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전거 즐김이'는 '서울 사는 남자 회사원'뿐?

[책읽기가 즐겁다 294] 김준영, <자전거홀릭>

등록 2009.07.15 17:51수정 2009.07.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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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자전거홀릭

- 글쓴이 : 김준영

- 펴낸곳 : 갤리온 (2009.6.10.)

- 책값 : 13000원

 

 

 (1) 우리 나라에서 자전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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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갤리온

겉그림. ⓒ 갤리온

 지난 5월부터 바로 어제(7월 14일)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한 주에 한 번씩, 경기도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자전거 정비' 수업을 맡아 이끌었습니다.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인 아이들 열둘하고 했던 '자전거 정비' 수업에서는, 망가지거나 다친 자전거를 어떻게 손질하느냐부터, 어떻게 자전거를 타야 우리 몸에 알맞는지, 자전거를 생각하는 마음과 몸짓이란 어떠할 때가 좋은지 들을 골고루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전거 수업을 이끄는 저는 인천에서 파주로 자전거를 타고 오갔습니다.

 

 어제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아무래도 인천부터 파주까지 가기에는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자칫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길을 나섰으며, 인천부터 파주까지 전철로 가는 두 시간에 걸쳐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는 본인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인 것만은 사실인가 보다 …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 타기의 기본은 기술보다는 마음가짐에 있는 것 아닐까? 아무리 좋은 기술로 현란한 라이딩쇼를 펼친다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여유로운 마음이 없으면 자칫 위험한 질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43, 103쪽)

 

 주엽역에서 책을 가방에 넣은 다음 비닐로 잘 싸 놓습니다. 모자를 쓰고 안경을 끼고 비옷을 입습니다. 비오는 날에는 안경을 쓰곤 하는데, 빗물이 눈에 튈 때 눈을 감다가 미끄러질 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옷을 입으면서도 모자를 쓰는 까닭은 비옷만 입으면 머리 쪽에서 흐르는 빗물이 얼굴로 타고 흐르기도 하지만, 빗물이 곧바로 얼굴을 때려서 앞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옷을 입고 모자를 쓴 채로 달릴 때에는 고개가 많이 아픕니다. 파이거나 기울어진 찻길에는 으레 빗물이 고여 있는데, 이런 길을 살피고 뒷거울로 차흐름을 보노라면 고개를 위로 많이 젖힐 수 없어 이삼십 분이 넘어가면 뒷목이 뻣뻣해집니다.

 

 여느 날 자전거를 달릴 때에도 늘 느끼지만, 비오는 날이 되니 우리 나라 찻길이 참으로 엉망진창임을 새삼 느낍니다. 왜냐하면, 찻길 가운데 쪽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자전거가 달릴 찻길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한 데에다가 기울어져 있기 일쑤이고 깊이 파인 데가 많습니다. 이런 탓에, 비오는 날 자동차들이 찻길 가장자리에서 씨잉 하고 내달리면, 거님길을 걷던 사람들은 그예 물벼락을 맞을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찻길 가운데 쪽을 달리는 자동차 가운데 한 대가 자전거한테 물벼락을 뒤집어씌웁니다. 이 자동차는 빗길임에도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다가 끼익 하고 멈추었는데, 신호등과 길흐름을 살피며 달리던 제 눈으로 보자면, 이 자동차는 어차피 신호에 걸려 더 달릴 수 없었음에도 내처 달렸고, 아무래도, 빗길 자전거한테 물벼락을 씌워 놀려 주려는 생각이었다고 느낍니다.

