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세탁기·TV 안쓰기, 그리고 자전거 타기

자전거 생활인 최종규가 쓴 <자전거와 함께 살기>

등록 2009.06.23 10:02수정 2009.06.2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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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이었다. 하동에서 열린 결혼식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16인치 자전거에 반바지, 고무신을 신은 채였다. 꼬박 사흘을 달려 서울에서 35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 것. 몇 달 전 결혼식에 자전거 타고 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페달을 밟았다. 결혼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긴 머리에 긴 수염이라는 모양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 먼 거리를 오로지 제 힘만으로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깜짝 이벤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는 일상이 그랬다. 충주에서 서울까지 매주 자전거를 타고 책을 실어 날랐다. 짐수레에 책 50-60kg, 가방에 30kg 정도, 짐받이에 7-8kg 정도 채우고 9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면 온몸은 녹초. 그래도 빠짐없이 매주 길을 떠났다. 자전거 타는 이들 사이에서는 '고무신'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최종규씨다.

그가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란 책을 최근 펴냈다. <즐거운 불편>이란 책을 펴낸 출판사다. 이 책에도 '즐거운 불편'이란 부제가 붙었다. <즐거운 불편> 한국판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2006년 5월 1일부터 2007년 5월 20일까지 자전거로 누빈 여정과 느낌을 담았다. 책 표지는 시원하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땀이 뚝뚝 묻어난다. '훅훅'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한 달 전기삯은 3, 4층 더해 1만원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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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씨가 최근에 펴낸 <자전거와 함께 살기> ⓒ 달팽이

자전거인 최종규는 '괴물'이 틀림없다. 보통자전거(26인치)보다 10인치나 적은 스트라이다(16인치)를 타고 평속 42km로 달린다(최고속도가 아닌 '평균속도'라는 점에 주의하길). 스트라이다를 타고 남산에서 다혼 스피드프로보다 더 빨리 올라간다(다혼 스피드프로는 초고속 미니벨로로 유명하다). 접이식 허머 자전거를  타고 충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 58분만에 달린다. 고속터미널 기준으로 두 도시 사이 거리는 127km. 평속 30km 이상 달려야 이를 수 있는 시간이다.

이쯤 되면 속도에 목숨을 건, 기록경기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실상은 정반대다. 그는 생활교통수단으로써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가고, 자전거를 타고 책방에 간다. 자전거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약속장소에 나간다. 자동차나 전철, 기차 등 화석연료를 쓰는 모든 교통수단 대신 자전거를 탄다. 빨리 달릴 수 있지만, 그보다는 두루 주위를 살피며 달리는 쪽을 택한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전거를 탄다. 그 고집스러움은 올바른 삶에 대한 지향에서 비롯한다. 석유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데, 아주 많은 석유가 자동차 달리는 데 쓰이니 자전거를 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에너지를 적게 쓰는 노력을 할 것을 권한다. 글쓴이에 따르면 우리는 자동차 중독에 자동계단 중독이다.

고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은 그가 사는 집에 없다. 전기청소기, 전자렌지도 마찬가지. 한 달 전기삯은 3층 도서관과 4층 살림집을 더해서 1만원 안팎이다. 늘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술자리에서 남은 안주는 도시락통에 담아서 두고두고 먹는다. 그가 도시락통에 싸온 안주뭉치를 본 적이 있다. 보기엔 '영 아니올시다'였지만 그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일행이 남기는 쓰레기를 그는 묵묵히 짊어진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는 정확히 말하면, '자전거로 우리 삶 되돌아보기' 또는 '자전거로 우리 삶 잇기'인 셈이다.

"입으로만 자연보호니 지구자원고갈이니 이상날씨니 석유문제니 이라크전쟁이니 반전평화니 남녀평등이니 교통문제니 뭐니를 떠들기 앞서,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P234

우리말, 사진, 헌책방 ... 더불어 살기

글쓴이가 관심 두는 곳은 많다. 어려운 한자에 대해선 아주 못마땅해 한다. '생가지'는 '살던 집', '통로암거'는 '길 밑 굴'로 고치면 좋겠다고 말한다. '입산금지'는 '산에 들어가지 마셔요'라고 고치면 얼마나 좋겠느냐며 안타까워한다.

