번을 우리는 10년 약속으로 봉헌합니다'라는 말씀 밑에 '2007년 1월 1일∼20017년 12월 31일까지'라는 기간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통일묵주기도'라는 이름이 신선한 충격과 함께 벅참 감동을 안겨주는 듯했습니다. 저런 내용의 현수막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분단국가인 우리 한국의 수많은 성당들 중에서 저런 현수막이 걸려 있는 성당이 또 있을까? 그런 의문은 곧 형용할 수 없는 다행스러움과 고마움으로 환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로도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무상통마을 방상복 신부님은 2007년 이후에 전개될 시대상황에 대한 예상과 우려 때문에 저런 '통일묵주기도'를 창안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옛날에 '유무상통'이라는 이름을 창안하실 때도 '민족통일'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셨던 것은 아닐까?

유무상통이라는 말과 민족통일이라는 말 사이에 내재하는 '일맥상통'의 어떤 실제성 같은 것이 내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벅찬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통일묵주기도 100만 번을 10년 동안에 걸쳐서 봉헌한다면, 상당수의 노인들이 민족통일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는 날까지 통일을 위한 기도를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비록 자신은 민족통일을 보지 못하더라도, 죽는 날까지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유무상통마을에서 사시는 노인들께는 참으로 의미 있고 복된 일일 거라는 생각도….

방상복 신부님은 미사를 시작하시면서 '주님 승천대축일'의 의미를 설명하신 다음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의 죽음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유스티노를 위한 미사임을, 미사의 지향을 분명하게 공표해 주셨습니다.

미사를 지내면서 참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를 위한 미사가 올려지는 성당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 그를 위한 미사에 함께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은혜롭게 느껴졌습니다. 방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오신 평신도 작가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웃음 속에서 '여유'라는 단어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슬픔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의식하면서, 슬픔과 기쁨은 동전 같은 것임을, '삶과 죽음 역시 자연의 한 조각'임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 저희 부부와 서울에서 오신 '굿자만사(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 형제 자매들 모두 별도의 식당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절반 정도 서울로 돌아가실 분들은 서울에서 타고 온 28인승 버스에 오르고, 봉하마을로 연도하러 가실 분들은 유무상통마을의 45인승 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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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도착 경기도 안성시 유무상통마을 방상복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일행이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의 영정을 안아들고 봉하마을 분향소를 향해 가고 있다. ⓒ 지요하


봉하마을로 가는 버스는 거의 만원이었습니다. '굿자만사' 형제 자매 10여 명과 유무상통마을 직원들과 미리내실버타운에서 생활하시는 노인들로 이루어진 일행 가운데는, 인터넷에서 '봉하마을 연도' 공지를 입수하고 미리내실버타운으로 달려온 서울 천호동과 경기도 분당에서 사시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 30대 남성 2명과 여성 1명도 있었습니다.

버스 운전석 옆의 유리 앞에는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의 영정이 모셔졌습니다. 일찌감치 영정을 준비해놓으신 방상복 신부님의 치밀함에 다시 한번 감사했고, 그 영정을 보면서 또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4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먼길이었습니다. 그 시간의 일부는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노무현 유스티노의 영혼을 위해 정성껏 연도를 바쳤습니다.

김해시 진영읍을 벗어난 지점에서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봉하마을 5Km 지점이었습니다. 한 분 형제님이 "이 정도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니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방상복 신부님을 비롯하여 여러 형제 자매들이 4Km 지점에서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걸으면서 한 분 자매님은 "적어도 4Km 정도는 걸어야 '예의'가 되고 제대로 조문을 하는 거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다행히 버스는 노인들을 태운 양로원 차량이라서 봉하마을 근처까지 갈 수 있었고, 노인들은 많이 걷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조문객들이 붐비는 길을 뚫고 6시 30분쯤 봉하마을회관 분향소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여러 줄의 분향 행렬 옆으로 차일이 쳐진 곳의  깔개들이 깔려진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준비해간 작은 상을 놓고, 그 상 위에 십가고상을 모신 다음 노무현 유스티노의 영정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촛대를 놓고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상 앞에는 향로를 놓고 분향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 함께 연도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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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최초의 연도 봉하마을 분향소 옆에서 하느님께 바친 노무현 유스티노를 위한 천주교 신자들의 최초의 연도. 우리 일행은 연도를 바치면서 이 최초의 연도가 유일한 연도는 되지 않기를 아울러 빌었다. ⓒ 지요하


봉하마을 분향소 앞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최초의 연도가 바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안성과 충남 태안에서 온 천주교 신자들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유스티노를 위해 바치는 최초의 연도였습니다.

우리는 연도를 바치면서, 우리의 연도가 '최초'이기는 해도 '유일한' 것은 아니기를 아울러 빌었습니다. 우리의 연도가 세상에 알려지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입어 더 많은 신자들이, 여러 성당이나 공동체들이 이 자리에 와서 연도를 바치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연도를 바치는 천주교 신자들은 이미 우리 일행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새 많은 신자들이 우리 뒤에 앉아서 연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연도를 마치고 성가(520번)를 부른 우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함께 노무현 유스티노의 영정을 향해 큰절을 했습니다. 두 번의 큰절과 반절을 한 다음 우리는 서로서로 악수 인사로 위안과 격려를 나누었습니다.

버스가 있는 곳을 향해 앞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며 걸으면서, 끊이지 않는 수많은 인파를 실감하는 가운데 '거대한 한 마음', '뜨거운 마음의 공유'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을 하는 사람들, 먼길을 달려오고, 긴 걸음을 하고, 그러고서도 행렬 속에서 오래 차례를 기다렸다가 분향을 하는 사람들, 짧은 한 순간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 놓고 절 한번 하기 위해서 고생을 각오하고 오고 또 오는 사람들…. 그들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덟 시가 훨씬 넘은 시각에 봉하마을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첫 번째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조문을 하고 돌아가는 이들이 꽉 차 있는 상태라 자리가 없어서, 다음 번 휴게소에서 10시가 넘은 시각에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일행에게 노무현 유스티노가 우리의 진정한 벗이요 이웃이었음을, 그의 죽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그를 위해 묵주기도를 하면서, 또 그의 죽음의 의미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의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나는 기도에 더욱 열중하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큰 일깨움을 주고, '생각의 창'을 스스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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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에서 온 부부 노무현 유스티노 형제의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 놓아드리기 위해 잠시 조문 행렬 옆에 섰다. 봉하마을 연도는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었기에 옷차림이 마땅치 않아 송구한 마음 컸다. ⓒ 지요하


우리는 밤 1시가 넘은 시각에 미리내실버타운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온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은 숙소에서 눈을 붙인 다음 돌아가기로 하고, 우리 부부는 곧바로 태안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방상복 신부님과 모든 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 부부는 차에 올랐습니다.

밤 1시가 넘은 시각에 운전을 해보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심야의 고속도로는 한산했습니다. 한산한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다시 손에 묵주를 쥐었고, 노무현 유스티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 나로 하여금 그를 위해 기도하게 하시는 하느님께 다시 감사했습니다. 내게는 참으로 값지고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노무현 #봉하마을 #연도 #유무상통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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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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