 

 모든 자동차꾼이 이렇게 괘씸하고 심술궂지 않습니다. 100대에 2대 꼴로 이런 심술쟁이 자동차꾼을 만납니다. 그런데, 심술쟁이는 아니더라도 '길에는 자동차만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동차꾼은 100대에 20대 꼴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빗길을 살금살금 달리는 자전거 앞에 난데없이 끼어들어 한참 밍기적거리다가 슬그머니 오른쪽 깜박이를 넣고 아주 느릿느릿 꺾어 들어가는 택시며 자가용이며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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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에도 자전거를 달립니다. 비옷을 입고. ⓒ 최종규

빗길에도 자전거를 달립니다. 비옷을 입고. ⓒ 최종규

 

.. 내가 느낀 일본의 자전거는 철저하게 생활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아침의 출근도, 학생들의 등교도, 엄마들의 장보기도, 아이들의 놀이도, 퇴근도 모두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도로가 북적인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은 헬멧도 없고, 자전거 복장 차림도 아니었다. 양복에 교복에 평상복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며칠을 둘러보아도 근사하게 차려입고 날쌘 속도로 지나는 라이더를 본 기억이 없다 … 신기한 것은 매장 대부분의 자전거가 분명 유명 브랜드의 산악자전거인데도 고급 부품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통 LX나 XT급을 중급 부품이라 생각하고 데오레급은 입문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 비해, 미국의 숍은 XT를 굉장히 고급 부품으로 생각한다. 나의 자전거가 XT로 꾸며졌다고 했을 때, 혹시 내가 자전거 선수가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내가 보는 자전거 문화나 숍의 주인장 얘기를 들어 봐도, 미국은 레저용으로 즐기기 위한 자전거 문화가 많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  (78∼79쪽)

 

 여느 날에는 이십 분이면 넉넉히 달리던 길을 사십 분 남짓 달려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 앞에 닿습니다. 그동안 손질해 놓은 자전거 두 대가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대안학교 아이들 대여섯이 비 안 맞는 자리에서 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불러 "자전거를 이렇게 비 맞게 놓으면 어떡해요?" 하고 묻습니다. 달리 대꾸가 없습니다. "이 자전거들을 애써 손질하고 닦아 주었어도 비 맞히면 예전하고 똑같아지니까, 비 안 맞는 자리로 옮겨 놓으셔요." "누가 저기다 놓았어? 내가 안 놓았는데."

 

 마침 이때에 밖에 있던 아이들이 이 자전거들을 비 맞는 자리에 놓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가 놓았든, 대안학교 아이들이 모두 번갈아 타는 자전거라면, '내 자전거'가 아니어도 잘 간수하고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전거 수업을 하며 아이들한테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이들 가운데 '자전거를 장만한 뒤로 여태까지 자전거를 한 번이라도 닦아 준 적이 있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참 놀랄 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전거뿐 아니라 셈틀도 그렇고 책상도 그렇습니다만, 또 밥상도 그렇고 방바닥도 그렇습니다만, 더구나 옷가지도 그렇고 신발과 악기도 그렇습니다만, '닦고 매만져 주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란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으레 갖고 있는 손전화기에 짜장면 국물이 튀었을 때 국물 자국 그대로 두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다 못해 바짓단에 슥슥 문질러 닦기라도 하지 않을까요? 자전거에 흙탕이 튀면? 자전거가 비를 맞은 다음에는? 자전거에 기름때가 끼었다면? 마땅히 닦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친구들이 자전거를 닦아야 하는 줄 몰랐을 수 있어요. 그러면, 친구들 부모님은 어떠한가요? 친구들 부모님 가운데 친구들한테 자전거를 닦으라고 가르치거나 부모님이 몸소 자전거를 닦은 적이 있는가요?" 하고 다시 묻습니다. 어느 아이도 저희 엄마 아빠가 자전거를 닦은 적이 없고 닦으라 말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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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손질과 청소를 배우는 대안학교 아이들. 손에 기름때가 묻어도 즐겁게 배웠습니다. ⓒ 최종규

자전거 손질과 청소를 배우는 대안학교 아이들. 손에 기름때가 묻어도 즐겁게 배웠습니다. ⓒ 최종규

 

