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0년, 그 역사적 의미를 묻는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우리의 미래

등록 2009.05.28 14:39수정 2009.05.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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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고비고비마다 대한민국은 커다란 사건을 겪으며 국가와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4.19의 경우 관념적으로 존재해 온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으로 국민들이 승인하고 합의했다는 의미를 가지며, 5.18의 경우 우리의 민주주의가 결코 국내의 문제만이 아니며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 있다는 것, 따라서 대미관계와 대북관계를 포함하여 전체 시스템을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고 과연 누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87년은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쟁취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이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전면적으로 단결하고 발언하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의 커다란 사건들과 비교하기는 아직 어렵겠지만, 과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겉으로 보기에 이번 사건은 완전한 패배의 결말로 보인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그토록 개혁하고 싶어했던 권력과 언론에 의해 난타당하고 실패자로 낙인 찍혔으며 결국 죽음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민들은 추모를 위한 공간을 열어줄 것을 그의 적들에게 구걸해야 했으나 냉정하게 거절당했고 오히려 불법집회와 소요사태라는 조롱을 받아, 결국 지금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처절하게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높은 추모열기가 위로가 되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굴욕적이고 철저한 패배는 달리 없다. 추모 그 자체는 단지 서러운 패배를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저 한 영웅의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이 될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살아 숨쉴 역사적 의미를 길어 올릴 것인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조금 섣부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감히 이 사건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 당장 시작되어야 하고, 또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더 큰 의미는 국민들의 실천 속에서 성숙되어 가겠지만, 또한 이 순간에도 찾을 수 있는 몇 가지를 제안해볼까 한다.

제일 좁게 볼 때,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작년 이후 계속 제기되어 온 민주적 선거로 뽑힌 대통령의 정통성에 관한 대답의 단초이다. 촛불집회 내내 시민들은 분노했으되 동시에 멈칫거렸다. 민주적 선거로 스스로 뽑은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에 부딪혔던 것이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에서 답을 얻고자 한다. 자신의 정적을 철저히 말살시키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세력은 결코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혔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므로 그의 정통성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노무현 정권 내내 그의 정부가 추진한 정책들로 인해 분열되고만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연대할 것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점이다. 분열하기에는 그동안 이룩한 것이 너무 작고 약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분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적이 누구인지 금방 드러난다. 굳이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한 기여는 고사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편에 서있었으면서, 시민들의 희생으로 열린 민주주의의 공간에서 고귀한 민주주의를 실컷 악용하고 이제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부정하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민주주의란 가장 강력한 체제이지만 때로는 얼마나 취약하고 쉽게 부서지는 체제인가. 스스로를 지킬 충분한 역량도 갖추지 못한 민주사회가 민주주의의 적들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민주주의의 과실을 공유하게 하는 것은 자기파괴행위가 아닌가. 우리가 어디까지 이루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동반된다면 우리는 좀 더 튼튼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화해와 용서, 연대의 메시지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이다. 일단 자기들도 화해와 통합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먼저 들고 나서는 무리는 제외하고 생각하자. 추모조차도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으면서 고인의 뜻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이들이야말로 죽음까지도 정치적으로 편리하게 이용해먹으려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 지난 몇 년간 내부의 차이점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차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무조건 뭉치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차이의 발견은 그 자체로 성과이고 우리 사회를 더 풍부하게 해 줄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차이를 극복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민주주의는 매우 강력한 담론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동안의 모든 노력과 시행착오를 무로 돌리고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만들려는 시도에 동참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보다 진전된 의제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나는 시민사회의 각 진영이 지난 일 년간 소중한 성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보다 보수적인 진영에게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달성이 결코 그 자체로 완결될 수 없다는 것과 비주류 혹은 주변인들이 차별 받는 한 민주주의 역시 요원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동시에 보다 진보적인 진영에게는 흔히 보수적 가치라 불리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가 단지 보수적인 가치가 아니며 사회의 소수파가 합법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저항할 수 있는 소중하고 필수적인 권리임을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로 인권을 제안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그 존엄성에 걸맞게 살 권리가 있다는 이 단순한 외침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성공과 실패의 유산을 계승하고 연대하기를 기대한다. 이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는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들과 나머지 사람들을 확실하게 차별화시키는 기준이고, 고인이 그의 험난한 생애를 통해 줄기차게 추구하려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이라는 의제 아래에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고 서로가 가진 조금씩 다른 입장들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함께 실천하자. 차이를 존중하고 대의를 공유하며 서로 연대해서 물러섬 없이 싸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노무현 서거 0년, 우리가 발견하고 다짐해야 할 의미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본문내용은 기자가 속한 어떤 조직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는, 온전히 개인의 의견입니다. 결론을 내리기는 했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더욱 풍부한 제안들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본문내용은 기자가 속한 어떤 조직의 입장도 대변하지 않는, 온전히 개인의 의견입니다. 결론을 내리기는 했지만, 이제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더욱 풍부한 제안들과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노무현 #서거 #역사적 의미 #인권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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