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많았던' YTN 1년, 법정에서 복기하다

17일 구본홍 사장 선임 주총 1년... "1년이 10년 같았다"

등록 2009.07.16 20:33수정 2009.07.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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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YTN 주주총회에서 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들이 노조원들을 저지하는 한편 구본홍 사장 선임건을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일부 주주들을 에워싼 채 손으로 얼굴을 가려주는 등 보호하고 있다. ⓒ 권우성


[2008년 7월 17일] 잊지 못할 날치기 주총의 날

2008년 7월 17일 아침, 그때까지만 해도 입주업체가 많지 않아 황량하기만 했던 서울 상암동 DMC 누리꿈스퀘어 주위로 푸른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YTN 노동조합 조합원들이었다. 이 날은 YTN 임시 주주총회가 예정된 날이다.

"대통령 후보시절 언론특보를 지낸 '낙하산'을 사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조합원들의 반발로 이미 3일 전 한 차례 무산됐던 주주총회가 갑자기, 그리고 본사에서 떨어진 상암동에서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위기감은 컸다. 이들은 이른 아침 버스를 대절해 집단적으로 주총장 근처에 모였다.

조합원들은 대부분 소액주주들이기 때문에 주총장에 입장해 주주로서의 의견을 개진할 계획이었으나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에 가로막혔다. 일부 조합원들이 주주총회장에 겨우 들어갔지만 발언권은 허용되지 않았다. 주총 의장이 구본홍씨를 YTN 사장으로 발표하는 데에는 1분 남짓한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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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7월 17일 오전 서울 상암동 누리꿈스퀘어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YTN 주주총회에서 구본홍 사장 선임안이 노조원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되자 여성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이 순간은 이후 YTN 노조 조합원들에게 다가올 고난의 서막이었다. 조합원들의 우려가 현실로 변한 날, 그리고 이들이 처음으로 눈물을 터뜨린 바로 그 날이었다. 의장이 용역직원들의 호위 속에 퇴장한 뒤에도 조합원들은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서있었다. 몇몇 조합원들은 10년 넘는 세월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선배들에게 눈물로 호소했으나 그들은 이들의 절규를 외면했다.

구본홍씨는 이날부터 YTN 사장 직함을 달았다. 조합원들은 '날치기 주총'이라며 의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줄곧 '구본홍씨'라고 부르며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YTN 조합원들의 본격적인 '낙하산 반대' 투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참 많은 우여곡절과 아픔, 분노가 남대문 YTN 사옥에 뱄다.

[2008년 7월 18일] '낙하산' 출근저지 투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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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YTN 조합원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주총 이튿날인 2008년 7월 18일부터 YTN 노조는 구 사장에 대한 출근저지 투쟁을 시작했고 구 사장은 한동안 회사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 혹은 개인 집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박경석 당시 노조위원장이 사퇴하고 노종면 조합원이 새 위원장에 당선된 8월 12일부터 '구본홍 반대 투쟁'의 수위는 한층 올라갔다. 출근 저지 투쟁 등 상시투쟁과 함께 블랙투쟁, 로고투쟁, 생방송 중 손팻말 노출 시위 등을 벌였다. 방통위나 문화부 등 정부기관으로부터는 징계와 비난을 받았지만 언론계 안팎에서 큰 반향이 일었다. 'YTN 지키미' 등 팬클럽이 생겼고 각종 격려가 국내외에서 노조로 답지했다. 8000여 명에 이르는 언론인 시국선언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구 사장은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함과 동시에 9월 9일 노종면 지부장과 권석재 사무국장 등 노조 집행부 6명을 경찰에 고소하면서 '맞대응'에 나섰다.

[2008년 10월 6일] 노종면 지부장 등 33명 중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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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대선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한 언론노조 YTN지부 노종면 위원장 등 12명 중 11명이 2008년 9월 25일 오전 서울 남대문경찰서앞에서 경찰 출석 조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2008년 10월 6일 역시 YTN 노조 조합원들에게는 잊지 못할 날. 구 사장은 노 지부장 등 6명을 해고시키고 임장혁 기자 등 6명을 정직시키는 등 조합원 33명에 대한 중징계를 단행한다. YTN 간판 프로그램인 <돌발영상> 역시 시청자들과 작별한다. 구 사장은 올해 1월 28일에도 노조 조합원 19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2009년 3월 22일에는 결국 노종면 지부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며, 이를 '언론탄압'이라고 주장하는 언론계 안팎의 비판도 더욱 거세졌다. 결국 노사가 고소를 취하하고 파업을 종료하는 등의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노 지부장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이날을 계기로 YTN 노조는 '낙하산'에 맞췄던 투쟁을 '내부 시스템'으로 이동시켜 사측으로부터 '공정방송협약' 체결을 이끌어낸다. 이때가 2009년 4월이었다.

"지난 1년이, 그 전까지 다녔던 10년보다 길었다"는 한 조합원의 표현처럼 YTN 노조의 지난 1년은 달력이 꽉 찰 정도로 빡빡했다. 기자들은 해고, 정직, 구속 등으로 동료들을 잃어야 했고, 10~15년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선후배들과는 더이상 웃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2009년 7월 16일] 법정에선 구본홍 사장과 YTN 노조

그리고 1년, 구본홍 사장과 노종면 위원장 등 조합원 네 명은 다시 불편하게 마주 앉았다. 이번엔 법정에서다. 16일 오후 2시 30분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 피고인석에 노종면 위원장과 현덕수 전 위원장, 조승호·임장혁 기자가 나란히 앉았고 증인석에 구본홍 사장이 앉았다.

YTN 노사 양측이 고소 취하에 합의했지만, 검찰은 지난 4월 네 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고 오늘이 지난 6월 11일에 이어 두번째 공판이다.

증인 심문이 이뤄지던 중 피고인측 변호인이 구본홍 증인에게 물었다.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합니까?"

구 사장이 에둘러 답변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후배겠지만 CEO에 대한 물리적인 행동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과 잣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처벌 의사를 밝힌 것인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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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YTN 사장이 16일 오후 2시 30분 서울중앙지법 519호 법정에서 열린 '업무방해'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 미디어스 송선영


공판의 쟁점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사장 출근 항의 과정에서 이들의 공동폭행 여부, 사전 계획성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는 8월 27일 오후 2시 15분 결심공판이 예정되어 있어 이 사건은 9월 중순이면 1심이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후 더 중요한 소송이 걸려 있다. 지난해 10월에 사측이 행한 징계에 대해 노조측이 제기한 '징계무효' 소송이다. 사측은 "법원 판단에 맡길 것"이라는 입장이고 노조 역시 "사장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법정에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 이전 사측의 결단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징계무효 소송 1심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구본홍 사장 임기는 이미 반환점을 돌게 된다. 재판 결과에 따라 YTN에 다시 한번 회오리가 불 가능성도 있다. 2008년 7월 17일부터 시작됐던 YTN 노조의 '낙하산 반대 투쟁' 성패는 이때쯤이 되어야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업무방해 재판과 징계무효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노사는 앞으로도 진실공방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법정에서 서로 만나고 다퉈야 한다. 재판으로 인해 지난 1년이 계속해서 사내외적으로 복기되고 있다. 그래서 재판이 모두 마무리될 때쯤 되면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구본홍 사장은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YTN 사장의 임기는 3년. YTN 직원들은 구본홍 사장 이후, 이 정부 하에서 또 한 명의 사장을 받아야 한다.
#노종면 #YTN #구본홍 #낙하산 #YTN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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