.. 그럼 두 번째, 자전거는 차와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는가? 역시 그렇다. 법적으로는 거의 같은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자전거는 도로에서 약자가 되어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천덕꾸러기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불공평하지만, 우리 나라 도로 구조와 교통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곤 해도 자전거에는 아직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그래서 '발바리'와 같은 모임이 생겨 자전거의 권리를 찾고자 함이 아닌가? ..  (301쪽)

 

 파주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사는 집은 거의 일산에 있습니다. 일산부터 파주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걸어가면 한 시간 반 남짓 걸리겠지만, 자전거를 타면, 넉넉잡아 삼십 분 남짓입니다. 그렇지만 이 길을 자전거로 오가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자전거로 오가는 선생님이나 학부모님 또한 한 분도 없습니다. 모두 자가용 또는 버스를 탑니다.

 

 제가 즐겨가는 동네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일흔을 넘긴 나이이지만, 가게 물건을 떼려고 손수 자전거를 끌고 가서 짐받이에 그득그득 묶어서 날라 오곤 합니다. 당신이 입는 양복을 빨래방에 맡기거나 찾아올 때에도 한손으로 양복을 들고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타고 다닙니다. 동네에 있는 솥집 할아버지도, 동네에 있는 쌀집 할아버지도, 동네에 있는 도매상집 할아버지도, 언제나 자전거 짐받이에 짐을 잔뜩 묶고는 나릅니다.

 

 이분들 자전거를 보면 짧아도 스무 해를 탄 자전거요, 길면 마흔 해를 훌쩍 넘긴 자전거들입니다. 빠르게 내달리지는 못하는 녀석이지만, 당신들한테 꼭 알맞춤하게 달릴 수 있는 탈거리이며, 당신들이 눈을 감고 이 땅을 떠나는 날까지 당신들한테 두 다리가 되어 주는 길동무 노릇을 하리라 봅니다. 아마, 당신들 스스로 느끼실 텐데, 당신들한테 자전거는 그냥 자전거가 아닌 재산이었고 오랜 길벗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새 돈 좀 있고 자전거 멋나게 타고 다니는 사람이 보기에' 하찮거나 시시한 짐자전거일 뿐일지라도, 당신들은 당신 자전거가 낡거나 다치지 않도록 틈틈이 손질하고 닦아 주며, 비바람이나 햇볕에 망가지지 않게끔 간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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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붙인 짐자전거. 이런 자전거가 바로 '생활자전거'입니다. ⓒ 최종규

수레를 붙인 짐자전거. 이런 자전거가 바로 '생활자전거'입니다. ⓒ 최종규

 

.. 어느 날 동료의 자출 자전거를 보니 체인에 오일이 말라 있기에 내가 물었다. "야∼ 너는 자전거 좀 닦아 주고 기름칠 좀 해 주지. 자전거 꼬라지가 그게 뭐냐?" 친구가 내게 그런다. "야∼ 오버하지 마. 청소는 뭣 하러 하는데?" 당당한 그의 한마디에 뭐라 해야 할지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  (366쪽)

 

 할아버지 아저씨한테는 짐자전거가 당신들 생활자전거, 곧 '삶자전거'입니다. 할머니와 아주머 가운데에도 짐자전거를 타는 분이 있으나, 으레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이를테면 '장바구니 자전거'인데, 장바구니 자전거가 바로 당신들한테 '삶자전거'입니다.

