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통문화 이야기는 '조선 후기'에만 머물까?

[책읽기가 즐겁다 293] 토박이+윤혜신+김근희ㆍ이담, <살림살이>

등록 2009.07.13 19:23수정 2009.07.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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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살림살이

- 기획 : 토박이

- 글 : 윤혜신

- 그림 : 김근희(세밀화), 이담(펼친그림)

- 펴낸곳 : 보리 (2008.12.30.)

- 책값 : 35000원

 

 (1) 집안살림과 집밖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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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보리

겉그림 ⓒ 보리

우리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집밖일을 도맡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삶을 들여다보면서, 저 또한 이러한 길을 걸었음직하지만,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걸었던 길은 조금도 안 걷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와 옆지기가 낳아 키우는 아이도 제 엄마 아빠가 걷는 길을 안 걸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남자 = 집밖일', '여자 = 집안일'처럼 가르는 길이 마땅하지 않다고 느끼며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이 길을 거스릅니다. 옆지기가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 집안일을 제가 거의 도맡고 있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할지라도, 저는 언제나처럼 집안일과 집밖일을 많이 맡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집안일을 제가 거의 다 하고 집밖일은 옆지기한테 맡긴다든지요.

 

.. 살림살이 가운데에는 지금 아줌마가 즐겨쓰는 것도 있고 처음 보는 것도 있어. 이런 살림살이는 사람들이 더 쉽고 편하게 살림을 하려고 만들어 낸 거야. 저마다 쓰임새에 맞게 만들어 조금씩 고쳐 가면서 점점 더 쓸모있게 만들었어. 정말 놀라운 일이지? 살림을 하는 데 이 많은 살림살이가 다 쓰이고, 또 쓰임에 딱 맞는 것이 있다는 게 말이야. 아줌마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바로 이 '살림'이라는 말이야. 말 그대로 살림은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일이지. 우리는 살리는 일, 살림. 사람들은 살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 같아 ..  (머리말)

 

어머니는 '가정 주부'였습니다. 이 나라 숱한 어머니는 모조리 '가정 주부'라고 봅니다. 엊그제 옆지기네 고모님 댁에 다녀왔는데, 옆지기네 고모님은 하나같이 '가정 주부'입니다. 빈 그릇 치우기라도 거들고 싶지만,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치울라치면, "최 서방이 일어나니까 우리가 앉아 있을 수 없네"하고 말씀하시니 오히려 제가 몸둘 바를 모릅니다. 사위를 고이 여겨 주시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예 밥상머리에 눌러앉아 밥술만 떠야 하니 속이 메슥거리고 방귀만 뿡뿡 나올 듯해서 힘듭니다. 잠깐이라도 일어나 빈 그릇도 나르고 설거지라도 하며 몸을 놀려야 할 텐데, '가정 주부'로 집안일을 도맡아 오신 당신님들한테는 사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외려 바라보기 힘든 노릇인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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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보리

속그림. ⓒ 보리

하는 수 없이 목구멍까지 먹을거리가 차넘칠 때까지 겨우 견디며 밥상과 과일상들을 받는데,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스스로 너무 오래도록 남자 다르고 여자 다르다는 울타리를 쌓는 바람에 모두 이렇게 생각이 굳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 조상들은 우리네 옛 살림이 사람힘으로만 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어. 세상 모든 일들이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라고 생각해서, 늘 자연을 벗삼고 공경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지. 봄이 오면 그 따스함에 고마워하고 반기는 마음으로 잔치를 벌였고, 부드러운 봄바람, 따뜻한 햇볕, 단비를 내리는 하늘에 진심으로 고마워했어. 산과 들에 가득한 풀을 뜯고 나무에서 물을 받을 때는 땅에 절을 했지.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면서 사람들은 봄의 충만한 생명력을 즐겼던 거야 ..  (14∼15쪽)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늦도록 아기하고 씨름하느라 고달픕니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우리 옆지기는 우리 아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살림을 꾸리며 아이 돌보는 일이란 그리 어렵지 않은 셈입니다. 우리 아이는 많이 얌전하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며 보내는 하루하루란 아이 없이 지내던 하루하루하고 견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이 없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 아이 없이 지내는 삶이 얼마나 단출하고 홀가분하고 호젓하고 손쉽던 나날이라고 떠오르는지. 아이하고 씨름하고 부대끼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 뿐 아니라 힘들고 벅차다고 느껴지는지.

