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씨앗, 작은 서점에서 싹 틔우다

[인터뷰] 대한민국 사회과학서점 1호, <인서점> 심범섭 대표

등록 2009.06.27 18:05수정 2009.06.2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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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항쟁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과학서점'을 키웠다. 1980년대 말 전국에 140여 개로 웬만한 대학가에는 다 있었고, 지방 대도시로도 퍼져 나갔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성균관대 앞 '풀무질', 건국대 앞 '인서점' 등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1982년, 대한민국 1호 사회과학서점 <인서점>이 청년학생들의 권유로 건국대 앞에 터를 잡았다. 군사독재 시기 경찰의 탄압에도 잘 버텨왔지만, 오히려 90년대 후반 몰아친 도시 재개발 열기 때문에 두 차례 폐점 위기(1995/2005년)를 겪었다. 하지만 후원 조직인 '인서점을 사랑하는 모임'과 건국대학 동문회인 '청년건대'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책이 놓일 자리는 좁아졌지만, 거친 세월을 버텨왔다는 자부심은 더 단단해졌다. 28년 동안 인서점을 운영 중인 심범섭(68) 대표를 지난 11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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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후문에 위치한 인서점 ⓒ 황상호


대화를 나눈 인서점 안, 현판 옆에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참석자들이 썼던 노란색 모자가 걸려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얘기를 꺼내자 탄식과 함께 심 대표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는 "민중들이 노무현을 너무 조롱했다"며 "나는 인간 노무현이라기보다 '민주주의의 씨앗'으로 본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심 대표는 갑갑한 마음에 대학 캠퍼스를 돌았다. 하지만 학생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것은 근조 플래카드 넉 장 뿐이었고, 캠퍼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고 한다.

"청년들은 거의 돼지 수준으로 내려와 있습니다. 자신을 기존의 삶의 틀 안에 가두는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도 울타리를 보지 못하죠. 많은 학생들이 몸치장이나, 토익, 해외여행같이 개인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청년들이 생각없던 시절이 있었을까."

그는 또 "전대협과 한총련 선배들의 역사는 세계 학생 운동사를 빛낼 만한 것이었다"며 "그 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절, 청년학생들에게 <인서점>은 교재만 사고파는 서점이 아니었다.

"학생들이 자본론 등 당시로선 희귀한 사회과학 책들을 구해왔습니다. 일본 원서를 서로 번역해 나눠보기도 했죠. 당시, 우리 집에 복사기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서로 자료나 문건을 복사해 나눠봤죠. 그러다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면 저도 형사에게 붙들려가 조사를 당했어요. 형사들이 <인서점>에 '민'자가 빠진 거 아니냐고 물어보더군요. '인민서점' 아니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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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인서점 대표 ⓒ 황상호

인서점은 청년들의 눈물이 밴 곳이기도 하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찾아와 막걸리를 한 잔 하고 보내는데, 손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어요. 나는 그저 고민이 큰가 보다 했는데, 다음날 신문을 봤더니 경찰에 잡혔더군요. 끌려가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이죠."

그를 무엇보다 괴롭힌 것은 경찰의 회유였다고 한다.

"경찰이 '당신이 판 책과 복사물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잡혀가고 있다'며,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어둠 속에 빠뜨려서 되겠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얘길 들으면, 정말 그만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과의 추억을 이야기 하다 그는 아쉬움을 드러내며 한 청년을 떠올렸다.

"국회의원 하는 신지호가 기억나요. 연대 총학생회였는데, 참 토론도 좋아하고 눈물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변절해 뉴라이트 계열에서 목소리를 내니 안타깝습니다.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가……."

6월 항쟁을 계기로 민주화가 진전되고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인서점은 두 차례 간판을 바꿔 달았다.

"더 이상 이념에 얽매이기보다,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해 1995년 '문화과학서점'으로 간판을 고쳐 달았다. 그러다 2005년에는 문화가 '삶의 실천운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 '문화사랑방 인서점'으로 다시 이름을 고쳤다. 심 대표는 "인서점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등 저명인사들을 모셔서 토론도 했다"며 "이제는 문화가 일상 속으로 들어가 지식의 보편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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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범섭 대표 ⓒ 황상호



이미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인서점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폐점 위기에 놓인 인서점을 살린 것은 자주 드나들던 청년들입니다. 저는 청년학생들이 저에게 인서점이 아닌 '민주주의의 씨앗'을 맡긴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땅에 뿌려 싹 틔울 수 있도록 잘 간수하겠습니다."

그는 개인주의에 빠진 오늘의 청년학생들이 다시 그의 서점에 모여 우리 사회를 걱정하며 토론하고, 함께 눈물 흘리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입니다.


덧붙이는 글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입니다.
#사회과학서점 #인서점 #저널리즘 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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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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