 

 자전거로 살아가는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는 언제나처럼 자전거를 몹니다. 빨리 내닫는 자전거가 아니라 알맞게 바람을 느끼는 자전거요, 길을 느끼고, 동네사람을 만나 인사하며, 짐을 싣는 자전거인 가운데, 서로서로 태워 주는 자전거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초중고등학교 아이들 가운데 학교를 오가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제법 있기는 있으나, 어느 아이도 '짐자전거'나 '장바구니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 '유사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신문 경품 자전거'를 타곤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도시에서 돈 제법 받는 회사원쯤 되면 '겉보기에 멋지거나 예쁘장한(이른바 뽀대나는)' 자전거를 큰돈 들여 지릅니다. 멋져 보이는 자전거를 지른 다음에는 자전거옷을 갖추어 입고, 자전거장갑에 자전거모자에 자전거수건에 자전거안경에 자전거가방에 자전거물병에 자전거속도계에 자전거등불에 …… 목돈이 쏠쏠히 빠져나가는 물품 사들이기에 빠져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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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집 담벼락에 붙어서 비와 햇볕을 긋고 있는 짐자전거. ⓒ 최종규

골목집 담벼락에 붙어서 비와 햇볕을 긋고 있는 짐자전거. ⓒ 최종규

 

 (2) 자전거 '마니아'야말로 자전거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김준영 님이 쓴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을 읽었습니다. 인천에서 파주로 자전거 수업을 하러 가는 전철길에서 금세 읽습니다. 인터넷 네이버까페 '자출사'에서 '쭈니'라는 또이름을 쓰는 김준영 님은, 모임이름마따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생활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 아닌 '산악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지만, 자전거 사랑이 남다르며, 섣불리 겉멋을 내세우는 자전거꾼 또한 아닙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자전거홀릭》이라는 책, 우리 말로 하면 '자전거중독자' 또는 '자전거에 미친 사람' 또는 '자전거에 푹 빠진 사람'이라는 책을 써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라이더들에겐 속도 줄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빠르게 달리다가 장애물이 나타나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아슬하게 피하거나, 호각이나 벨을 신경질적으로 불거나 울려 상대가 피하게끔 만든다. 잠시 멈추었다가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  (107쪽)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에는 '후회하지 않는 자전거 구입', '자전거 구조와 명칭에 대한 이해', '내 몸에 자전거를 맞추는 방법', '중고 자전거 구입 요령', '자전거 레이서의 자세', '주행 기술 익히기',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기 위한 계명', '기어비 계산하기', '이상적인 페달링 익히기', '자전거 용품 총정리', '자전거 도난 예방하기', '사계절 자출 요령', '자전거 응급 조치 요령', '자전거 사고 시 대처법', '자전거- 업그레이드', '일상적인 자전거 점검', '본격적인 자가정비의 세계로', '주기적인 자전거 청소', '환상의 루트', 이렇게 여러 가지 자전거 이야기를 다룹니다.

 

 책날개에는 "자전거 초보와 숙련된 레이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유용한 정보들"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틀림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도움되는 정보'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들이 '꼭 있어야 할' 이야기라든지, '자전거 새내기가 꼭 익힐' 이야기라든지, '자전거 오래 타거나 잘 타는 사람이 반드시 알아둘'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자전거를 사면 딸려 나오는 자전거제품설명서'에 차근차근 실려 있거든요. 더구나 '자전거제품설명서'에는 '교통법규 및 도로주행 시 유의사항'이나 '승차 전 필수 확인사항'도 나와 있으며, '점검, 조정의 시기와 방법'에다가 '주차 및 보관 시 유의사항'까지 나와 있고, '올바른 승차자세와 핸들과 안장 조립 및 높이 조절'이 그림과 함께 낱낱이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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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속그림은 예쁘게 잘 들어가 있습니다. ⓒ 갤리온

속그림. 속그림은 예쁘게 잘 들어가 있습니다. ⓒ 갤리온

.. 내가 자출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다. 자출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자전거를 타는 이들 중에 헬멧 쓰는 이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도로에서도 강변에서도 자전거 타는 이들의 대다수가 쓰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연세 있는 분들이나 나이 어린 친구들이 헬멧 쓴 모습은 더욱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교복 차림의 학생이 헬멧을 쓴 경우는 자전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본 기억이 없다 ..  (179쪽)

 

 대안학교 아이들과 자전거 수업을 하면서 "친구들은 자전거를 살 때에 자전거제품설명서를 받았나요?"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어느 아이도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못 받았을 수 있는데, 못 받았다기보다 받았는데 쓰레기통에 넣었다고 해야 옳지 않으랴 싶습니다. 가스렌지를 사든, 연고를 사든 어디에나 설명서는 꼭 들어 있습니다. 자전거를 사는데 설명서가 안 들어 있겠습니까. 손전화기를 다루는 설명서만 해도 100쪽이 넘어요. 그런데 자전거 설명서가 없겠습니까.