 

그렇지만, 이렇게 고단하고 지치는 하루하루가 싫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지치며 보내는 하루하루이기 때문에 한결 크고 깊은 보람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기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는 나날이라 하여도 이 삶을 끝끝내 붙잡도록 하는 새힘이 돋고, 이 일 저 일 밀리고 치이면서도 이렇게 밀리고 치이기 때문에 내 이웃 아이를 새삼스레 돌아보고 내 이웃 어른을 다시금 헤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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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보리

속그림. ⓒ 보리

.. 예전에는 냉장고가 없어서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어려웠어. 그래서 아줌마네 어머니는 여름철이면 끼니때마다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만드셨지. 특히 열무김치는 사나흘에 한 번 조금씩 담그셨어. 김치를 담글 때마다 어머니는 빨간 고추와 마늘, 생강을 돌확에 넣고 확확 갈아서 양념을 만드시는 거야 ..  (120쪽)

 

살림살이란 내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란 오늘 하루 내 모습이면서,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꾸리거나 이끌어 나갈 내 모습이면서 꿈과 생각입니다. 내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대로, 내가 앞으로 다른 곳에서 살아갈 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란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기에, 입으로만 읊는 말마디나 믿음이 아닌 온몸으로 보여주는 말과 믿음이 됩니다.

 

내가 갖추는 살림살이는 바로 오늘 내 생각과 매무새를 보여주고, 내가 갖춘 살림살이를 다루는 모습은 바로 오늘 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길과 눈높이를 이야기합니다.

 

(2) 살림살이는 '죽은 유물'이 될 수 없는데

 

집살림 잘 꾸리는 사람을 일컬어, 또 돈을 허투루 안 쓰고 잘 갈무리하는 사람을 가리켜 '살림꾼'이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어느 모임이나 일터를 잘 꾸린다든지 이끈다든지 하는 사람을 두고도 '살림꾼'이라 합니다. 집안 울타리에 머물던 살림꾼이 집밖 울타리 너머까지 뻗는 셈입니다.

 

'겨레 전통 도감'이라는 이름을 걸고, 《살림살이》라고 하는 그림백과사전이 하나 선보였습니다. 그림백과사전 《살림살이》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에 따라, 우리네 여느 살림집에서 어떤 연장을 썼는가를 그림 하나와 글 하나로 나누어 엮어 보여줍니다.

 

먼저 봄에는, "장독, 소쿠리, 체, 가마솥, 표주박, 빗자루, 이남박, 조리, 수저, 주걱, 밥통, 주전자, 칼과 도마, 양푼, 푼주, 냄비, 단지, 초병과 초 단지, 기름병, 기름틀, 자라병, 다래끼, 광주리, 동고리, 도시락, 찬합, 보자기"까지 스물아홉 가지를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여름에는, "두레박, 바가지, 물동이, 방구리, 물두멍, 물지게, 살강, 찬탁, 그릇, 신선로, 수세미, 밀판과 밀방망이, 국수틀, 국자, 곰박, 확과 확돌, 화덕, 불씨 항아리, 손풀무, 석쇠, 돗자리, 죽부인"까지 스물네 가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가을에는, "멱둥구미, 바구니, 흡·되·말, 저울, 맷돌, 다식판, 약과 판, 상술 빗기, 술병, 뒤주, 채반, 망태기, 뒤웅박"까지 열다섯 가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젓갈 항아리, 옹배기, 자배기, 앵병, 절구, 메주 틀, 두부 틀, 시루, 떡판과 떡메, 함지박, 쟁반, 가위, 화로, 곰방대와 장죽, 등잔, 요강, 약달이기"까지 열아홉 가지를 보여줍니다. 이리하여 모두 여든일곱 가지 살림살이를 보여주는데, 오늘날 살림꾼 가운데 이 여든일곱 가지를 옹글게 떠올리거나 헤아리는 분은 얼마쯤 되려나 궁금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이 여든일곱 가지를 또렷하게 알거나 쓰거나 다룰 줄 아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 오늘날까지 두루 쓰는 살림살이는 많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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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실린 펼친그림. ⓒ 보리

속에 실린 펼친그림. ⓒ 보리

 

 《살림살이》에 나오는 '도시락'이나 '찬합'은 예전에 쓰던 살림살이이지, 요즈음 쓰는 살림살이가 아닙니다. 설거지를 하며 수세미를 쓴다고 하여도, 《살림살이》에 나오는 '수세미'를 집에서 길러 마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손풀무를 쓰는 사람도 없으며, 물지게를 일 사람 또한 없고, 살강 놓인 부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골 부엌도 죄다 '서양 입식 가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살림살이》에 나오는 '바구니'는 농사짓는 사람이 자연에서 거둔 들풀로 엮거나 짠 바구니이지, 플라스틱으로 공장에서 뽑아낸 바구니가 아닙니다. '가위' 또한 대장간에서 불을 달궈 쇠망치로 두들겨 만든 가위입니다. 절구는 돌을 깎았을 테며, 떡판이나 시루, 다식판은 나무를 깎았겠지요.

