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당신도 자전거 배워!"

[서평] 최종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등록 2009.06.06 19:10수정 2009.06.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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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자전거와 함께 살기> ⓒ 달팽이

▲ 표지 <자전거와 함께 살기> ⓒ 달팽이

"자전거도 못 타는 사람이 읽을 만한 책이 아닌데."

 

책이 도착하던 날 아내가 냉큼 책을 가로채며 한 말입니다. 아내의 말대로 아직 자전거를 못 탑니다. 아예 배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가 고개를 넘어가는 먼 거리였지만 그냥 걸어서 다녔습니다. 가물에 콩 나듯 자전거 타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형편이 괜찮은 녀석이었지요.

 

자전거 잘 타는 아내가 먼저 책은 들었지만, 번갈아 책을 읽다시피 했습니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에 매달린 아내가 한 자리에 차분히 앉아 책만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아내가 읽다 두면 내가 들고 읽고 내가 읽다 두면 아내가 가져다 읽는 식이 되었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는 단지 자전거에 대한 입에 발린 예찬이 아닙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아온 최종규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편하고 쉬운 길 마다하고 불편하고 힘든 길,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수 있는 길을 선택한 우직스런 바보의 삶과 철학이 책갈피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단지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맛보려면 굳이 <자전거와 함께 살기>를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 여가 활동의 일환 타는 자전거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이 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쭐대며 타는 비싼 자전거가 아닌, 내게 꼭 맞는 거 준비해서 생활의 일부로 타는 자전거, 기계에 불과하지만 마음이 있다면 마음도 주고받고 싶은 자전거, 내가 가는 길이면 결혼 예식장이든, 동창 모임이든, 제주도 여행길이든, 멀고 가까운 거리 따지지 않고 타고 가는 자전거,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자동차 때문에 머리칼이 곤두서는 곧은 국도에서 '저 차 타고 달리는 사람들은 낙동강이 안 보이겠지' 생각하며 타는 자전거, 서울에서 충주까지 충주에서 서울까지 책 보따리 가득 싣고 사진기 가방 둘러메고 타는 자전거. 너무 오래 타서 이곳저곳 고장이 나면 손수 수리해서 타는 자전거….

 

자전거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말 운동과 헌책방 운동을 하는 우직한 바보 최종규가 살아가는 진솔한 모습을 이해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싶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 그 많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때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잘난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이 꼭 살기 좋은 세상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들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로 작정한다면 엄청 힘들고 각박한 세상이 되겠지요.

 

잘 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남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땀 흘리는 곳이 정말 살아볼 만한 세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약삭빠르지도 못하고 계산속도 더딘 이런 사람들을 바보라 부릅니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는 우직한 바보 최종규님이 온몸으로 쓴 이야기입니다. 한여름 더위도 한겨울 추위도 마다않고 자전거에 몸을 싣고 살아간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 쓴 책입니다.

 

아내와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며칠 걸려서 책을 다 읽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아내는 참 많이 놀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나도 많이 놀랐습니다. 자동차길보다 자전거길이 형편없이 적은 이유와, 철부지 어린애들이 활갯짓 하며 뛰어놀 수 있는 길보다 씽씽 달리는 자동차 길이 더 많은 이유를 생각하면서.

 

책 읽은 뒤 아내는 일터로 나가면서 걷는 횟수가 증가했습니다. 자전거가 집에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가 주인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게 불안하다며 걷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전거 못 타는 남편에게 한 마디 던집니다.

 

"이번 기회에 당신도 자전거 배워."

"아직 배울 생각 없는데 당신이 나 뒤에 싣고 다녀."

 

어이없다며 아내는 웃습니다. 아직은 자전거 배우고 싶은 절실함이 없습니다. 나중에 꼭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때 다른 일 젖혀두고 배울 겁니다. 걸어서 출퇴근한 지도 삼년이 넘었으니 이젠 걷는 일도 몸에 배어 익숙합니다. 

 

책 속의 한 구절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걷다가 힘들면 떠올려볼 좋은 구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땀을 식힌다.

 

진보를 꿈꾼다면, 또는 우리 사회가 좀더 나은 쪽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면, 자전거 타기를 몸에 붙이거나 두 다리로 즐거이 걸어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 자기가 '왼쪽' 사람이든 '오른쪽' 사람이든.(책 속에서)

2009.06.06 19:10 ⓒ 2009 OhmyNews

자전거와 함께 살기 - 우리시대 우직한 바보 최종규가 선택한 즐거운 불편

최종규 지음,
달팽이, 2009


#함께살기 #최종규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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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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