 

 저는 제가 단골로 다니는 자전거집에서 여러 가지 자전거설명서를 잔뜩 얻어 놓고 있습니다. 제 둘레에서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한테 주려고요. 아직 자전거를 사지 않았더라도 자전거설명서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익혀 나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리 익힌 이야기를 자전거를 타면서 몸으로 받아들이거나 새기고, 나중에는 스스로 '설명서에 못 담은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룬 자전거책'을 한 권 두 권 읽으며 배우도록 이끌어 줍니다.

 

 자전거설명서 맨 앞에는 "본 제품 사용 설명서는 자저거 사용 전에 잘 읽으시고 올바르게 사용해 주십시오" 하는 말이 적혀 있고, 다음에 빨간 빛깔로 "어린이에게는 반드시 읽어 주고 지도하여 주십시오" 하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오늘 우리 삶터에서 아이들한테 자전거를 사 주는 어버이 가운데 '자전거설명서를 읽어 주는 아빠 엄마'는 몇 사람쯤 될까요? 아이들은 이런 설명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를 뿐더러, 생각조차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어떠하지요? 우리 어른들은 '산악자전거'를 장만하든 '경주자전거'를 마련하든 '작은자전거'를 사들이든 '짐자전거'를 사서 타든, 이 자전거가 어떤 자전거이며 어떻게 타야 즐겁고 올바르고 서로한테 도움이 될는지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 헬멧을 잠깐 벗더라도 두건이 없으면 헬멧에 눌리고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가 좀 흉해 보인다. 또 라이딩 시에 몇 무더기 머리카락이 헬멧 구멍 사이로 나와 휘날리는 경우도 보는데,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 대부분의 고급 기종 자전거에는 물병 케이지를 걸 수 있도록 작은 나사 홈 두 개가 약 10센티미터 간격으로 있다. 생활자전거에 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  (191,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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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집에서 얻은 여러 가지 자전거설명서입니다. ⓒ 최종규

자전거집에서 얻은 여러 가지 자전거설명서입니다. ⓒ 최종규

 

 자전거책 《자전거홀릭》은 예쁘장한 그림과 부드럽고 쉬운 말씨로 '자전거 새내기'와 '자전거 솜씨쟁이'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설명서'에 담긴 밑바탕 이야기 틀을 넘어서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자전거집에서 자전거를 장만하든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마련하든, 우리가 '거저로' 얻는 설명서에서 다루는 이야기 깊이보다 깊게 파고들지 못했고, 널리 아우르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는 길에서 달립니다. 길이란 사람이 걷는 거님길일 수 있고,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찻길일 수 있으며, 서울 같은 데에서는 한강길일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길에서 달리는 자전거'입니다. 그런데, '길에서 자전거를 어떻게 달려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하나도 안 실려 있습니다. 글쓴이 스스로 '길에서 자전거를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는 몇 줄로 짤막하게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면서 '자전거 물품과 장비'를 갖추거나 장만하는 이야기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지름신' 이야기까지 합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분들 가운데 지름신에 따라 물품을 더 갖추는 분도 있습니다만, '자전거가 내 삶이 되며 언제까지나 즐거운 길동무가 되는' 분도 무척 많습니다.

 

 그러면, 《자전거홀릭》은 누구와 자전거 이야기를 나누려 하는 책일는지요. '자전거 매니아'한테? '자전거 생활인'한테? '자전거 출퇴근 일꾼'한테?