사진도 크게 마음 두는 곳 가운데 하나다. 수만 권 책을 들여놓은 개인도서관에서 사진책은 가장 종류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자기 삶과 무관한 사진찍기는 끔찍이 싫어한다. 자기 삶을 오롯이 담은 사진이라야 진짜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제주에 가서 김영갑 사진을 본 뒤 눈물을 흘린 것은 삶터인 제주를 평생 동안 담아낸 장인에 대한 존경에서일 것이다.

레저용 자전거에 대한 반감은 마찬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삶에서 떨어진 자전거는 단지 놀잇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눈여겨보는 것은 사람들 삶이다. 걸어가는 사람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 빵빵거리며 끼어드는 오토바이, 갑자기 들어선 할인마트 등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헌책방에 대해선 애정이 크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와 같은 단행본을 펴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란 잡지를 꾸준히 만든 관심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헌책방 풍경, 주인과 나눈 대화, 딸 이야기 등이 나온다. 헌책 하나를 천 원에 샀는데, 천 원짜리 마실거리를 내미는 주인아주머니 등 헌책방에서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혼자 빠져나와서 이도1동에 있는 헌책방 <책밭서점>을 찾아간다. 헐레벌떡 뛰어서 찾아가는데, 이제 막 문 닫아야 할 때란다. 세 해 만에 찾아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새로 옮긴 이 곳 사진을 몇 장 담는다. 오늘은 마침 어버이날. <책밭서점> 둘째 따님이 아버지한테 드릴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온다. 올해가 고3이라고 하던가? <책밭서점> 둘째 따님은 아버지가 하는 헌책방 일을 이어받고 싶어 한다."-P47

자전거로 누빈 삶, 앞으로 나올 2권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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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씨는 10년 이상 생활자전거를 타고 있다. ⓒ 달팽이

글쓴이는 흔치 않은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자전거로 누빈 삶을 오롯이 담아낸 책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여러 해가 지난 뒤, 글쓴이는 좀 더 커지고 넓어진 눈으로 자전거 함께살기를 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본인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스트라이다로 남산을 거뜬하게 올라가는 이가 흔치는 않다. 글쓴이는 평균빠르기 30킬로로 달리는 것을 '넉넉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이 또한 보통사람은 넘보기 힘든 수준이다. '넉넉하다'가 아니라 '빠듯하다'라고 고쳐야 옳다. 글쓴이 경험에 비춰서 판단하니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 50킬로미터 안짝이라면 자전거가 조금 더 빠르리라 본다"와 같은 진단이 나온다. 글쓴이는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자고 강조했다. 50km를 자동차보다 빨리 달리자면 무리해서 달릴 수밖에 없다. 자전거는 빠르기보다는 여유로움으로 자동차를 다독이는 게 어떨까 싶다.

또한 고집스러움이 지나쳐 무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글쓴이는 첫머리에 "자동차를 몹시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면 '자동차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버렸을 것'이라고 짐작할 정도다. 하지만 글쓴이는 제주도에서 가던 길을 돌아와 일행 여러 명을 몇 차례에 걸쳐 큰 길까지 태워주던 자동차 운전자를 만난다. 자동차를 타는 것과 인격을 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 본다.

글쓴이도 안다. 짐차 중엔 자전거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앞등을 내려 눈이 부시지 않게 해주고, 가끔 기운을 북돋우는 경적도 들려준다. 자전거가 바람에 날리지 않게 옆으로 크게 돌아가는 차도 겪는다. 세월이 흘러 자동차에 치여 몸을 다친 그는 이제 전철을 타고 다닌다. 비록 자전거는 못타지만 전기제품을 쓰지 않고, 손빨래를 하며, 전열기구를 쓰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여전히 자전거인이다. 자전거로 말하고자 한 것은 단지 자전거 타자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 삶을 돌아보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뺑소니 사고를 입어 두 손목과 두 무릎과 두 발목과 왼어깨와 오른팔꿈치가 맛이 가고 말아, 이 글 몇 줄을 적으면서도 지릿지릿 아픕니다만, 이렇게 뺑소니 사고를 입으면서도 세상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이 땅을 느낍니다."-P310

덧붙이는 글 | 참, 이 책 인세는 글쓴이에게 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인세가 더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참, 이 책 인세는 글쓴이에게 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인세가 더 좋은 책을 만드는 데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자전거와 함께 살기 - 우리시대 우직한 바보 최종규가 선택한 즐거운 불편

최종규 지음,
달팽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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