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가 익어가니 옥수수도 영글어 갑니다

<질매섬 농사일기 -4>

등록 2009.07.11 19:45수정 2009.07.1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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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은 참 이기적입니다. 지난 달 초까지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서 하늘 탓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가 많이 와서 하늘을 탓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6일 모내기를 위해 고향에 갔다가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를 못 하고 그냥 왔는데 11일 고향에 가니 어머니께서 이제 비 좀 그만 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도 걱정, 많이 와도 걱정입니다. 지난 번에 온 비 때문인지 집 앞에 있는 논에 흙이 밀려와 벼가 흙어 파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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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비에 논에 흙이 밀려들어 벼가 파묻혔습니다 ⓒ 김동수

지난 비에 논에 흙이 밀려들어 벼가 파묻혔습니다 ⓒ 김동수

이웃집 논인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진주 아들이 살면서 한 번씩 집에 와서 농사를 짓습니다. 논에 흙이 밀려들어 벼가 파묻힌 것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무로 흙이 밀려들지 않도록 막았지만 도랑에서 세차기 흘러내리는 흙탕물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 논은 해마다 이렇습니다. 그래도 벼농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난 봄 고추를 심었는데 두 달 여만에 벌써 붉은 물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동생을 타박하지만 동생은 농약을 칠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고추가 조금만 이상해도 약을 쳤습니다. 그 경험이 남아 있어 그런지 동생에게 왜 농약 치라는 타박을 자주합니다. 하지만 타박이 아무리 심해도 동생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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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심었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 김동수

봄에 심었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 김동수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으면 금방 고추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만 붉은 물이 들어가는 고추를 보면 동생 생각이 맞습니다. 경험도 중요하지만 책을 통해 배운 지식도 중요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함께 만나 어울리면 더 좋은 먹을거리를 사람들은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김매기에 바쁩니다. 골다공증과 지지난해 다친 허리 때문에 만날 아프다면서 손을 잠시도 놀리지 않습니다. 옛날처럼 큰 일은 하지 못해도 남새밭 풀을 뽑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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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풀을 뽑기 있습니다 ⓒ 김동수

어머니가 풀을 뽑기 있습니다 ⓒ 김동수

아픈 허리로 익어가는 고추를 따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끔 허리를 펼 수 있을까요?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당신 허리는 펴지 못해도 자식들 허리를 펴기 위해서 오늘도 허리를 굽혀 일하고 계십니다.

 

고추 옆에는 도라지꽃이 피었습니다. "도라지 도라지 백 도라지…" 하얀 도라지꽃이 예쁩니다. 도라지를 캐려고 했지만 아직 뿌리가 작아 다음에 캐기로 했습니다. 도라지도 몇 년을 옮겨 심으면 인삼 같은 효능은 없을지라도 나중에 대단한 효능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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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꽃입니다. ⓒ 김동수

도라지 꽃입니다. ⓒ 김동수

 

못생긴 사람을 호박꽃에 비유합니다. 정말 호박꽃은 못 생겼을까요? 도라지꽃 옆에 호박꽃이 피었습니다. 보면 큼직합니다. 큼직하고 노란색인데 못 생겼다고 생각하면 못 생긴 것이고, 그래도 저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박꽃도 꽃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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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이 정말 못생겼을까요 ⓒ 김동수

호박꽃이 정말 못생겼을까요 ⓒ 김동수

어머니는 성격이 급합니다. 옥수수가 영글지도 않았는데 따기에 바쁩니다. 지난 해는 영글지 않은 옥수수를 먹는다고 바빴습니다. 올해도 옥수수 첫 수확은 영글지 않은 것을 먹었습니다. 영글기 전에 제발 따지 말라고 부탁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옥수수 한 상자를 땄는데 잘 영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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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땄는데 잘 익었는지 궁금합니다 ⓒ 김동수

옥수수를 땄는데 잘 익었는지 궁금합니다 ⓒ 김동수

 

지난 봄 작은 씨앗을 땅에 심을 때 이 작은 녀석들이 정말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을까 생각했지만 여름이 되니 고추는 익어가고, 옥수수도 영글어갑니다. 흙이 밀려들어 벼가 파묻혔지만 살아남은 벼는 올 가을 노랗게 익어갈 것입니다.

 

고추와 옥수수, 도라지가 힘을 내어 싹을 틔워 생명을 이어가고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겨내면 생명을 이어갈 것입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힘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2009.07.11 19:45 ⓒ 2009 OhmyNews
#고추 #벼 #도라지꽃 #호박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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