 

.. 자전거에 취미를 가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고 싶은 용품이나 부품도 늘어난다. 이것도 써 보고 싶고, 저것도 써 보고 싶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매달 받는 용돈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비상금보다 가격이 높은 경우도 허다하다. 처음에는 남편의 건강을 위한 투자로 생각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아내도 계속적인 지원 요구에는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이때도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 가족을 위해 하나를 양보하면 두 개 세 개의 양보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배려와 이해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다음번에는 기꺼이 남편과 아빠를 위해 그들의 시간을 양보해 줄 것이다 ..  (86∼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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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아이들이 타는 '유사 산악자전거'들. 그예 비를 맞고 있어서, 비 안 맞는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 최종규

대안학교 아이들이 타는 '유사 산악자전거'들. 그예 비를 맞고 있어서, 비 안 맞는 자리로 옮겨 놓았습니다. ⓒ 최종규

 

 (3) 자전거로 살아가는 기쁨과 사랑을 찾길 바라며

 

 《자전거 홀릭》을 읽는 내내, 글쓴이 생각과 삶이 아무래도 '서울에서 사무직 회사에 다니는 청장년 남성, 이 가운데 혼인해서 아이가 하나쯤 있는 남성'한테만 눈길을 맞추어 놓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한테는, 또 자전거를 타는 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또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 아줌머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조금도 눈길을 안 맞추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참말로, 자전거는 남자만, 그러니까 아빠만 타야 할까요? 자전거는 도시에서만, 더욱이 서울 같은 큰도시에서만 타야 할까요?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도시에서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자전거를 어떻게 타야 좋을까요?

 

 더구나, 책 앞머리에서 '자전거 갈래'를 나눌 때에 '생활자전거 = 유사 산악자전거'라고 못박으면서 이야기를 펼치는데, 이 대목은 몹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생활자전거는 생활자전거이고, 유사 산악자전거는 유사 산악자전거입니다. 생활자전거는 '짐자전거'와 '장바구니 자전거'를 아우르며, 여느 산악자전거이든 경주자전거이든 작은자전거이든 이러한 자전거를 늘 타고다니면 이 자전거들은 곧바로 생활자전거가 됩니다.

 

 유사 산악자전거는, 이 이름 그대로 '산악자전거 비슷하게 만든 짝퉁'으로, 이런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닙니다. 값싼 물건입니다. '유사 사진기'와 '유사 핸드폰'이 있겠습니까? '유사 가스렌지'와 '유사 버너'라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그래서, '유사 산악자전거라는 짝퉁 물건을 만드는 자전거회사는 법으로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자전거 아니면서 모양만 자전거처럼 만들어 아이들 눈을 홀리고 아이들을 위험에 내모는 녀석이 바로 '유사 산악자전거'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여느 자전거집 매출 거의 모두를 차지하는 녀석은 바로 유사 산악자전거입니다). 이런 자전거는 만들어서도 팔아서도 타서도 안 됩니다.

 

 그래, 《자전거홀릭》은 나중에 2쇄를 찍을 때에, 다른 어느 대목보다도 이 대목, 생활자전거를 다루는 자리는 모두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정보와 생각으로 사람들한테 잘못된 이야기를 퍼뜨리면 안 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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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짐자전거, 곧 생활자전거입니다. 동네 골목길 어디에서나 만나는 짐자전거를 돌아보고 쓰다듬으면서, 이 자전거가 달려 온 길을 헤아려 보곤 합니다. ⓒ 최종규

여느 짐자전거, 곧 생활자전거입니다. 동네 골목길 어디에서나 만나는 짐자전거를 돌아보고 쓰다듬으면서, 이 자전거가 달려 온 길을 헤아려 보곤 합니다. ⓒ 최종규

 