 

 그러나 이 모든 살림살이를 장만하지 못하란 법은 없습니다. 부모가 이와 같은 살림살이를 간직하고 있다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한테 없다면 돈을 치러 살 수 있습니다.

 

.. 발효하는 것이 많은 우리 나라 음식에는 장독이 가장 잘 어울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이 꾸려 온 살림살이는 참 지혜로웠지 ..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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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그림. ⓒ 보리

펼친그림. ⓒ 보리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책 사이사이 틈틈이 나오는 "우리 조상들이 꾸려 온 살림살이는 참 지혜로웠지"라는 말마디처럼 우리 옛사람이 '슬기롭게 살아온 모습'을 오늘날 아이들한테 보여주며 가르치려는 매무새로 엮었습니다. 이 모든 살림살이는 꼭 알맞춤하게 만들었고, 어느 살림살이나 자연에서 나왔으며, 망가져도 버려지는 일이 없이 되쓰이거나 썩어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왜 우리 옛사람 '슬기로운 살림살이'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네 슬기로운 살림살이'는 어짜하여 오늘날 거의 안 쓰이고 있을까요?

 

.. 옛날에는 빗자루가 흔해서 그랬는지,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어른들이 빗자루채를 거꾸로 들고 혼을 냈어. 커다란 빗자루에 몇 대 맞아도 별로 아프지도 않고 다치는 일도 없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빗자루는 사랑의 매였던 거지 ..  (30쪽)

 

 그림백과를 덮으며 또다른 대목에서 궁금합니다. 우리네 슬기로운 살림살이라 하고 우리 옛사람 살림살이라고 하지만, 그림백과에서 보여주는 거의 모든 살림살이는 '조선 후기에 쓰던 살림살이'입니다. 그나마 '조선 전기에 쓰던' 살림살이는 몇 가지 안 되며, '고려'나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때 쓰던 살림살이까지 헤아리자면 얼마 없으며, 더 오래도록 이 나라 사람들이 써 온 살림살이가 무엇일까 하고 가누어 보면 거의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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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친그림 ⓒ 보리

펼친그림 ⓒ 보리

 

 참말 '살림살이란 무엇일까?' 하고 새삼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두고 살림살이라 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한, 그림백과 《살림살이》에 나오는 살림살이는, '이 나라 여느 살림집에서도 두루 쓰던 살림살이'일는지, 가난한 집에서는 쓰지 않던 살림살이가 있는지, 돈 많거나 사대부집안에서만 쓰는 살림살이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더욱이 '옛사람 슬기'라 하지만, 그림백과 《살림살이》에 보여지는 모습은 하나같이 '여자 손이 가는 물건'일 뿐입니다. 남자 손이 가는 물건이란 없으며, 그림백과 사이사이 곁들인 '펼친그림'에 비춰지는 사람들 모습 또한 '남자 = 위, 여자 = 아래'인 듯한 가부장 모습 그대로일 뿐입니다. 비록, 지난날 조선 때에 사람들 삶이 '여자는 죽도록 집안일을 하며 허리가 휘고, 남자는 양반다리 하고 앉아 높은 자리에서 밥상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런 모습을 굳이 그대로 보여주는 일을 '전통'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또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앞에 내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문화가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아름답거나 훌륭한 우리네 전통문화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 아줌마가 시어머니께 살림을 하나씩 배워 가는 초보 주부였을 때 일이야. 한번은 시어머니께 크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그렇게 혼이 났냐고? 쌀을 씻다가 그만 쌀알을 조금 흘려 버렸지 뭐야. 한 스무 톨쯤? 시어머니는 귀한 쌀을 많이 버렸다고 혼쭐을 내셨지. 그때는 시어머니 말씀이 너무 서운했어. 먹다 남은 밥도 버리는데 그깟 쌀 몇 톨에 왜 그러실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아줌마가 직접 농사를 지어 보니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그 쌀 한 톨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농부의 손길과 땀, 벼가 뜨거운 햇빛과 차가운 밤이슬을 견디고 자란 그 시간을 생각해 봐 ..  (32쪽)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조선 후기 퍽 넉넉한 살림집 모습'을 바탕으로 '우리네 슬기로운 옛사람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틀로 짜여 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펴내는 다른 전통문화 그림책과 이야기책에서도 이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네 전통문화 연구가 '조선 후기 문화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편, 조선 전기나 고려나 더 앞선 때 문화와 삶을 헤아릴 자료가 없는 탓이라 할 테지만, 연구와 상상력을 모두어 더 뿌리깊고 넉넉한 '참다운 전통문화 찾기'를 해 본다면 더 뜻이 있고 보람이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리고, 옛날 문화재 더듬어 보기에만 그치지 말고, 오늘날 우리가 기쁘게 즐기면서 앞으로 우리 뒷사람한테 신나게 물려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전통문화란 무엇일까'에도 눈길을 둔다면 더욱 싱그럽고 아름답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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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보리