.. [생활자전거 (유사 산악자전거)] 보통 우리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자전거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생활자전거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문을 구독하면 주는 자전거 또는 주유소 경품용 자전거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하철 입구 옆에 묶여 있는 자전거의 80∼90퍼센트가 이런 유의 자전거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이나 생활용으로 이용하는데, 도난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고가의 고급 자전거를 사용할 이유는 없으므로 어찌 보면 이러한 생활자전거가 더 적합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  (18∼19쪽)

 

 글쓴이는, 일본 자전거 문화를 이야기하며 "그들은 헬멧도 없고, 자전거 복장 차림도 아니었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국 자전거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교복 차림의 학생이 헬멧을 쓴 경우는 자전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이래 단 한 차례도 본 기억이 없다"고 밝힙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일본에서 '자전거 = 삶'이라고 말한 글쓴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전거란 무엇일까요. 일본 청소년한테는 '헬멧 없이 자연스럽게 타고다니는 자전거 삶'인데, 한국 청소년한테는 자전거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또한, 글쓴이는 한강 자전거길에서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전거꾼을 꾸짖는 이야기를 씁니다만, 이들 '무시무시 내달림꾼'이란, '자전거 헬멧과 장갑과 가방과 이것저것 다 갖춘 비싸구려 자전거'를 모는 분들입니다. 이들이 타는 자전거 부품은 무척 값비싸며, 이런 값비싼 부품은, 한국을 뺀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자전거 선수나 쓰는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들 '무시무시 내달림꾼'들은 처음부터 한강길이든 어디에서든 씽씽 달리며 당신들 비싸구려 자전거를 뽐내려 하는 분들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이한테 마음쓸 그릇이 없는 분입니다.

 

 찻길에서 자전거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구는 자동차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똑같은 차를 몰더라도 남 앞에서 잘나 보이거나 번듯해 보이는 더 비싼 자동차를 장만하려는 사람들 매무새하고 똑같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나라에서 자동차이든 자전거이든, 또 책이든 영화이든, 옷이든 화장품이든, 집이든 일자리이든, 나 스스로 참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길을 찾는다기보다 남 앞에서 우쭐거리거나 자랑하거나 내보이려는 쪽으로 헛걸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전거홀릭》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느낍니다.

 

.. 자전거가 삶의 작은 행복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흡족할 듯 싶다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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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짐받이에 태우고 달리는 할아버지 자전거. 동네마실을 자전거로 하다 보면, 틈틈이 이런 멋진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 최종규

할머니를 짐받이에 태우고 달리는 할아버지 자전거. 동네마실을 자전거로 하다 보면, 틈틈이 이런 멋진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 최종규

 

 《자전거홀릭》을 쓴 글쓴이께서 첫마음으로 고즈넉하게 돌아갈 수 있다면, 아니, 첫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우리 삶에 작은 즐거움을 나누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길을 새롭게 찾고 느낄 수 있으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그래서 아빠 혼자서만 낼름낼름 즐기다 그치는 '자전거 마니아'가 아니라, 글쓴이 아내한테도 자전거를 가르쳐 주며 함께 타고, 또 글쓴이 아이한테도 자전거를 가르치면서 같이 타는, 이리하여 '세 식구가 함께 자전거 타기'를 자전거책에 담을 수 있으면 반갑겠고, '세 식구 자전거 장만하기' 이야기를 새롭게 자전거책에 담을 수 있으면 고맙겠으며, '세 식구가 나란히 자전거를 즐기는 길은 어떠한 모습'인가를 차근차근, 더 느리게, 더 천천히, 더 오래 삭이고 묵히면서, 더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면서, 더 길게 내다보고 어깨동무를 하는 삶자락을, 자전거책에 살포시 담아 준다면 저 또한 흐뭇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7.15 17:5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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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자전거홀릭 - 두 바퀴 위의 가볍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다

김준영 지음,
갤리온, 2009


#자전거 #자전거책 #생활자전거 #책읽기 #자전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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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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