속그림 ⓒ 보리

.. 여자아이들은 예닐곱 살만 되면 작은 물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나르는 연습을 했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물인 만큼 그것을 길어 나르는 것도 큰일이었지. 그래서 부엌에 놓인 물두멍에 물이 얼마나 차 있는지를 보고 그 집 안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 가늠하기도 했대. 어머니들이 지칠 줄 모르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리던 힘은 아마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 박 오가리는 졸여 먹기도 해. 껍질까지 잘 말려서 그릇으로도 쓰니,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다 쓰는 것이,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바치는 어머니나 할머니와 마음을 꼭 닮은 것 같아. 박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던 셈이야 ..  (86, 88쪽)

 

 아쉬운 대목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림백과 《살림살이》는 '세밀화'와 '펼친그림' 두 가지 그림을 나누어 싣습니다. 먼저 펼친그림으로 이야기 흐름을 두루 보여주고, 다음으로 세밀화로 낱낱 살림살이를 도드라져 보이도록 합니다. 한쪽에 그림 하나를 큼지막하게 넣습니다.

 

 이렇게 넣은 펼친그림은 구수하고 따스하다 싶은 느낌이 배어들게 하고, 찬찬히 그린 세밀화는 '이제는 눈으로 구경하기도 어렵게 된 살림살이' 모습을 잘 살펴보도록 돕습니다. 그림 짜임새를 돌아본다면, 으레 말하는 '여백의 미', 그러니까 '빈자리를 두는 아름다움'을 살리려 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백과 《살림살이》에서 베푸는 '빈자리 두는 아름다움에 따른 큼지막한 그림 하나'는, '사진으로 찍어도 되는데 왜 그림으로 굳이 그렸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사진으로 찍는 모습하고 다를 다 없다'는 느낌도 듭니다.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쁨과 재미가 없다'는 느낌에다가, '덩그러니 하나만 보여주는 그림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판짜임을 줄이고 작은 그림으로 넣더라도' 괜찮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35000원짜리 큰 판짜임으로 할 까닭이 없고, 주머니도감으로 엮어 한결 값싸고 가벼운 책으로 묶었다면 더 보람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왜냐하면, 살림살이는 '박제'가 아니요 '박물관 유물' 또한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가까이에서 부대끼는 연장이요, 우리가 늘 만지는 연장이거든요. 이제는 흙으로 빚는 살림살이가 아닌 스테인리스로 찍어내는 살림살이라 할지라도, 살림살이란 다루는 살림꾼이 어떤 마음밭이요 매무새이느냐에 따라 빛이 나기 마련입니다. 옻이 아닌 니스를 바른 밥상이라 할지라도, 살림꾼 마음이 애틋하다면 살갑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배어들기 마련입니다.

 

 보리출판사에서는 앞으로도 '겨레 전통 도감'이라는 이름으로 그림백과를 더 펴낸다고 밝히고 있는데, '겨레 전통 도감' 2번을 펴낼 때에는 1번인 《살림살이》에서 보여준 좋고 나쁨을 널리 굽어살피고 보듬어 준다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로 겨레 전통문화를 나누는 길을 찾으면 좋겠고, 죽어 버린 박물관 유물유먹 같은 값비싸고 껍데기 우람한 길은 이제 그만 접어두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살림살이 (양장)

윤혜신 글, 김근희.이담 그림, 토박이 기획,
보리, 2008


#책읽기 #어린이책 #그림책 #살림살이 #전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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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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